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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95화 (95/257)

95화. 세상을 바꾸는 사람 (4)

엄태훈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백인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말로든 설득을 해서 그 그림을 세상에 내놓도록 해야 하는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림이랑 손자 칭찬을 하면 좋아하지만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고 하니. 대체 어떻게 해야 설득을 할 수 있을까?’

백인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 마시러 왔습니다.”

“모자가 멋지시군요.”

“손자가 온다기에 샀어요. 얼마 전에 미국에 다녀왔거든요.”

“어린 나이에 벌써 미국을요? 디즈니랜드라도 다녀온 건가요? 아기들이 좋아하던데. 저희 손자도 디즈니랜드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아하하하하하. 저희 손자도 LA에 다녀왔죠.”

백인수는 더 말을 하려다가 은우에 대한 비밀을 들킬까 봐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엄태훈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중국 운남성에서 나온 보이차예요. 일 년을 기다려서 받은 명차입니다.”

백인수가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차를 마셨다.

“정말 좋군요. 운치 있네요. 보이차는 오래 묵힐수록 비싸다고 하던데요.”

“사실 부르는 게 값이죠. 비싼 차가 워낙 많아서 말이에요. 우스갯소리로 차테크라고도 말하는데 정말 비싼 차가 많아요. 차를 좋아하다 보니 점점 더 비싼 차만 찾게 되는 것 같아서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만. 차 맛을 한 번 알게 되면 끊기가 힘들어져요.”

“덕분에 이렇게 좋은 차도 맛보게 되고 영광입니다.”

“저는 덕분에 좋은 그림도 구경하게 되는걸요. 차도 그림도 마찬가지죠.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는 힘들죠. 마음에 드는 차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죠. 이중섭 화백의 황소는 35억 6천만 원에,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45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죠. 하지만 전 그 그림들이 가진 가치에 비하면 그 돈도 많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백인수가 강하게 동의했다.

“맞아요. 이중섭 화백의 황소는 2007년에 경매가가 35억 6천만 원이었지만 작년엔 47억에 팔린 것을 기사에서 읽었어요.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죠. 전 지금도 이중섭 화백의 황소를 보면 그 힘찬 선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놀라곤 합니다. 두껍고 거친 선으로 표현해낸 황소의 기운은 황소가 그림을 뚫고 밖으로 달려 나올 것만 같으니까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또 어떻습니까? 명암과 원근이 없는 판화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의 정취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치 제가 박수근 화백이 살았던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요. 하하하.”

엄태훈이 겸연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림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최근 경매가까지 다 알고 계신 것 보면요.”

“부끄러울 따름이죠. 학창시절 꿈이 화가여서 지금도 기사가 나거나 하면 관심을 가지고 볼 뿐입니다. 관장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지식일 텐데요.

저도 학창시절에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고흐의 삶을 동경했죠. 가난해도 예술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도 참 인상적이었고요.”

“저도 천경자 화백을 좋아합니다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볼 때마다 천경자 화백이 저를 응시하는 것만 같아서 묘한 기분이 들곤 해요.”

“참 고독한 삶을 사셨던 분이죠. 그 카리스마 서린 눈빛. 미인도의 눈과 너무 닮았어요.”

“이야기가 잘 통하니 차 맛이 더 좋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백인수와 엄태훈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마가 훌러덩 벗겨지고 안경을 쓴 키가 작은 남자 한 명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엄태훈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좋은 차가 왔다길래 들렀습니다.”

엄태훈은 예상보다 빨리 나타난 김진태를 보고 놀랐다.

“오, 진태 씨. 이거 미안한데 먼저 온 손님이 계셔서.”

백인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함께 하시죠. 좋은 차는 여러 사람이 나눠 마실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괜찮겠어요? 죄송해서 그러죠. 불편하실 수도 있는 자리니.”

“정말 괜찮아요. 여기 앉으시죠.”

백인수가 김진태를 위해 소파의 좌측으로 옮겨 앉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김진태가 백인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엄태훈이 말했다.

“진태 씨. 여긴 백인수 씨. 유명한 양복점을 운영하고 계시죠. 인수 씨. 여긴 김진태 씨. 한국대학교 동양학과 학과장이세요.”

김진태와 백인수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진태가 엄태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서로 알게 되셨나요?”

“아, 그게 내가 백인수 씨 양복점 앞을 지나가다가 거기 있던 한 장의 그림에 매료되어서 말이지. 그래서 그림에 대해 묻다가 친해지게 되었다네.”

“관장님께서 인정하실 정도의 그림이라면 분명히 대단한 그림이었을 텐데 그런 그림이 양복점에 걸려있었다고요?”

백인수가 말했다.

“제 손자가 그린 그림이어서요.”

김진태가 물었다.

“혹시 그 그림을 제가 볼 수 있을까요?”

백인수가 가방에서 은우가 그린 그림을 꺼냈다.

김진태는 은우의 그림을 보았다.

‘풍선껌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이라니. 정말 신선하다.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이 그린 거야. 형체를 다 그리지 않았지만, 대상이 무언지 알 수 있어. 이렇게 단순한 몇 개의 선만으로 강아지의 감정이 느껴지다니. 어떻게 이런.’

김진태가 외쳤다.

“손자분이 그린 그림을 더 볼 수 있을까요?”

백인수가 가방에서 은우의 그림을 더 꺼내면서 말했다.

“손자가 미국에 다녀오느라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서요. 최근에 그린 건 없고 여기 있는 건 전부 한 달 전쯤에 그려진 겁니다.”

김진태는 은우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과자 박스에 그려진 아이들. 거친 듯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이 터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보면 황소가 금방이라도 고개를 쳐들고 뛰쳐나올 것처럼 느껴지지. 이 그림도 마찬가지야.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그림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아.

대상을 간략하게 표현하면서도 특징을 잡아 생동감을 넣는다.

이건 수십 년 동안 그림을 그린 대가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야.

만약 대가가 아니라면 대가의 시선을 가진 그런 아이겠지.’

김진태가 흥분해서 백인수에게 물었다.

“손자분이 몇 살인가요?”

***

탈색한 금발 머리를 묶은 여자가 털이 뒤엉키고 꼬질꼬질한 푸들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놀이공원의 라라입니다. 저는 오늘 착한 일 챌린지에 참가하기 위해 유기동물 보호소에 왔습니다. 전부터 계속 해야지 생각만 하고 스케줄 때문에 바쁘다고 미루기만 하다가 오늘 왔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강아지들이 너무 불쌍해서 맘이 안 좋아요.”

라라는 푸들을 초록색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팬 여러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반려견 두부와 몽실이를 기르고 있는데요. 집에서 셀프 미용을 자주 해 주거든요. 오늘 여기 보호소에 일손이 달린다고 해서 처음으로 미용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라라가 강아지 이발기로 강아지의 털을 밀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긴장한 듯 혀로 입을 자꾸만 핥았지만, 얌전히 잘 있었다.

라라는 강아지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었다.

“아이구. 이쁘네. 금방 이뻐질 거야. 이뻐져서 좋은 주인 만나자. 잘한다. 아이고 순하지. 여러분 얘는 이름이 순둥이예요. 너무 순해서 이름을 순둥이라고 붙이셨대요. 진짜 순하고 애교 많고 사람 좋아해요. 나이는 2살이고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인이 버리고 가서 여기 오게 됐대요. 꼭 좋은 주인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영상 보시고 강아지 입양 계획 있으신 분은 순둥이 좀 기억해 주세요.”

한 시간이 지나고 라라의 옷이 땀으로 젖었다.

미용을 마친 순둥이는 다른 강아지처럼 말끔해져 있었다.

“순둥아 수고했어. 와, 다른 강아지 미용은 처음 해 보는데 힘드네요. 옷이 다 젖었어요. 그래도 순둥이가 깨끗해진 모습을 보니 보람 있어요. 저는 다음 도전자를 지명하겠습니다. 착한 일 챌린지 파이팅! 은우 파이팅! 미혼부를 위한 헌법 개정 파이팅! 다음 도전자는 그룹 도레미의 리더 김모모!”

***

자고 일어난 은우는 재능창이 변화한 것을 보고 놀랐다.

[희망의 신 루딘의 긍정의 선택 레벨 2 – 5020/10000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경우, 서로를 위해 행동하는 힘이 커집니다.]

‘며칠 사이에 숫자가 많이 커졌네. 챌린지가 잘 되고 있나 봐.’

은우가 보리에게 물었다.

“보이야. 챌린지 어떠케 되고 인능지 얄려져.”

보리가 별스타를 켜고 말했다.

“멍멍(맨 처음 착한 일을 시작한 사람은 슈퍼보이즈 형들이야. 슈퍼보이즈 형들이 각자 다른 사람을 지명했고, 지명받은 사람들이 다 현재 착한 일을 하고 있어서 관련 게시물이 이천 개가 넘었어.

처음엔 연예인들이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젠 일반인들도 참가하고 있어. 지명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말이지.

와, 근데 놀이공원의 라라라는 가수가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서 착한 일을 한 모양인데 덕분에 이 보호소 입양률이 늘어났대. 영상에 나온 순둥이도 입양을 가고 말이지. 내 친구들을 도와주다니 대단한데. 은우. 고마워.)”

보리가 검색을 하다말고 눈물을 훔쳤다.

은우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줘서 그렇게 숫자가 많이 늘어난 거구나. 갈 곳 없는 강아지한테도 가족이 생겨서 다행이다.’

은우는 생각했다.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챌린지도 좋지만 노래가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이 더 늘어날 거야.’

은우의 키즈폰의 녹음 기능을 열고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냐는 엄마갸 엄떠요. 햐지만 슬프지 아냐.

냐를 슬프게 햐는 건 나쁜 법.

엄마갸 엄떠도 냐는 소듕해.

냐는 아빠갸 엄떠요. 햐지만 슬프지 아냐.

냐를 슬프게 햐는 건 나쁜 법.

아빠갸 엄떠도 냐는 소듕해.

우린 모듀 소듕해.

우린 모듀 사랑바꼬 시퍼요.

우린 모듀 행보카고 시퍼요.

우린 모듀 날고 시퍼요.”

듣고 있던 보리가 말했다.

“멍멍.(노래 좋은데. 역시 넌 천재구나. 이렇게 좋은 노래가 한 번에 나오다니.)”

은우가 대답했다.

“내갸 겨끈 거쟈나.”

“멍멍(그래, 그래서 그렇게 가사가 와 닿나 보다.)”

“이거 영탸기 땀톤에게 마래서 올릴꺄?”

“멍멍(음, 그 곡은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불러야 더 멋질 것 같아. 어린이집 친구들도 너랑 비슷한 경험이 있잖아. 듣는 사람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거야.)”

은우가 보리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보이! 쳔재.”

“멍멍(오늘은 나도 같이 가자. 나도 노래 부르고 싶어.)”

***

은우는 길동의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내렸다.

친구들이 은우를 보고 신이 나서 달려왔다.

혜린이가 외쳤다.

“연기 왕자님.”

준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우리 다 갸치 티브이 바땨. 은우 짱 머디떠.”

은우는 친구들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보고 시퍼떠. 얘들아.”

은우의 발 뒤에서 보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 보이땨.”

“뽀이.”

아기들이 보리를 에워쌌다.

보리는 생각했다.

‘이놈의 인기란. 오늘 또 털 꽤나 날리겠군. 노래 부르는 것만 아니었어도 집에서 쉬는 건데.’

길동이 김마리아 수녀님께 마카롱 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친구들 선물이에요. 은우가 아카데미 프리파티에서 이걸 먹어보더니 요새 꽂혀서 맛집을 찾아냈거든요, 제가. 수녀님과 신부님도 드시라고 넉넉히 샀어요. 오늘 다 못 드시는 건 무조건 냉장실에 보관하세요. 수녀님.”

김마리아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마카롱을 나눠 주었다.

“얘들아, 이거 은우가 주는 선물이라는데 먹어볼까?”

“네에.”

아기들은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수녀님 곁으로 모여들었다.

혜린이가 외쳤다.

“와아, 이쁘다. 냐는 핑크색 할 거야.”

연아도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마카롱을 바라보았다.

“너뮤 이쁜 과쟈다. 나는 쥬황색 햐꺼야.”

수녀님은 아기들에게 마카롱을 2개씩 나누어 주었다.

시우는 양손에 마카롱을 쥔 채로 외쳤다.

“하냐 더 주떼요. 더 머꼬 시퍼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시우야. 친구들도 다 2개씩 받았잖아. 똑같이 받은 거야. 알았지? 다른 친구들도 다 먹으면 그때 다시 더 줄게.”

시우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준호가 마카롱 봉지를 뜯어 마카롱을 물었다.

‘맛있고 폭신폭신해.’

준호는 마카롱의 맛에 푹 빠졌다.

준호는 포장을 뜯어 다른 하나의 마카롱도 다 입에 넣어버렸다.

“수녀님, 더 주떼요. 다 머거떠요.”

혜린이도 마카롱을 다 먹고 외쳤다.

“저도요.”

연아는 입가에 크림을 가득 묻힌 채로 말했다.

“마디떠요.”

준호는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아 먹으며 말했다.

“꿀마시예요.”

보리는 생각했다.

‘수녀님이 마카롱의 위력을 모르셨던 게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게 마카롱인데. 난 이미 집에서 은우가 마카롱 20개를 한번에 먹는 걸 봐서 말이지.’

수녀님은 아기들에게 마카롱을 하나씩 더 나눠주며 생각했다.

‘길동 매니저가 많이 샀다고 했는데도 금방 다 사라지는 거 아닐까? 내 것은 그렇다 쳐도 신부님 것은 남으려나. 물론 신부님은 아기들이 잘 먹으면 아기들 주라고 하시겠지만.’

아기들은 새로 받은 마카롱 하나도 금방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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