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41화 (41/300)
  • # 41

    동양에서 온 사탄(Satan)

    밤이되자 네온사인이 켜진 바(Bar)에서는 컨트리 뮤직이 흘러나온다.

    뉴욕에는 다양한 컨셉의 술집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클럽들도 있는데. 뉴욕의 핫클럽(Hot Club)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매달마다 인기 있는 클럽 순위랭킹 Top-20를 발표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보통 Top-10 안에 포함된 클럽에 들어갈려면 클럽 오프닝때부터 줄을 서야 겨우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뉴욕에서 상류층을 형성하는 셀럽(유명인)들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줄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클럽주인과 친분이 있다면, 또는 그와 맞먹는 지위와 명성이 있다면 백도어(Back Door)를 통해 얼마든지 입장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일부 뉴욕시민들은 비판하지만, 대다수의 여론은 이렇다.

    빅애플(New York)에서는 돈과 명성이 최고다.

    때문에 보통의 뉴요커라고 해도 핫클럽들은 어쩌다 가보는 곳이다. 대부분의 뉴욕시민들이 밤문화를 벗삼아 찾아가는 술집들은 꽤 소박하다.

    특히 뉴욕의 중심인 맨하튼.

    그중에서도 금융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월가(Wall Street)에서 서쪽으로 4-5블럭 떨어진 오클랜드-거리는 맨하튼 사람들에게 월가의 다크사이드라고 불린다.

    이건 좋게 불렀을 때의 명칭이고 어떤이들은 월가의 트레쉬홀(Trash hole)이라는 경멸조의 단어도 사용한다.

    트레쉬홀(Trash hole).

    즉 맨하튼과 금융중심인 월가에서 탈락한 루저들 또는 그곳에서 실패한 인생들이 모이는 장소란 뜻이다.

    NYSE(New York Stock Exchange)와 나스닥(NASDAQ)으로 대표되는 월 스트리트.

    그곳에는 금융인의 꿈을 갖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중에 성공하는 이들은 수백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수영장이딸린 호화주택에서 상류층의 인생을 즐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에서 실패한 루저들은 다크사이드 또는 트레쉬홀로 모인다.

    여기서 그들은 실패한 인생을 고뇌하며 더욱더 밑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도 한다.

    그들이 트래쉬홀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맨하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성공과 출세의 꿈이 있는 월스트리트의 근처에 머물고 싶어하는 본능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트레쉬홀인 오클랜드 거리를 지나가는 한 명의 루저가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의 표정.

    오늘은 평소와 좀 다르다.

    “악마의 속삭임인가, 아니면 행운의 여신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인가?”

    스몰츠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표정은 기묘하게 구겨졌다.

    오늘낮의 사건은 그에게 꿈속처럼 느껴진다.

    그렉 스몰츠-

    뉴욕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에 월가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게 대략 20년 전의 일이다.

    세계금융의 중심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겠다고 뛰어들었고 명문대인 아이비리그 출신은 아니지만 자신감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적응했다.

    증권브로커(중개인)로 활동하며 상당한 고객들도 확보했고 풀장이딸린 호화주택에서 지내는 생활도 눈앞에 보이는 거 같았다.

    하지만 월가에는 특이한 현상이 존재했다.

    증권시장과 금융시장이 호황기 때.

    즉 불마켓(Bull Market)일 때에는 그렉 스몰츠처럼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라도 나름대로 큰 혜택을 본다.

    그러나 불황기에 접어들거나 금융대란, 또는 하락세(Bear Market)일 때에는 여지없이 잘려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월가에서 퇴출당하거나 쫓겨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기껏해야 3류취급 당하는 금융상품이나 정크본드(Junk Bond)를 중개하고 팔면서 겨우겨우 연명하는 것이다.

    한때는 맨하튼의 고급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화려한 생활도 했던 스몰츠였다.

    그러나 지금은 쓰레기통 냄새나는 빈민가의 주택단지에서 겨우 살아가는 신세다.

    이 상태로 계속가면 자신도 월가에서 실패한 루저들처럼 브룩클린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는 상황이 올것이다.

    뉴욕의 브룩클린 브릿지는 미국의 대공황기 때 수많은 금융인들과 투자자들이 거기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후에는 월가에서 실패한 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그 때.

    스몰츠를 향해 두 명의 동양인이 찾아온 것이다.

    만난 장소도 맨하튼에 있는 유명식당인 스노우캣(Snow Cat)이다.

    과거에 자신이 월가에서 잘나갈 때에 두세번 정도 가봤다. 하지만 실패한 뒤에는 지나가면서 쳐다보기만 했던 곳.

    스몰츠가 만난 두 명의 동양인들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먼저 30대중반의 나이에 170cm대 초반의 사내. 처음에는 그가 리더인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실질적인 결정자는 같이온 젊은 동양인이었다.

    상당히 잘생긴 동안의 얼굴이지만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이는 많이봐줘야 20대 초중반.

    185cm를 넘어가는 훤칠한 키와 단단한 체격.

    유창한 영어 구사력은 미국에서 출생한 아시아계라 해도 믿을 정도다.

    “그의 이름이 로버트 강(Robert Kang)이라고 했던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그렇게 상대를 압도하는 인물은 처음이다. 유색인종을 경멸하는 KKK-단 놈들도 그친구 앞에서는 꼬리 내리고 말 수준이니까.”

    그렉스몰츠는 유색인종의 편견이심한 남부 텍사스 출신의 백인이다.

    미국에서는 일명 레드넥(Red Neck)이라고 불리는 집단이다.

    다만 스몰츠의 경우에는 대학을 뉴욕주립대를 다니면서 그리고 20년이상 뉴요커의 생활을 하며 인종차별이 얼마나 X신 같은 짓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레드넥들은 기껏해야 텍사스나 시골 남부지역에서나 껄떡거리지 뉴욕같이 현대화된 도시에서는 촌놈 취급받는 수준에 불과했다.

    로버트강(Robert Kang)이라는 키 큰 동양인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금융중심인 월가에서 20년 동안 굴러먹으면서 익힌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기술들을 이용해서 임무를 수행해 달라는 것.

    낯선 동양인들의 등장과 제안에 스몰츠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거래의 협상원칙 첫 번째는 자신의 몸값을 뻥튀기하고 블러핑 하는 것.

    그래서 일단 불렀다.

    자신의 솜씨를 원한다면 최소 10만 달러는 필요하다고.

    이것도 스몰츠가 즉석에서 2배로 높인 것이다.

    그래, 10만 달러는 좀 고민되겠지?

    하지만 스몰츠의 예상은 한방에 박살냈다.

    로버트강이란 키 큰 동양인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고.

    터엉- 테이블위에 검은색 슈트케이스가 올라왔다. 살짝열리진 틈사이로 보이는 건 빳빳하게 채워진 100달러짜리.

    “스몰츠씨. 선금 20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일이 잘풀리고 성공한다면 나머지 40만 달러를 더 드리죠.”

    로버트강이 스몰츠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는 같이온 동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는 거야?

    “난 아직 Yes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글쎄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 거절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네요. 하지만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받은 돈은 슈트케이스 안에 있는 주소로 반납하면 됩니다. 혹시나 다른생각을 품는다면 당신에게 끔찍한 비극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양쪽다 원하지 않는 것이니.”

    로버트강은 그 말을 남겨두고 떠났다.

    지금까지 월가와 뉴욕에서 산전수전 겪었다고 자부했던 스몰츠에게 이것은 처음겪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받은 20만 달러를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몰래 먹고 튈수도 없다.

    로버트강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드럼통에 넣어 대서양에 수장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스몰츠같은 금융인은 시장판도를 잘 읽어야 하는 것처럼 눈앞의 상대에 대해서도 잘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를.

    뭣보다 이후에 성공하면 40만 달러가 추가로 들어온다.

    그리고 상대는 거물이다.

    자신이 평생에 한번 만나기도 힘든 수준의.

    또한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로버트강의 말이 스몰츠의 뇌리에서 되새겨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으로 스몰츠 당신과 나의 사이에 새로운 인연이 생길 수도 있겠군요. 당신도 알다시피 오리엔탈 컬쳐에서는 인연이란 걸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로버트강이 남긴 한마디-

    스몰츠의 내부에서 새로운 피가 끌어올랐다.

    악마의 속삭임이든, 행운의 여신이 보내는 손짓이든 지금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운명은 브룩클린 브릿지에서 투신자살 하는 것.

    어쩌면 자신에게 온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여기까지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스몰츠가 주먹을 쥐었다.

    얼마 후 그의 눈앞에 단골 술집이 보였다.

    재즈뮤직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곳.

    네온사인 간판에는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스몰츠가 좋아하는 재즈송이 흘러나왔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로 다가가자 에이미가 보였다.

    30대 초반의 여자 바텐더로 글래머한 몸매가 매력적이다.

    뭣보다 스몰츠가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

    다만 지금까지는 루저생활을 했기에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에이미, 버본위스키. 언더락으로.”

    “어머~ 스몰츠씨. 사실 몰래 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매니저가 저렇게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그렇군. 하긴 매니저 녀석때문에 에이미가 곤란하면 안돼지.”

    “미안해요. 스몰츠씨.”

    그녀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었다.

    에이미도 스몰츠가 월가에서 실패한 루저중에 한 명이란 걸 알고 있다.

    다만 상당수의 실패한 루저들이 여 바텐더를 상대로 성질을 부리거나 신세한탄 하면서 질질짜는데 스몰츠는 그런 것없이 꽤 젠틀했다.

    가망성없는 루저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한차례 매니저쪽을 보던 스몰츠가 지갑에서 100달러짜리 10장을 꺼내었다.

    그러자 에이미의 표정이 놀랐다.

    “사실 그동안 에이미한테 몇 번 공짜술 얻어먹은 것도 미안하고. 일단 버본 위스키 언더락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팁으로.”

    스몰츠가 매니저 몰래 에이미에게 돈을 건네었다.

    “정말로 고마워요. 스몰츠씨.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에이미. 만약 누군가가 너에게 엄청난 제안을 한다면 그것이 악마의 속삭임인지, 아니면 행운의 여신이 손짓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글쎄요. 그건 나중에 가봐야 아는 거죠. 하지만 자신에게 기회가 왔는데 스스로 차버리면 시작조차 못한 것이죠.”

    “역시 에이미 너다운 생각이야.”

    “어차피 전 고졸 중퇴하고 뉴욕에 올라와서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다가 여기까지 흘러온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스몰츠씨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아니, 엄청나게 도움되었어. 백만 달러짜리 어드바이스(Advice)인걸.”

    “정말로요?”

    에이미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스몰츠는 연민을 느꼈다. 자신이 월가의 꿈을 바라면서 뉴욕에 온 것처럼, 에이미는 브로드웨이의 대스타를 꿈꾸면서 왔다.

    하지만 스몰츠도 실패했고 그녀도 실패했다.

    그래서 스몰츠는 에이미에게 더 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에이미. 나중에 시간되면 브로드웨이에 <오페라의 유령>이라도 보러갈까?”

    “스몰츠씨. 그게 정말이에요? 저 <오페라의 유령>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티켓가격이 상당히 비쌀텐데요.”

    “하하. 그건 에이미 네가 걱정하지 안아도 돼.”

    스몰츠가 호쾌하게 웃더니 버본위스키를 한번에 들이켰다. 옥수수를 이용해만든 버본위스키는 보드카 만큼의 도수를 자랑한다.

    하지만 목으로 넘어갈 때의 짜릿함과 얼얼한 기분이 스몰츠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 동양에서 온 사탄(Satan)과 손을 잡아보자.

    스몰츠가 보기에도 로버트강은 결코 천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몰츠에게는 오히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뉴욕에 천사는 없다.

    그렇다면 강력한 사탄과 손을 잡는 게 훨씬 더 유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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