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돈냄새를 맡다
“아무튼 오늘 한턱 잘 먹었다. 커피는 내가 쏘마.”
“자판기 커피로요?”
“당연하지.”
“크윽. 역시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동수 녀석이 투덜거린다.
그럼 수컷끼리 자판기 커피면 충분하지.
뭘 더 바라냐?
[메시지 왔떠용~]
동수 녀석의 스마트폰에서 메시지음이 들린다.
그런데 저건 뭐냐?
메시지 알림음이 진짜로 오그라들 정도다.
“너 메시지 알림음이 이상한데. 전에 쓰던 거하고 다르잖아.”
“이거 소민이가 좋다고 해서요.”
이러면서 히죽거린다.
이 녀석 봐라. 벌써 넘어갔구나.
조만간에 저둘이 커플티 맞춰 입고 다니는 거 아냐?
뭐 둘이 잘된다면 좋은 거니까.
다만 내 앞에서 둘이서 커플민폐 끼치면 솔로의 응징이 뭔지를 확실히 보여줘야지.
이런 내 속과 다르게 동수 녀석은 좋아라 하며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입이 귀에까지 찢어지는 거 보니 역시 소민이한테 온 거 같네.
하긴 둘이 토익공부한다고 열공 중이니 당연하겠다.
“소민이한테서 온 거냐?”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면 더 이상하지.”
녀석을 향해 대답하며 식판을 들고 일어나려는데.
동수 녀석의 표정이 급변동한다.
“어라, 이거 왜 이래?”
“뭔데.”
“스마트폰이 먹통 되었어요. 화면 터치도 안되고.”
“그럼 껐다 다시 켜봐. 내 꺼도 그런 경우 있을 때, 껐다 켜니까 그냥 되던데.”
내 말에 동수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기대감을 갖고 있던 동수의 표정은 절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으아아! 이제는 부팅도 안되고. 전원 버튼도 제대로 안먹고....”
“무슨 스마트폰이 그래?”
동수를 향해 말하며 녀석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역시......!”
“아무래도 역시죠?”
“이걸 왜 샀냐?”
“국산보다 엄청 싸니까요. 반값이에요. 아니 어떤 것은 1/3 가격이라서.”
“그래도 중국제 스마트폰은 문제 많잖아. 고칠 수는 있는 거야? A/S 센터는?”
“한국에 딱 한군데 있는데 부산이래요.”
“부산? 하하!”
동수의 대답을 들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중국산 스마트폰 고치러 가야 한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스마트폰 먹통 되면 소민이가 보내는 메시지도 못받는데. 연락도 못하고.”
“어차피 오늘밤에 야간타임으로 같이 일하잖아. 그 때 볼 건데 뭐.”
“그래도요.”
동수 녀석의 표정은 전혀 괜찮은게 아니다.
스마트폰 고장으로 소민이의 메시지를 못받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A/S 센터있는 부산까지 가는 건 좀 그렇고. 어째 방법이 없네.”
“아예 없는 건 아닌데.”
한동안 골몰하던 동수가 대답했다.
그러자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방법이 있다고?”
“예. 병관 선배한테 부탁하면 되기는 해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번에 스마트폰이 한번 먹통 되었을 때 고쳐주셨거든요.”
“그 사람이 누군데? 그런 게 가능해?”
“일단 시도해 봐야죠. 아참, 그리고 병관 선배는 우리학교는 아니에요. 호진대학교인데. 형도 알죠?”
“물론이지. 근처에 있는 대학교잖아. 그런데 거기 공대가 중심인 학교라 애들이 좀 삭막해.”
“공대생들이 그 말들으면 부들부들 합니다.”
“하긴 그곳에선 말조심해야지.”
동수를 향해 씨익 웃었다.
호진대학교라.
지나가면서 몇 번 본 적있었다.
우리학교가 있는 신개동과 신개역 지역은 여러개의 대학들이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큰 대학로에 속한다.
호진대학교는 공대전문으로 출발해서 지금도 공과대학들이 학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솔직히 나 같은 상경계와 문과쪽은 공대에 대해 그닥 관심 없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호진대에 대해 말만 대충 들었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동수 녀석도 나와 같은 문과계열이다.
내가 경영학과이고, 녀석은 신문방송 학과다. 그렇다 보니 기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초보인 수준.
그래서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자 멘탈붕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 호진대에 병관 선배 만나러 갈 건데. 강민 형도 같이 가볼래요?”
“그래볼까?”
오전수업이 끝났기에 제법 한가하다.
그리고 처음에는 좀 망설였는데 순간적으로 어떤 감이 스쳐갔다.
어쩌면 내 앞으로 대박 칠 어떤 기회가 왔다는 느낌 같은 거.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스치는 어떤 기회를 멍하게 있다가 놓치는 건 바보짓이다.
돈 냄새를 맡는 동물적인 감각.
그것이 지금 나의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 것이다.
***
“확실히 캠퍼스 분위기가 틀리네.”
“공대생들이 들으면 광분합니다.”
동수 녀석이 슬쩍 눈치를 주었다.
그런데 녀석도 나처럼 느끼고 있었다.
사방으로 보이는 수컷과 수컷!
호진대학교는 남녀학생 비율이 극악을 달리는 곳이다.
남녀비율이 최소 30:1 또는 40:1쯤 되겠다.
대학교가 아니라 군대냐?
“그런데 병관 선배란 사람. 수업 듣고 있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은 없어요. 병관 선배는 호진대학교 졸업생이에요.”
“졸업생인데 아직 학교에 있어? 뭣 때문에?”
“그건 조금 후면 알게 되요.”
동수가 대답하더니 길을 안내했다.
주위로 보이는 건물들이 모두 공대학부들이다.
동수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이 공과대이고, 일부 예체능계 학부가 몇 개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호진대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많은 쪽이 예체능계 학부인데, 그 때문에 여기 호진대의 여학생들과 예체능계학부 여학생들은 귀하신 몸들이다.
하긴 공과대학들이 대부분 그러니까.
얼마후 동수를 따라 꽤 후미진 쪽으로 들어갔다.
이 자식이 왜 으슥한 곳으로?
좀 불안하네.
잠시 걸어가자 정면에 건물이 하나 보였다.
낡아보이는데 크기는 제법 되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호진대학교 동아리 건물과 창업센터가 같이 있는 곳이에요.”
“창업센터라....”
요즘은 대학교에서도 청년창업이나 기타 등등을 지원하는 편이다.
우리학교에도 창업동아리 등이 설립되어서 그곳에 참가해 활동 중인 학생들도 있으니까. 내가 공부하는 상경계 등에 관련된 동아리들도 있는데 취업동아리부터 시작해서, 주식모의투자와 국제경제분석과 마케팅....까지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그러나 청년창업 등에서 성공하는 케이스는 진짜로 드물었다.
주위에서 벤처니 뭐니 하지만 대부분의 벤처들이 1~2년 사이에 90%가 망하고 3~4년 사이에는 99%가 망하거나 박살난다.
1000개의 벤처가 시작하면 그중에 990개가 중간에 실패하고 겨우 10개가 중간 정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원-싸우전드(one-thousand)라고 해서 1000개의 벤처들 중에 1개가 대박을 치기도 한다.
그만큼 벤처가 성공한다는 건 지극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실리콘벨리에 많은 투자금이 몰리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1000개의 벤처 중에 1개가 대박으로 성공하면 나머지 999개의 실패한 벤처들의 전체적인 손실을 모두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처산업을 육성하는데 실패한 국가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아~ 진짜로 노총각 냄새 진동하네.”
“선배를 찾아온 놈이 하는 소리가 영 불손하네.”
동수 녀석의 투덜거림에 최병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동수의 말이 사실이다.
진짜로 문을 열자마자 화악~ 코끝으로 느껴지는 이 냄새는.
크윽- 컵라면 먹었으면 좀 제대로 치우던가.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컵라면 용기들.
실상 창업센터-라고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사무실이나 작업실 하나 지원해 주는 게 전부다.
그래도 작업실의 앞에 붙여진 명패는 나름 이곳의 각오와 열정이 느껴졌다.
“유비콘(Ubicon)이라.”
“듣기로는 유비쿼터스 + 유니콘이라고 하는데 진짜로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놓고.”
“짜식이! 언젠가 우리들이 대박 치면 한국을 넘어서 전세계가 유비콘이란 이름을 알게 될 거다. 그런데, 동수야. 같이 오신 분은?”
“아. 강민 형인데. 저하고 친한 선배예요. 그래도 나이는 병관 선배가 더 많으니까.”
“강민입니다.”
“어서 와. 작업실이 지저분해서 좀 그렇네.”
최병관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작업실이 넓은 것은 아니었다.
많아 봐야 10명 정도가 들어갈 작은 공간에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다.
각각의 테이블마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그 외에도 전산 관련 장비들이 꽤 많았다.
아무래도 IT쪽 계열의 창업동아리나 모임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야?”
“그게.... 병관 선배. 제 꺼 스마트폰이 먹통이에요. 어서 고쳐주세요. 빨리 고치지 못하면 소민이한테서 오는 문자메시지가....”
동수가 울면서 매달린다.
그것에 대해 최병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길래 내가 저번에 뭐라고 했어? 스마트폰 바꾸라고 했지. 그거 오래 못간다고 말이야.”
“이번 주에 월급 받으면 진짜로 바꿀 겁니다. 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그것보다 제 꺼 스마트폰 좀.”
“일단 줘봐.”
최병관이 말하자 동수 녀석이 후다닥 스마트폰을 꺼내어서 넘겼다.
“티오미(Tiomi). 이거 진짜로 문제 많은 폰인데. 중국제가 국산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대신에 안전성이 개판이야. 하드웨어하고 프로그램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걸 제대로 점검도 안하고 마구 출시하니까.”
“A/S도 개판이에요. A/S 센터를 부산에 만들어놓고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냥 A/S 하는 시늉만 내는 거 같아요.”
“어차피 싸게 많이 팔아서 일단 덩치부터 키우자는 전략이라서 그런 거지. 그나저나, 이거 전원버튼도 먹통이네.”
“충전기 연결해서 해봤는데도 안돼요.”
“잠깐 기다려봐.”
최병관이 대답하더니 티오미 스마트폰의 커버를 분리했다. 그리고는 안쪽에 있는 기판쪽과 장치들을 살폈다.
“전원버튼쪽 접점이 좀 안좋네. 그 외에 다른데도 좀 문제 있고. 그래도 일단 전원은 들어오게 할 수 있으니까.”
최병관이 송곳처럼 얇은 드라이버를 가져왔고 손질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충전기 케이블을 연결한 뒤에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스마트폰에 전원이 들어왔다.
[티오미~ 티오미~ 웰컴투 티오미~]
스마트폰이 부팅되면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동수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동수처럼 스마트폰 먹통 되어서 멘탈붕괴되는 사람한테는 진짜로 열 받게 만드는 음악이니까.
전원이 들어와서 부팅은 되었지만 역시나 처음에 나왔던 대로 화면 터치나 이런 건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에서 지직-거리는 기묘한 노이즈와 화면이 갈라지는 현상도 생겼다.
“그런데 병관 선배가 저런 걸 고칠 수 있어? 내가 보기에는 그냥 싹다 지워야 할 거 같은데.”
“강민 형. 병관 선배 실력 좋아요. 저렇게 되어도 포맷이나 리셋 같은 거 안하고도 고쳐요. 컴퓨터와 모바일쪽 프로그램도 많이 알고.”
“왠지 기대되는데.”
솔직히 좀 놀라고 있었다.
국산 스마트폰에도 저런 식으로 고장 나서, A/S 센터에 가져가면 대부분 그냥 싹 지우거나 리셋해버린다.
그럴 것이 A/S 센터에 있는 엔지니어들도 그 정도까지 세세하게 파고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병관은 동수의 중국폰에 데이터 케이블을 연결했고 그것을 데스크탑 컴퓨터와 연동시켰다.
그런데 모니터에 보이는 화면은 완전히 전문적이고 프로그램에 관련된 부분이다.
최병관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며 복잡한 프로그램 소스들을 체크해 나갔다.
동수 말대로 진짜 실력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