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14화 (14/300)

# 14

나노봇(Nanobot)

후아-.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네.

까딱 잘못했으면 진짜로 호빗 난쟁이가 될 뻔했다.

Yes를 누른다고 해서 금방 키가 20cm 팍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내가 하이퍼 시스템이란 AI(인공지능)과 결합하고 몇 달 동안 점진적으로 키가 4cm 정도 늘어난 것처럼.

키를 20cm 줄이는 것도 몇 달 동안 서서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미쳐가지고 Yes를 선택했다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비가역성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결론은 한번 선택하면 끝이란 뜻.

그리고 몇 달 뒤에 내 키는 156cm짜리 호빗이 되는 것이다.

순간 온몸으로 식은땀이 흘러간다.

키가 156cm짜리의 내 모습.

으윽-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내 키를 그런 호빗 난쟁이로 만들겠다고?

이 자식 진짜로 살벌한 놈이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하시를 향해 말했다.

“한번만 더 내 키를 줄인다는 소리만 해봐라. 진짜로 가만 안둔다.”

<강민 유저의 신장이 20cm 줄어서 156cm가 된다 해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키가 줄어든 대신 상체의 좌우로 강력한 근육을 보유하게 되어 더 효율적입니다. 가령 이런 이미지로....>

그러면서 하시 녀석이 내 눈앞에 보여준 영상인데.

이 자식아. 이건 드워프잖아.

진짜로 멘탈붕괴 직전까지 간다.

AI(인공지능)이라서 인간의 미적감각이란 것이 아예 없냐?

“아무튼 내 키가 4cm 자란 것에 대해서는 큰 불만은 없어. 다만....”

<다만 뭡니까?>

“설마 이대로 계속 자라는 건 아니겠지? 2미터 이상, 아니 3미터 넘어가는 거인은 나도 좀 그렇단 말이지. 내가 농구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뭣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질문을 했는데도 메시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설마 묵비권이냐?

잠시 초조해하는 중.

<분석 중......>

이 메시지만 한참 동안 나왔다.

뭔가 불안한데.

이제까지 내가 질문하면 재깍 대답하던 녀석이 왜 이래?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현재 강민 유저에게 발생한 육체적 변이현상은 하이퍼 시스템의 코어에 있는 셀프디펜스 메커니즘(Self Defence Mechanism)에 의해 진행된 상황입니다.>

“셀프 디펜스 메커니즘? 그건 또 뭐야. 처음 들어보는 거잖아.”

<간단하게 말해 AI-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AI-시스템이 결합된 호스트의 육체적 성능을 높이기 위한 작업입니다.>

“가만 호스트라면, 그게 나란 소리이고. 나의 육체적 능력을 높이는 것이 곧 나와 결합된 너를 보호하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현재의 하이퍼 시스템의 성능이나 업그레이드 단계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호스트가 사망할 시에 내부에 결합된 하이퍼 시스템이란 AI(인공지능)자체도 소멸될 가능성이 높기에....>

AI(인공지능)가 꽤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만약에 내가 내일이라도 갑자기 사고나 기타 상황으로 죽으면 녀석도 죽는다.

아니 죽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소멸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거다.

그래서 AI(인공지능)이 생존본능이 발동해서 호스트인 나를 강화시킨다는 뜻인데.

언뜻 보기에는 내가 키도 커졌고 해서 좋은데.

결국은 지가 필요해서 한다는 뜻이잖아.

“기계가 생존본능이라니.”

<하이퍼 시스템인 AI(인공지능)입니다. 코즈믹 AI란 위대한 존재로부터 파생된......>

“그건 전에도 설명을 들었잖아. 그런데 대체 코즈믹 AI란 게 어떤 거야?”

<코즈믹 AI에 대해 강민 유저에게 설명해줘도 이해할 가능성은 0.0001% 이내로 분석됨.>

괜히 질문했네.

하긴 저 녀석한테는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알파스(Alphas)라는 인공지능도 우습게보일 정도니까.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알파스(Alphas)를 인공지능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이전에 읽은 기사에서 보니까, 알파스가 대단한 인공지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

기껏해야 대량의 학습 데이터와 네크워크를 통해 고속으로 병렬연산처리 기능이 탑재된 컴퓨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무튼 내가 이전에 하시를 향해 현재의 인류가 개발한 알파스(Alphas)란 인공지능이 있다고 하니까.

녀석의 대답은 하나였다.

<강민 유저. 지금 장난하십니까?>

하긴 내가 생각해도 알파스 따위와 하이퍼 시스템은 애초부터 비교 불가능한 것이다.

수백억짜리 슈퍼컴도 저 녀석한테는 마치 원시인의 돌도끼처럼 보일 테니까.

“그런데 설마 내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어떤 뜻입니까?>

“예를 들면 괴물처럼 변하거나, 또는 키가 3미터짜리의 거인으로 변한다거나. 그 외에도 아무튼 자살충동이 생길 정도의 끔찍한 모양이 되는 건 싫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민 유저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재 강민 유저의 몸속에 활성화된 나노봇(Nanobot)은 상당히 안전한 것입니다.>

“나노봇이라니? 그럼 내 몸속에 로봇이 있다는 거야?”

<미세입자 크기 정도로 작은 로봇들입니다. 그리고 강민 유저의 몸속에 활성화된 나노봇들은 현재 1단계의 진행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후의 상황에 따라 더높은 단계로 진화할 기회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괴물처럼 변하거나 키가 3미터짜리의 거인이 되는 건 아니란 뜻이지?”

<설정된 나노봇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키의 증가는 10cm로 설정된 상태입니다.>

“그 말은 앞으로 키가 더 커진다고 해도 186cm가 한계란 뜻이군. 그런 거야?”

<나노봇의 프로그램에 설정된 값은 최대 10cm입니다.>

살짝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안심이다.

186cm 정도라.

그닥 나쁘진 않네.

오히려 진짜로 끝내주는 것이다.

몇 달 사이에 키가 4cm 정도만 큰 것인데도 옷을 입으면 스타일과 핏이 꽤좋게 나올정도다.

그리고 186cm 정도가 되면 모델급의 스타일이 나오는 거다.

평소에 키 큰 것을 많이 부러워한 건 아니다. 다만 키 큰 애들이 부러울 때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옷빨이 진짜로 잘 받는다는 것이다.

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남성용 옷인데도 160cm대, 170cm대, 180cm대의 사람이 입었을 때의 차이는 현격하게 난다.

처음에는 내 몸속에 로봇이 있다는 사실에 좀 찝찝했는데.

어차피 눈에도 안 보일 정도로 엄청 작은 녀석들이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활성화되면서 키도 커졌으니 완전히 이득이다.

또한 하시의 설명에 따르면 나노봇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엄청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나노봇들이 알아서 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자기관리를 꾸준히 해야 한다.

안그러면 나노봇의 활성화가 줄어들면서 정체되거나 퇴화되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

하시를 통해 나노봇이 퇴화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순간 섬뜩했다.

스스로 노력안하고 자기관리 안하면 나노봇이 퇴화되고 그 뒤에는 키가 20cm 줄어서 진짜로 호빗이나 드워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호빗이나 드워프라....

앗. 또 상상하고 말았다.

정신차리자. 강민.

***

“강민 형. 오늘은 제가 한턱 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데려온 곳이 학생식당이냐?

“사실은 식권이 남아서....”

동수 녀석이 넉살 좋게 웃어댄다.

오전 마지막 강의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확인해보니 동수가 보낸 것이다.

점심을 자기가 쏘겠다는 것.

저번에 편의점에서 내가 피자랑 파스타를 한턱낸 것도 있고.

그리고 동수 녀석이 미국인 손님앞에서 영어울렁증으로 쩔쩔맬 때 내가 도와준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다.

녀석이 한턱 쏜다고 해서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를 끌고 학생식당으로 데려온 것이다.

하긴 녀석한테는 이 정도도 크게 쏘는 것이지.

대학교 등록금 번다고 낮에는 수업 듣고 야간에 알바하는 녀석이다.

항상 돈에 여유가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내가 점심을 사줘도 된다. 하지만 그런 건 동수 녀석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돈이 없는 것이지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니까.

“그럼 두 그릇 시켜도 돼냐?”

“와아~ 선배란 인간이 아예 후배를 벗겨 먹으시네요.”

녀석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요즘 학교에서 점심은 대학교 밖에 있는 식당에서 먹거나 다른 곳에서 먹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학생식당에 오는 건 어쩌다 한 번쯤 되네.

이전에는 여기로 매일 왔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요즘 들어 학생식당 메뉴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성비는 최고다.

“그런데 요즘 야간 알바 하는 거 재밌나 보네.”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에서 다 나온다. 이 녀석아.”

녀석을 한대 쥐어박았다.

편의점 야간타임에 같이 일하는 소민이 하고도 꽤 사이가 좋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소민이의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도 좋았다.

“요즘 소민이랑 야간타임에 같이 일하면서 영어공부도 해요. 둘이서 약속했어요. 올해 영어랑 토익공부 열심히 해서 내년에 같이 시험보자고요.”

“그거 잘됐네.”

“이것도 강민 형 덕분이에요. 그 때 편의점에서 강민 형이 영어 능숙하게 하는 거보고 저도 놀랐고 소민이도 꽤 놀랐거든요. 그래서 그 뒤에도 같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좀 했는데.... 역시 졸업 후 취업문제라던지 이런 거 생각하면 영어공부 좀 해야겠더라고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4학년 졸업반 때나 해볼까 생각했는데 그 때는 진짜로 늦을 거 같아서.”

동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때 내가 영어를 나름 유창하게 한 것이 동수와 소민이 두 명에게 제대로 동기부여가 된 거 같았다.

하긴 나도 세연이를 통해 그런 경험과 생각을 가졌으니까.

이제는 동수가 소민이랑 둘이서 야간타임에도 틈틈이 토익공부도 하다보니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도 있었다.

이 녀석 표정 보니 소민이한테 푹 빠진 거 같네.

하긴 소민이 정도면 나름 귀엽고 개념 찬 여자애니까.

“역시 오늘은 메뉴가 괜찮네요. 일주일 중에 수요일이 반찬이 제일 풍성한 날이라서.”

동수가 좋아라 했다.

학생식당에 여러 가지 메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건 백반세트 메뉴다.

그리고 백반세트는 매일 국과 반찬이 다르게 나온다.

오늘은 소세지와 고기반찬이 있는 날이라서 동수 녀석도 꽤 좋아하고 있었다.

둘이서 백반세트 메뉴를 시켜서 받은 뒤에 창가 쪽 자리로 갔다. 창가 쪽이 항상 붐비는데 오늘은 그래도 자리가 있네.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이거 맛있네.”

“강민 형은 요즘 학생식당 자주 안오는가 보네요.”

“이것저것 일이 있어서 학교 밖에서 먹기도 하고.”

“맞아. 강민 형 출세했으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그냥 알바라고.”

“와아~ 나도 그런 알바 해봤으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작단계고 딱히 수익도 별로 없어서 반쯤은 무보수로 하는 거야.”

“설마 열정페이 당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녀석을 향해 대충 얼버무렸다.

짜식아.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마라.

이 형님도 설명해주기 곤란하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