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11화 (11/300)

# 11

바로 이거다.

“아침부터 활기차구나.”

지하철 역에서 내려 학교로 향하는 길.

등교하는 학생들로 꽤나 북적거린다.

요즘은 여대생들의 패션 센스가 더 좋아지고 있다.

과거에 여대생들을 보면 저 애는 1학년, 저 애는 2,3학년, 그리고 졸업반도 구분되고 했는데.

이제는 딱 2가지로만 대충 구분된다.

1, 2, 3학년하고 4학년 졸업반.

예전에 신입 여대생들은 제대로 꾸미지도 않아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라는 느낌이 팍팍났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이제는 대학교 1학년 여대생들도 잘 꾸미고 옷도 잘 입고 다녀서 얼핏 봐서는 신입생티가 별로 안난다.

대신에 졸업반인 4학년 여대생들은 그런대로 표시가 난다.

요즘 청년백수니 청년취업문제가 심각하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로 졸업반은 남녀 학생들 모두 얼굴에서 표시가 난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지내고 몰빵하느라.

옷도 헐렁한 추리닝으로 입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공시족, 취업준비족, 기타 등등으로 고3 때의 수험생 모드로 복귀하는 경우인 것이다.

‘오늘은 오전수업만 있네.’

강의시간표를 확인해 보았다.

복학하고 이제 2달 정도쯤 되어간다.

12억이란 거금이 생긴 이후에 그 때까지 일하던 편의점 알바는 그만두었다.

그러나 새로 알바생을 뽑을 때까지 1주일 정도 야간타임 일은 계속했다.

솔직히 12억이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1주일 동안 편의점 야간타임 일하는 건 새로운 기분이었다.

일하는 동안 짜증나는 일이 몇 차례나 생겼고 진상 손님들도 왔지만 대충대충 웃어넘겼다.

술 먹고 온 진상들 중에는 나를 향해 편의점 알바나 한다고 개헛소리 한 놈도 있었다. 과거 같으면 그런 놈 가만두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 녀석을 상대로도 아주 호쾌하게 웃어주었다.

‘짜식아! 니 눈에는 내가 그냥 평범한 편의점 알바생으로 보이냐?’

이런 속마음을 담아 녀석을 향해 피식하며 냉소까지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진상 녀석의 벙찐 표정이 진짜로 웃겼다. 나를 도발시킨 뒤 알바생 상대로 갑질이라도 해볼 셈이었나 본데.

멍청한 자식.

“그럼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그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이제 막 복학한 상태라 아는 얼굴도 많이 없을 텐데.

고개를 돌려보니.

“Excuse me. May I ask you something? I'm looking for student community center of this University. Can you show me the way?”

“......!”

‘악- 이건 뭐야?’

나를 향해 속사포처럼 말하는 백인남성.

나이는 대략 4-50대로 보이는데.

그것보다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한 거야?

유니버시티 어쩌고저쩌고밖에 안들리는데.

“에.... 그러니까.”

이거 전형적인 영어울렁증의 증상이다.

지금까지 영어회화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콩글리쉬 실력도 군대 가면서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머뭇거리자 중년백인이 다시 뭐라고 하는데.

“노, 노 땡큐”

“What?”

상대방이 꽤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우리 두 사람의 곁으로 누군가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가만 저 애는?

저번에 1학년 신입생 환영회 때 본 여자애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맞다. 김세연이다.

환영회 때 내 근처에 있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연아.”

“강민 선배님 아니세요.”

어라, 저 애는 날 제대로 기억하네.

세연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나와 내 앞에 있는 중년백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분은?”

“영어로 뭔가 물어보는 거 같은데. 나로서는 도저히.... 너 영어 할 줄 알아?”

“조금요.”

세연이가 수줍은 듯 대답했다.

조금이라, 괜히 저 애까지 이런 어색한 상황에 끌어들인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연이가 잠시 나서더니, 나를 향해 영어울렁증을 극한으로 만들고 공포를 심어준 중년백인을 향해 영어로 말했다.

뭐야? 저게 조금 하는 거야?

그렇다면 저 사람한테 노 땡큐라는 헛소리를 해버린 나는 대체 뭐냐?

세연이가 엄청나게 유창한 영어스피킹으로 대화를 개시했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이야~ 발음 끝내주네.

그리고 영어권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여유롭게 말하는 모습까지.

조금 전까지 수줍게 보이던 모습은 아예 없다.

“Oh, Your English speaking is very good. Thank you for helping me.”

“That's my pleasure.”

유창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세연이 중년백인을 향해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갑자기 저 애가 좀 달리보이네.

한동안 옆에서 병풍짓 했던 내가 질문했다.

“저 사람이 조금 전 뭐라고 했는데?”

“우리학교 학생회관을 찾으러 왔나 봐요. 거기서 누구 만날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 뜻이었어?”

세연이가 나를 향해 조금 전 중년백인이 질문한 문장과 말을 영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진짜로 쉬운 문장이었고 대부분 알고 있는 단어다.

그런데 원어민이 말하니까 완전히 얼어버리고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안그래도 영어 못했는데, 이런 쉬운 기본회화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 듣기가 엉망이네.”

“강민 선배. 몰랐는데 영어울렁증 있으셨네요. 호호 왠지 귀엽다.”

영어울렁증. 크윽-

안그래도 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재확인시켜야겠냐?

그런데 귀엽다니?

이제 겨우 두번만난 선배를 상대로.... 귀엽다는 말을 쓰는 후배가 어딨냐?

“이래봐도 군대 갔다온 예비역이야. 벌써 노땅이지.”

“에에~ 아무리 그래도 강민 선배는 30살도 안되었는데 무슨 노땅이예요? 그냥 선배나 오빠죠.”

나를 향해 서스럼없이 말한다.

전에는 몰랐는데 성격이 꽤 활달한 여자애다.

“그런데 너도 꽤 일찍 왔네.”

“수업 들어가기 전에 동아리실에 잠깐 들렸다가 가려고요.”

“동아리.... 어떤 동아리 들었는데?”

“토킹어바웃이라고 영어동아리예요. 선배님들이 신입생과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실전회화도 많이 가르쳐주고, 그 외에 영드, 미드와 CNN 뉴스도 공부하고 많은 활동을 해요.”

“토익스터디 동아리하고는 좀 다른가 보네.”

“아무래도 그런 동아리는 토익시험을 준비하는 게 중점이고 우리 동아리는 실전회화와 영어에 대한 전반적인 걸 하는 거죠. 물론 동아리 멤버들이 토익공부도 해요.”

“신입생인데도 영어를 잘하다니 크~ 부럽다. 하긴 요즘 신입생들은 영어회화쯤은 기본장착하고 온다더니 진짜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전 그냥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좀 했어요.”

“그런데 조금 전에 발음이 유창한 거 보니까 너 혹시 미국이나 영어권에서 중고등학교 다닌 거야?”

“우리 동아리 멤버들 중에는 그런 경우도 있는데 전 아니에요. 그냥 평범하게 한국의 중고등학교 다닌게 전부예요.”

“외국에서 유학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라니.”

솔직히 놀랍고 감탄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영어를 잘한다면, 단지 그렇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연이의 영어실력은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한 애들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더 뛰어난 거 같다.

유학파가 아닌 토종 영어능력자에 속하는 것이다.

영어 못해서 신입생 후배한테 도움을 받다니.

이거 선배로서 체면이 바닥이네.

“세연이 너 때문에 오늘 도움도 받았는데. 선배로서 제대로 쏜다.”

“진짜요?”

“응- 자판기 커피.”

“에에- 너무해요.”

하긴 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퉁치는 건 좀 그렇지?

“에스프레소 2잔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걸로 시켰는데 선배는 괜찮아요?”

“괜찮아. 나도 이번 기회에 다른 메뉴도 시험해보고 말이야.”

지금까지 초딩입맛이라긴 뭐하지만.

커피는 좀 달달한 걸 마셨는데.

까짓것 이제부터는 다른 커피 메뉴도 좀 시도해보자.

자판기 커피로 퉁치는 건 너무 비양심적인 거 같아서 학교 내에 있는 카페로 왔다.

요즘 대학교 내에는 유명 커피전문점 프렌차이즈들도 들어와 있고 예전의 대학들에 비해서는 편의시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어떤 여대에는 명품샵까지 들어와 있을 정도다.

그 때문에 학생들의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요즘은 이런 게 트렌드라 어쩔 수 없다.

“여기 에스프레소 2잔 나왔습니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자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에스프레소 한잔 가격이 점심값을 능가할 수준이군. 과거에는 이런 곳에 와서 커피 마실 생각도 못했는데.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달라졌으니 느긋한 대학 생활을 즐겨도 되겠지.

그렇다고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학교를 등교하거나 그런 걸 할 생각은 별로 없다.

대신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힘 좋고 튼튼한 4WD(사륜구동) SUV를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 건 괜찮을 거 같다.

영국의 레인지로버사의 랜드로버 같은 경우는 튼튼하고 성능 좋은 사륜구동 SUV로 꽤 유명하다.

이전에는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수차례 우승한 전적도 있다.

이 경주는 오프로드 레이싱 중에서 가장 끝판왕이다.

그럴 것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관통해서 횡단하는 극악한 오프로드 레이싱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 레이싱에서 우승한 차량과 회사는 최고의 내구성을 지닌 사륜구동 차량을 생산하는 업체로 올라갈 정도다.

매끈하게 잘빠진 스포츠카도 괜찮지만.

역시 남자라면 투박하지만 막강한 파워가 느껴지는 4WD(사륜구동)도 남자의 로망 중에 하나인 것이다.

“아침에 즐기는 모닝커피는 정말로 좋아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신입생 환영회 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둘이서 마주하고 보니까 저 애의 매력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연예인처럼 뛰어난 미녀라기보다는 활발한 에너지가 팡팡 느껴지는 상큼함 같은 것이다.

그리고 수수하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옷차림도 그런 이미지에 한몫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에 관심도 많았고 지금도 영어를 잘하는데, 그렇다면 영어 관련 전공을 선택하지 그랬어? 우리 학교에는 영문과나 영어교육과도 있고 말이지.”

“영어도 좋아하지만 제가 입학한 경영학과에 더 관심이 많아서요. 제가 배우는 전공도 살리고 영어를 활용해서 여러 가지 일도 해보고 싶어요.”

“나중에 졸업한 뒤에 유명 투자회사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겠네.”

“희망은 그렇게 갖고 있지만 쉽지가 않아서요. 헤헤~.”

머쓱한지 혀를 살짝 내밀면서 웃었다.

그리고 세연이는 신입생이다보니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나름 선배랍시고 대답해 주기는 하는데.

나도 겨우 1학년 마치고 군대 간 뒤에 제대하고 복학한 수준이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우리 같은 상경계나 문과는 영어 못하면 취업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꼬이는데, 그래도 세연이 넌 한 가지 걱정은 덜었네.”

“강민 선배도 영어울렁증 있다고 그냥 자포자기 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사실 영어배우는 게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즐겁고 쉽게 배우는 방법들은 얼마든지 많아요.”

“정말이야?”

“물론이죠.”

내가 흥미를 보이자 세연이가 자신이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하면 좀 더 실용적이고 잘 배울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설명할 때 저 애의 눈이 반짝반짝 거리는 게 진짜로 열정이 가득하다.

기특한 녀석-

“세연이 너한테 에스프레소 한잔 사주고 너무 귀중한 정보들을 얻은 거 같은데.”

“어차피 영어공부하는 방법들은 여기저기 다 나와 있고 많아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느냐는 것뿐이죠.”

세연이의 저 말을 들으며 나도 공감이 되었다.

잠시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하던 세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 오빠. 지금 동아리방 가야할 시간이네요. 오늘 오빠한테 커피도 얻어마시고 너무 고마웠어요.”

“나야말로 너 때문에 도움도 받았고 오히려 내 쪽에서 감사할 일이지.”

“그럼 강민 오빠. 다음에 또 봐요.”

나를 향해 인사를 한 뒤에 세연이가 카페를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사이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24시간 안에 업그레이드 보상 메뉴를 선택하라고 했지?

만약에 24시간 안에 선택하지 않으면 보상메뉴는 무효가 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뭘 선택할까 고민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정했다.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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