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24화. 빌트가르 (3). >
7.
“계약한 플레이어들 정산 마치고 수익이 이렇게 많이 남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 말을 뱉은 직원이 스윽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앉은 사장 박영준을 바라봤다.
그 시선의 이유는 뻔했다.
“왜? 수익 나왔으니 회식 좀 하자고?”
이 기쁨을 좀 더 제대로 즐기고 싶다!
그러한 부하 직원들의 기대 가득한 요구에 박영준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좀 이윤이 제대로 남기 시작했는데 회식은 무슨 회식이야? 아껴야 잘 살지.”
사장들이 흔히 하는 말, 그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라는 식으로 아꼈다가는 나중에 대머리가 되는 법이지.”
말을 뱉은 박영준이 곧바로 자신의 지갑을 꺼낸 후에 얄팍한 카드 하나를 꺼냈다.
법인카드.
그것을 손에 쥔 박영준이 말을 이어갔다.
“대머리 되기 싫으면 쓸 땐 써야지. 특히 먹는 거에 돈 아끼는 건 멍청한 짓이고. 먹고 살려고 이 짓하는 거잖아?”
이어진 그 말에 사무실의 분위기가 환해졌고, 그 분위기에 박영준이 정점을 찍었다.
“최근 회사 근처에 한국식 치킨집 생겼는데 괜찮더라. 거기서 치킨하고 맥주 어때?”
“좋죠!”
“코리안 치킨 최고죠!”
치킨이란 단어가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사장님.”
직원 한 명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박영준에게 다가와 제 손에 든 태블릿PC를 건네주었다.
“뭔데?”
“메일이요.”
“메일?”
그 말에 박영준이 슬쩍 직원의 표정을 살폈다.
딱히 특별한 것 없다는 듯이 무덤덤한 직원의 표정을 확인한 박영준이 이내 태블릿PC를 확인했다.
그러자 박영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이거 진짜야?”
“예?”
박영준의 그 표정에 부하 직원이 놀라며 자신이 본 메일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뭐 이상한 거 있었나?’
떠올린 메일 내용은 특별할 것 하나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앞으로 더 크게 활약하겠다는 말.
월급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실제로 라이징 스타 채널과 계약 중인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을 보낸 상황이었다.
사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런 식으로 메일 내용을 알려주는 일조차 없었다.
그런 걸 일일이 사장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BJ대마도사가 보낸 거 확실하지?”
그 메일을 보낸 이가 라이징 스타 채널의 최고 고객인 BJ대마도사라는 사실이 아니었다면 직원이 움직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뭐 이상한 거 있나요? 내용은 딱히 특별한 게 없었는데……"
“특별한 게 없긴.”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은 박영준이 부하 직원을 향해 태블릿PC 액정 위 문구 하나를 가리켜며 말했다.
"조만간 모두를 놀라게 할 콘텐츠를 보여주겠다는 이 문구보다 특별한 게 어디 있어?”
그 무렵에 이르렀을 때 사무실 내 모든 직원들이 박영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박영준은 그런 그들에게도 들릴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BJ대마도사는 지금 스케일이 다른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런 그가 직접 제 입으로 말했어. 조만간 모두를 놀라게 할 콘텐츠를 보여주겠다고. 아즈모도 가지지 못한 새로운 아이템에 10대 길드도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한 그가 말이야. 이게 스케일이 작을 것 같아?”
부하 직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개중 한 명은 질문을 던졌다.
“대체 그게 뭘까요?”
그 질문에 박영준이 대답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언제나 그렇다.
어느 누가 무언가를 이룰지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상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과거의 기록을 보는 것이다.
“딱히 알 필요도 없어. BJ대마도사니까?”
그리고 BJ대마도사는 이제까지 결과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미래에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중요한 건 지금 그 BJ대마도사가 총을 꺼냈고, 표적을 향해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야. 이 처형을 볼 관객을 몰이해오라고.”
그렇다면 BJ대마도사와 이제는 동업자가 된 박영준이 같이 나서서 판을 만들어줄 때.
“홍보해야 하니까 영상 제작팀 데려와.”
박영준의 말에 부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 움직이려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홍보하는데 영상 제작팀이요?”
“홍보팀이 아니라?”
그 물음에 박영준이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홍보팀 굴려서 뭐해? BJ대마도사 영상 올리는 게 최고의 홍보인데.”
“아!”
타당한 그 말에 더 이상 반박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저기 그러면 회식은……"
이어진 그 말에 박영준이 대답했다.
“다 끝나면 해줄게, 일단 오늘은 야근하자.”
사무실이 탄식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8.
갓워즈의 플레이 영상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영상이란 개념 자체가 남달랐다.
보통 영상이 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가져오지만, 갓워즈는 가상현실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 그 자체를 전부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즉, 무한에 가까운 시점이 존재했다.
갓워즈를 보는 것에 세상이 미친 듯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그러한 영상을 편집해야 하는 영상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 된 퀄리티의 갓워즈 내 게임 플레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 BJ대마도사 영상 떴다!
ㄴ위가의 저택 앞에서 찍은 영상?
ㄴ 아니, 그때 라이브 영상!
ㄴ 뭐? 벌써?
BJ대마도사의 영상이 나왔을 때 모두가 놀란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 그냥 막 찍어낸 거 아니야?
- 퀄리티 개병신으로 나올 거 같은데?
- 라이징 스타 채널이 초심을 잃었네. 그래도 퀄리티로 승부하던 곳 아니었나?
ㄴ 원래 돈 맛을 보면 다 똑같아지는 거야.
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일부는 필시 라이징 스타 채널이 조회수를 위해 무리를 한다고 주저 없이 말했을 정도.
하지만 그 주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 어? 좋은데?
- 퀄리티 훌륭한데?
영상을 보는 순간 그저 대충 만든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대부분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 퀄리티고 나발이고 알게 뭐야! 난 그때 라이브 못 봤다고!
대부분 관심이 있는 건 라이브로 보지 못한 채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던 새로운 아이템 그리고 새로운 몬스터의 등장뿐.
캡슐방 휴게실도 마찬가지였다.
“와, 장난 아니네.”
“위가의 하얀 지팡이라고? 옵션이 플러스원이고? 저거 매물 나오면 대체 얼마 하려나?”
“위가의 지팡이가 4만 달러 근처인데, 저건 일단 무조건 10만 달러부터 시작하지 않을까요?”
“그보다 저 분열하는 트가르들은 뭐야?”
“뭔지는 모르겠는데 딜링 미쳤네. 아주 그냥 마법을 난사하네, 난사해.”
“딜도 개쩌는데, 한 번에 트리플 캐스팅…… 동급 마법사 클래스들 대여섯 명보다 딜량 더 나오겠는데?”
모두가 모여서 BJ대마도사의 최신 영상을 보며 저마다의 감탄을 토해냈다.
"어......."
그중에는 정현우도 있었다.
그 역시 멍한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현우 형, 어떻게 보세요?”
그런 정현우에게 이혁주가 툭 질문을 던졌다.
이상할 건 없었다.
갓워즈 전체를 놓고 보면 그다지 대단할 것 없지만, 이중에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캐릭터를 보유했었던 건 다름 아니라 정현우였으니까.
더 나아가 정현우의 캐릭터는 마법사 클래스였다.
이곳에서 그보다 마법사 클래스에 대해서 잘 아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응? 뭐라고?”
그런 이혁주의 물음에 정현우는 얼빠진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정현우조차 넋을 잃을 정도로 대단하고, 압도적이다!
“아니에요.”
자신의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들은 이혁주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다시 모두가 영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났을 때 모두가 한마디 했다.
“장난 아니네. 이러면 이제는 라이브를 찾아볼 수밖에 없잖아?”
“이번 영상도 조회수 대박 나오겠는데?”
“조회수도 조회수이지만, 이 영상으로 인해 라이브 유입 효과가 장난 아닐 거야.”
저마다의 소감 한마디를 끝으로 모두가 저마다 할 일을 찾았다.
“자, 게임 좀 하러 갈까?”
“저거 보니 피가 끓네.”
“오늘 한 번 렙업에 미쳐보자고!”
누구는 게임을 하러 움직였고, 누구는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모두가 더 이상 영상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정현우만이 여전히 휴게실 의자에 앉은 채 멍하니 종잇장처럼 얄팍한 TV를 바라볼 뿐이었다.
“현우 혀……"
그 모습에 이혁주가 스윽 움직였다.
그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이혁주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야, 넌 눈치가 없냐?”
"예?”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5년 넘게 키운 캐릭터 계정 정지당하는 바람에 개고생하는 애한테 돈지랄로 승승장구하는 금수저 새끼 질문을 꼭 해야겠냐?”
"아."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이혁주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슬며시 휴게실을 나갔다.
그 상황에도 정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고민했다.
‘아니, 분명 통보 받기로는 다음 주였는데?’
정현우가 라이브 방송을 마쳤을 때 라이징 스타 채널은 영상이 올라오는 시점에 대해 통보를 해주었고,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5일 뒤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라이징 스타 채널이 일부러 거짓 통보를 했을 리는 없었다.
또한 갓워즈 영상이란 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즉, 눈앞의 결과물은 라이징 스타 채널이 정말 엄청나게 무리를 해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무리를 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왜 갑자기 분위기를 띄우는 거지?’
BJ대마도사의 열기에 기름을 끼얹기 위해서.
실제로 이 영상으로 말미암아 BJ대마도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게 지금 정현우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 이유였다.
‘아, 이거 안 좋아.’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불이 꺼지면 곧바로 촛불을 꺼야 하는 법.
지금 상황이 그러했다.
‘이러면 당장 뭔가 보여줄 수밖에 없잖아?’
이대로 시간을 보낸다면 애써 붙인 불이 꺼지고, 자연스레 열기도 꺼질 터.
더욱이 지금 상황에서 정현우가 라이징 스타 채널에게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와 같았다.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라고 했으면, 선수는 몸 상태가 어떻든 간에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라이징 스타 채널 아니면 갈 데도 없는데……'
심지어 지금 정현우는 라이징 스타 채널과 독점 계약을 한 상태, 다른 곳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 이거 달려야 하나?’
사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타이밍은 매우 좋았다.
이렇게 뜨거워진 상황에서 만약 BJ대마도사가 빌트가르라는 갓워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라이브 방송을 한다면?
더욱이 이번 빌트가르 사냥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진행 중인 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난폭해진 숲에서만 가능했다.
외부의 변수도 차단한 채 마음껏 사냥에 집중할 수 있는 무대, 최고의 독무대인 셈이었다.
공략 방법도 충분히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이보다 더 나은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문제는 하나였다.
‘당장 하려면 포션만 2천만 원어치 질러야 해.’
지금 당장 무대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써야 하는 지출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
‘씨발, 2천만 원이면 치킨이 천 마리……’
아무리 정현우라고 해도 먹으면 똥조차 되지 않는 회복 아이템에 그만한 거금을 지르는 건 망설여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정현우가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을 켰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봤던 화면이, 워즈튜브에 올라온 자신의 영상이 새로고침 되는 게 보였다.
자연스레 조회수도 바뀌었다.
‘올린 지 1시간 만에 15만…… 이것도 일주일 안에 100만은 가뿐하겠네. 이대로 라이브 이어가면…… 잘하면 실시간 시청자 10만 명도 가능할지 몰라.’
그 조회수가 말해주었다.
투자를 하면 그리고 레이드에 성공하면 이익은 남는다고.
그 사실이 정현우를 더더욱 고민케 했다.
'응?'
그때 정현우의 마음을 확실하게 타오르게 만드는 게 등장했다.
- 아즈모 : 저번에 딴 거 하느라 라이브 못 봤는데, 빨리 라이브로 보여줘 봐. 기왕이면 내가 볼 수 있는 시간대에. 그러면 실시간으로 나도 쏜다.
ㄴ 맙소사, 진짜 아즈모 님이다!
ㄴ 아즈모 님이 머니 어택 외치셨다!
ㄴ BJ대마도사 당장 방송 켜! 이런 기회는 안 와!
ㄴ 돈지랄 대 돈지랄 가즈아!
아즈모의 댓글, 그것을 보는 순간 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혁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