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85)화 (185/306)


#185. 동백나무 숲 도깨비집
2023.02.01.


산길이 험하기는 했으나 프로 헌터인 은하와 시우에게는 그런 것 따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옥계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굉장히 작은 마을이네요.”

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농작물을 옮기는 2톤 트럭과 경운기를 제외하면 탈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 외지인이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지나치는 사람마다 신기한 듯 은하와 시우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다들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하느라 바빠서 그들에게 다가와서 직접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워낙 시골인 까닭인지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지나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중년이거나 노년, 그렇지 않으면 아주 어린 아이뿐, 그들과 같은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거나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우와 은하 두 사람만이 동떨어진 풍경이었다.

“축제 준비라도 하는 걸까요?”

“글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은하는 마을을 쭉 훑어보았다.

현대에도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원적인 모습이었다.

토담을 쌓아 올리거나 지푸라기 따위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이 즐비한 좁은 거리. 눈에 보이는 주택들은 대부분 그런 식의 낡고 소박한 전통 가옥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중 은하가 찾고 있는 ‘푸른 기와집’은 보이지 않았다.

“우선 아무나 잡고 물어보는 게 빠를 듯합니다.”

길을 지나치는 사람을 붙잡으려던 순간,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시우는 은하를 향해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선배.”

그러고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고 돌아와 은하에게 사과했다. 은하는 이곳까지 운전해서 오는 길에도 잊을 만하면 울리던 그의 휴대전화를 떠올렸다.

“바쁜데 일부러 따라온 거 아니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Rrrr…….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전화. 시우는 아예 휴대전화 전원을 꺼 버리더니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어 버렸다.

사실 은하의 말이 맞았다. 시우는 무리를 해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사실은 눈 깜박할 시간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뒤 바로 수여식장으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밀려 있던 길드 업무를 더 뒤로 미룬 참이다. 협회와의 중요한 미팅도 길드 간부를 대리로 보냈다.

곧 돌아올 여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는 했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이곳까지 선배를 따라온 것은, 스스로가 원해서였으니까.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적이 많아지는 법. 대한민국 최대 길드 늑대에서 나고 자란 시우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흑염의 프린세스는 더 이상 F급 컨셉 헌터가 아니다. 시스템 공인 세계 랭킹 1위가 되었고 수여식을 통해 그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칭송하고 응원하겠지만 또 그만큼 많은 이들이 시기하고 이용하려 들 것이다. 시우는 그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 때 결심했으니까.

이제는, 다시는 방관 따위 하지 않겠노라고.

“……가요, 선배.”

시우는 은하보다 몇 걸음 앞장서서 걸었다.

이렇듯 엄청난 시골에서는 본래 장이 서거나 회관이나 교회 같은 곳에 직접 가야지만 주민을 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분주히 짐을 나르고 있어서 종종 주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하와 시우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거리를 지나치던 한 중년의 남성에게 길을 물어본 것은 그로부터 약 5분 뒤였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마을 근처에 푸른 기와집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푸른 기와집?”

중년의 남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 곁을 걷고 있던 다른 남성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 도깨비 집을 말하는 거로군.”

도깨비 집……? 은하와 시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기 낮은 산 보이지? 저 너머에 동백나무 골짜기가 있는데 그 근처야. 지금쯤 동백꽃이 필 시기니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여기서는 꽤 거리가 돼. 빨리 걸어도 1시간은 족히 걸릴걸.”

친절히 길을 알려 주는 남성과는 달리, 처음 멈춰 섰던 중년의 남성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우연이라도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아.”

“왜죠?”

은하가 묻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집에 귀신이 들었는지 뭔지는 몰라도,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인데도 밤만 되면 거기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니까.”

“그것뿐인가? 한 달 전에 그 일도 있었잖아.”

“아아, 귤나무 댁 김 영감이었나?”

“그래, 김 영감. 그 집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모습이 사라졌다던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두 남성은 혀를 찼다.

“하여튼 그 집 때문에 요즘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 애들한테도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긴 했는데, 여간 마음이 쓰여야지.”

“특히나 오늘은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아.”

“오늘 그곳에 무언가 있는 건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은하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남성은 말해 무얼 하냐는 듯 얼른 입을 열었다.

“있다마다.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이봐.”

그때,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성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려던 남성은 황급히 입을 닫았다.

“아, 아무튼 분명히 말했으니까. 그쪽으로는 얼씬도 할 생각 말아.”

“우리도 자네들만 한 자식이 있는 입장에서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 새겨듣게. 얼마 전에도 대학생들이 몇 명 마을을 찾아왔었거든.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담력 시험을 하겠다고 겁도 없이 도깨비 집을 찾아갔는데, 글쎄.”

그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었다.

“겁에 질려서 게거품을 물고 마을로 돌아오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답도 안 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더라니까.”

그 학생들, 괜찮을까? 남성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댔다.

“…….”

“…….”

그 앞에서, 은하와 시우는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남성들이 알려 준 대로 낮은 산을 지난 두 사람은 동백나무가 빼곡한 골짜기를 발견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목적지가 집인 만큼 장작 타는 냄새나 널어 둔 빨랫감의 냄새를 쫓아 쉽게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이 발목을 잡았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짙은 꽃향기에 시우의 후각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추적 기능이 달린 은하의 펜던트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 혹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장소에는 무용지물인 물건이었으나, 은하는 유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펜던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 유엘이 추적 기능을 차단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거나, 장소 그 자체에 결계 따위의 장치를 설치해 두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푸른 기와집을 찾아 동백나무 골짜기를 거닐고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해가 짧은 계절.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이 피부로도 느껴졌다.

“선배, 이거 돌려드리겠습니다.”

시우는 목에 두르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은하에게 건넸다.

“해가 떨어졌으니 이제 선배가 쓰세요.”

“넌?”

“전 이제 괜찮습니다.”

“그래?”

시우에게 목도리를 건네받은 은하는 그것을 능숙하게 둘러맸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선명한 빛깔의 빨간 목도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시우의 푸른 눈동자가 목도리에 꽂혔다가 금방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목도리에 파묻혀 있던 코를 슥 한 번 매만진 시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목도리, 언제 샀습니까? 못 보던 건데.”

“받았어.”

“누구에게요?”

“…….”

목도리를 단정하게 고정한 은하가 입을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에단의 이름을 꺼낼 뻔했다가 아차 싶어 다물어 버린 것이었다.

그들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좋겠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시우는 이미 눈치를 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에단이라는 자 말입니다.”

시우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언노운 게이트에서 주워 온 겁니까?”

주워 왔다니. 물건에게나 쓸 법한 표현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기서 도움을 받았어. 에단이 없었다면 탈출할 수 없었을 거야. 만일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훨씬 오래 걸렸겠지.”

“선배는 그 대가로 그자를 보살피고 있는 거고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골짜기 사이, 시우가 굳은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정체도 모르고,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를 집에 두고 계신 겁니까?”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은하가 물었다.

“왜 화를 내지?”

그 순간 시우가 눈에 띄게 몸을 굳혔다.

“아뇨, 전…….”

표정을 보아하니 방금 전 자신의 말투가 어떤 식이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12신수 ‘깊은 밤을 수호하는 개’가 혹시 질투라도 하는 거냐며 불쑥 코를 들이밉니다.]

……질투?

시우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미간이 좁아진 것은 덤이었다.

처음 저 빨간 목도리를 둘렀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걷다 보니 그곳에 은하의 체취 말고도 또 다른 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단. 그 남자의 냄새였다.

시우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신도 속내도, 하나도 분명한 게 없다는 점은 물론 경계할 만한 요소였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은하는 에단이 없었다면 탈출할 수 없었을 거라 했다. 은하를 희생양 삼아 언노운 게이트를 탈출했던 시우와는 달리, 에단은 그곳에서 은하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은하를 위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 사살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것은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었다. 3년 전의 자신은, 선배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은하에게 화를 낼 일도, 에단에게 그럴 일도 아니었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도.’

기분이 가라앉는 것일까.

언노운 게이트 안에서 혼자 남아 있을 선배에게, 그 남자가 다가가서 손을 뻗었을 상상을 하면. 그게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면.

“경솔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문득 들려온 은하의 목소리에 시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선배. 그냥…….”

“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해?”

“…….”

시우는 입을 닫았다.

‘젠장.’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잖아, 신시우. 난감한 듯 미간을 펴 보지만 도리어 부드럽지도 차갑지도 않은 애매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무뚝뚝하게 튀어나오는 말투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와락 좁아지는 미간은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고쳤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난 3년간 늑대에서 부친 백야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정상에 오르는 동안 다시금 굳어진 것이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만큼은 이 버릇이 참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화를 내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시우는 마른세수를 하더니 또르륵 시선을 떨구었다. 무엇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선배의 앞에서는 말이다.

시우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은하는 천천히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소복이 쌓인 붉은 꽃잎을 밟으며 몇 걸음 나아가다가, 이내 멈춘다.

“─너도 그랬잖아.”

붉은 꽃잎과 함께, 불현듯 다가오는 은하의 목소리. 시우는 숙였던 고개를 서서히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체도 모르고 꿍꿍이도 알 수 없는 나를, 언노운 게이트에서 꺼내 왔잖아.”

은하가 고개를 힐끗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람이 멎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탓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우 앞에서, 은하는 잔잔한 어조로 말문을 이었다.

“에단을 보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그 말에 시우의 표정이 한껏 묘해졌다. 은하는 방금 뱉은 말을 조금 정정했다.

“네가 걔랑 닮았다는 게 아니고…… 뭐랄까. 날 처음 언노운 게이트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고.”

사아아아…….

일순 멎었던 바람이 진한 꽃향기와 함께 희미한 웃음소리를 실어 나른다.

시우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무수히 흩날리는 붉은 꽃잎, 노을 진 주홍빛 하늘, 부드럽게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그 아래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

모든 것이 진한 잔상을 남기며 눈꺼풀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그녀는 지금 웃고 있는지. 누구를 생각했는지, 무슨 기억을 떠올렸기에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인지 몹시도 궁금했지만.

“…….”

──물을 수 없었다.

그것을 물어보는 순간,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단단히 바뀌어 버릴 것만 같아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무엇을?’

모른다. 뭐가 바뀌게 될지. 무엇을 돌이킬 수 없게 될지.

그래도, 그냥 덜컥 겁이 나서. 그 한마디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저 겁이 나서.

“많이 귀찮았겠다 싶더라.”

밤하늘을 닮은, 깊고 평온한 검은 눈동자가 이곳에 닿았다.

‘귀찮았다고?’

아니, 그럴 리가.

시우는 슬그머니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단 한 번도 그녀를 귀찮게 여겨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시우는 그녀에게 늘 시선을 빼앗겼으니까.

처음에는 그저 1세대 헌터라는 점이 쓸 만해 보여서. 시우가 알던 헌터들과는 다른 사상과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선해서.

그런데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다른 곳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었고, 저 사람이 걷는 길을 같이 걸어 보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따라붙어서 나란히, 옆에서.

그녀가 걷는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졌고, 함께 거기까지 도달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정말 별것 아니었는데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그랬다. 그렇다면 혹시 선배도…….

“선배.”

──선배도 그런 겁니까?

차마 뱉지 못한 뒷말은 붉은 꽃잎과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

“저기 보인다.”

은하가 오른쪽을 가리켰다. 시우는 입을 다문 채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보이는 낡은 대문.

동백나무 골짜기 끝에 위치한, 그들의 목적지였다.

‘이곳이…… 산군의 거점?’

대문 앞에 도달한 은하는 턱을 들어 그 너머를 훑어보았다. 이 동백나무 골짜기에 다른 집은 한 채도 없으니, 분명 이곳이 맞을 테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분명 푸른 기와집이라고 했는데.’

대문 너머로 슬쩍 보이는 집은 기와집이라기보다는 초가집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얼핏 봐서 뜰이 넓어 보이고 크기도 컸지만 비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라한 초가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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