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71)화 (171/306)


#171. 민주의 이변
2023.01.18.


다음 날, 그러니까 흑염의 프린세스 목격 인증글이 대대적으로 화제가 되기 하루 전이었다.

“야, 혹시 ‘넌씨눈’이라고 아냐?”

은하의 오피스텔.

오색 풍선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에서, 아연이 시비조로 입을 열었다. 차게 식은 그녀의 시선 끝에는 귤색 머리 소년, 민주가 앉아 있었다.

“응. 너는 눈치도 없냐는 뜻이잖아.”

빙긋,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변에 아연의 눈썹이 찡긋 구겨졌다. 이내 “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 아연이 삐딱하게 민주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 딱이지 않아?”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묻는 거? 언니의 귀환 축하 파티를 기획한 것도, 파티 소품이랑 음식을 준비한 것도 나거든?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끼는 건지. 이래서 애들은.”

“아, 돈이 아까운 거구나? 진작 말하지. 군단에 청구해 둬. 두 배로 쳐서 줄게.”

“어……? 두 배?”

……아, 아니지. 잠시 멈칫했던 아연이 홱홱 고개를 가로로 젓고는 버럭 소리쳤다.

“미쳤음? 내가 언니 파티 기획하는 데에 쓴 돈을 아까워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나, 그 정도로 속물은 아니거든?!

“누나, 무슨 생각 해요?”

“어쭈, 씹어?”

더는 아연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민주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은하를 향해서였다.

아직 본격적인 ‘무사 귀환 축하 파티’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으나 아까부터 은하는 대화에 전혀 끼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젯밤, 에단을 쫓아 인천항까지 갔던 은하였으나 정작 그곳에서 에단 대신 발견한 것은 괴담 속 흑염의 프린세스였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 은하는 ‘그것’과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이준이 녀석을 제압해 버리며 상황이 정리되었다.

‘결국 에단도 찾지 못했고, 괴담에 대한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어.’

그나마의 수확은 이준과 은하 사이의 앙금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준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기 전에 은하의 휴대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제휘였다.

「헌터님! 지금 어디 계세요? 호, 호, 호호혹시 누구랑 같이 계세요? 아니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둘이서 외출할 그런 사이, 아닌 거죠? 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제휘의 목소리가 굉장히 불안했다. 결국 은하는 곧장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그곳을 떠나기 전, 이준에게 한마디를 남기고서.

‘조만간 네 쪽으로 찾아갈게.’

이준은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은하가 그런 말을 해 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그는 괴담 속 흑염의 프린세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장의 정보원이 떠오르지 않는 지금, 사소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은하는 몬태나주에서 이준의 수행인에게 도움을 받은 몸이었다. 그 사람의 말대로 이준이 그동안 어머니의 묘를 돌보아 준 것이 맞다면, 그에 대해 정식으로 감사를 전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됐다.

그런 이유에서 은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이준과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응, 기다릴게.’

헤어지기 직전 이준은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진짜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은하의 코앞까지 불쑥 다가온 민주가 빤히 그녀를 살폈다. 은하는 그제야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은하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직은 그녀의 귀환이 공공연하게 밝혀지기 전이었으므로, 참여자는 아연과 민주 그리고 은하까지 셋뿐이었다. 만일 제휘가 부산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넷이었을 테다.

은하는 군단의 패밀리들에게는 귀환을 알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민주는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며, 아직까지는 저만 알고 있겠다고 했다.

“언니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건배애애!”

쨍,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부딪혔다. 은하는 살얼음이 낀 맥주, 아연과 민주의 잔에는 각각 콜라와 오렌지 주스가 있었다.

이후 그들은 보드게임을 하거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참, 내가 누나 주려고 엄청난 걸 준비해 왔어요.”

과자를 집어 먹던 민주는 “잠시만 기다려 봐요! 가지고 올게요!” 하며 사라졌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운전기사에게 가는 듯했다.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그에게 전용 리무진과 운전기사가 있는 것을 보니 그가 한 길드의 우두머리이며 S급 헌터라는 것이 확 실감이 났다.

“처음부터 가지고 올라왔으면 됐을 텐데 하여간 머리 나쁜 티를 내요.”

“부피가 큰가 보지.”

오피스텔에 남은 아연과 은하는 민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연은 소파에 널브러진 검은 드레스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근데 왜 드레스는 하필 여기에 뒀어요?”

그러고 보니 귀환 이후 한 번도 드레스를 입은 것 같지가 않았다.

“찢어져서 고치려고.”

“엥? 어쩌다가요? 헐, 진짜네.”

잘은 모르지만, 이전부터 아연은 이 드레스가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전투 시에도 이것을 입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장비 아이템, 그것도 꽤 희귀한 등급이리라.

“제작 길드 같은 곳에 의뢰해 볼 생각인데, 혹시 아는 곳 있어?”

“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블랙 스미스’이긴 한데, 본부가 인도 뉴델리라서 가기 좀 빡세요.”

“제작 길드야 한국에도 있지 않아?”

“있긴 하죠.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망치’인데…… 거기 갈 바에야 블랙 스미스에 맡기는 편이 더 빠를지도? 거기는 VIP 제도라, 괜찮은 제작 헌터에게 의뢰를 맡기려면 따로 골든 카드가 있어야 하거든요.”

“골든 카드?”

“네. 그게 없으면 제작자 지정은커녕 의뢰일도 선택 못 해요. 어떤 사람은 희귀 등급 방패 하나 고치는데 1년 3개월을 기다렸다던데. 거기 진짜 대기 장난 아니거든요.”

그만큼 실력이 확실하긴 하지만요. 아연이 덧붙였다.

“그 골든 카드는 어떻게 얻는데?”

“방법은 두 가지예요. 망치 길드 제작자에게 직접 받거나 매년 열리는 헌터 옥션에서 구매하거나. 그것 말고도 암흑의 수단이 있기는 한데…… 그건 걸리면 말짱 도루묵이라 비추.”

얼마나 실력이 있는 길드인지는 몰라도 의뢰 한 번 하기 참 힘들었다.

‘1년 3개월이라니.’

희귀 등급 방패를 고치는데 그 정도 걸렸다면, 드레스는 또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은하는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골든 카드를 얻을 만한 망치 길드의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1월이니 헌터 옥션이 열리려면 기간도 한참이나 남았다.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으려나.’

단순히 내구도 문제라면 코인을 사용하여 직접 수리할 수도 있었지만 ‘칠흑 비단 드레스’는 어깨 쪽이 찢어진 상태였다.

일반 장비 아이템의 경우 적당한 제작 길드에게 맡기면 해결됐다. 다만 언노운 게이트에서 획득한 저 드레스는 아마도 조금 다른 차원의 아이템일 것이다. 그것은 저것을 직접 입어 본 은하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제작자에게 맡기는 것이 조금이나마 복구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 판단했던 것인데.

한편 아연은 생각에 잠긴 은하를 빤히 쳐다보다가 방긋 웃었다.

“언니, 골든 카드가 꼭 필요하다면 내가 어디서 훔쳐 줄─.”

그런데 그때였다.

“……!”

말을 하다 만 아연이 다른 곳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생글생글 웃음기가 걸려 있던 그녀의 눈매가 매섭게 굳었다.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있던 은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눈빛을 바꾼 채 홱 시선을 옮겼다. 아연과 같은 방향이었다.

피부 표면에 닿는 날카롭고 기분 나쁜 감각에 몸의 솜털이 삐죽 섰다. 이것은 분명…… 살기다.

“언니.”

자리에서 일어난 아연이 은하를 불렀다. 은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따라서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다 말하지 않아도 방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1층에서부터였다.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향한 아연은 창문을 열어 1층을 확인했다. 이곳 17층에서는 1층의 풍경이 상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곳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연기였다면 화재라도 난 것이라 여겼겠지만…… 저것은 달랐다.

무지갯빛을 띤 휘황찬란한 연기. 그것을 본 아연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저거, 꼬맹이가 들고 다니는 연막탄 아니야?’

잠시 물건을 가지러 간다더니, 설마 그사이 꼬맹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게이트가 출현했다고 하기에는 단말기가 잠잠한데…… 이런 인가에서 도대체 무슨.

‘진짜, 귀찮게 하네.’

아연이 “쯧.” 하고 혀를 차는 것과 동시에 그녀 주변으로 쇠사슬로 된 검은 밧줄이 나타났다. 아연이 가진 스킬 중 하나, 체인 로프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이편이 훨씬 빠르겠지.’

아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굽이치던 체인 로프가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나더니 베란다를 넘어 아래로 슈욱 떨어져 내렸다. 아연은 체인 로프 끝을 당겨 적당한 곳에 확실히 고정시킨 후,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언니, 나 믿죠?”

17층에서 1층까지의 높이. 한 번에 뛰어내리기에는 각성자에게도 상당히 난도가 있는 높이였다.

“이거 절대 끊어질 일 없으니까 단단히 붙잡고─.”

아연이 말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탓!

은하는 열린 창문을 통해 몸을 던졌다. 화들짝 놀란 아연이 황급히 바깥으로 고개를 빼내어 은하를 확인했다.

탓, 탓, 탓!

은하는 실외기나 발코니의 난간을 발판 삼아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가볍게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뭐냐고……! 울 언니 존멋이잖아……!’

저렇듯 아무런 장비도 없이 17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리는 일은, 민첩성에 꽤나 자신이 있는 아연조차 선뜻 도전할 수 없었다.

점이 되어 무지갯빛 연기 속으로 스며드는 은하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아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체인 로프를 잡았다.

촤르르륵!

탓!

체인 로프를 이용하여 단숨에 1층까지 도달한 아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막상 지상에 도착하니 17층에서 보았던 것보다 무지갯빛 연기가 더욱 자욱하니 깔려 있었다.

“언니?”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체인 로프를 해제한 아연은 은하를 부르며 앞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아연의 코앞에 확 뻗쳤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

아연을 저지하는 은하의 팔과 목소리였다. 다행이다. 근처에 있었나 보구나.

“아니, 근데 이 새X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이런 민가에다가 연막탄을 뿌리면 어쩌자는 거야.”

아연이 그렇게 투덜대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가려져 있어도 아연은 알 수 있었다. 방금 그 재수 없는 웃음소리는 분명 민주의 것이었다.

“웃냐? 당장 나와!”

그러자 이번에는 철컥, 화기를 장전하는 듯 무거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뒤쪽. 아연이 홱 고개를 돌렸다.

시야를 방해하는 무지갯빛 연기. 그 속에서 작은 소년의 실루엣이 뭉게뭉게 그려졌다. 그것을 본 아연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이딴 장난칠 나이는 지났…….”

아연은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퍼엉─!!!

갑작스럽게 날아든 폭발 때문이었다.

“이 미친……!”

가까스로 폭발을 회피한 아연이 욕설을 뱉다 말고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 냈다. 그렇지 않아도 두껍게 깔린 연막에 폭발까지 더해지다 보니 목이 칼칼한 것은 물론 눈까지 따가웠다.

다행히 위력이 대단한 폭격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곳에 서 있던 은하와 아연은 물론이거니와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버릴 뻔했다. 다행히 저 망할 자식에게 그 정도 상식은 있었던 듯했다.

“언니, 괜찮아요?”

기침을 꾹 눌러 삼킨 아연이 은하를 돌아보았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적잖게 놀란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민주가 그들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에 따라 흐릿하던 실루엣 역시 점차 선명해졌다.

아연이 뿌득 어금니를 갈더니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너……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슈우욱!

아연의 손바닥 위로 모여든 검은 빛줄기가 곧 날이 선 단검으로 변했다.

“그렇게 원한다면야.”

최고의 방어는 공격.

어차피 적은 한 명. 아연은 민주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더 빨리 그를 공격할 자신이 있었다. 이 요란한 무지갯빛 연막탄이 아연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상대의 눈을 속이고 단숨에,

‘접근한다.’

손안에 깃든 단검을 바로잡은 아연이 근접을 위해 상체를 낮추는 순간이었다.

“안 돼.”

은하가 손을 뻗어 아연을 막았다.

“왜요? 쟤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요.”

아연의 목소리에 옅은 불만이 섞여 있었다.

언니가 저 애를 귀여워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때 은하가 헌터 옥션에서 거금의 코인을 들여 구매한 ‘픽시 파우더’가 민주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았다.

저 건방진 꼬마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 예쁘다고. 아연은 그래서 저 꼬마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치기 어린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은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민주가 고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연에게 은하는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나는 둘째 치더라도, 언니까지 싸잡아서 한 번에 공격하다니.’

그건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유나 사정이 있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단검을 쥔 아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언니, 설마 내가 쟤를 죽일까 봐요? 저도 살인자가 되는 건 사절임. 한 대만 살살 칠게요.”

그러나 은하는 아연을 막아선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무지갯빛 연막으로 뒤덮인 이곳은 은하의 오피스텔 앞이었다. 즉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곳이란 소리였다. 늦은 시각이라 길을 다니는 사람이 적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언제 누가 이쪽으로 와서 휘말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위험해.”

더군다나 아연과 민주는 S급.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니더라도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은하가 유환과 자갈치 시장 앞에서 주먹다짐을 벌였을 당시, 바닥이 순두부처럼 갈라진 것만 보아도 그랬다.

‘그냥 기절을 시키는 쪽이 낫겠어.’

그리 결심한 은하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둘이서 무슨 이야기 해?”

어느새 민주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장전하고 있던 미니 대포는 다시 집어넣었는지 맨손 상태였다.

“야,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연이 으르렁대며 민주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서려고 했다.

“너구나?”

민주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아연이 아닌, 그 뒤에 선 은하를 향해 있었다. 마치 관찰하듯 은하를 빤히 살피던 동그란 눈매가 돌연 활짝 휘었다.

“만나 보고 싶었어.”

“……?”

은하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순간.

데굴데굴…….

무언가 땅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의 순간, 아연의 시선이 휙 바닥으로 떨어진다.

토끼가 그려진 동그랗고 귀여운 물건. 그것을 포착한 은하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수류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