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64)화 (164/306)


#164. 단 하루도 잊은 적 없어 (1)
2023.01.11.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21살 때였다.

당시 훈련소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던 은하는 그곳에 모인 햇병아리 각성자들에게는 우상이었고, 그들을 이끌던 훈련관들에게는 희망이었다.

이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은 늘 그녀를 눈으로 좇았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으로.

어느 날, 훈련이 끝나고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시각. 이준은 아무도 없는 텅 빈 훈련장에서 은하를 보았다.

은하는 훈련용으로 잡아 온 몬스터를 단숨에 죽였다. 너덜너덜해진 채로 이미 죽어 버린 그 사체를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듯 찌르고 찢고 걷어찼다. 누구든 걸음을 멈춰 서게 만들 정도로 지독한 광경이었다.

“뭐야, 무서워…….”

“토할 것 같아.”

지나가던 누군가가 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준은 보고야 말았다.

“죽어……!”

몬스터의 사체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 그 애의 옆얼굴을.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철하게만 보였는데, 그런 얼굴을 하고 몬스터를 찢어발기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저 애는 어째서 몬스터를 미워하는 걸까. 물론 모든 사람이 몬스터를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그렇지만 저 애는 왜 저렇게 슬픈 듯이,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걸까. 그 화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이후에도 이준은 은하의 의외의 모습들을 여럿 발견했다. 이를테면 훈련장 근처를 떠도는 주인 없는 개에게 몰래 먹을 것을 나눠 준다거나, 철야 훈련 중 자신의 담요를 추워하는 동료에게 건네준다거나…….

“위험해!”

머리 세 개가 달린 늑대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 버린 이준 대신,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거나.

‘왜?’

이준은 은하가 궁금했다. 언제나 눈으로 좇고 있었지만, 그 애를 더 알고 싶었고 가까워지고 싶었다.

“있잖아, 나중에 우리 집 강아지 미용해 볼래? 비숑 프리제라는 견종인데, 이름은 윌리엄이야.”

그래서 용기를 냈다. 그 용기의 결과는,

“……그래, 좋아.”

봄볕처럼 따듯하고 눈처럼 포근한, 처음 보는 희미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마주한 순간 이준은 그것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며 이준과 은하는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어디 가는데?”

“엄마한테.”

어느 날 은하는 이준을 어머니의 묘비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서울의 낮은 산 아래 위치한 작은 공동묘지였다.

원래는 이곳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어머니를 모셔 두었었지만, 헌터 활동을 하며 모은 돈으로 그나마 넓고 괜찮은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며 은하는 조금 기쁜 얼굴로 말했다.

“이곳에 오면…… 내가 왜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돼.”

비석 아래 꽃다발을 내려 두며, 은하가 말했다.

“처음에는 복수였어. 엄마를 죽게 만든 게이트, 몬스터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갈아 치우고 처음 모습으로 바꿔 놓고 싶었어. 하지만 아니더라.”

은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식은 바람이 그녀를 지나쳤고, 조용히 눈을 감은 은하는 끊길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것들보다 정작 바뀌어야 하는 건 나였어.”

이준은 그 앞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감하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만일 그게 지금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물었을 것이다. ‘왜?’라고.

너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은하야, 너는 바뀔 필요가 없어.

정작 바뀌어야 하는 건 어느 날 미쳐 버린 이 세상이잖아.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저 괴물들, 그 괴물들로부터 도망치고자 각성한 사람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정부잖아.

그리고…… 너를 잃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바로 나잖아.

그러니까 너는 바뀌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너무나 올곧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최고로 말이야.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이준은 그 말을 은하에게 해 주지 못했다.

“잠시 뜨거울 거야.”

“은하야! 차은하!”

은하는 이준을 대신해 게이트에 남기로 결심했고, 이준은 그녀를 희생 삼아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이준을 마음을 갉아먹었다. 조금씩 갉아 먹힌 마음은 삐거덕삐거덕 흔들리더니 결국 머지않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매일같이 악몽을 꾸었다. 은하가 몬스터들에게 두 팔이 뜯기고, 검은 균열에 삼켜지는 꿈.

“마음의 병입니다.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되겠지만…….”

흐릿하고 불투명한 기억 속에서, 의사의 착잡한 목소리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과 주변 환경입니다. 아드님을 잘 돌봐 주세요.”

며칠 뒤, 이준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1만km를 날았다.

미국으로 가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던 어머니의 말씀은 거짓말이었다. 그곳에도 게이트가 출현했고, 몬스터가 들끓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단지 당시의 한국보다 사정이 조금 더 나을 뿐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도, 이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악몽은 이어졌고 극심한 공황 장애 증상을 보였다. 그런 이준에게, 그의 아버지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지? 그 아이가 네게 그토록 소중했던 거라면, 너는 그 아이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하지 못했던 거니까.

“【아버지, 강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이준은 칼을 잡았다. 이미 그 애가 사라져 버린 세상 속에서, 뒤늦게.

“【따라오거라.】”

아버지는 한 번 무너져 내렸던 아들이 다시 일어나 제대로 칼을 쥘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알려 주었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 이제 싸우지 않아도 돼, 준아. 가지 마. 엄마랑 여기 있자, 응?】”

그만해도 된단다. 힘들면 모든 것을 놓아 버리렴. 네가 우선이야. 어머니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 속에서도 이준은 하루도 빼지 않고 훈련을 했다. 한국에서 헌터로 지낸 3년, 그 이상의 혹사였다.

죽고 싶었던 적도, 죽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게이트도 그 애를 잃었던 그곳보다 끔찍하지는 않았다.

수없이 몬스터를 해치우고, 칼이든 방망이든 무언가를 미친 듯이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이 텅 비었다. 차라리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길 바랐던 것일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째서 은하가, 그 아이가 홀린 것처럼 게이트에 뛰어들었는지. 어쩌면 은하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바뀌어야 하는 건 나였어.’

은하야,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준은 몬스터를 해치웠다.

해치우고 또 해치웠다.

그 과정 어딘가에서, 무언가 싹둑 잘려져 나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준은 지금도 잘 몰랐다.

다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겁쟁이 백이준은 미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은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 * *

헌터로서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쌓아 올린 이준은 은하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어쩌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애를 좋은 곳에 묻어 주고 싶다는 작은 속죄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단서 하나 찾지 못한 채 몇 개월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이준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한국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방문했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전에 살았던 저택도 학창 시절을 보냈던 모교도 아닌, 바로 은하 어머니의 묘비였다.

오랜만에 들른 그곳은 잡초가 무성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묘비가 방치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애가 살아 있었다면, 그날 그곳에 남은 게 그 애가 아니라 나였더라면.

그곳을 깨끗이 정리한 이준은 향을 피우고 꽃다발을 올렸다. 그리고 은하가 그랬던 것처럼 비석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키지 못해서.

살아남은 것이 나여서.

“죄송합니다…….”

까악, 까악…….

노을 진 하늘 아래 까마귀 울음소리가 고즈넉이 울렸다. 그 사이에서 이준은 흐느낌에 젖은 목소리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은하 어머니에게 사죄했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다 진 뒤에야, 이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다.

“……!”

솨아아─

차게 식은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듯 부드럽게 휘날린다. 길게 뻗어서 조금은 사나워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눈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걸까. 모르겠다.

눈앞의 은하는 눈동자 색이 황금빛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분간하고 또 생각할 겨를 따위 없었다. 이준은 검은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은, 은하…….”

그러자 은하가 고개를 갸웃한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이준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은하…… 은하야……!”

정말 네가 맞아?

정말, 정말 너인 거야?

숨이 가빠져 왔다. 그녀를 향하던 걸음걸이는 곧 달음박질로 바뀌었다.

이윽고 이준이 그녀 앞에 섰을 때.

휘익─!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양산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이준의 뺨에는 붉은 선이 그어진 뒤였다. 동공을 크게 벌린 채, 이준이 더듬더듬 시선을 들었다.

“어째, 서.”

뺨에 난 상처가 벌어지며 주르륵 붉은 피가 눈물처럼 떨어져 내렸다.

휘리릭!

그녀가 다시 한번 양산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좀 더 크고 빠르게. 그러나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푸욱!

송곳처럼 날카로운 양산 끝이 이준의 옆구리에 박혔다. 그의 피가 사방으로 튀어 붉은 꽃잎을 만들어 냈다. 천천히, 선명하게, 흐드러지듯.

그 속에서 이준은 보았다.

“…….”

찢어진 양 귀까지 올라가는 입꼬리.

그 순간 이준은 알았다. 은하는, 내가 아는 그 애는 저런 식으로 웃지 않는다는 것을. ‘저것’은, 은하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휘리릭─!

검은 잔상을 남기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양산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저것’을 공격할 수도 없었다. 머저리처럼 ‘저것’이 가해 오는 공격을 가만히 온몸으로 받아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어떻게 그럴까.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저 얼굴을 앞에 두고, 내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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