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148)화
(148/306)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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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고기 한 덩이
2022.12.26.
“너, 누구?”
듣는 사람의 기운이 다 빠질 정도로 힘이라곤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목소리.
‘누구냐고?’
그것은 오히려 은하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외모만큼은 비인간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스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말이다.
눈을 반쯤 가릴 정도로 덥수룩한 머리카락은 특이하게도 분홍색이었는데, 양의 털처럼 곱슬곱슬해 보였다.
그 아래로 살짝 비친 두 눈동자 역시 특이했다. 새빨간 홍채보다도,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그러했다.
하지만 은하가 주목한 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 외모가 아니었다.
“…….”
은하의 까만 시선이 돌로 된 벽에 박힌 금빛 쇠사슬에 닿았다. 그것은 그의 목, 손목, 허벅지, 그리고 발목까지 꽁꽁 묶고 있었다. 팔이 뒤로 꺾이고 무릎이 꿇린 채, 그렇게 그는 굵은 사슬에 꼼짝없이 속박된 상태였던 것이다.
훤히 드러난 그의 상체에는 푸르뎅뎅한 멍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긁힌 자국, 채찍에 맞은 자국, 심지어는 짐승에 물린 듯한 이빨 자국마저 선명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상처가 없는 부분을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저건…….’
은하는 묵묵히 시선만을 옮겨 남자의 상태를 관찰했다.
사슬로는 부족했던지, 굵은 못이 그의 맨손바닥을 뚫고 벽에 박혀 있었다. 마치 장식을 위해 동물의 가죽을 박제해 두기라도 하듯이.
굵은 못에 관통된 그의 손바닥에서는 붉은 피가 주룩주룩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 그는 멀쩡해 보였다. 신기하게도 고통스러운 기색 따위 일절 없이 말이다.
‘방금 전 그 소리는 이 남자가 낸 소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를 관찰하고 있는데.
“불쌍하게도.”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불쌍, 하다고?”
잘못 들은 건가? 은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작 불쌍하다 못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건 은하가 아니라 저쪽인데 말이다.
“내가?”
“응. 너, 다음 타자인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보아하니 길을 잃었을 리는 없을 거고─.”
남자의 새빨간 눈이 이마에 살짝 닿았다가 서서히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이내 발끝까지 주욱 은하를 훑은 시선이 그녀 손의 양산에 닿았다. 기분 탓일까, 그 순간 그의 눈매가 가늘어진 듯했다.
그러나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에단은 다시 은하와 눈을 마주치고는 빙긋 웃었다.
“너 아스트가 보낸 거, 맞지?”
“……아스트를 알아?”
“알지.”
“너도 그가 여기로 보낸 거야?”
“그럴 리가.”
남자는 사슬에 칭칭 감긴 어깨를 작게 으쓱했다.
은하는 다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새까만 눈으로 또 한 번 그를 살폈다. 지금 은하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아니었다.
‘내게 불쌍하다고 했어.’
마치 그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으며 현재 은하가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투로 들렸다.
‘그렇다면…….’
은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혹시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남자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새빨간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은하를 응시했다.
만일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지.”
“……!”
은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정말 알고 있다고?
“알려 줄 수 있어?”
일단 물어나 보자.
은하가 그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남자가 빙긋 웃었다.
“아니.”
아주 짧은 대답이었다.
“왜?”
“알려 줘 봤자 못 나갈 테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알아.”
남자는 다시 한번 짧게 답했다.
“너, 절대로 여기서 못 나가.”
새빨간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은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엄포를 놓는 것이 아닌, 정말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남자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은하는 휙 등을 돌렸다.
저자의 멱살을 잡고 당장 불지 않으면 불로 지져 버리겠다고 협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저자가 정말 탈출 방법을 알고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단순한 허풍일 가능성도 있다. 가망이 없는 곳에 이 이상 시간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또각, 또각─
등을 돌린 은하는 차분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소용없을걸.”
등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 * *
이후 출구를 찾기 위해 이곳 지하 미궁을 오랫동안 탐색했다.
은하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은 꽤 넓었다.
그 분홍색 머리의 이상한 남자 이외에도 미궁에 갇혀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했지만, 지금까지 탐색을 이어 간 결과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사람은 은하와 그, 단둘뿐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알게 된 점은 또 있었다.
삐에에에엑─!
미궁을 떠도는 몬스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은하가 발견했던 두개골은 몬스터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휘리릭! 뻐억!
공중에서 양산을 휘둘러 몬스터의 후두부를 깔끔하게 타격한 은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바닥에 탓, 착지했다.
‘죽었나?’
그리고 뒤돌아섰다. 시선을 내리깔아 꿈틀대는 몬스터를 가만히 응시해 보았다.
이곳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대부분은 야수형. 정확하게는 그중에서도 비행형에 해당하는 몬스터였다. 놈들의 약점이 날개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강해.’
이곳에서 시스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놈들은 은하와 달리 이곳 미궁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무리 지어 생활했다.
예상컨대 놈의 레벨은 최소 80 이상.
은하가 쓰러트리지 못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한 번에 세 마리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면 꽤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방금처럼 말이다.
푸우욱!
은하는 날카로운 양산 끝으로 놈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꿈틀대던 움직임이 멎는다. 확실히 숨통을 끊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은하는 놈에게서 양산을 뽑아냈다.
‘……더러워.’
미간을 좁힌 은하는 양산을 공중에 가볍게 휘저어 피를 털어 냈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직 불확실한 것들이 많아.’
놈들이 얼마만큼의 주기로 재생성되는지. 한 번의 생성 시 최대 몇 마리까지 상대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또한 일정한 간격마다 생성되는 몬스터와는 달리 은하는 인간. 체력이 유한하다는 소리였다. 언제까지고 놈들을 상대하고 있다가는 탈출구를 찾기 전에 지쳐 버릴 것이다.
몬스터의 시체에서 능숙하게 살코기를 갈무리한 은하는 적당한 곳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미궁의 구조를 모르는 이상, 놈들이 언제 나타나서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마땅치가 않았다.
이전 게이트에서는 움막을 만들어 간이 생활 공간을 확보한 은하였으나, 그것은 그 게이트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데다 몬스터의 생성 주기 및 위치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니다.
‘어떻게든 쉴 만한 곳을 찾아야 해.’
식사나 휴식도 문제였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잠을 잘 때에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이런 위험 지역에서 잠을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게 마땅한 장소를 찾아 미궁을 헤매이던 은하는 결국,
“거봐. 소용없을 거라고 했잖아.”
다시금 분홍 머리 남자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크게 한 바퀴를 돌고 보니 다시 이 자리였을 뿐.
꾸르르륵…….
또 정체불명의 해괴한 소리가 들려온다. 은하는 그제야 그 소리의 정체가 남자의 배에서 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순간 특이한 붉은빛의 홍채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은하의 뺨에 튄 핏자국에 머물렀다가 이내 빙그레 휘어진다.
“그렇지?”
그러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 꽤 기꺼운 것처럼 보였다. 은하는 정상이 아닌 그가 꺼림칙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직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
“무슨 생각?”
그가 웃다 말고 물었다. 은하는 여전히 표정을 고치지 않은 채 답했다.
“탈출 방법에 대해 알려 줄 생각.”
“너야말로 아직 생각 안 바뀌었나? 말했잖아. 너, 여기서 못 나간다고.”
“나갈 거야.”
“왜?”
남자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차라랑…….
차게 식은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이 지하 공기를 낮게 울렸다. 남자를 묶고 있던 쇠사슬로부터 나는 소리였다.
덥수룩하고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분홍색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은하는 그와 몇 초간 시선을 유지하다가, 다시 한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나갈 것이다.
결연한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것일까. 남자의 눈이 한동안 은하의 눈동자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든가.”
남자는 어깨를 작게 으쓱하더니 은하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서 홱 등을 돌리고 다시금 홀로 미궁을 탐색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미궁에서의 시간은 느렸으나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언노운 게이트에서도 그러했듯, 바깥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체감상으로는 꽤 시일이 지난 듯했다.
그동안 은하는 갖은 방법을 써 탈출구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탈출에 대한 작은 힌트마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수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열아홉.”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분홍색 머리 남자가 키득대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여기로 돌아온 횟수. 그거 알아? 난 최대 열다섯 번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넌 내 예상을 넘었어.”
그의 새빨간 두 눈이 즐거운 듯 휘어진다.
은하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근처 벽에 기대앉았다.
저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은하가 언제 포기하나 내기라도 건 것처럼 굴었다. 혹은 오랜만에 구경거리를 찾아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은하는 그런 그의 태도가 기껍지 않았다.
‘하지만.’
벽에 기대앉은 은하가 멍하니 턱을 들어 미궁의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가슴이 가쁘게 부풀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은하가 미궁을 헤매며 알아낸 한 가지 정보.
그것은, 이 넓은 미궁에서 이 남자가 있는 이곳만이 유일하게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방금 따돌리려던 몬스터도 이곳에 가까워지자 추격을 멈추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은하는 방금 전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분홍색 머리 남자가 있는 이곳에서만큼은 몬스터를 상대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은하는 탐색 활동을 끝내면 이곳으로 돌아왔다. 충분하고 여유 있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하아.”
은하가 잇새로 가느다란 한숨을 뱉었다. 이제야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조금 진정되었다.
방금 전 몬스터와의 전투가 꽤나 격렬했다. 셋도 버거운 몬스터가 동시에 다섯이나 몰려들었던 것.
물론 은하는 다치지 않았고 그것들을 모조리 해치우는 것에 성공했다.
‘이렇게 고기도 얻었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몬스터의 살점. 은하는 그것을 바닥에 툭 올려 두고, 손을 뻗어 검은 불꽃을 작게 피워 냈다.
팟! 지글지글…….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익힌 다음, 인벤토리에서 후추와 소금 등을 꺼내 대충 위에 뿌렸다.
은하는 완성된 고기 요리를 금방 베어 물지 않고 물끄러미 응시했다.
‘우리 딸, 칠면조 알레르기가 있었구나. 엄마가 미안해.’
사실 은하는 어렸을 적 칠면조를 잘못 먹고 한동안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닭고기는 괜찮았지만,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닭발 외에는 잘 먹지 않았다.
칠면조와 닮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새 형태의 몬스터잖아. 혹시 모른다. 하지만 달리 먹을 것이 없는 이상, 선택지는 없었다.
은하는 작은 불안을 안고, 타 버릴 만큼 완전히 익힌 그것을 조심스레 베어 물었다.
‘……알레르기는 둘째 치고 더럽게 맛없네.’
입 안뿐만 아니라 목구멍까지 비릿한 향이 퍼진다. 아무리 조미료를 뿌렸다고 한들, 몬스터의 고기가 맛이 있을 리가 없지.
마치 고무를 씹는 기분이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 대신 몬스터의 역한 피비린내가 진해진다. 질겅질겅 고기를 씹던 은하는 헛구역질과 함께 가까스로 그것을 꿀꺽 삼켰다.
‘……돌아가고 싶다.’
문득 냉장고에 그대로 놔두었던 제휘의 밑반찬들이 생각난다. 어묵 볶음, 멸치조림, 깻잎 무침…….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주문해 두었던 냉동 곱창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큰맘 먹고 사비로 구입한 에어프라이어도 한 번밖에 쓰지 않았는데.
시우와 함께 찾아갔던 그리운 그 국밥집. 그곳의 깍두기가 그리웠다. 아……. 아연이랑 최근에 먹었던 파스타가 참 괜찮았는데. 하물며 훈련생 시절 자주 먹었던, 맛도 영양도 없던 비상식량조차 이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은하는 자신의 손에 들린 거무튀튀한 고깃덩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몸 곳곳이 가려운 건 기분 탓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런 맛없는 고기라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은하가 다시 한번 고기를 베어 물기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이었다.
“…….”
“…….”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새빨간 눈동자와 정면으로 시선이 부딪쳤다. 그리고 들려오는,
꾸르르륵─
해괴한 그 소리.
남자의 배로부터 나는 소리다.
기분 탓일까. 그의 목젖이 크게 위에서 아래로 꿀렁이는 것을 본 듯도 하다.
은하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고깃덩이와 눈앞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흉터투성이인 몸에 피에 젖은 옷가지. 그의 양 손바닥을 크게 뚫은 굵은 대못.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상태로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미궁은커녕 지금 이 공간조차 말이다.
스륵─
잠시 무언가 생각하듯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은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남자가 은하를 보며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그녀가 내민 검고 비린 고깃덩이를 보며 말이다.
“먹어.”
이번에는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남자의 목젖이 정말 크게 꿀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남자는 고개를 홱 반대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걸 내게 줘도 알려 줄 건 없어.”
“알아.”
단조로운 답변에 남자의 시선이 다시 한번 은하에게 닿았다. 그럼 왜? 새빨간 시선은 마치 그리 묻고 있는 듯했다.
은하는 그가 선뜻 고기를 받지 않자 그것을 그의 눈앞에 툭 던졌다.
“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리고 그와 조금 떨어진 벽면으로 돌아가 기대앉았다.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저것이 은하가 구해 온 유일한 고깃덩이였다. 그러나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비록 오늘 생성된 몬스터는 모두 죽여 버렸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생겨날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알레르기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하니까.
“싫으면 먹지─.”
──마.
그렇게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제자리서 얼어붙은 은하는 눈앞의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남자가 땅에 고개를 처박고 허겁지겁 고깃덩이를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대못이 박힌 손을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당연한 행위였다.
다만 남자의 그 모습은, 은하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처절하고 절박해 보였다.
“……맛있어.”
몬스터의 핏자국을 입가에 묻힌 채, 그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 맛있다.”
그는 묘한 눈빛으로 고깃덩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그것을 허둥지둥 물어뜯기 시작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몇 년은 굶은 사람처럼 말이다.
은하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쩐지 그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