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왜 여기에 있냐니.”
은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뗐다.
“네가 불렀잖아.”
“…….”
반대로 이준은 입을 다물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난 널 이곳에 부른 적 없어.”
이윽고 한다는 말이 그것이었다.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 그럼 돌아갈게.”
은하는 시원스레 등을 돌렸다. 이준은 그런 은하의 앞을 덜컥 막아섰다.
“잠깐 기다려. 내가 널 불렀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야겠어.”
“아니라며? 그럼 됐어.”
“넌, 내가 불렀다고 이곳에 온 거야?”
“…….”
은하는 말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했다.
이준은 가면 너머로 그런 은하를 빤히 응시했다. 웃고 있는지, 어이없어하는지, 그도 아니면 무표정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변했네.”
“뭐?”
“사람 많은 장소 싫어했었잖아.”
“…….”
이준의 말에 은하가 가면 아래로 소리 없이 웃었다. 이준이 그녀에게 변했다는 말을 하는 이 상황이 참 묘해서. 정작 변한 쪽이 누구인데.
“우선 따라와.”
“어딜? 돌아갈 거라고 했잖아.”
“그쪽으로는 안 돼. 지금쯤이면 호텔 로비에 기자들이 와 있을 거야. 돌아가려면 다른 출구로 나가. 네가 굳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
“연회장 뒤쪽에 숨겨진 엘리베이터가 있어. 내가 위치를 알아.”
이준은 은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빙글 몸을 돌렸다. 은하는 이준의 등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이내 천천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른 보폭, 다른 속도로 그들은 같은 길을 걸었다.
연회장을 벗어나 텅 빈 복도를 걷고, 복도를 벗어나 모퉁이를 돌았다. 미로처럼 복잡한 호텔 내부를 걸으며, 두 사람은 한 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신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가 언니, 이 새끼 수상하다며 아무래도 신종 납치 수법이 아닌지 의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