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80)화 (80/306)

#80

“아저씨들, 나한테 볼일 있어?”

2031년 9월 11일.

헌터 옥션 2일 차.

무사히 칩 벌이를 끝낸 아연이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베르데를 포함하여 외국인 헌터가 셋. 그들의 목적이야 알 법했다.

“너지?”

“엥. 무슨 소리야?”

“내 아이템을 훔쳐 간 거 말이다.”

베르데는 이미 다 알고 왔다는 듯한 얼굴로 아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연은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든 다음 대놓고 풋,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게 내가 주머니 간수 잘하라고 했지?”

“오리발 내밀지 말고 얼른 내놔.”

“무슨 소리야? 내가 훔쳤다는 증거는 있고?”

없잖아. 야구 모자 아래 진분홍색 눈동자가 천진한 기색으로 휘어졌다.

“너 말고는 짐작 가는 곳이 없어.”

“이봐요, 아저씨. 그건 심증이지 증거가 아니잖아염.”

에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아연이 양손을 교차시켜 X 자를 그렸다.

“아무튼 난 아님. 절대 아님.”

그대로 그들을 지나치려는 순간.

크르르릉─ 컹! 컹!

불쑥 나타난 대형견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아연을 물어뜯을 기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둘, 셋, 넷…….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없었던 대형견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테이머가 있군.’

소환 특성을 지닌 헌터. 그중에서도 동물을 다루는 헌터를 흔히 테이머(Tamer)라 불렀다.

싸움이 길어지면 귀찮아지겠다.

소환 계열 헌터들은 마력이 남아 있는 한, 랭크에 따라 최소 십에서 몇십, 최대 몇천까지도 물체를 소환한다고 했다.

일대일 전투에 특화된 아연에게는 그야말로 천적인 격.

게다가 상대는 셋. A급 헌터 베르데의 고유 능력은 아연이 알기로 식물 조작. 나머지 한 헌터는 랭크도 고유 능력도 미지수. 즉 상성을 예상할 수조차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취해야 할 행동은 단 하나. 아연은 빙글 등을 돌렸다.

“아저씨 개야? 귀엽긴 한데, 난 고양이파라서.”

그리고.

“……?!”

연기처럼 휙 사라진 소녀.

당황한 베르데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어디에도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위? 아니다. 문자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도망을 친 것인지 단순히 모습을 감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쫓아.”

한 헌터가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것이 방아쇠인 양 대형견들이 일제히 주변으로 흩어졌다.

***

‘2반에 강아연 말이야. 기초 생활 수급자래.’

‘걔 어렸을 때 부모님 게이트 사고로 죽고, 작년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던데?’

‘진짜? 2반 친구가 그러던데 걔한테서 이상한 냄새도 난다더라.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걔가 움직일 때마다 쉰내가 진동한대, 큭. 양말도 맨날 같은 거만 신는다던데.’

‘집에 물이 안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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