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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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피해자
2023.06.08.
28. 피해자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 크록 실종 당일
‘크록이 실종됐습니다.’
경찰의 그 한마디가 가져온 파급력은 대단했다.
리암을 포함한 경찰들은 그레이 여관을 에워싸고 꼭 독 안에 쥐를 몰듯 하고 있었고, 입으로는 그저 탐문 수사 중이라 했지만 리암의 눈빛은 분명 명확하게 정해진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간 그레이빌의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 없이 실종되었지만, 경찰은 단 한 번도 이를 문제 삼아 제대로 사건을 수면 위에 올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크록이 누군가. 그는 이 도시의 유지이자 막강한 권력을 가진 팔로하이드의 외동아들이자, 이변이 없다면 가업을 이을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던가. 그런 존재가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졌으니 그 저택이 발칵 뒤집힐밖에.
“주변 조사를 하다 보니 최근에 크록과 가장 많이 부딪힌 친구들이라 하더군요. 칸도 그렇고…….”
그 말에 요한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시몬은 그런 제 아내의 손을 꽉 붙잡으며 입술을 말아 넣었다.
“리암, 지금 우리 칸이 뭔가를 했다는 거요?”
시몬이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단정한 문장으로 말하자, 리암은 그저 곤란한 듯 뒷목만 쓸어내릴 뿐이었다.
“칸하고 잠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레이 여관에 사는 이 친구들도요.”
리암의 말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형제들의 보호자인 기리를 바라보자 그 또한 기꺼이 그렇게 하라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의심해서 찾아온 게 아닌 것 같은데?
가만히 상황과 리암을 동시에 주시하던 엔지가 냉정한 태도로 말하자, 인기척을 듣고 내려온 나자크가 조용히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저 눈. 뭔가를 알고 있잖아. 무언갈 손에 쥐고 덫을 치는 눈이라고.
엔지의 말에 형제들은 모두 리암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많은 경찰이 그러하듯, 어려운 문제에 답을 찾지 못한 눈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신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일부러 패를 보이지 않는 거야. 구석으로 몰아서 잡을 셈이군.
엔지는 그저 그것이 싱겁고 고루한 방식이라 생각했으나, 동시에 리암이 무엇을 손에 쥐고 저토록이나 확신하는지 알고 싶었다.
곧이어 제 방문을 열고 며칠 만에 나타난 칸이 2층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요한나는 제 아들이 걸어오는 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칸은 경찰이 제 집을 들이닥쳤는데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와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이 순간 긴장하지 않은 자는 칸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의연했고, 그 태도가 의연하면 할수록 리암의 눈빛은 더욱 의심으로 깊어졌다.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칸.”
“그런가요. 조금 피곤해서요.”
“내가 왜 왔는지는 묻지 않니?”
“크록이 실종됐다구요.”
“그래. 난 너와 여기 사는 형제들 모두를 조사할 생각이란다. 공평하게.”
리암은 공명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공평하게란 말을 강조해서 쓰긴 했으나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장 의심하고 있을 거란 걸 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의심 가는 사람 있니?”
“절 의심하고 계신 거 아니셨나요.”
“너뿐만 아니라 용의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심해. 섣부른 편견이나 확증편향은 위험한 법이니까.”
리암의 말에 엔지는 속으로 낮게 웃었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움직이면서 허울 좋은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 그런 엔지를 향해 기리가 눈치를 주자, 그제야 그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생각을 환기시켰다.
“좋아. 그럼 질문하마. 지난 15일 밤, 어디에 있었니?”
“글쎄요…….”
칸은 정말 기억나지 않는 듯 잠시 제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주말이 아니었으니까 평소와 같았을 거예요. 집에 들어와 내내 방에 있었던 것 같아요.”
“방에 있었다는 거지?”
“네. 아마도요.”
칸이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리암은 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그것은 보름날 밤 여관을 빠져나가 급히 사라지는 칸의 모습이었다.
아아. 저거군.
엔지가 덫의 정체를 확인하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보름이면 형제들 모두 여관에 머물지 않았을 터다. 그들은 모두 폐공장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고 동시에 돌아왔으니까. 그렇다면 칸은 왜?
“크록이 실종된 게 나흘 전이야. 보름날 밤이지. 그리고 그 실종되기 며칠 전, 넌 라온 상점 앞에서 크록을 공격했고. 이 CCTV 화면도 그렇고, 현재 칸, 네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수밖에 없어. 지금으로선 유감이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네.”
가타부타 변명 한마디 없는 칸의 대답에 당황한 건 비단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네? 할 말은 그것뿐이냐.”
“지금은요.”
“내가 널 의심해도 된다는 거니?”
“아저씬 아저씨 할 일을 하실 뿐이죠.”
칸은 덤덤하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지만, 칸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저 한 곳만을 응시한 채 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 순간, 기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요한나는 아연실색했다. 지난번 기리와 나눴던 대화가 고스란히 한 장면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뜨던 밤에 칸이 사라지진 않았나요? 지난달에, 제가 칸이 밖으로 나가는 인기척을 들을 것 같아서요.”
당시에 기리의 질문은 보름달 칸이 늑대로 변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덫에 불과한 질문이었으나, 그것은 강력한 독화살이 되어 요한나의 심장에 내리꽂혔다.
기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상황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칸의 행방과 자신이 보지 못한 이상한 점을 알아내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리암의 말은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문을 모두 진실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칸은 왜 보름달이 뜨던 밤 사라졌을까.
어디로 갔을까.
왜 갔을까.
“뭐라도 말을 해봐, 칸? 응?”
“보름밤, 왜 사라진 거니? 대체 어딜 간 거야?”
시몬과 요한나의 연달은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칸에게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형제들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칸은 결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걸.
-뭐야. 칸 형이 정말로…….
-아직 아무것도 몰라.
그래. 아직이다. 아직.
보름달이 뜨던 밤. 엔지는 분명 두 개의 냄새를 맡았다. 인간 하나, 그리고 인간이 아닌 종족의 냄새. 그러니 이번만큼은 반드시 알아야겠다.
칸, 넌 대체 어느 쪽이냐.
* *
고인 물에서 썩은 내가 올라왔다.
크록이 실종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그레이빌엔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리암에 따르면 크록을 포함해 실종자는 족히 열이 넘었고, 그중에서 현재까지 살아 돌아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쩌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 작은 희망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에 쉽게 힘을 잃어버렸다.
십자의 모양으로 둘러싸인 골목 한가운데에 전시되듯 버려진 시신이었다.
공허하게 비어버린 회색 눈동자는 꼭 거대한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움푹하게 패였고, 벌어진 입에서는 말라버린 살갗을 파먹는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주변엔 흔한 핏자국 하나조차 없이, 몸속의 피가 모조리 빠진 채 미라처럼 말라버린 육신은 가죽만 남은 몰골로 뼈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리암은 구역질 나는 냄새와 시체의 몰골에 소매로 빠르게 제 입과 코를 가렸다.
“이, 이게 무슨……!”
“이런 해괴한 시체는 처음 봅니다. 미라도 아니고.”
“신원 확인할 수 있겠어?”
“지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살가죽이 탄 것처럼 쪼그라들었어요. 다행히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이 살아 있네요.”
가장 높은 옥상 건물에 서서 기리와 나자크는 사건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능력치를 살짝 올리자 경찰들의 이야기, 현장의 냄새, 피해자의 시신의 모양새까지 모두 선명하게 오감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피가 모조리 빠진 시체라.
순식간에 나자크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형.”
“아직은 괜찮아, 나자크.”
그건 기리 자신에게 하는 말과도 같았다.
무너져선 안 된다. 무너질 필요조차 없다. 약한 마음이 이는 순간 그것은 포식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찬이 될 것이므로.
“두려운 거지. 우리가 다칠까 봐.”
“그래. 아니라곤 말 못 해.”
마하바 초원을 떠나올 때 느꼈던 그 무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모른 채 당했으나 지금은 아니었으니,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다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나자크, 이건 내 기회야. 정체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내 가족, 우리 종족들을 거의 몰살시킨 그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내 기회.”
기리의 말에 나자크는 잠시 무언가를 깨달은 듯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형한테 우린 짐인 걸까.”
“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은 이처럼 기리의 한쪽 눈이 구겨졌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형은 진작 움직였을 거야. 이런저런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않았을 거고, 전투니 뭐니 그런 연습도 하지 않았을 테지. 형은 강하니까.”
“나자크.”
“내 말이 틀려?”
“내가 사는 이유는 너희뿐이야.”
상처를 주기 싫은 이에게 상처를 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리는 기꺼이 나자크의 불안을 받아냈다.
“모두를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너희를 만났고, 난 지금껏 버틸 수 있었어. 그만큼 너흰 나한테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란 뜻이야. 알아들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꾸만 그에게 기대게 되고, 보호받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나자크는 강한 전사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조급하게 굴 필요 없어. 때가 되면 넌 더 강해질 거야. 지금도 충분히 강하고.”
기리가 나자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약간의 힘을 실어 신뢰를 표했다. 나자크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사의 이름을 가졌고, 그에 걸맞은 대부분의 것을 갖추고 있는 드문 늑대인간이었다. 그가 충분히 다음 대의 훌륭한 알파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음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넌 분명 최고의 알파가 될 거야.”
나자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이유였고, 그렇게 제 무리를 지키며 단단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나자크는 피해자의 시신 위로 씌워지는 흰 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알파를 원하는가.
피가 끓는 복수인가. 모두를 위한 행복인가.
대체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지.
“나자크.”
긴 생각을 부러 잘라내 주듯 기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것들을 끊어냈다.
기리는 현장을 정리하고 사라지는 경찰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옥상 아래로 몸을 던져 날렵한 몸짓으로 순식간에 바닥에 착지했다. 나자크 또한 기척 없이 고요한 몸짓으로 기리의 뒤를 따라붙었다.
물기도 핏기도 없는 마른 시멘트 바닥.
피가 빨린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할 수 없다.
나자크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손으로 느릿하게 쓸었다.
희미하지만 언젠가 맡은 적 있던 냄새임이 분명하다.
“……크록?”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