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

손아귀에 힘을 주자 단정한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숨통이 막혀서 괴로울 텐데 은회색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격하고 끓어오르던 분노가 잔잔하게 가라앉아가는 느낌. 

그 시선이 자신의 등 뒤에서 나뒹구는 시체에 머무는 순간 이안은 류의 어깨에 박혀 있던 칼을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그 눈으로 나만 쳐다보고 그 입술로 나에게만 입 맞춰.”

“윽...이거 놔!”

격렬하게 부벼지는 입술과 혀로 인해 입안 구석구석이 쾌감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며 녹아 버리는 것 같다.

“나는 분명 그 꼬마 녀석에게 경고 했었다.”

공포에 질린 녹색 눈동자를 그 자리에서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통통하고 흰 살결을 칼로 다 벗겨내서 씹어 먹고 싶었다. 

“네가 그 별 볼일 없는 놈 때문에 팀을 이탈하고 나서 잭과 진저도 죽였어. 그 이유도 설명 해줄까?”

“......놔! 놓으란 말이다....읏...”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입술을 사정 없이 물어 뜯자 새빨간 선혈이 뚝뚝 흘러 내린다.

아름 답다.

“...너와는 달리 내게 살인은 정당화 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 거슬리면 죽이고 수틀리면 죽여.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저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 그걸로 끝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류?”

“몰라. 네가 뭘 말하고 있는 지...난....하나도 모르겠어.”

“하...그래...그럴 수도 있겠지...모를 수도 있어....그렇다면 넌 너 자신이 뭐라고 생각해?”

손아래 움켜진 하얀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류의 부드럽고 토실한 귓불에 이를 세워 잘근 거렸다. 

“...컥...”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호자(guardian)일까.”

“.....으....”

“.........피에 얼룩진 파괴자(killer)일까."

",,,그만....“

“하지만 그런 구별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넌 늘 지키는자 (guardian)이고 싶어했지만 결국 파괴자(killer)로 불려졌지. 

스스로를 괴롭히고 망가뜨리면서 까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 건가. 누구를 위한 수호자이고 누구를 위한 파괴자 인거지?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만...”

“스스로를 죽이면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제발....”

“어리광 부리지 마. 살인은 내가 한 거다. 그 꼬마 녀석도 내가 죽였어. 그러니 너에게는 책임이 없어.”

“웃...기지...마.”

“......하긴. 질투로 돌게 만들었으니까 조금쯤은 원인제공을 한 건가?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네가 이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듣기 싫어. 닥쳐!”

“.......넌 그냥 지금처럼.....내 앞에서만 울고 나에게만 분노 하면 돼.”

“......그만.......”

“..그러면 불평하지 않아.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일 생각도 없어.”

“....미친 소리 하지 마. 내가 왜 네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너의 판단 근거가 나여야 한다는 정의가 뭐야. 

왜 내 소중한 사람이 너에게 희생 되어야 해? 왜!!!!내가 네게 뭘 잘못했어? 뭘 잘못했냐구!”

“........”

“.......”

“......니까..”

“........”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뭐?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넌 내게 잘못한 거야.”

툭하고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하지 않아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내 전부가 되어버리니까....내 중심이 너가 되어 버렸으니까 내 판단기준도 정의도 가치관도 심장도 전부 네가 되어 버렸어.”

“닥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안타까움과 갑갑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거센 소용돌이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절대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연애 감정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잘못 아는 거라고...

그렇게 결론 내렸어. 그냥 오래 보고 있다 보니까 착각한 거라고....그래 어쩌면 단순한 자기 암시와 착각일지도 모르지.”

“.......닥치란 말이야. 이 미친 새끼야! 그만해!!!!!!!!그만 하란 말이다. 그딴 말로 널 정당화 시키지 마! 

네 행동이 옳을 수 있다고 여기지 마. 그 말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이 진실이야. 네가 알고 싶어 하던 것. 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그래.”

“웃기지 마. 너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런 추악한 감정을 내게 밀어 붙이지 말란 말이다!!!!!”

“.......”

미친 새끼.

정말 미친 새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샨이....그...귀엽고..깨끗하고 밝은 샨이....나 때문에 죽었다. 

“....추악한가....그럴지도 모르지.”

동굴 속을 몇 번이나 메아리치며 돌아온 절규에 찬 내 목소리에 이안은 씁쓸한 얼굴로 낮게 지껄였다. 

담담하기 까지 한 그 음성에 분노의 감정이 가슴을 태우며 목구멍 밖으로 꾸역꾸역 터져 나오려고 한다. 

“.......고작 그런 이유로 넌 샨을 죽였어. 미치광이 살인마.”

“그래....고작이라는 단어일 수도 있겠지. 너에게는.”

“......내 말이 틀렸어? 결국 알량한 네 만족과 독점욕 때문에....그 애를 죽인 거잖아.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네가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거 잖아. 부정하려 하지 마. 싸구려인 네 감정을 과대 포장하지 마.”

“.....부정할 생각 없어. 조금 다르지만 완전히 틀리지는 않으니까..”

“절대 용서 안 해.”

용서 못해.

“.......네 말대로 싸구려에다......”

네 까짓 게 뭔데....네 감정 따위가 뭔데...

“...추악할지 몰라도....”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

“......그래도 절실했다.”

그런 말 한다고 해서 조금은 알아 줄 거라고 생각해?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내 연인을 죽인 비열한 살인자의 변명 따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릴 거다.”

“.......그래.”

“샨....이 고통스러웠던 것의 몇 천 배로 고통스럽게....죽여 버릴 거다.”

“.....원하는 대로 해.”

“.......”

“....이 내가 비명을 지르며 네게 목숨을 구걸할 때까지 나를 파괴 시켜 봐. 

너를 만지는 이 손을 잘라내고 너를 쳐다보는 이 눈을 뽑아내고 간악한 말을 지껄이는 이 입술을 뭉개버리고 너를 향해 뛰는 이 심장을 산 채로 도려내서...

더할 수 없는 고통에 치를 떨게 해봐.”

“...!...”

“.....너를 눈에 담은 걸...후회하게 만들어 봐.”

두근.

“....그런 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두근. 두근.

격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또 무서워서 온 몸에 오도독 소름이 돋았다.

“미쳤어. 넌 이상해.”

“그럴지도 몰라. 난 원래 어딘가가 결여된 인간이었거든. 너에게 이런 울렁거리는 느낌을 가지는 것조차 생소해. 

누군가를 위해 눈물 흘리거나 슬퍼해 본적 없어. 그래. 확실히 난 미친 데다 이상할지도 몰라.”

“.......”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미친 듯이 날뛰던 살기가...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쭉 함께 있고 싶었다.”

손이...발이....온 신경이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정말로...그래.”

이안도 혼잣말 하는 것처럼 조용히 되 내이더니 내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널 죽이면 다 끝날까. 이 잡을 수 없는 혼란들이?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널 보지 않았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대체 내게 뭘 바라는 거야....큭...콜록.”

“....몰라....”

“........”

창백하게 질려가는 피부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이안은 더욱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제발.....부탁이니까.....”

“..컥...그..만...”

“나를 쳐다보지 않을 거라면....”

“콜록..”

“그 무엇도 그 눈 속에 담지 마.”

“...!...”

“네가 그러면 나는 참을 수 없어 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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