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메아리의 능력 (8)
정우는 머리가 아팠다.
모든 게 헝클어진 느낌이었다.
지식의 신을 기습하려던 계획이 의외의 상황에 실패했지만.
실상은 실패보단 성공에 가까웠다.
놈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비밀이 자신의 오래된 친우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자의 생명을 대가로 한다는 게 정우의 마음을 쥐어짰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정우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영혼의 계약을 통해 메아리 역시 강해진다.
정확하게는.
모든 건 하나.
세계수의 법칙이 녹아든 계약이 둘을 하나의 존재처럼 만들어 버렸다.
세계수, 다니엘, 마야.
이렇게 셋의 능력이 ‘존재의 부정’으로 인해 뒤섞여 버렸다.
물론, 본래의 것이 아닌 능력의 사용은 미약했다.
세계수는 마법과 환상의 능력을 다뤘지만 그 능력을 미비했고.
메아리는 실체화란 능력을 다루게 되었다.
정신이 아닌 육체조차 상대에게 이상형이 되는 것이 세계수의 능력을 통한 능력의 강화였다.
그리고 다니엘도 둘의 영향을 받았는데.
세계수와 묘목의 관계는 마야와 연결되는 것으로 영향을 받았고, 그 덕분인지 마야의 ‘부정’에 대한 감각을 약간 이어받는 것으로 영향을 받았다.
셋의 기묘한 형태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지식의 신 때문이었다.
세계수의 본체에 깃든 마야의 정신과 다니엘이 완성시킨 봉인까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식의 신은 그들의 형태를 고착시켰다.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부정을 섞어서.
하지만 그 때문에 새로운 세계에 이르러, 셋의 관계는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렀다.
플레이어의 능력을 개화하면서 기억을 되찾은 세계수는, 자신의 힘을 미리 끌어다 쓰면서 지식의 신의 계획에 훼방을 놓았고.
세계수의 영향을 받은 메아리는 예상보다 더 성장이 더뎠으며.
정우는 기억의 회복이 더뎌진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기억을 되찾음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경계를 넘어섰다.
자신이 통제하고 만들어 가야 할 경계를.
‘청탑의 건설은 놈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카이롤레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청탑은 필요했어.’
하지만 놈이 계산하지 못한 건, 자신의 손에 있는 열쇠의 활용법이었다.
탑이 가진 본래의 증폭 기능에 마녀 일족의 능력까지 배합시켜, 한순간이나마 본인의 권능에 침범할 정도로 변화시킬 거라곤.
‘놈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기에… 내 등장에도 오히려 태연함을 가장했어.’
기다렸다는 듯.
알고 있었다는 듯.
일시적인 권한을 얻었을 때야 알았을 그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풀어내었다.
단지 한 가지.
‘오로지’ 그 단어만 제외한다면.
지식에만 관심이 있는 자라는 걸, 스스로 드러낼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런 단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정우 본인에게 있었다.
지닌 능력의 조합을 통해 열쇠로 인한 권능의 침입화.
그게 놈의 관심을 끈 게 분명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놈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고, 생각을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놈이 뒤에서 공작을 펼쳤다는 게 기정사실로 변했다.
때문에 메아리를 보냈다.
교차 검증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마왕이 세계수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마왕은 무조건적으로 배척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같은 의도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성공적이라고는 말하기가 어려워.’
세계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메아리는 지식의 신의 눈조차 피한 세계수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한번 성공했다면 그 이상의 침입은 어렵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세계수는 자신을 언제고 찾을 수 있는 메아리와 정우에게 모든 걸 실토했어야 했다.
더불어 협조를 요청하든, 협력을 보장하든 무언가 제의를 했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메아리는 그에 따른 언급은 없었다.
단지, 모든 걸 알았다는 듯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다질 뿐.
‘…그렇기 때문에 세계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플레이어 중에서도 그릇된 생각을 가진 자들을 한곳에 모아 사냥하기 좋게 만든 것처럼.
세계수는 모종의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대략적인 것이라면 짐작이 간다.
‘세계수의 부활.’
묘목이 아닌, 성목으로서의 존재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마 마왕의 목적이지 않을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생각을 정리한다.
메아리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녀가 왜 죽음을 각오한 건지, 정우는 알았다.
그녀의 심상 밑에 깔려 있는 어둠의 영역을 통해서.
세상에.
이 지구에 출몰하는 던전과 몬스터. 그리고 그것을 비롯한 수많은 법칙의 완성이.
‘…메아리를 통해서라니.’
메아리와 관련이 있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았다.
펜던트의 마력을 따라 이동한 결과가 메아리의 심상이라니.
아니, 그 밑에 깔린 어둠의 영역이라니.
소멸 직전이라지만 이계의 세계수가 뿌리내리고, 이계의 어둠의 영역을 고스란히 봉인해 둔 장소가 바로 메아리였다니.
‘왜……?’
그렇기에 질문을 던진다.
지식의 신은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그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고, 어둠의 영역을 이용했다.
시간의 부정.
흘러 버린 시간을 부정함으로써 과거로 회귀시키는 기이하고도 중요한 능력.
그것을 이용한 건, 지식의 신이었으니까.
‘……이용?’
문득 의문이 든다.
지식의 신이 완성시킨 시스템은 지금까진 무결했다.
하지만.
‘……놈 역시 시스템을 이용하는 수준이지 않았나?’
대도서관이라는 고상한 이름 위의 원룸에 틀어박힌 백수에 가까운 존재.
하는 일이라고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게 전부인 존재.
굳이 치환하자면 지식의 신의 능력은 그것에 불과했다.
왜?
“……이지스.”
“…말씀하시오, 왕이여.”
“지식의 신이 너희의 신이었다는 걸 기억하나?”
“진리를 탐구하는 자. 혹은 진리를 수집하기 위해 고행을 아끼지 않는 자가 우리에게 비기를 알려 준 신이오.”
“고행을 아끼지 않는?”
“진리라는 것은 쉬이 얻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오.”
맞는 말이라 정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의외의 정보였다.
고행을 아끼지 않는.
그 단어가 ‘오로지’라는 단어와 겹쳐 보였다.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어.”
- 주인님!
“마지막이야. 지금이 기회이고 모든 걸 다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생각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
가만히 듣고 있던 로드가 물었다.
많은 게 바뀌었다.
뒤엉키고 얽혀서 풀리기 어려운 실타래가 되어 버렸다.
“일단은 청탑으로 가죠.”
정우가 말을 돌렸다.
곧장 청탑으로 이동해 마녀들과 로드를 곁에 둔 그는 메아리를 불렀다.
“……주인님.”
“일단 내 생각대로 해.”
조금은 냉정하게 말한 정우가 메아리에게 명령했다.
“꿈에 관여해.”
“……꿈이요? 누구의 꿈이요?”
“나의 꿈.”
“…주인님의 꿈이요?”
정우의 단호한 말에 메아리가 머뭇거렸다.
“나의 성장이 네게 영향을 미치는 것부터가 본질이야. 봉인…. 그게 네게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메아리가 가진 어둠의 영역에 깃든 봉인이 신경이 쓰였다.
그렇기에 시야가 좁아졌다.
모두는 하나.
세계수의 법칙이 자신들에게 흘러들었다면, 자신과 메아리는 많은 걸 공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
정우는 메아리의 표정에서 답을 들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 역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지금 이 순간 떠올린 것이 틀림이 없었다.
“준비해.”
그렇게 말한 정우는 몸을 돌렸다.
자신 역시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기억난 게 다행이군.’
정우는 곧장 중국으로 향했다.
* * *
- 늦었군.
“…영역화에 성공했군.”
- 누가 늦지 않게 청탑을 완성해서 말이지.
“늦었다면서.”
- 늦긴 했고.
거대한 용의 말에 정우는 웃음을 흘렸다.
“약속을 이행해야겠어. 카이.”
- 잊은 줄 알았더니 잊진 않은 모양이군.
“잊었었지. 이제야 기억한 거고.”
- 준비는 끝났다.
“……아쉽지 않아?”
- 무엇이?
“…네 목숨을 대가로 하는 약속이니까.”
정우의 말에 카이롤레움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웃는 모양새였다.
육성이 필요 없음에도, 카이롤레움은 진정으로 웃긴 듯했다.
“…무엇이 웃기지?”
- 웃기지 않나. 약속이란 걸 맺을 때부터 나는 이미 이때를 염두에 두었다. 그게 이뤄졌을 뿐이야. 오히려…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
정우는 그 말에 침음을 삼켰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 무슨 소리이지?
“…내 계획이 성공하면, 우리는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야.”
- 나는 이미 소멸을 각오한 몸이다. 그 이후의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정우는 묘한 표정으로 카이롤레움을 보았다.
그는 진정으로 본인의 목숨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이제야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치고는.
“…그래. 어쨌든 약속을 이행해 줘.”
- 그러지. 그게 약속이었으니까.
카이롤레움은 거대한 머리를 숙여 정우의 이마에 자신의 주둥이를 가져다 대었다.
마치 이마에 키스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화악!
그와 동시에 카이롤레움의 몸체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 역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영역화.
정령이 자신이 기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작업으로, 영역의 안에서 정령은 최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정우는 마음이 무거웠다.
소환했을 때부터 그는 지금을 준비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약속의 이행을.
정우의 얼굴에 힘줄이 돋았다.
‘……반발을 억눌러!’
마력과 어둠의 마력이 반발하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령력과 존재감.
그것이 정우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가 카이롤레움과 한 약속은 간단했다.
- 종속의 계약을 지워 주는 대가로, 나는 네가 원하는 때에 내 목숨을 걸지.
“이득보다 대가가 센데?”
- 대가는 본인이 정하는 법. 나는 이 대가가 결코 내가 얻을 이득보다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지?”
- ……네가 날 희생시킬 각오를 할 정도라면, 어차피 난 소멸할 테니까. 다니엘. 너는 그런 인간이니까.
계약도 아닌 약속이다.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스스로가 맺은 약속.
카이롤레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기다린 약속이라는 듯.
- 다행이군.
“……뭐가.”
-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흩어지는 목소리로도 정우를 위로했다.
정우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다잡았다.
오히려 눈을 감아 버렸다.
더 이상 친구였던 이의 소멸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롤레움의 힘을 느끼며, 그의 힘을 온전히 갈무리하기 위해 집중했다.
고리를 만든 건 천운이었다.
예전이라면 카이롤레움의 기운조차 자신의 주변에 머무르게 만들었을 게 뻔했다.
그러고는 최후의 순간엔 무용지물로 흩어져 버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달랐다.
한순간의 망설임.
그리고 정한 선택.
그 선택이 가져온 보상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고리 사이로, 하나의 고리가 다시 생성된다.
통증이 밀려왔고, 반발력에 이가 갈렸지만.
스스스.
기어이 완성된 고리는 다른 것과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별개의 성질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휘이이잉!
“…….”
눈을 뜬 후 본 광경은 처참했다.
그 어떠한 것도 남지 않았다.
영역도, 그 거대한 존재도.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카이롤레움이 사라진 빈자리엔 한 줄기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정우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렸다.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