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71화 (271/293)

271화

-메아리의 능력 (7)

눈빛에서 드러났다.

자신의 주인이 가진 생각이….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

애틋한 감정이 불안을 지웠다.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알았다는 게 중요했다.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까.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달려오는 내내 품던 고민이 일거에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대략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자신이 품던 고민이 주인에게로 넘어갔다.

주인 역시 수많은 고민으로 시간을 보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내는 눈빛과 감정이 좋았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고마워하지 말아요.

내가 한 선택이었으며, 날 위한 선택이기도 했으니까요.

메아리는 자신의 생각을 입에 담지 않았다.

* * *

진실을 아는 건 하나의 조각만으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의 조각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하나의 조각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영역.

세계수.

봉인.

봉인의 흔적이 눈에 익었다.

봉인의 형태가 익숙했다.

나였다면…… 가정하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선택은 옳았다.

이곳이야말로 꼭 차지했어야 하는 근원.

어둠의 마력을 봉인한 그 장소였으니까.

봉인은 약해져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풀리고 있다.’

누군가가 봉인을 해제하고 있었다.

조악한 방법이고 미약한 힘이지만, 누구도 해제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봉인이 누군가에 의해 해제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그리고 그 누군가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식의 신.

놈이 범인이리라.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놈의 능력은 방대하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쌓은 모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둠의 마력을 기반으로 하여 뿜어내는 모든 능력은 위력적이다 못해 위협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놈의 능력은 플레이어의 것을 기반으로 한다.

플레이어가 다루는 능력을 놈도 다루는 것이며, 플레이어의 능력에 자신의 지식을 녹여 내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했다.

반대로 말하면, 그뿐이라는 소리였다.

봉인과 해제.

이건 엄연히 이해도의 문제였다.

과학을 잘한다고 수학을 잘하지 않거나, 수학을 잘한다고 과학을 잘하지 않는 것처럼 일반적인 능력과 봉인은 엄연히 달랐다.

수학과 과학 모두 수학이 사용되는 것처럼, 마력이라는 속성은 어디든 적용되지만, 이용 방법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인챈트가 불가능했으며.

부르기 전까지 미친 듯이 매진하고 있던 연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건 영역의 차이였고, 이해도의 문제였다.

마력이란 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연구와 스킬이라는 형태의 정해진 입력값에 익숙한 이들의 연구는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제임스 밀러가 천재인 것이고, 닥터 브라운이 세계적인 학자라 불리는 것이었다.

지식의 신은 수많은 지식을 가졌지만, 그걸 풀어 나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해도의 영역.

그렇기에 지식과 지혜가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놈은 켜켜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이라 불렸다.

하지만 놈이 관심이 있는 것은 지식의 누적일 뿐.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놈의 칭호가 지식의 신인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자…. 그건 놈이 목적을 뜻한다.’

세계수가 지식의 신을 부를 때마다 사용했던 ‘진리를 탐구하는 자’는 놈이 지식으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드러나 있는 이름이었다.

바로 진리 말이다.

진리의 범위야 크지만 놈은 단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지식을 탐식하는 중이었다.

그 진리의 범위를 한정 짓기만 한다면, 놈의 목적을 사전에 미리 알 수 있다는 소리였고.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소리겠지.’

놈을 끌어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봉인은 중요했다.

놈은 이곳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봉인을 풀기 위해 여러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남았다.

플레이어의 능력.

그리고 시스템까지.

그렇다면 놈이 바라는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봉인 너머.

어둠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틈, 그 너머의 세계.

지식의 신이 관심을 가지는 장소이자, 진리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놈으로서는 이 봉인을 당장이라도 뜯어 버리고 싶었을 테지만, 놈에겐 이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

‘지식은 있는 것 같아. 조악하지만 성과는 보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봉인이기에 정확하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봉인은 풀리기 직전이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고심했다.

이 또한 어렵지 않게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플레이어…. 이게 발목을 잡은 거야.’

각성을 하면서 자신 역시 시스템에 의해 노출이 되었다.

마왕이 자신의 행적을 알고 있었던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시스템의 이용.

놈들은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었다.

물론, 권한이야 지식의 신의 것이 더욱 강대하고 방대했다.

때문에 도망치고 있는 것일 테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지식의 신에 대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이 봉인을 해결한다.

풀고 있었다면 다시 꽁꽁 싸매 버리면 충분할 것이다.

본인의 계획에 큰 방해가 되는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나타나든가, 아니면 또다시 계획하든가.

놈 역시 택일의 선택지를 강요당해야 했다.

정우는 천천히 봉인을 살펴보았다.

어디가 해제되었고, 어느 부분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해 나갔다.

‘어둠의 영역이라 다행이야.’

정신만이 남았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어둠의 영역이기에 어둠의 마력을 가져다 쓰는 게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육체가 없는 이 현실이 기꺼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파악한다.

전생의 자신이 남긴 봉인을 완성시키는 법을.

봉인이 완성되면 놈의 발악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못해 발작적으로 시스템에 변화를 꾀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해야 했다.

어둠의 마력이 퍼지는 건, 결국 온 지구가 미해결 지역과 같은 장소로 변한다는 소리였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도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일반인은 개미처럼 짓이겨질 테니까.

정우는 그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신중히… 접근하자.’

지식의 신에게 발견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그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직접 공격하는 해킹은 포기했지만, 놈의 목표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기에, 놈 역시 이곳을 주기적으로 관찰할 테니까.

결국, 언제 관찰하는가에 따라 놈과의 전투가 다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준비가 쓸모가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좋다.’

이곳 역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니까.

정우는 혼자서 치르는 전투가 오히려 익숙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봉인의 문제점을 파악해 냈다.

그리고.

‘……이곳은, 설마….’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빌어먹게도, 실로 충격적이었다.

* * *

“전, 괜찮아요.”

모든 걸 삼킨 채 내뱉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 정우는 눈앞이 캄캄했다.

“……알았구나.”

“이번에 알았어요.”

“그거 때문에 늦은 건가?”

“네. 늦어 죄송해요.”

메아리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주춤.

정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마왕. 아니, 세계수는?”

“제 모든 걸 언급하진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세계수의 말투가 의뭉스러운 거.”

“알지…. 알아.”

정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또한 나름대로 지식의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용을 썼던 게 느껴졌다.

봉인이 왜 세계수의 기둥에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수가 봉인을 지키는 형태였던 것이다.

자신의 마력을 모조리 사용해서.

선만 남은 형태는 그렇게 발생된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묘목조차 어둠의 영역에서 약간의 형태를 유지했는데, 그보다 더한 정령력의 근원이자 신성의 근원이었던 본체가 이토록 허무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수의 감염은 그의 의도나 마찬가지라는 게 정우의 판단이었다.

“주인님의 판단이 옳아요. 그는 일부러 감염되었어요. 최후의 용족을 품에 안은 것도, 이때를 위해서예요.”

메아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지스와 로드는 숨을 죽이며 메아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며 이따금씩 정우의 안색을 살폈다.

정우의 안색이 너무도 나빠 보였기에.

“그는 자신을 어둠에 내던졌어요. 그리고 뿌리를 내렸죠. 스스로가 부서지는 고통을 참으며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포기했어요.”

“…그래서 완성된 게 마왕이었나.”

“아뇨. 그건 선택이었어요.”

“선택?”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세계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일부러 타락했다고?”

“네. 세계수는 일부러 타락했어요. 목적은 하나. ‘눈’을 피하기 위해서요.”

“지식의 신. 놈을 말이지.”

마왕이 왜 빌런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더불어 나중에 처리하기 편하게 빌런 협회라는 집단으로 묶어 뒀어요.”

“……음.”

정우가 침음을 삼켰다.

세계수 역시 타락했을지언정 자신의 본래의 존재 의의를 잊지 않았다.

그게 정우의 가슴을 못내 아프게 만들었다.

타락.

신성이라고 불릴 정도의 존재가 자신의 능력을 버린다는 건, 죽음을 각오했다는 소리였다.

같은 인간을 죽이고.

신인류와 같은 기괴한 주장에 손을 들고.

자신이 사랑했던 생명에게 증오와 비난의 욕설을 들으면서도.

“……후우.”

세계수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정우는 답답함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다름 아닌 지식의 신 때문에.

“덕분에 일거에 모든 적을 쓸어버렸으니 고맙다고 해야겠군.”

정우의 농담에 메아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인님.”

“잠시만.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조금만 줘.”

“왜 주인님의 튜토리얼에 제가 있었는지…… 왜 주인님의 성장이 아닌, 제 성장을 목적으로 한 퀘스트가 등장한 건지…….”

“…알아. 아니까 조금만.”

“제 존재가… 봉인을 해제하고 있는…….”

“메아리!”

정우의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떨리는 눈가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말은, 널 소멸시키란 소리냐?”

“소멸이든 봉인이든.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네. 하셔야 해요.”

“…….”

“주인님이 성장할 때, 저도 같이 성장해요.”

이유는 간단했다.

영혼의 계약 때문이었다.

정우와 메아리가 영혼의 계약을 맺은 건, 그녀를 구하고 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확하게는 종속 계약이었음에도 당시의 정우는 그녀를 종보다는 친구로 대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둠의 영역에서 친구를 위해 싸울 수 있었다.

어둠의 마력에 의해 종속 계약이 파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어둠의 영역의 부정은 영혼의 계약마저 건드렸고, 심지어 정우가 스스로의 기억을 대가로 힘을 얻으면서 계약은 완전히 파기되었다.

새로운 계약을 맺은 건, 그녀의 의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영혼의 종속을 맺게 만든 건.

“…주인님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어요. 때문에 봉인의 해제는 더 빨라질 거예요.”

자신의 친구이자 주인을 손에 쥐고 새로운 계약을 강요했던, 지식의 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