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44화 (244/293)

244화

-지식의 신과 진실의 일부 (3)

[ 세계수는 힘을 잃었고, 내 마지막 눈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

“……세계수가… 왜!”

정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세계수는 새로운 토양의 토대이자 세계의 중추였다.

말 그대로 세계를 이루는 나무, 세계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게 지금이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 것인지.

정우는 세계수의 그 강력한 힘을 떠올리고서는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정우의 머리를 강타했다.

짜르르 울리는 뒤통수의 감각이 부지불식간에 한 단어를 내뱉었다.

“……놈.”

사막 고블린 던전의 지하에서 보았던 눈의 정체.

[ 하지만 정령은 가장 효율적인 나의 눈이었을 뿐, 다른 눈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마지막 모습?”

정우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모습이라는 단어에서 이야기의 결말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그대의 최후. 그리고 세계수의 최후. 우리의 계획에, 그대가 친구라 부르는 이들의 감내까지. ]

지식의 신의 본체인 오색의 구가 어딘지 모르게 눈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눈이 자신을 가만히 주시하는 것만 같다.

정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되었을까.

왜 세계수와 고민한 대로, 결정한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 않은 걸까.

잠시간 들었던 의문은 결국 하나의 기억만을 남긴 채로, 흩어졌다.

빌어먹을 정도로, 참담한 기억만 남기고.

* * *

-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그 더러운 발을 디딘 것이냐!

거대한 포효에 담긴 의지는 어지간한 이들은 곧장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대했다.

“이것이 피어(Fear)인가?”

하지만 다니엘은 호기심만이 가득할 뿐, 절대 두려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것이 상대의 심기를 거슬렀다.

거대한 동체가 동굴 속에서 불쑥 솟구친다.

박쥐의 그것을 닮은 얇은 피막의 날개가 하늘을 뒤덮듯 펼쳐진다.

하지만 저 피막조차, 어지간한 검기는 전부 다 막아 버리는 최고의 방어구 중 하나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로부터 저 존재는 숭상의 대상이었으며, 경외의 존재였고, 탐욕의 목표였다.

드래곤.

태양을 가리며 등장한 그것이 거대한 동체를 하늘에 띄우며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웅!

뒤늦게 바람이 몰려들어 머리카락을 휘저어댔다.

- 그 알량한 힘을 믿고 감히 내게 도전하는 것이냐!

드래곤의 마력이 노기를 띠며 뿜어졌다.

그 강대한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좇으며, 다니엘은 입가를 비틀었다.

“역시….”

자신의 가정이 옳았다는 것에 미소를 짓는 그를 오해한 드래곤이 ‘감히’ 소리치며,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세간에선 6서클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 버닝 파이어(Burning Fire).

캐스팅은 없었다.

시동어를 내뱉자마자 곧장 완성되는 마법에 다니엘은 눈을 빛냈다.

용언까지는 아니지만, 무영창 마법이었으니까.

‘그럼 어디… 용언을 꺼내 볼까?’

드래곤이 알았다면 발작했을 생각을 하며, 다니엘 역시 시동어를 내뱉는다.

“프로즌 패터(Frozen Fetter).”

얼음의 족쇄가 드래곤의 전신을 칭칭 옭아매기 시작했다.

은근히 느껴지는 냉기에 드래곤의 찢어진 눈이 옅은 경악을 머금는다.

무영창.

대마법사의 전유물이기도 한 그것은, 캐스팅이 없는 장점이 있긴 했으나 4서클 이하의 마법에만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과 동일한 수준의 마법을 사용했다.

6서클의 무영창.

파칭!

전신을 옭아맨 얼음의 족쇄를, 몸을 한 번 턴 것으로 없애 버린 드래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작은 손짓에 자신의 공격을 지워 버린 인간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 그렇군. 네가 바로 인간이 세운 일곱 개의 탑 중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이로구나.

청탑의 마탑주.

- 감히 날 네 능력의 점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냐. 그 오만함을, 죽어서 후회하거라!

그와 동시에 마력이 빨려 들어간다.

다니엘은 천천히 부풀기 시작하는 가슴과 입가를 보기보단, 브레스를 준비하면서 생기는 마력 역장에 관심을 두었다.

과연 강대하기는 하나 비효율적인 면모가 많은 브레스가 어떻게 드래곤의 최고 공격이 되었는지.

‘방어막은 기본이군.’

절로 절감이 되었다.

무려 십 초에 달하는 브레스의 준비 과정은 적중을 위한 모든 이롭거나 해로운 마법을 전부 담아 내고 있었다.

슬로우, 홀드, 정신 쇠약을 비롯한 시간 괴리까지.

한달음에 드래곤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달릴 수 있는 소드 마스터조차 저 마법에 저항하지 못하고 느릿하게 움직여 결국엔 브레스를 얻어맞고 말 터였다.

공간 이동까지 막힌 상황에서.

다니엘은 남은 오 초 동안 준비를 끝냈다.

대마법.

“리플렉션(Reflection).”

과연 브레스조차 반사할 수 있을 것인지, 다니엘은 기꺼운 마음으로.

시야 전역을 뒤덮으며 세상을 불길로 화해 버리는 브레스를 뒤집어썼다.

화아아악-!

대지를 녹일 법한 열기가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들을 불사른 지옥의 화염이 멎었을 땐.

거대한 크레이터가 길게 대지를 가르고 있었다.

- …….

하지만 오만에 가까운 어조로 ‘죽어 마땅하지’라고 말할 법한 드래곤은 예상 밖의 상황에 입을 다문 채 두 눈을 끔뻑거릴 뿐이었다.

빗겨 맞거나 도주한 것도 아니었다.

직격타.

같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감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공격이 무려 삼십 초에 달하며 이어졌다.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폐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의 공격.

하지만 그 안에서.

툭툭.

인간은 가볍게 자신의 상체를 털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마치 온천이라도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미약한 열감을 띤 얼굴로.

그때가.

무려 칠천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세대의 흐름을 보아왔던, 에이션트 드래곤.

“……아무르타트 카이젤 프라임.”

그의 첫 패배였다.

정우는 신음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혹은 변해 버린 추악한 결말을 부정하는 것처럼.

* * *

그로부터 아무르타트와의 여러 사건들이 짧게 지나갔다.

세월은 유수와 같았다.

자신에게 패배한 뒤로도 아무르타트는 스스로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그와는 정말 지겹도록 싸웠다.

“…넌, 진정으로 강하구나.”

끝내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그의 패배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몸을 인간의 형체로 줄이며, 다니엘의 강함의 이유을 곁에서 찾아보겠노라 선언했다.

그와 전투를 벌이며 오만 정이 다 든 자신은 처음보다 더 친근한 모습으로 아무르타트를 대했고.

삼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은 ‘아무’라는 애칭으로 아무르타트를 대했다.

그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친구에겐 제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경계심을 허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안나와 제이를 본 것이 전부랄까.

혹여나 혼자 있을 때 누군가와 마주친 적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다니엘이 아는 한 아무의 관심을 산 사람은 없었다.

고귀한 드래곤 로드.

그는 운이 좋았다.

대륙엔 총 여섯의 드래곤이 존재했다.

그중 다섯은 범람하듯 영역을 넓히던 어둠에게 집어삼켜졌다.

오만이 독이 되었고, 평소 서로 간에 연락조차 없었던 것이 해가 되었다.

다니엘을 따라나선 아무르타트만이 도시에 정착했고, 어둠의 영역에 대해 몇 차례의 조사를 나선 이후 연락해 본바.

“……내가, 최후의 드래곤이겠군.”

모든 드래곤은 각기 다르지만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침음을 흘리는 아무를 위로하며, 다니엘은 처음으로 아무와 같이 어둠의 영역 근처에서 모든 능력을 다해 공격을 가했다.

별다른 피해조차 없는 어둠의 영역을 보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눈물 한 방울로 저곳에 집어삼켜진 이들을 위로했던 장면이 잠시 떠올랐다.

그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같이 가자.”

“…미안. 아무.”

“…감히, 이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냐!”

“넌 강해. 하지만… 저곳을 이길 방법을 지닐 정도로 강하진 않아.”

“고작해야 몇 차례의 승리로 날 한참 아래로 보는 것이냐.”

“그럴 리가. 다만….”

아무르타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간 지켜본 다니엘의 뒷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

“못 지킨다.”

“지켜 줘….”

“불가능하단 말이다! 감히 이 내게 집을 지키는 개의 역할을 맡긴단 말이냐!”

“내 계획은 다 들어서 알 거야.”

“듣기 싫다.”

“너밖에 할 수 없어. 세계수가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도, 어떤 이상이 있을 줄 모르니까. 네가 이곳의 ‘수호룡’이 되어 줘.”

“……정말로 날 두고 갈 셈이구나.”

“미안.”

아무르타트의 자괴감과 슬픈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입술을 깨물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곧장 어둠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그렇기에.

어둠의 속셈을 알지 못했다.

왜 숨을 죽이고 기다린 건지.

왜 세계수의 묘목마저 먹어 치운 존재가 세계수에 대해선 방치하고 무의미한 대치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인지.

놈이 노린 건.

[ 그대가 떠난 뒤에 언약을 맺었던, 최후의 용족. 바로 그였습니다. ]

아무르타트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채로.

세계수의 회복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어느 때의 일이었다.

두근.

다니엘의 귀환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기억과는 달리 친구들이 아니었다.

친구였지만 어둠의 숙주가 된 자.

다니엘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이곳의 수호룡이 되었으나 어둠에 감염되어 어둠의 영역과 마력을 지키기 위한 수호자로 변질되어 버린 존재.

아무르타트.

세계수를 감염시키며 오염시키고 있던 그가 다니엘의 귀환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다니엘에 대한 질시를 품고서.

그에게 향하는 경외.

그에게 향하는 찬사.

그가 받는 감탄과 감사, 그가 당연시 여기는 존경까지.

모든 것을 질시하기 시작했던 그는 어둠의 속삭임으로 다니엘의 귀환을 인지했다.

오 년 만에 나타나 전과 다른, 감정을 잃어 무감각해진 다니엘을 향해 친우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보살피고 보듬었다.

아무르타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의 보살핌이 보통의 친구들과는 달랐을 뿐.

그는 세계수의 과실로 만든 독을 준비했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정(否定)을 사용했다.

그가 택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어둠의 마력’에 대한 부정.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 강력한 저주가 정신을 회복하던 다니엘을 덮쳤고.

세계수가 힘을 잃어 마력이 기이할 정도로 옅어진 상황의 다니엘은.

그저 허무하리만큼 나약하게 사로잡힌 채 두 발이 잘리고, 두 눈이 뽑혀 버렸다.

막대한 통증 가운데에서도 다니엘은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으니.

그가 마지막까지 되찾지 못했던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었고, 우정 역시 사랑의 범주에 속하니.

“…이제야 내 자리를 되찾겠구나! 경외와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 네 모든 것을 찬탈해 주마.”

우습게도 다니엘은 아무르타트의 배신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저 그 긴 세월 동안 버텨 온 모든 게 무너질 정도의 패배감이 정신을 뒤덮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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