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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23화 (223/293)

223화

-뱀파이어의 성 (13)

뱀파이어의 성.

그 안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 보다 확장된다.

영역을 이루고.

그 영역을 유지하는 견고한 마력이 도드라졌다.

정우는.

그 견고한 마력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아라크네의 마력 실….’

반색과는 반대로 침음이 절로 흘렀다.

아라크네의 마력이라는 게 원래부터 이렇게 만연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모든 사태가 지식의 신을 비롯한 친구들의 계획이라면.

‘마녀들 역시 마찬가지겠지.’

아라크네를 만나 마녀들을 구한 것도 하나의 안배나 다름이 없을 터였다.

‘G급 던전….’

정우는 뜬금없이 G급 던전을 떠올렸다.

자신의 수준을 끌어 올려, 웨어울프를 상대하게 만들었고.

‘놓쳤으면 후회했을 메아리를 얻게 만들었어.’

최후의 종족.

아직은 완료되지 않은 퀘스트였지만, 머지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튜토리얼은 재능을 개화시켜 준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이중 던전에 들어섰던 이들을 제외한 모두는, 열 명이서 하나의 던전을 돌 뿐이다.

마법사와 전사는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마력과 체력.

마법사는 마력을 느끼는 것이나 스킬의 활용에 강점을 보일 수밖에 없고, 전사는 체력이나 근력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떤 시련은 마법사에게 유리하고, 어떤 시련은 전사에게 유리하다.

그럼에도 G급 던전은 개개인에게 맞추기보다는 각자 겪어야 하는 단계만을 종합적으로 던져 놓고 잠잠할 뿐이다.

예전에는 그게 맞다고 여겼다.

G급 던전이라고 해도 혼자서 공략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다.

아무래도 몬스터는커녕 검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는 일반인들이 그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중 던전은 아니야.’

자신이 그러했듯, 개개인의 재능에 따라 던전의 형태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G급 던전이 기성복이라면, 이중 던전은 맞춤옷이다.

차이는 뭘까.

정우는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리와 아버지의 케이스에서.

‘…친구.’

자신의 친구였던 이들은 하나같이 이중 던전을 겪었을 것이다.

그들의 재능은 이미 검증된 것이었고, 최후의 전투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누구는 기억을 찾고 누구는 기억을 찾지 못한 건 마음에 걸리지만.

정우는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는 아라크네의 다리 일부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라크네의 마력이 담겨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반지.

이게 이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은,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당연한 사안이었다.

어쩌면.

던전이라는 이 기이한 형태는, 아라크네가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던 그것과 동일한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마녀의 숲은 아라크네의 미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시스템 역시 입장할 때의 장소를 아라크네의 미궁이라고 밝혔고.

하지만 막상, 숨겨진 장소는 마녀라는 잊힌 이들의 터전이었다.

아라크네는 그곳을 침범한 침입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침입자 때문에 아라크네의 미궁은 반복 클리어가 가능한 던전으로 변모했다.

실제를 가린 거짓.

하지만 그곳을 완전하게 거짓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실질적인 보상이 있었으니까.

정우는 그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거짓을, 진실로 덧씌우는 것.

‘오버레이도 비슷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라크네라는 놈과 관련이 있다면.

이 영역 자체가.

‘하나의 오버레이라면…!’

덧씌우다.

하지만 천재로 이름을 날리는 제임스 밀러는 처음 오버레이라는 단어를 대신하여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

못내 마음에 걸렸던 그것이 자신의 뇌리에 꽂혔다.

왜 채운다는 뜻이 대부분인 필링을 먼저 썼을까.

그런가 하면 제임스 밀러는 오버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감각 따위는 무시한 채로 대화를 나눴었다.

그만한 인물이 착각했다고 보기엔.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일지도 몰라.’

어려웠다.

그렇기에 다시금 되뇐다.

채우다, 덧씌우다.

그것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그러고는 결국엔 발견했다.

성으로부터 뻗은 실을.

그게 바로 아라크네의 마력 실이었다.

핏빛의 안개에 숨어 모습을 가렸던 그것은 정확하게 뱀파이어의 영역. 즉, 던전 브레이크의 영역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

로드의 등 뒤로도 한 줄기의 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미.’

정우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 * *

“아무래도….”

“이변이 생긴 것 같군.”

두 명의 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화면 너머의 침음이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느낌이다.

하데스.

발키리.

두 명의 S급은 연락이 끊겼다.

발키리는 전후 사정의 파악에 나섰고, 하데스는 종적 자체가 오리무중이었다.

스나이퍼와 수르트.

둘은 오래간만에 ‘마왕’의 부재를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뇌신이 근처까지 따라붙었소.”

“어쩌다가?”

“…쯧. ‘S급 아티팩트’를 손에 넣을 기회라고 여겼는데…, 함정이었소.”

“욕심이 과하셨군.”

“…흐음.”

스나이퍼가 눈살을 구겼다.

영토의 확장이란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업데이트.

그것을 기점으로 움직이고자 했던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공고한 체계를 유지하려던 건 무산되고, 남은 건 혼란뿐이다.

“…계획은?”

“아무래도 뒤로 미뤄 둔 과실을 얼른 따야겠군.”

“과실이라면….”

“여태껏 본 어떤 과실보다 허술해 보이지만, 탐스러웠던 그것.”

“헌터(Hunter).”

“흐흐흐.”

수르트는 입맛을 다셨다.

헌터가 S급이 되었다는 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재능이 탐나긴 했다.

애당초 S급이 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 기다림의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진 것뿐이었다.

그 때문에.

“놈의 재능을 집어삼키면…….”

번들거리는 수르트의 눈동자를 보면서도 스나이퍼는 이죽거릴 수가 없었다.

다른 세 명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좋은 기회를 그대로 놓칠 모양인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지.”

“…마찬가지요.”

“연락을 취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들어 볼까?”

“……도와주시오.”

“후우.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스나이퍼의 입에서 도와 달란 소리가 나오고.”

“…….”

“그렇게 부담이던가? 뇌신이?”

“…둘이라면 모를까, 각자라면 승산이 없소.”

“하!”

“괴물이지.”

스나이퍼가 눈가를 매만졌다.

주름진 눈가를 뒤덮었던 손이 떼어졌을 땐, 소름 끼치는 안광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잡을 거요.”

“이번 기회에?”

“이번 기회이기에.”

“후우. 좋아. 도와주지. 아니, 함께하지.”

“…나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오. 함께한다는 소리를 다 듣고.”

스나이퍼는 수르트를 잘 알았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선 배신은 물론 함정도 아끼지 않을 사람.

함께한다는 건, 이번 일만큼은 자신의 등을 노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등 뒤에 서는 게 자신임에도.

‘자신이 있다는 소리로군.’

마왕(魔王).

그 거대하고도 소름 끼치는 자의 영역을 가장 많이 침범한 자는, 다름 아닌 수르트였다.

탐식(貪食)의 재능으로 다른 이의 불꽃을 집어삼킨 자.

그의 입으로 들어간 재능이 얼마나 많은가.

‘헌터를…… 죽여야겠구나.’

그렇기에 헌터를 죽이겠노라 다짐했다.

“붐을 보내지.”

제약과 해제의 붐.

수르트는 자신의 오른팔을 내놓으며 신뢰의 증표로 삼았다.

“어디로 보내면 되지?”

“워싱턴 D.C.”

“…음!”

수르트가 스나이퍼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빌런 협회도 워싱턴 D.C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미국은 격변 이전에도, 이후에도 세계 최강국으로 지구 전역에 영향력을 떨치는 국가였다.

그 국가의 수도.

그곳을 노린다는 건.

“…왕이 없는데?”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있소.”

“……!”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노리는 계획엔 마왕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이었다.

마왕이 종적을 감춘 이후, 네 명의 왕은 미국을 집어삼키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지금.

하데스와 발키리의 부재가 확실해진 상황에선 둘에게도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스나이퍼는 최후의 계획을 실행하고자 했고.

무려 마왕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소개했다.

화면에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피에로 가면.

“반갑습니다. 여러분.”

수르트가 피에로 가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협회의 제작자가 감히 마왕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스나이퍼. 지금 무슨 농담을 하는 거지?”

스나이퍼가 주름진 눈가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마왕의 자리를 대신하기엔 부족하지.”

“무슨 소리지? 방금 네 입으로….”

“하지만 무력이 아닌 능력을 대신하기엔, 이자는 충분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소.”

“제작으로?”

“흐흐. 피에로.”

“말하시죠.”

“물건은 준비되었소?”

스나이퍼의 물음에 피에로 가면 안쪽의 눈이 더욱 호선을 그렸다.

“물론이죠.”

“수르트에게 보내….”

“이미 보냈어요.”

“……음?”

피에로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이는 스나이퍼가 아니었다.

“…내 위치를 어떻게 알았지?”

수르트의 날 선 기운이 영상 너머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피에로는 그런 수르트를 가만히 주시하며 피식 웃었다.

“뿐만 아니에요. 시간만 주어진다면….”

피에로의 감은 듯한 눈이 살짝 커졌다.

“마왕의 위치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두 S급은 놀랐다.

마왕의 위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각자의 목적으로, 네 명의 왕은 마왕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왕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그의 목적 역시 알지 못했다.

그런 마왕의 위치를 파악한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에로의 말에 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스나이퍼조차.

“전 세계의 ‘컨트롤 타워’를 만든 사람이 저거든요.”

컨트롤 타워.

격변 도중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아티팩트이자 전 세계에 안정을 가져다준 초유의 물건.

그것의 제작자가 피에로라는 것은 경악할 내용 그 자체였으니까.

“푸흐…… 흐흐.”

몇 번의 검증 끝에 수르트가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가능하겠군.”

컨트롤 타워는 던전의 등장 유무와 등급만 파악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확한 용도는, 정우의 그것과 비슷했다.

누군가를.

아니, 무언가를 찾기 위한 물건.

일종의 탐색기인 셈이었다.

“헌터를 잡을 거다. 그 기회만 네가 포착해 주면 되겠어! 푸흐, 재미있게 생겼군.”

수르트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연결을 끊었다.

“붐이 오는 즉시 움직이겠소.”

“맡겨 주시죠.”

스나이퍼까지 나간 빈 화면을 가만히 주시하던 피에로가 풋, 웃음을 흘렸다.

“뇌신을 끌고 다닌 보람이 있군요.”

스나이퍼는 자신이 뇌신에게 쫓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뇌신이 쫓은 건 자신이었고, 스나이퍼는 뇌신의 그림자만 보고선 움츠렸다.

“덕분에… 얼마 남지 않았어요.”

피에로는 갑갑한 듯 가면을 벗었다.

웃는 낯의 평범한 얼굴.

그 얼굴은 칭 샤오의 그것과 똑같았다.

“한정우…. 곧 만나겠군요.”

하지만 정우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정우와의 조우를 기대했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수정구를 만지작거렸다.

수정구 안에 담긴, 기이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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