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마탑 (8)
그것은 불멸과도 같았다.
그물처럼 허공으로 솟구치는 검격의 검은 선은 세상을 조각낼 기세로 구름까지 베어 버렸다.
그 예리한 일격엔 정우의 공격도 베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복면 안쪽의 두 눈동자가 의지와는 다르게 살짝 흔들리는 사이.
베어졌던 그것들은 처음과 마찬가지의 모습을 드러냈고.
조금의 피해도 입은 것 같지 않은 그것들은 그야말로 사방에서 리정환을 향해 짓쳐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세로.
리정환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은 무복의 그의 신형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빠르게 움직이며 하늘을 베어 가는 기세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뿐.
낙하하기 시작한 그것들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금씩 밀리는 전선.
리정환의 전신에서 마력이 수증기처럼 피어올랐음에도, 그것과 자신의 간격은 변하지 않았다.
쩌억!
초승달을 닮은 일격을 내질렀음에도 불과 1초 만에 다시 원상 복구 되는 그것엔 질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그 마법이.
‘……매직, 미사일 따위에…….’
대부분의 마법 계열 각성자들이 기초 스킬로 습득하는 그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초 마법에.
스킬화까지 전부 이룩한 ‘암영(暗影)’이 무너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으득!
재차 이를 간 리정환이 반투명한 매직 미사일 너머로 우뚝 서 있는 정우를 노려보았다.
이대로라면 우리에 갇힌 채 재주를 부리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정도 마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력은 확인되었으니.
‘일단 달려든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자세를 낮춘 후 내지른 두 개의 단검이 교차하며 세상을 벤다.
방향은.
‘진작 선택했어야 옳아.’
정우의 전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정우는 자신의 매직 미사일을 베는 순간 사라지는 리정환의 모습에 혀를 찼다.
더불어 의지를 담아 일대의 마력에 명령한다.
‘짓눌러라.’
언령의 절대적인 힘에 굴복한 마력이 리정환의 일격과 함께.
푹, 털썩!
“……!”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무릎을 꿇어 자신을 바라보는 리정환을 짓눌렀다.
‘이건…… 중력?’
경악하는 리정환은 마력을 전신에 둘렀지만, 정우의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엎드리기 시작했다.
조국의 영웅이자 위대한 수령.
최상위권의 무력을 지닌 S급 플레이어이자 자신의 영웅인 리조차 선보이지 못한 강렬한 무력이었다.
대결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일방적인 전투의 종결을 알린 것은.
굴욕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자신을 짓누르던 중력이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였다.
숨을 헐떡이던 리정환이 경악과 감탄의 눈동자로 정우를 보았다.
이게 가능한 건가.
입을 열어 놀람을 표하려던 그의 눈이 다시 부릅떠진 것은.
딱!
또다시 튕기는 손가락과 함께 달라지는 환경 때문이었다.
삐- 삐-.
몇 년간 들어온 익숙한 기계음.
공기는 물론 모든 풍경마저 익숙한 장소.
‘또…… 순간 이동을 했다고?’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 순간, 리정환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왜 모를까.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결말을 예상하는, 저 단호한 눈빛을.
리정환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믿음?
솔직히 모르겠다.
아버지가 기다려 온 사람과 자신이 바라는 건 다를 테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뇌신이나 마왕조차 저 앞에선 한낱 플레이어일 뿐이겠구나.’
정우의 강함뿐이었다.
* * *
짧은 공방을 마친 정우는 손을 툭툭 털며 리에게 다가갔다.
배에서 자라는 잡초를 보며 정우는 인상을 구겼다.
“…대체 세계수는 어디서 발견했고, 이걸 왜 이렇게 쓰고 있는 거지?”
세계수.
두 개의 가지를 발견했고, 하나의 묘목으로 탈바꿈한 그것과 비슷한 것이 리의 상처 악화를 막고 있는 원인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자.”
정우의 말에 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부복한 리정환을 돌아보았다.
“…믿고 맡기시면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리정환의 말에 정우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
정우의 말에 리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처우는 물론 목숨까지 모두 맡긴다는 의미였다.
정우는 리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와 비슷한 중년의 얼굴.
강인하지만 단호한 표정만이 비슷할 뿐, 기억 속의 제이와 닮은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그를 알아보았고, 그 역시 정우를 알아보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자신이 그를 알아본 건 마력의 패턴 덕분이었다.
지문과도 같은 그것은,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진해지니까.
그렇지 않아도 친우들이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것과 이곳으로 넘어온 것 같다는 가정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제이의 존재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건.
자신의 말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떻게 알고 있을까.
자신이 플레이어가 된 건 고작해야 1년이며, 지금의 수준이 된 건 고작해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별다를 게 없는 수준.
흔해 빠진 플레이어들 중 하나였던 자신을, 다니엘이라고 확신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정우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렇기에.
“열매부터… 제거해야겠어.”
리의 배에 뿌리를 내린 ‘씨앗’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정우는 세심히 리의 몸을 살폈다.
‘역시… 저주다.’
리의 전신을 갉아먹는 건 저주였다.
하지만 보통의 저주라면 성녀의 치유로도 해결이 되었을 터.
‘이건…? ‘새벽의 들꽃’이야.’
이 저주는 매우 특별했다.
‘……이게 어떻게!’
그제야 정우는 리가 왜 이런 몰골로 누워 있는지 이해해 버렸다.
새벽의 들꽃.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이름의 저주를 만든 건 다니엘이었다.
바로 이계의 자신 말이다.
하지만 이 저주는 자신의 친우들만이 아는 저주였다.
어둠의 영역에서 활개 치는 몬스터 하나를 잡기 위해 일부러 만든 저주.
저주라기보단 ‘독’에 가까운 그것은, 현재엔 던전 내에서의 여러 재료를 조합하여 만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걸 완성시켜서.
‘…제이에게 사용했다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친우가 빌런에 있다는 소리니까.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정우는 숨을 가다듬고는 집중했다.
세계수의 열매.
사람의 육체를 진화에 가깝도록 변화시키고, 마력 감응도를 극대화시키는 기물이긴 했지만 본래의 그것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알 주머니.
적어도 정우는 그렇게 불렀으니까.
‘열매에서 정령이 탄생돼. 제이는 지금 그 영양분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야. 하지만 오히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안에 담긴 영양분이 제이에게 흘러들었어.’
육체의 진화나 마력 감응도 극대화 등은 전부 ‘정령화(精靈化)’를 의미했다.
정령사라면 더없는 기연이겠지만, 그 외의 인물이라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대부분을 결국엔 잃어버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리 박사가… 제때에 날 불렀어.’
과거 마탑주로 있을 때에도 이 저주는 위험했다.
‘영혼을 분리시키는 저주니까….’
때문에 엄청난 마력 매개체가 필요했는데, 당시의 정우는 스스로의 마력으로 이 모든 걸 행했었다.
외부의 마력을 끌어다가 쓰는 그였기에 마력의 양은 의미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이는 아니다.
아무리 그가 S급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연히 암살 계열이었다.
저주를 거는 것보다 푸는 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과거를 기억하는 덕분이겠지.’
그는 편법을 매우 잘 활용한 셈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머금은. 무려 세계수의 열매를 매개체로 저 저주를 이겨 내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세계수의 열매가 애당초 정령의 탄생에 목적을 둔 점이랄까.
‘그래도 뽑아낼 수 있다.’
열매 안의 씨는 발아를 하여 뿌리를 내린 상태. 잡초와 같은 이것만 뽑아낸다면.
‘다행히 제이의 육체는 완성되어 있어. 과거와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더 훌륭했다.
성녀를 부를 능력이 있었으며, 북한에 소속된 모든 플레이어에게 요구할 권력이 있으니까.
‘이계 때와는 반대로군.’
괜히 헛웃음을 흘리던 정우의 표정이 굳었다.
‘…여기부터다.’
뿌리의 끝.
이것은 마치 외과 의사가 암을 제거하는 것과 비슷했다.
정상적인 세포는 정상적인 제이의 마력.
비정상적인 세포. 즉, 암은 잡초처럼 자란 세계수 열매의 뿌리였으니까.
이건 이계 때 정우조차도 심력을 쏟아야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지금의 상태에선 당연히 무리였지만.
‘…아이러니하다.’
정우는 마력을 조종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과연….
‘열쇠를 사용하고, 마녀들의 마을로 진입해서… 아라크네를 잡은 게 그저 우연이었을까?’
아라크네란 존재가 필연이며 혹여나 예비된 ‘안배’와 같은 게 아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라크네의 마력.
그리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뽑아 실처럼 활용하는 그것은, 과거엔 생각도 해보지 않은 체계였고 형태였으니까.
상대를 조종한다는 건 결국 마력을 강제화한다는 소리였다.
정우의 마력 감응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마력 감지력 또한 동급 플레이어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두 가지 특성을 증폭시키다시피 하여 느끼게 만드는 아라크네의 마력 실은 지금의 상황에선 더없이 훌륭하고 뛰어난 선택지였다.
과거보다 훨씬 더.
때문에.
‘……잘되고 있어.’
예상한 것보다 ‘수술’은 더욱 잘 진행되고 있었다.
리정환은 집중한 정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거대하다.’
아버지를 고치고 있는 뒷모습은 거대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기이한 말들을 내뱉곤 했다.
이따금씩.
무언가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래서 동생과 자신은 아버지가 ‘정신병’이 있는 줄만 알았다.
어릴 적부터 행해지는 훈련은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과 동생만이 받는 것이었고.
언젠가 평소의 아버지와 함께 간 동물원에서 본 호랑이의 기세 따위는, ‘비정상’일 때의 아버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나약했다.
그만큼 비정상일 때의 아버지는 맹수 그 자체였다.
부정도 했고, 부인도 했으며, 거부도 했고, 눈물도 흘려봤지만.
정상일 때조차 아버지는 훈련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정상일 때보다 비정상의 시기가 잦아지고, 비정상의 시기가 격변의 때와 만나 폭발했을 때.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사람.
‘제이.’
바로 그 사람 말이다.
자신과 동생은 격변이 시작되고서야 아버지의 말을 이해했다.
남들과는 달리 수월하게 튜토리얼을 끝마친 자신은 그동안의 훈련을 보상이라도 받듯 가파르게 성장했으며.
‘아버지께서 풀어서 설명해 주던 그 기술들을 실제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정신병의 일종이라 여겼던 아버지의 말들이 실현되면서, 리정환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믿기 시작했다.
우상화(偶像化).
부정하고 원망했던 분이 신의 사자처럼 여겨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북한을 집어삼켰고, 이젠 조국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그런 자였다.
‘아버지는…. 그렇기에 쓰러졌을 때. 패배하여 도망쳤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두 명의 S급 빌런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패배.
그리고 시작된 병상.
리정환은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에서 이 사태를 안정시켜온 북한 제일의 무력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부활을 꿈꿨고.
아버지는 자신의 완쾌를 ‘그’에게 맡겼다.
이해되지 않는 말.
하지만 결국엔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말.
땀을 흘리면서도 집중을 잃지 않는 한정우의 모습은,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나가는 은인의 그것과 같았으며.
‘제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며 이 모든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는 그의 모습은.
‘왜… 아버지가….’
리정환은 울컥했다.
‘그를 기다려온 건지 알겠네요.’
S급의 강인한 육체조차 겨우 버틸 뿐이던 강대한 힘이 사라진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던 저주가.
그 저주를 억누르기 위해 품었던 또 다른 독이.
아버지의 몸 주변으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움직이는 수천 가닥의 은빛 실로 인해.
리정환은 확신했다.
오늘.
북한의 수령, ‘리’가.
‘부활한다!’
리정환의 눈이 어딘가로 향하며 좁혀졌다.
‘기다리고 있어라. 단검을 네 목에 쑤셔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