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81화 (181/293)

181화

-백작 (4)

오스카 백작의 일격은 정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블리자드가 베어진다.

대마법이라고 부르며, 얼음계 궁극 마법이라고도 칭해지는 그것이 붉은 선에 찢긴다.

정우를 향하는 붉은 실선은 전면의 모든 것들을 잘라 내었다.

정우는 오스카 백작의 공격과 더불어.

촤아아악!

크라앙!

두 마리의 강자가 떨치는 일격의 위용에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하다.’

얼마나 합을 맞춰 온 건지, 세 마리의 일격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딱 자신이 위치한 장소였다.

조금만 빨라도 서로 부딪칠 거고, 조금만 늦어도 파괴력이 감소할 테지만.

‘…하! 노력은 한다 이거냐?’

놈들의 일격은 정확하게 정우를 노리고 쇄도했다.

정우의 눈꼬리가 매섭게 치솟았다.

몇 번을 언급해도 부족하지 않을 체계였다.

뱀파이어의 힘은 피에 종속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던전을 클리어함으로써 성장한다.

뱀파이어는 피를 흡수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마력을 정제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즉, 놈들의 성장 배경엔 무수한 학살과 죽음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배경이 바로 인간이었다.

뱀파이어가 몬스터로 분류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지성과 힘.

강대한 마력과 우월한 신체 능력까지.

초월종이라 불리면서도 몬스터로 분류된 건, 놈들이 인간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었다.

그건 진조도 마찬가지다.

진조 휘하의 뱀파이어는 모조리 해당 진조를 통해 감염이 된다.

즉, 오스카 백작 휘하의 뱀파이어는 모두 다른 진조가 아닌 오스카 백작을 통해 감염이 된다는 소리였다.

적합률이 낮은 인간은 변이조차 없이 그저 먹잇감으로 전락해서 좀비와 비슷한 형태로 움직이다가 소탕당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저 힘을 얻기 위해 빼앗은 인간의 목숨이 얼마인지.

정우는 불쾌함이 치솟았다.

붉은 선을 보며.

정우는 고리를 자극했다.

끼릭!

아직 안정화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무리를 한다면 그 시간이 더 길어질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정우는 이들을 이곳에서 끝내 버리기로 작정했다.

저 진조의 목숨만 잠시 연명시키면.

저놈을 데리고 메아리에게 넘어가 놈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거라 판단하며.

쇠사슬처럼 이어진 여러 고리를 자극하고 또 가열시켰다.

그 짧은 사이, 오스카 백작의 일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매서운 눈초리로 그것을 보던 정우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빙글 회전하는 정우의 손 위로.

쩌억!

이전과는 다른 크기의 통로가 생겨난다.

마치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는 괴물처럼.

“……!”

후속타를 준비하던 오스카 백작이 멈칫했다.

본능이 계속 속삭였다.

도망쳐!

아니, 절규했다.

휘몰아치는 눈과 얼음의 폭풍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입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판단은 늦었다.

또 다른 입이 자신의 등 뒤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자신의 일격은 적 앞의 입이 집어삼켜 버린 후였다.

“……크아아아!”

오스카 백작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공격.

그것이 자신을 베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푸악.

쏟아지는 피가 붉은 결정이 되어 아래로 삭풍에 휘말렸다.

오스카 백작이 아찔한 정신을 붙잡으려는 그때.

그의 정신을 붙잡은 건 의지가 아닌.

척.

소름 끼칠 정도로 따뜻한 누군가의 손바닥이었다.

블리자드보다도 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본 적의 마력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덜덜.

순간적으로 떨리는 손끝을 감추지 못한 오스카 백작이.

“추락해라.”

정우의 말과 함께 아래로 낙하한다.

아니, 그건 말 그대로 추락이었다.

유성우처럼.

붉은 핏물을 흘리며 떨어지는 오스카 백작의 눈에.

흐릿한 과거가 덧씌워졌다.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

싸늘한 음성과 함께.

* * *

언제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의 일이었다.

진조로 간택 받은 이후, 오스카는 끊임없이 후작위를 넘보았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가능성이 없어, 계략으로 강자의 목을 취하며 수하의 수를 늘렸다.

매혹의 드루이드를 손에 넣었을 때 한 번.

철혈의 군주까지 손에 넣으면서 또 한 번, 후작 위를 노린 오스카 백작은 단 한 발짝만 남겨둔 채로 작위 쟁탈에 실패했다.

그의 작위 상승 욕구는 엄연히 왕을 위한 것이었다.

왕의 곁에 서고 싶다.

왕께 큰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간절함이 오스카 백작을, 때로는 나태하다는 표현까지 듣는 진조들 사이에서도 유별나다는 평을 받게 만들었다.

더불어 왕의 시선까지.

오스카 백작에게 왕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였다.

그 생각에 금이 간 건.

한 인간이 자신들의 고성을 찾으면서부터였다.

인간들 중에서도 소수는 자신들에 비견될 만한 능력을 지녔고, 극소수는 자신들의 왕과 비견될 만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뱀파이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인간이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먹잇감으로 보고 가볍게 달려들던 수하들이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핏물로 변해 버리는 것을 본 뒤로는 타종이 울렸고, 머리가 깨어질 듯한 수많은 경고와 절규가 고성을 뒤덮었었다.

그 비명과 절규는 도무지 움직이는 법이 없는 왕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왕과 인간의 대치.

오스카 백작은 곧 왕의 이빨이 인간의 목에 박히는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왕은 두 날개가 찢기고 송곳니가 뽑힌 채로 무릎을 꿇었다.

강대하기 짝이 없던 왕은 조금 더 버틸 뿐인 한낱 뱀파이어에 지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약자(弱者).

소름이 끼칠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왕의 굴복에 공작을 위시한 전력이 달려들었다.

블러드 필드가 펼쳐지고, 피로 이루어진 폭풍과 화살, 검과 폭발 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히 드래곤이라도 상대할 법한 위용의 파괴력이었으며,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모두는 발작적으로 공격에만 전력을 다했다.

오스카 백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만 건재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왕의 날개가 꺾이고 송곳니가 뽑히던 장면이 끝도 없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불안감을 지워 버릴 만큼 전신의 모든 마력을 퍼부었다.

심지어 자신의 왕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공격이었다.

뚝, 뚝!

진조를 제외한 모두가 탈진하고, 진조조차 위력이 급감한 공격만을 발작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

쩡!

세계가 울었다.

그건 마치 세계의 울림과도 같았다.

세계를 구축하는 모든 마력이 한 명의 부름에 답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심지어 자신들의 핏속에 존재하는 마력마저도, 타인의 간섭을 받는 것만 같은 기이한 구속력이 느껴졌다.

오스카 백작보다도 더 충격을 받은 이는 보다 작위가 높은 후작과 공작이었다.

그리고…….

쿵.

머리를 조아리는 왕이었다.

그에게 왕은 군림자였다.

저런 약한 모습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 절대자였다.

그러나 막상 왕은 굴종의 모습으로.

쏴아아-!

자신들의 일격을 모조리 해소시키고선 태연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인간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인간을 먹이로 삼는 포식자는 여기에 없었다.

파르르 떨며 공포에 저항하지 못하는 피식자들뿐이었다.

인간은 그런 자신들을 향해 무어라 말했다.

충격으로 머리가 멍했던 오스카 백작은 당시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도주하려던 공작 하나가 주변을 둘러싼 막에 걸음이 막혀 연신 다급한 손짓으로 벽을 두드렸던 것이나.

다급히 달려들었던 또 다른 백작 하나의 전신이 산산이 조각나서 널브러졌던 것.

그리고.

“공평한 죽음을 내리마.”

자신들의 종말을 명령하는 듯한 음성과 더불어.

어둡던 하늘이 밝아지고.

태양이 강림하는 듯한 불타는 유성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

종말의 선언이었다.

시야가 멀 정도의 찬란한 빛과 더불어 피가 끓을 정도의 뜨거운 열기 가운데.

오스카 백작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비규환.

자신들의 등장에 절규하며 도망치던 인간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하등 다를 바가 없는 형태.

오히려 더 처절해 보이는 그 모습 가운데에서 오스카 백작은.

고개를 떨궜다.

오스카 백작은 당시를 떠올렸다.

크기는 다르고 모습도 다르며, 발광과 더불어 열기마저도 당시에 비해 큰 손색이 있는 유성우였다.

그럼에도 저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당시의 인간을 닮았다.

공평한 죽음을 내리겠노라고 선언하던 그 모습이 떠오르는 건….

“젠장!”

오스카 백작은 욕설을 내뱉었다.

트라우마에 휩싸이기엔 자신이 짊어진 의무가 너무 무거웠다.

자신은 선발대였다.

왕의 강림을 준비하는 예비자였다.

으득!

부서지도록 이를 간 오스카 백작은 화르륵 타오르는 불덩이를 보며 검을 틀어쥐었다.

부러진 팔을 억지로 움직였기 때문인지 통증이 밀려들었지만, 무시한 채로 다시 한번 마력으로 신체를 움직였다.

과거의 메테오는 자신들의 영역.

왕의 고성(古城)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또다시…….”

오스카 백작의 눈가로부터 핏줄이 돋는다.

우득, 소리가 나며 부러진 팔이 오러로 연결되어 휘어졌다.

한껏 젖힌 팔에 들린 붉은 검이 요사스러운 소음을 만들어 냈다.

휘이이-.

귀검(鬼劍).

왕께서 직접 붙인 이름의 사이한 검격이 발출된다.

메테오.

저 증오스러운 존재를 부수기 위하여.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히듯, 두 개의 검격은 교묘하게 상호 간의 피해를 피한 채 파괴력을 극대화시켰다.

공간을 점하며 나아가는 붉은 선은 꽤나 아름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S급 플레이어의 전력에 비견될 정도였으며 일대를 초토화시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힘을 보탠 두 S급 뱀파이어의 일격에 붉은 선이 뒤를 따랐다.

오직 메테오를 부수기 위해서.

정우는 그런 무지막지한 일격을 보면서도 담담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현재의 그조차 캐스팅을 해야 할 정도의 대마법이었다.

그 여파가 남기도 했지만.

“…위력이 대단하군.”

정우는 자신의 마법이 가진 파괴력과 영향력을 믿었다.

운석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대로 낙하는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고열과 더불어 운석 자체가 내뿜는 마력이 마치 마법 방어력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대마법으로 분류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디스펠 현상.

그것은 정우의 기대에 부응하듯 막대한 위력을 머금은 일격을 천천히 분쇄해 나갔다.

부릅떠진 눈으로 부르르 떠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진조조차 이럴진대.

그 밑의 수하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도주하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조리 가로막힌다.

등장과 동시에 펼쳐 놓았던 아라크네의 마력 실이 놈들의 퇴로를 막는 든든한 그물막이 되어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포식자인 자신들이 항상 보던 장면을 스스로 연출함에도 놈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헛수고였다.

울컥 뽑아낸 피는 태양과 같은 운석의 기운에 밀려 빠르게 증발했고, 놈들은 원하는 것의 반의반도 채 이루지 못한 채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오스카 백작은.

이 증오스럽고도 두려운 상황에.

“……허.”

헛웃음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