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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80화 (180/293)

180화

-백작 (3)

뱀파이어가 활개 치는 밤은 그들에게 오히려 족쇄였다.

자신감.

그리고 오만.

두 가지 감정은 오히려 독이었다.

한때 강자로 군림했던 뱀파이어의 시대를 끝낸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가 명맥을 유지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물며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철혈의 군주와 그와 비슷한 존재까지 대동할 수 있는 저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인간 위의 존재라 여기는 뱀파이어는 극도로 오만했다.

인간의 계급 체계가 놈들에게서부터 이어진 것이란 건, 매우 유명한 실화였다.

한때 뱀파이어는 인간 위에 군림했으나 결국 인간의 손에 쓰러져 버렸다.

당시엔 몇 가지 계략을 세워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감지되지 않는 마력의 실이 끝도 없이 뿜어져 주변을 장악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구가 어둠을 틈타 놈들을 가둔 셈이었다.

저 오만한 표정의 백작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라크네의 마력 실은 효용성이 높았다.

어둠은 너희의 편이 아니었다.

어둠이 주는 오만함에 두 눈이 멀어 자신들을 옥죌 감옥도 파악하지 못하는 병신들을 향해 정우는.

쿠웅!

묵직하게 발을 굴렀다.

허공을 디뎠음에도 쩌적,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가 깨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정우의 발밑에서 시작된 균열이 사방을 뒤덮어 갔다.

철혈의 군주와 동급의 뱀파이어가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확실히 전투에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지금을 놓치면 더욱 거센 일격에 휘말린다는 것을, 놈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묵직한 일격이 쇄도하고, 그 뒤를 따라 표범이 들이닥쳤다.

‘이게 철혈검이군.’

네 갈래로 나뉘어 들이닥치는 검격은 철혈의 군주가 자랑하던 검술이었다.

콰쾅!

정우는 마법을 전개해 검격을 가격했다.

폭음 사이로 크기가 커진 표범이 은밀하게 다가와 앞발을 휘둘렀다.

“……음.”

정우가 나지막한 침음과 함께 표범을 밀어내며 전격을 뿌렸다.

파지지직!

요란한 전격에 훌쩍 뒤로 물러난 표범이 낮게 몸을 웅크리며 으르렁거렸다.

“테이머가 아니라 드루이드였군.”

스스로가 변화한 모습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드루이드와 뱀파이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

정우는 뒤편의 백작을 보았다.

여전히 태연한 표정.

어떻게 드루이드를 감염시킨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자연의 수호자라고까지 불리는 드루이드의 결말은 정우의 기분을 상당히 불쾌하게 만들었다.

“고작해야 뱀파이어가 되려고 그 고생을 한 건가?”

정우는 철혈의 군주보다 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드루이드를 보았다.

드루이드의 고행은 유명했다.

자연의 수호자.

말이야 아름답고 거룩해 보이지만, 자연을 대적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자연의 법칙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인생의 난이도는 상당했다.

그런 고행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저 위치까지 올랐던 드루이드가 뱀파이어에게 제 목을 내놨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크르릉!

정우의 말이 불쾌하다는 듯 자세를 낮추며 으르렁거리는 드루이드의 몸이 사라졌다.

‘은신.’

바닥을 디딘 것처럼 모두는 자연스럽게 허공에서 전투를 벌였다.

드루이드가 은신을 하자마자 철혈의 군주가 다시 달려들었다.

공기가 갈라지는 일격.

정우는 드루이드를 보며 들었던 불쾌함을 철혈의 군주에게까지 투영했다.

자신의 옛 조국의 오랜 영광을 상징하는 군주의 타락이 씁쓸하기만 했다.

때문에 정우는.

스스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가 아래로 내리그었다.

“짓눌려라.”

쿵!

묵직한 압력이 철혈의 군주의 일격을 분쇄시키듯 아래로 짓눌렀고.

캬앙!

정우의 눈엔 통하지 않는 은신을 믿고 조용히 접근하던 드루이드의 몸이 아래로 낙하했다.

두 눈이 커지는 철혈의 군주를 보며 정우는 명령했다.

“부딪쳐라.”

쾅!

쇄도하던 몸이 무언가와 부딪친다.

감지하기도 전에 생겨난 투명한 방어막과 부딪친 철혈의 군주가 경악하며 고개를 털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우웅!

정우가 빨랐다.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이 하나로 꼬여 드릴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정우의 손짓에 회전하는 그것이 철혈의 군주의 목을 노렸다.

다급히 대검을 들어 그것을 막는 철혈의 군주의 얼굴에 난색이 피어오르고, 견디지 못한 육체가 뒤로 튕겨 나갔다.

푸왁!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오스카 백작은 그런 정우를 보며 팔짱을 풀었다.

아니, 저도 모르게 팔짱을 낀 팔에 힘이 풀렸다.

그는 백작.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닌 뱀파이어라는 고등 종족에서도 진조라는 고위급 능력을 지닌 자였다.

족히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상당한 수명의 소유자였으며.

왕을 알현할 수 있는 열 명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그는 저걸 알고 있었다.

언어만으로 마법이 완성되는…….

“…어, 언령(言霊, Passive Magic Skill)?”

자신만만해하던 오스카 백작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 * *

발악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오고.

우수수, 하늘에 떠올랐던 검은 형체들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본능은 도주를 명하였지만, 종속된 피의 지배권은 본능을 짓누르고 무의미한 공격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뱀파이어에게 피는 생명이다.

그리고 힘이다.

“커, 커억!”

“……으악!”

상처는 생명과 힘의 소실이라는 이중적인 손해를 가져다준다.

뱀파이어가 뛰어난 신체 능력과 더불어 마력을 지녔음에도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치당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어지간한 오러로도 상처를 내기 힘든 강인한 육체였지만.

서걱!

정우의 공격엔 무의미하게 상처를 입을 뿐이었다.

“떨어져라!”

정우의 선언과 함께 일대의 중력이 급상승했다.

달려들던 뱀파이어들이 모조리 낙하했다.

파리채에 얻어맞은 파리처럼, 무력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본 정우가 다시금 명령했다.

“날뛰어라.”

정우의 명령에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쏴아아아!

물의 정령.

환희에 찬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 물의 정령이 물뱀의 모습으로 뱀파이어 사이를 누비며 입을 쩍 벌려 놈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삼켜졌던 뱀파이어가 도로 뱉어졌을 땐.

몸 안의 수분을 대부분 빼앗긴 미라처럼 삐쩍 마른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 따름이었다.

하나둘 삼키는 수가 많아질수록 물뱀의 머리 부분에 붉은 구가 형성되었다.

놈들의 피를 빼앗아 물로 가둬 둔 것이었다.

그게 정령의 힘으로 계속 정화되어가고 있었다.

“죽여…!”

이젠 머릿속의 명령이 문제가 아니었다.

심장에 이를 박아 넣으라는 왕의 명령도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오스카 백작은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다급히 소리쳤다.

더불어 양손에 붉은색 검을 꺼내 들고서는 휘청거리는 철혈의 군주와 매혹의 드루이드를 앞세우곤 전장에 뛰어들었다.

“블러드 필드!”

진조만이 운용할 수 있는 피의 무대가 펼쳐졌다.

기이한 감각의 폭풍이 자신을 뒤덮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우의 표정은 태연했다.

아니, 싸늘한 표정으로 오스카 백작을 가만히 주시할 따름이었다.

“죽여! 죽이라고!”

오스카 백작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단 한 번의 칼도 부딪치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궁지에 몰렸다.

‘언령이라니!’

그에게 언령은 트라우마였다.

그뿐만일까?

당시를 기억하는 모든 뱀파이어에게 언령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증오스러운 능력이었다.

‘죽여야 해.’

오스카 백작은 특유의 오만함을 잊어버린 채로 다급히 움직였다.

그의 명령에 바닥으로 추락했던 뱀파이어들이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직 반이나 남았어!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저놈은… 그 괴물이 아니야!’

날아오르는 수하들을 보자 위안이 찾아왔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그놈이었다면 단 한 수에 수하들 모두를 잃었을 터였다.

반이나 곧장 움직였고.

쓰러져 있는 놈들 중의 일부는 휘청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같은 언령이라고 하더라도 당시의 끔찍한 상황과는 달랐다.

철혈의 군주가 으득,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고.

갈라진 세상으로 뾰족한 손톱이 균열을 난도질했다.

쩡, 쩌저저저저저저저정!

요란한 소음이 이어졌다.

정우는 두 마리의 뱀파이어를 막아내고선 마법을 전개했다.

“쏟아져라.”

쿠르릉, 쾅!

순식간에 몰려든 먹구름으로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짓쳐 든 오스카 백작의 붉은 검이 방어막을 교차해 그었다.

쨍!

세 마리의 S급을 상대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방어막이 깨어졌다.

그 틈을 노리고 철혈의 군주와 매혹의 드루이드가 각자 요란할 정도로 위용이 대단한 일격을 가했다.

정우는 두 마리의 공격을 쳐 내고 빗겨 내며, 유려한 움직임으로.

“……!”

콰득!

퍼어엉!

매혹의 드루이드의 복부를 가격했다.

허리를 꺾은 채 뒤로 튕겨 나가던 표범이 순식간에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유지가 풀린 것이다.

그만큼 강대한 일격이었다.

철혈의 군주가 틈을 놓치지 않고 대검을 내리그었지만, 정우는 블링크로 공간을 넘으며.

“……젠장.”

오스카 백작의 뒤에 나타났다.

“쇼크 웨이브(Shock wave).”

“……헉!”

엄청난 충격파가 일대를 뒤덮었다.

주인의 명령에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던 뱀파이어들이 감전된 날파리처럼 파르르 떨며 다시 추락하고.

휘청!

두 S급 뱀파이어 역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반쯤 추락했을 때.

콰직!

정우는 움찔거린 오스카 백작의 팔 하나를 그대로 부러트렸다.

반사적으로 휘둘러진 반대편 팔을 허리를 숙여 피한 정우가 지팡이 끝으로 무릎 뒤를 찍었다.

퍽!

무릎을 꺾으며 휘청거리는 오스카 백작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폭사했다.

한발 물러섰던 정우가 손을 휘젓는다.

통로.

“……!”

오스카 백작은 자신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형태의 게이트에 흠칫 놀랐다.

다급히 후속타를 준비했으나.

콰득!

“…커, 커억!”

정우의 오러를 머금은 주먹이 머리를 후려치는 게 더 빨랐다.

힘에 못 이겨 뒤로 날아가는 오스카 백작을 보며.

정우의 입술이 중얼거렸다.

과거라면 그저 언령으로 대체했을 수준의 마법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약간의 캐스팅이 필요한.

“휘몰아쳐라, 블리자드.”

일본에서 보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매서운 한기가 일대를 장악했다.

상대적으로 마력이 약한 뱀파이어의 몸이 덜컥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경악에 찬 눈동자를 고스란히 드러낸 뱀파이어들의 신형이 딱딱히 굳어 간다.

서릿발 같은 우박이 사방을 휘몰아치며 물리적, 마법적인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몇몇의 뱀파이어들이 뒤늦게 뒤로 물러섰다가.

출렁.

“……어?”

허공을 가로막은 투명한 막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때늦은 발견이었으며, 의미가 없는 손짓에 불과했다.

투명한 막에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는 뱀파이어였지만, 막의 견고함을 뚫을 정도의 파괴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마치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일정 반경 이상을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자는 그자가 아니다. 감히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할 정도의 강자가 아니란 말이다!’

오스카 백작의 정신을 회복시켰다.

자신은 선발대였다.

왕의 강림을 준비하며, 그에 합당한 터전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

언령이라는 능력에 위축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전투 지역에서의 회피조차 불가능한 수하들의 상황을 보았을 때 더 이상의 피해는 막아야 했다.

오스카 백작은 자세를 낮추며 쌍검을 교차시켰다.

부러진 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벤다.’

저 괴물 같은 인간을 막는 것이었으니까.

서걱!

오스카 백작과 정우 사이의 삭풍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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