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변화(5)
“정…….”
이진수는 정우의 등장에 반색했다.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했지만, 이진수는 누구보다도 정우의 안위를 걱정했었다.
아무리 하데스를 잡을 정도로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는 자신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정우는 걱정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이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나저나 저놈은 내가 데려간다.”
“…하데스를?”
“어.”
“대장하고는 이야기가 된 거야?”
“됐어. 곧 올 거야. 내가 먼저 온 거니까….”
“으음.”
이진수는 이사와 눈을 마주쳤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사가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명 높은 하데스를 잡은 사람이었다.
일단 유서린도 상대를 믿고 있는 것 같았고, 하데스의 소유권도 그에게 있었다.
“너, 잘 아는 사람이지?”
“…으음. 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너 믿고 맡긴다?”
“네.”
이진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는 피식 웃으며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여전히 넋이 나간 하데스를 본 정우가 마법으로 그를 결박한 후 허공에 둥둥 띄웠다.
“…염동력.”
이사가 눈을 빛냈다.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시피 곧 올 거야.”
“저놈들은 어떻게 해?”
이진수가 일본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걱정하지 마. 대장이 와서 다 진행할 테니까.”
“흐음…….”
이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자세한 상황은 추후에 설명할게. 지금은 ‘계획’을 진행해야 해서….”
“아……! 맞네.”
이진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정우는 문득 그런 그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너도 퀘스트가 떴어?”
“퀘스트? 아니?”
이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새로운 퀘스트 얻은 거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대답한 정우는 이사를 보았다.
“…음. 저도 없습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S급만 얻은 거군.’
이곳을 공략하며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정우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데려갈게.”
“그래. 알았다.”
정우는 허공에 띄운 하데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곧장 공간 이동을 전개했다.
“휘유.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등장한 거지?”
이사가 정우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처음 세상에 등장한 S급이 무려 하데스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파란이 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러 흥분으로 뒤엉켜 있던 이사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누구 할 것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뭐, 뭐야?”
유일하게 이진수만이 눈을 깜빡이지 않고선 오히려 주변을 경계했다.
혹시나 또 다른 공격이 이어졌을까 봐.
하지만 자신들을 공격하는 누군가는 없었고.
“…뭐야? 너 왜 그래?”
태연한 이사의 음성만이 들릴 뿐이었다.
“지금 뭐예요?”
“뭐가?”
“다 같이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그 중상이 간단히 치료될 게 아니지. 너 좀 누워 있어.”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고요…. 후우.”
이진수가 자신을 걱정하는 이사를 보고 혼란스러워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윽고 들리는 한 여성의 음성에 이진수는 멈칫했다.
-주인님에 대한 기억만 지웠어요.
어딘지 모르게 지쳐 있는 음성.
이진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상대를 찾진 못했다.
이진수는 이사에게 정우에 대해 물었지만.
이사는 오히려 이진수의 이마를 짚었다.
“너 진짜… 야, 진수 좀 부축해. 이 새끼, 헛것 보고 있나 봐.”
여성의 음성대로 정우에 대한 기억만 사라져 있었다.
‘한정우…. 이 자식이! 미리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정우가 아닌 유서린이 하데스를 잡은 걸로 조작되어 있는 기억에 이진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한 건지 가늠이 서질 않았다.
더군다나 전투 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얼마나 당황할까 싶어, 흠칫했다.
이진수는 몇 명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 누구도 정우의 등장을 알아차리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일본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의 능력에 헛웃음을 흘린 이진수가 멈칫한 것은.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음성을 떠올리면서였다.
“……주인, 님? 이 자식!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야, 진수 헛소리도 하고 있어! 빨리 묶어!”
“넵!”
* * *
촤촤촤촤촤!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졌다.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기자들의 마이크가 앞을 다투며 몰려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던전으로 분류되었던 세이렌 영토의 입구에서 총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들의 아우성에 화답했다.
“시간은 많습니다. 아직 영웅들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니, 조금만 더 대기를 해주십시오.”
“아벤 총리님. 이번 작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거기에 대해 한 말씀만….”
“타소가레 길드원은 왜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겁니까?”
“이번 공략에 대한민국의 지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벤 총리님…!”
총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손끝에서 시작됐다는 듯, 태연한 태도로 기자들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
고개를 숙여 총리의 귓가에 속삭인 경호원이 다른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경호원들뿐이 아니었다.
몰려든 플레이어들이 시간 차로 고개를 돌렸다.
눈치 빠른 기자들 중 몇몇은 이미 망원 렌즈로 폐허로부터 걸어오는 이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다.
세이렌이라는 미물이 찬탈했던 지역이었으나 다시 인간의 손에 떨어진 장소.
아키타현의 찬탈에 성공한 주역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헉!”
기자들 몇몇이 경악했다.
망원 렌즈로 플레이어들의 면면을 살펴본 기자들이었다.
“왜 그래?”
“…부상자가……!”
“부상자?”
기자의 말대로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보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숭고하기까지 했다.
일단 성한 이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고, 가장 작은 상처 또한 일반인 기준으로는 중상에 가까운 상처였다.
의복을 찢어 만든 간이 들것에 실린 부상자의 수도 적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모습은 흔하디흔했다.
모두가 다 피해를 입은 모습.
그리고 더 가까워지자 보이는 면면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강세기다.”
“옆에는?”
“헉! 유, 유서린이 들것에 실려 있어.”
“용병 김하란도 중상이다.”
“어……. 어라?”
“중상을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이야!”
“오오!”
“설마 우리가 한국 플레이어들을 구해 준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역시 일본…!”
“세계를 아우를 자격이 충분한….”
“칙쇼! 여기 보는 눈이 몇인데….”
부축을 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오히려 일본 플레이어들은 그런 한국 플레이어들을 부축하며 이곳까지 운반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 모습에 총리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고.
특히나 들것에 실린 유서린의 모습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는 강세기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비교적 건재한 강세기와는 달리 지구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유서린은 피투성이로 기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세뇌의 최소한의 조건이 맞아떨어지자 총리는 당장이라도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싶어졌다.
‘참자… 조금 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총리는 다급한 몸짓으로 앞으로 나섰다.
웃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총리의 얼굴은 걱정과 근심, 이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일그러졌다.
“아아……!”
입까지 벌린 채로 달린 총리가 덥석, 강세기의 어깨를 붙잡았다.
“괘, 괜찮은 건가!”
총리의 다급한 질문에 강세기는 한 차례 휘청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빈 허공만을 붙잡은 총리였지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한 강세기를 보고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뭉뚱그린 질문.
하지만 의도만은 정확한 자신의 질문에 세뇌를 당한 강세기는 확실하게 답변을 했을 테니까.
비록 한국 플레이어들을 죽이지 않고 이곳까지 데려온 게 아쉽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건재한 게 자국 플레이어다 보니 그림이 더 좋았다.
혹여나 전투에서 빠져 있었다는 의혹을 나타내기엔, 자국 플레이어들도 그리 정상은 아니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힐러! 힐러!”
강세기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을 살피며 치료를 외치는 총리의 모습은, 가히 현명한 지도자의 그것과 같았다.
그 모습을 열심히 촬영하던 기자들은 앞을 다투며 플레이어들에게 몰려들었다.
미리 대기했던 힐러들이 치유를 하고, 부족한 손은 포션으로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기자라는 게 원래 그랬다.
당장의 이슈를 알리는 게 중요했다.
“강세기 플레이어! 공략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당신이 맞습니까?”
“타이틀은 일본의 S급은 한국의 S급보다 강했다, 동의하십니까?”
“한국 플레이어들만 이렇게 쓰러져 있는 이유가 뭡니까?”
한발 물러서 있던 총리는 손을 들어 기자들을 만류했다.
“자, 자! 큰 전투를 벌인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상당히 지친 상태인데 너무 많은 질문은 삼가십시오!”
총리의 단호한 태도에 기자들이 입맛을 다시며 거리를 벌렸다.
자연스럽게 총리가 모든 상황을 주도하게 되었다.
여러 내각 대신도 있었고, 참의원과 중의원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합의가 된 모양인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소속하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연신 손짓하기에 바빴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총리가 예견한 대로였다.
때문에 의원들은 총리의 눈치를 살폈다.
이대로라면 총리가 거머쥘 권력은, 과거 천왕의 그것에 뒤처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총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영웅들을 치료하는 게 먼저입니다. 제가 대신 답변드릴 테니….”
총리의 말은 실상은 이상한 것이었다.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이 답변을 한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총리의 태도와 행동에 감화된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몰려든 이들의 대부분이 일본인이기 때문인지. 모두는 아쉬움을 달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외신(外信)도.
타국의 플레이어도.
눈을 데굴 굴리며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입을 다문 그때.
“…말하지.”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조용한 음성.
하지만 소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음성.
주변을 돌아보며 음성의 주인을 찾던 모두의 눈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건, 우연처럼 동시에 이루어졌다.
툭, 툭툭.
옷을 털며 고개를 드는 강세기의 싸늘한 표정에 모두는 흠칫했다.
“……강, 세기, 플레이어?”
누군가의 더듬거리는 물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강세기가 앞으로 나왔다.
총리의 손길에도 지쳐 휘청거리던 건 어디로 가버린 건지, 강세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은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거대했다.
총리의 존재감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무슨 짓이야!
총리가 머릿속으로 소리쳤다.
강세기의 세뇌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는 새로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강세기는 그런 총리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자신만을 바라보는 수백 쌍의 눈과 수십 대의 카메라를 주시할 따름이었다.
과연 어떻게 전투가 진행되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이 전투에….”
각자가 생각하던 내용을 산산이 조각내는 강세기의 발언에 모두 얼어붙었다.
“일본인은 입을 열 자격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