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하데스 (4)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의문과 혼란이 가져온 빈틈에 반응한 강세기의 양손이 아래로 향했다가 천천히 위로 솟구친다.
무언가를 드는 형태.
콰르르르!
발밑에서 생겨난 뾰족한 얼음 창 수십 개가 정우를 덮쳤다.
땅을 박차 그것을 피한 정우의 왼손은 여전히 끈을 잡고 있었다.
아라크네의 마력 실.
‘대체…….’
마녀 일족을 멸절의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아라크네가 뜬금없이 등장했다.
‘…어떻게.’
정우의 혼란을 틈탄 강세기의 공격은.
콰직!
우드드득!
쩌적, 쩌저적!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연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히려 정우는 손에 잡은 마력 실을 놓지도 않은 채로 그것들을 너무도 수월하게 피해 냈다.
조종자의 실력이 강세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였다.
급격히 하락한 강세기의 공세를 쳐 내고 부수고 녹여 버린 후.
아라크네의 마력 실의 패턴을 흡수했다.
이윽고 다다르는.
이미 발견하긴 했지만 잠시 내버려 두었던 인물이 정우의 접속을 느끼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덜컥.
그와 더불어 강세기의 신형 역시 멈칫했다.
정우의 시선은 조종자가 아닌 강세기에게로 향했다.
마력 실에 손을 얹고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노라니, 왜 그가 한국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자주 멈칫거렸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항하고 있어.’
그랬다.
강세기는 마력 실의 조종에 이따금씩 자신의 의지로 저항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그때마다 머뭇거림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덕분에… 진수가 목숨을 구했어.’
녹지 않는 얼음.
피해자의 전신을 얼려 버릴 때까지 녹지 않는 스킬에 당했음에도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피해가 확산되지 않았던 것은.
‘강세기 덕분이다.’
찰나의 순간, 스킬을 억제해 준 강세기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강세기의 의지를 확인한 정우의 시선이 다시금 조종자에게로 향했다.
마력 실은 하나의 반지로 이어졌다.
주변의 마력을 제어하고 장악한 정우가 다시금 공간을 넘었다.
“……!”
조종자는 부릅뜬 눈으로 정우를 돌아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잉!
그건 일전에 정우가 사용했었던 그것과 동일했다.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강렬히 회오리치던 바람이 정우를 덮쳤다.
A급의 플레이어.
수준은 썩 뛰어났다.
하지만 정우는.
손을 휘저어 바람의 제어권을 가져왔다.
돌개바람이 미풍으로 변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에 상당한 경험을 겪은 A급 플레이어조차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마력의 흐름이 끊겼다.
정우는 빠르게 움직여 손을 뻗어.
턱.
조종자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우득!
“으, 으아아아악!”
손을 비틀어 뜯어냈다.
비명이 신호가 되었을까?
뒤늦게 반응한 일본 플레이어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정우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우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다.
압도당한 것이었다.
정우는 일본 플레이어들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로, 뜯어낸 손에서 반지를 빼냈다.
마력이 공급되지 않아서인지 강세기와 연결되었던 마력 실이 뚝 끊어졌다.
정우는 반지를 살폈다.
반지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분명히 아라크네의 것이었다.
하지만 선명도가 부족했다.
마치 아라크네의 일부를 떼어다가 만든 것처럼.
‘그렇군…. 다리야.’
거미의 여러 다리 중 하나를 떼어 어떻게 정제한 것인지 모를 방법을 통해 반지를 만들었다.
정우는 그 사실에 은근히 감탄하면서도 분노했다.
자신 외에도 ‘인챈터(Enchanter)’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그 용도가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미의 다리는 여덟 개였다.
하나의 제작이 가능하다면 다른 다리 역시 제작에 쓰이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그 사실이 무척 신경 쓰였다.
“무, 무슨 짓이냐!”
일본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뒤늦게 소리쳤다.
반지에서 시선을 뗀 정우의 묵직한 눈빛이 그에게 닿았다.
오싹!
일본 플레이어는 정우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건재한 아군의 수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보이는 건.
정우의 차가운 눈동자뿐.
“너희도 알고 있었나?”
정우의 물음에 시야가 확장된 플레이어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 무, 무엇을….”
“됐다.”
정우는 이들의 반응에, 조종에 참여한 이가 자신이 손을 뜯은 플레이어 하나임을 알아차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우에 태도에도 일본 플레이어들은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일본이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였으니까.
강자는 적고 약자만 많은 세상 속의 강자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니게 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강자에 굴복하고 고개를 숙이는 건, 익숙한 것이었다.
정우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일본 플레이어들을 내버려 둔 채로.
정우는 남은 한 손을 펼친 채로 연신 스킬을 사용하고자 용을 쓰는 놈을 돌아보았다.
일대의 마력을 장악한 것만으로도, 마법사인 놈은 그저 신체 수준이 상승된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였다.
“오, 오지 마……!”
정우의 접근에 놈이 뒷걸음질 쳤다.
꽈당.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아니, 고위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엉덩방아를 찧으며, 놈은 자신의 뜯긴 팔의 단면까지 이용하며 정우를 피했다.
하지만 놈의 후퇴보다도 정우의 전진이 빨랐다.
턱.
정우는 놈의 뻗은 발을 잡아 든 채로 물었다.
“총리가 시켰더냐?”
* * *
슈슈슉!
허공을 가른 검격이 안개로 변해 다가왔다.
흠칫한 로건이 뼈 날개를 휘둘러 안개를 밀어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보다 위다.’
저주만큼은 상대가 더 강력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을고?’
저주로 이름을 날린 자신보다 강력한 저주술사가 검사라니.
유서린급의 충격이었다.
퉁.
발을 디디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상대의 움직임은 자신조차 순간적으로 놓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쿵!
로건은 지팡이를 땅에 짚었다.
돌진하던 상대가 다급히 방향을 바꾸는 것을 보며, 로건은 연신 스킬을 조절했다.
우득, 우드득!
솟구치는 뼈들은 나름의 간격을 가지며 메아리의 진로를 틀어막고 있었다.
가히 뼈 무덤이었다.
“시체 폭발.”
로건은 확실히 경험이 풍부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덕분에 시체 폭발 역시 세부적인 조절이 가능했다.
메아리의 움직임을 따라 폭발이 이어진다.
로건은 메아리의 냉정한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지팡이는 하데스를 나타내는 징표 중 하나였다.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용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허허. 이걸 안 꺼냈으면 골치가 아플 뻔했어.’
퍼엉!
“……큭.”
메아리의 신음은 그에게 옅은 흥분을 안겨 주었다.
알려지지 않은 듀얼 클래스의 시체를 권속으로 삼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S급은 아니라 아쉽지만, 저주로 상당히 유명한 자신보다도 뛰어난 저주술사였고.
‘저 검술도 육체가 따라가지 못할 뿐, 생각보다 뛰어나다.’
검사로서의 실력도 마음에 들었다.
유서린을 얻지 못했던 갈증을 조금은 해소시켜 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은 되었다.
연이은 시체 폭발에 휘청거리던 메아리의 무릎이 처음으로 꺾였다.
“뼈의 가시(Bone thorn).”
눈을 빛낸 로건의 스킬에 무덤의 뼈들이 이어져 얇고 긴 가시처럼 변했다.
가시라는 스킬명과는 달리 그것은 채찍에 가까웠다.
수많은 관절 부위를 가진 가시가 휘익, 메아리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다급히 허공으로 뛰어 가시를 피한 메아리가 양손을 휘젓는다.
부서지는 가시의 일부가 다시 결합되었다.
로건의 눈이 반짝이며.
가시를 조종해 메아리의 머리를 노렸다.
당황하여 커진 동공을 본 로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가.
스스슥!
“……!”
부서지는 가시에 눈을 부릅떴다.
척.
그 반발력으로 거리를 벌리며 땅을 밟은 메아리가 약간 헐떡거리면서도 놀란 눈으로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
시체 폭발을 피한 메아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빨라….’
생각 이상으로 시체 폭발의 속도가 빨랐다.
새싹처럼 피어난 뼈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진로를 방해했다.
서로 다른 높이의 뼈들 역시 함정처럼 견고했다.
검을 휘둘러 베어 내고, 마력을 쏟아 부수었지만.
‘저 마정석이 문제야….’
지팡이를 든 로건은 자신의 수준을 웃돌았다.
‘휜의 능력을 조금 더 기억해 내!’
휜은 쌍검의 달인이었으며, 마스터였다.
그의 검은 자유로웠고, 보다 유려했으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
그런 그의 검이 굉장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경험은 기억으로 남는다.
기억은 경험으로 남는다.
‘떠올리자. 그의 기억을.’
“…큭.”
폭발의 여파에 주춤 밀려났다.
화끈거리는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로 전진한다.
지면의 부서진 잔해를 밟고 방향을 틀며 검을 휘젓는다.
자유로웠던 휜의 검술을 기억하여 경험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흉물스럽게 드러난 파이프의 단면을 밟은 채로 상체를 기울여 채찍을 피해 냈다.
‘조금 더 빠르게….’
과거나 지금이나.
메아리는 단 한 번도 빠르게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육체적인 능력은 필요가 없었으며 모든 것은 정신적인 개념에서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
메아리는 검을 휘둘렀다.
‘이건…….’
검을 내리치고 꺾으며 뼈의 가시를 부숴 낸 메아리가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흐름.
무언가의 흐름이 생겨났다.
‘사다코의 재능이다.’
우연이다.
하지만 필연이기도 했다.
백작은 자신이 깃들 육체를 선택하여 개조시켰고, 사다코의 적합률은 예상 이상으로 높았다.
정우의 개입으로 미완성에 그친 육체였지만, 단 하나만큼은 성공적이었다.
재능의 개화.
‘검술이야!’
검의 흐름이 조금씩 다가왔다.
그저 기억으로만 남았던 휜의 움직임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자신의 검 앞에 덧씌워져 경로를 형성했다.
사방에 그어진 경로를 본 메아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때마침 머리를 노리는 뼈의 가시를.
‘긋는다.’
아주 가볍게 검을 휘둘러 그었다.
한껏 힘이 빠진 검의 속도는 매서웠으며.
처음으로 휜의 경로와 일치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쩌엉!
묵직한 충격이 쌍검을 교차시킨 메아리의 전신을 자극했지만.
스스스스.
막상 휘두른 쌍검에 닿는 뼈가 너무도 허무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쿵!
반발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린 메아리가 헐떡거리며 자신의 손을 보았다.
기묘한 고양감.
휜의 경지를 살짝이나마 맛보았다는 떨림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그것은 전율이었다.
쩌적!
메아리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꼈던 벽의 일부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예기치 않은 과정 속에서 금이 간 벽에.
그녀는 자세를 갖추며 달려들었다.
이 벽을 깨부수기 위해서.
화악!
벽의 이미지가 사라진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자신을 향해 지팡이를 휘젓는, 당황한 네크로맨서뿐이었다.
서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