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하데스 (3)
강세기의 동결(凍結)은 주변의 마력을 모조리 얼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언뜻 시간이 멈춰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공격은 허공에서 멈춰 버리고.
각각의 모양새 그대로 굳어 버리는 형태는, 과거 SF소설에서나 등장하던 빙하기의 그것과 비슷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강세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곳의 모두는 그것과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어떤 능력인지, 어떤 방법인지, 어떤 과정인지.
그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었지만, 피부에 닿기 직전에 멈춰 버린 우박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저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역시 숨도 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덜덜덜.
김하란은 떨리는 손끝을 힐끗 보았다.
‘…방금, 그게 뭐였지?’
정체불명의 괴물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압도적인 기세가 느껴졌다.
마치 피어(Fear)처럼.
김하란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시선은 정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 괴물의 존재감이 한정우라는 인물로부터 발현된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멈춘 건 둘뿐만이 아니었다.
강세기.
그 역시 정우의 존재감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한 채로 잠시 공격을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순간.
정우는 평소보다 더 냉정한 태도로.
휘익!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움켜쥔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낙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 아라크네의 마력 실을 파악하였습니다. ]
뜬금없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 * *
우득!
제 팔을 뽑는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비틀고 또 비틀어 손이 기형적으로 돌아감에도 끝내 마무리한 결과는.
촤아아악!
피 분수와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팔 한쪽이었다.
그럼에도 고함은커녕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제 손으로 뜯어낸 팔을 들어 공손히 바친다.
마치 신께 공물을 바치는 제사장처럼.
“…….”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프러포즈 선물처럼.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이질적이었지만, 상대는 자연스럽게 잘린 팔을 받아.
휘릭.
뒤로 던져 버렸다.
“부족해.”
그 말 한마디에 사내는 곧장 자신의 다리를 뜯어냈다.
“부족해.”
그 말에 망설임 없이 나머지 다리 하나까지 잘라 낸 사내가 고개를 조아리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말에 상대는 웃었다.
환하게 짓는 미소는, 인세엔 다시 없을 아름다움이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사내는 자신의 이빨로 손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와그작, 까직.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으며.
“……하데스라?”
시선을 돌린 메아리가 중얼거렸다.
“골치 아프네.”
S급 빌런 하데스의 등장엔 메아리도 긴장할 정도였다.
자신은 아직 주인처럼 강해지지 못했으니까.
‘왜지?’
성장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주인의 성장 폭에 맞춰 성장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혼자 가로막힌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못 하는 거겠지.’
메아리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해 답답했다.
“으, 으으…… 이제… 날, 사랑…….”
끝끝내 자신의 남은 손도 잘라 낸 사내가 바닥에서 허우적대며 말했다.
“아직 부족해.”
“대, 대체… 어, 어떻게 해야…….”
“죽어 줘.”
메아리의 조용한 음성에.
히죽 웃은 사내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사랑…….”
그렇게 중얼거리며.
콰직!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육체는 너무도 허무하게 바닥에 부딪혀 부서졌다.
A급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
메아리는 입술을 핥았다.
“미안. 아직도 부족해.”
그 말이 끝나자 연분홍빛 안개가 회수되었다.
매혹의 안개.
꿈을 통하지 않는, 서큐버스라는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은 능력 중 하나였다.
“영국의 로건이 하데스라, 주인님께 알려야 해.”
메아리는 날개를 만들었다.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안정적이었다.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머맨들은 하악질 하는 고양이처럼 입을 쩍 벌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포효를 내뱉었고.
세이렌의 저주는 그녀에겐 통하지도 않았으니, 이보다 더 안정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까드드득!
“……!”
순간적으로 들린 이질적인 소음에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다급히 돌아갔다.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장면 가운데에서.
쨍.
무언가가 빛났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메아리의 판단력도 눈부셨다.
안개를 해제한 것이다.
사라지기 전의 날개로 방향만 바꾼 채로 추락한다.
쐐액!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간 그것이.
일순간 붉게 물들었다.
콰앙!
매캐한 연기와 함께 폭발이 일었다.
생각보다 거대한 폭발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예상과는 달리 추락한 덕에.
슈우욱, 쿵!
메아리는 오히려 폭발의 여파로부터 벗어나 빠르게 지상을 밟았다.
전신을 감싸던 검은 안개가 사라졌다.
“…시체 폭발.”
굽혔던 무릎을 펴고, 천천히 몸을 돌린 메아리의 눈에 들어온 건.
금발의 미공자, 로건이었다.
“왜 공격을 했죠?”
메아리의 물음에 가만히 그녀를 주시하던 로건이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우득.
메아리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무언가 덜거럭거리는 소리에 손을 뻗으며 몸을 돌렸다.
붉은 안개가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하지만 상대는 멀쩡했다.
“…언데드.”
“저주라…. 특이한 방법으로 사용하는데, 마침 ‘이 몸’도 저주가 특기이지.”
자신의 저주를 무시한 채로, 가만히 서 있는 해골을 대신하여 로건이 말했다.
메아리는 다시 한번 검은 안개를 두르며 물었다.
“하던 말이 끊겼는데?”
“아. 궁금한 모양이네?”
로건이 한 발 다가왔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메아리의 뒤편에 서 있는 해골을 가리켰다.
“조금 전에 사지를 스스로 뜯었던 놈이, 내게 고했으니까.”
메아리가 칫, 혀를 찼다.
“종속의 계약을 맺었을 줄이야.”
“호오. 종속의 계약을 알아?”
로건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종속의 계약은 네크로맨서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특히나 A급 끝자락에나 도달해야지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드러난 정보는 지극히 적었다.
종속의 계약을 맺은 자는 죽음과 동시에 자연적으로 언데드로 재탄생된다.
어디서 죽었든, 어떻게 죽었든.
거리에 상관없이 계약자의 곁에서 생성되며, 골치 아픈 능력 중 하나를 무조건 펼쳐 버린다.
바로 죽기 직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계약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망자의 기억.
“그래서 날 공격할 건가, 하데스?”
“…….”
메아리가 꺼낸 호칭에 로건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나의 권속은… 죽어서도 날 섬기는 영광을 누릴 테니.”
변한 말투만큼이나 묵직해진 존재감이 메아리를 압박했다.
메아리는 코웃음을 쳤지만, 목울대의 꿈틀거림만큼은 막지 못했다.
하지만 긴장감을 지우려는 듯.
그리고 수없이 많이 기억한 전투의 경험을 살려서.
그녀의 검은 안개가 지면을 파고든다.
선수는 그녀로부터였다.
‘오버레이를 풀기 전에 공격하는 거야. 본래의 힘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콰르르릉!
지면을 뚫은 검은 가시가 로건을 노리고 솟구쳤다.
콰직, 우지지직!
“……!”
메아리의 눈이 커졌다.
‘본 아머(Bone armor).’
풀 플레이트 메일처럼 전신을 보호하는 본 아머가 메아리의 일격을 막아 냈다.
“제법이로구나.”
메아리는 본 아머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발현되는 시간.
그게 말도 못 할 정도로 짧았다.
로건이 흥미롭게 평하며, 자신의 앞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왼손에서 생겨난 마력이 지면으로 퍼진다.
“일어나거라. 버러지들아.”
드드드득!
약간의 떨림과 함께 지면을 밀어내며 일어나는 언데드들을 보며, 메아리는 혀를 찼다.
상성이 그리 좋지 못했으니까.
시체를 사용하는 네크로맨서.
매혹을 비롯한 저주를 사용하는 서큐버스.
꿈을 꾸지 않는 언데드 특성상 저주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여러 약화는 통하겠지만… 한 수가 부족해.’
메아리는 여러모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스르르릉.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두 개의 검을 틀어쥔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그녀는 분명히 종족을 탈피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과거에 습득했던 능력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현재의 천적을 맞이했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가장 강력했던 때와 가장 최악이었던 때를 기억해 낸 정우와 연결된 메아리는.
신하이자 동료였으며 친우였던 이들의 특성을, 정우보다 먼저 기억해 냈다.
그리고 과거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정우의 곁엔.
‘쌍검의 휜’이 있었다.
양손을 극단적으로 펼친 채로 상체를 한껏 굽힌 자세는, 일견 불안해 보일 정도로 기이했다.
하지만 로건은 그런 메아리의 자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음울한 마력이 뿜어져 나와 자신의 주변을 가득 채웠을 때.
파앗.
‘사라졌다.’
아주 미약한 먼지만 피워 올린 채로, 메아리의 신형이 사라졌다.
로건은 다급히 방어 스킬을 전개했다.
“본 월(Bone wall).”
드득, 드득!
순식간에 자라나는 뼈의 벽이 로건의 주변을 뒤덮기도 전에.
서걱!
메아리의 검이 뼈를 갈랐다.
로건이 고개를 돌리며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음산한 기운이, 메아리를 덮쳤다.
“난검(亂劍).”
메아리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어지러울 정도로 전면을 그은 메아리의 손길에 음산한 기운이 흩어졌다.
하지만 로건 역시 자신의 저주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툭.
검을 휘두르던 메아리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발뒤꿈치에 닿는 감촉에 땅을 박찼다.
콰아아앙!
폭발이 일었다.
휘릭.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착지한 메아리가 손을 짚은 자세로 로건을 노려보았다.
“검사였나? 희한하구나.”
로건이 메아리를 보며 탐이 난다는 듯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저주를 사용하며, 연기 비슷한 걸 뭉쳐서 날개나 검을 만드는 능력을 지녔으며.
하늘을 나는가 하면, 막상 움직임은 쌍검을 사용하는 검사 그 자체였으니까.
로건이 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그러자 폭증하는 마력은, 같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메아리의 시선이 지팡이로 향했다.
검은빛의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의 끝에 달린, 마정석까지.
꽤나 익숙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건… 주인님의?’
“정신을 어디다 파는 거지?”
메아리를 품겠다고 결정한 로건이었지만, 허무한 싸움은 싫었다.
버러지의 발악과.
자신을 자극시키는 약간의 스릴.
두 가지를 놓칠 수 없었던 로건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지팡이에 정신이 팔린 메아리에게 경고하며.
콰드드드드득!
나무 넝쿨처럼 얽혀 강도를 높인, 뼈 화살을 쏘아 냈다.
여섯 개의 뼈 화살을 보고 있던 메아리가 손끝으로 땅을 밀어내며, 쌍검을 교차시켰다.
“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