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대전 대신 실전 (3)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수가 급감하면서.
수많은 학교가 폐교로 변해 방치되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경우에는 다른 용도로 활용되거나 철거되어 다른 건물이 세워졌지만.
지방은 활용 방안이 없다 보니 그저 방치된 채 흉물스럽게 변해 가고 있었다.
“여긴 어디인가요?”
“…빌런들의 집결지.”
“……!”
빌런의 꼬리를 잡은 그녀는 전담 팀원을 뽑는 행사마저 취소한 채 정우와 함께 이동했다.
“둘이 와도 괜찮은 건가요?”
“당신만 제 몫을 해주면… 충분해요.”
정우의 우려에 유서린은 담담히 대답했다.
“안의 인원은 정확하게 파악이 된 건가요?”
“아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태연하게.
“그건 상관없어요.”
폐교를 살펴보며 서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제가 할 일은요?”
그제야 유서린의 시선이 정우를 향했다.
“제가 먼저 돌격할 거예요. 제게 시선이 몰릴 때 뒤로 돌아가요.”
“그래서요?”
“밖에서 소란이 일면 안쪽에 있는 놈들도 튀어나올 거예요. 그때 안쪽에 있는 장치를 파괴해 줘요.”
“…파괴요?”
설명을 요구하는 정우의 눈빛에 유서린은 눈가를 좁혔다.
“후우. 예전에 일본에서 한정우 씨가 한 일이 협회장님께 도움이 되었다고 한 걸 기억하나요?”
“아, 기억해요.”
“빌런이 가장 많은 나라는 아프리카와 중국이에요.”
특히나 중국에 의외로 빌런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었지만 중국은 빌런에 대한 은근한 우호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당국만 건드리지 않으면, 어지간한 범죄는 무시해 버리는 게 그들이었고.
때문에 많은 빌런들이 중국에 터전을 둔 채, 수많은 인구에 숨어 활동했다.
“협회장님은 아시아 국가 내 빌런을 모조리 소탕하고 싶어 해요.”
“…중국은 반기지 않는 거군요.”
“어쨌든 자국 테러는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던전 브레이크 발생률도 낮아졌고.”
빌런이라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다.
던전을 공략해야 하고.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던전을 공략했다.
던전의 공략은 해당 지역이 안전해진다는 소리와 동일했다.
빌런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활동하는 게 아닌 이상, 빌런을 솎아내는 건 꽤나 버거운 일이기도 했고.
그 중 던전만 공략해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국가가 있었다.
주로 능력에 비해 영토가 너무도 방대하게 넓은 경우 그러했다.
중국은 연이은 던전 브레이크로 영토의 6%를 잃었다.
영토에 민감한 중국 당국은, 빌런의 힘이라도 빌려서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 루머가 사실이었다고요?”
중국 내 빌런의 숫자가 많아지자, 저들과 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는 루머가 등장했었다.
일반인들의 입에서도 오르내리는 아주 흔해 빠진 루머.
그게 진실이라는 것에 정우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튼 일본은 자국의 영토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주제에 한국이 영향력을 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해 왔어요.”
거기다 중국 내 일이라며 은근히 그들의 편까지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 때문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죠.”
“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 정우는 살짝 입을 벌렸다.
“그래서 더 중요해요.”
“…뭐가요?”
“‘총리’와 강세기의 관계를 확인하는 거요.”
그 말에 정우는 얼굴을 굳혔다.
유지석 협회장치고 생각보다 조급하게 군다 싶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슬금슬금 일본이 다시 중국의 편을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총리가 있었다.
“이곳은요?”
“…반갑수를 취조해서 얻은 정보 중 하나가 ‘정지하’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에요.”
“정지하요?”
“빌런 협회와 끈이 닿아 있는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꽤 오랫동안 찾았는데… 얼마 전에 발견되었어요.”
“그게 저곳인가요?”
“맞아요.”
유서린의 가라앉힌 살기가 다시 날카롭게 주변에 퍼졌다.
“중국에서 넘어온 것들도 같이 있어요. …한정우 씨는 이제 제 팀이 되었으니 말씀드리면, 얼마 전에 한국에서도 테러가 있었어요.”
“……테러요?”
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한과 공동 연구 하는 게 있어요. 습격을 당했죠. 한정우 씨도 알 법한 놈한테요.”
“누군데요?”
“도살자.”
“……!”
“그래서 이곳이 매우 중요해요. 놈들의 루트를 알 수 있는 기회거든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인원이 적은 게 아닌가요? 유서린 플레이어야….”
“두려우면 빠져도 돼요.”
“…그런 건 아닌데, 놓칠 수도 있잖아요.”
“걱정 말아요. 공격은 둘이서 할 건데, 도주를 막을 인력은 오고 있으니까요.”
“아….”
“대전 대신 실전으로 마지막 검증을 시작하죠. 이 정도 건수면… 등급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유서린은 그렇게 말하며.
차분히 주변의 흐름을 눈에 담았다.
정우 역시 그녀를 따라 마력을 천천히 퍼트려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힐끗.
정우의 마력을 느낀 유서린이 그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E급이 이 정도로 마력을 컨트롤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유서린이 천천히 이동했다.
“준비가 끝나면 조용히 말해요. 알아서 들을 테니까.”
‘아버지가 눈여겨보는 재능을, 이번엔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네.’
“시간을 끌어 줘요. ‘포획’할 수 있게….”
* * *
-무슨 장치일까요?
정우는 메아리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짐작이 가는 게 없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유서린과 헤어진 정우는 천천히 폐교의 뒤쪽으로 향했다.
‘이런 마력의 흐름이면… 경계군.’
촘촘한 경계 스킬이 펼쳐져 있었다.
‘악의를 각인한 것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거리가 있어.’
정우의 마력감지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처음 이동한 장소에서부터 폐교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엄연히 마력 감지 수준을 벗어나는 반경.
그럼에도 악의는 착실히 각인되었고.
스킬화까지 남은 퍼센트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에 악의를 스킬화하겠네.’
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촘촘한 스킬의 흐름 중 조금 옅은 부분을 찾는 것이었다.
‘빨리 찾자.’
아무래도 신속한 게 중요했다.
정우는 거미줄 같은 마력을 천천히 경계 스킬에 흘렸다.
세밀하게 조종한 탓에 경계 스킬은 반응하지 않았다.
눈까지 감고 세밀하게 살피던 정우의 눈이 떠졌다.
마력을 회수하고 곧장 이동한 정우의 눈에 수풀로 살짝 가려진 장소가 들어왔다.
‘여기다.’
정우는 곧장 신호했다.
“지금입니다.”
그렇게 속삭였을 때였다.
콰-앙!
기다렸다는 듯, 전면에서 들리는 폭음에 정우조차 깜짝 놀랐다.
-진짜 들었네요.
‘그러게.’
놀람도 잠시.
정우는 빠르게 스킬의 흐름을.
‘끊는다.’
끊고, 그사이에 통로를 연결했다.
일련의 작업은 매우 신속했다.
허리를 숙여서 지나가야 할 정도의 틈.
그리 크지 않은 크기였지만 충분한 크기의 빈 공간이 나타났다.
정우는 재빨리 경계 스킬 안으로 들어가서는 통로를 해제했다.
‘이거… 영 괜찮군.’
-=͟͟͞͞(งꏿ᷅॓৺ꏿ᷄॔)ง⁼³₌₃ 공격!
뽀로로, 먼저 날아간 메아리가 상황을 알려주었다.
-자꾸만 앞으로 나가고 있어요.
‘유서린에게 간다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널 이용하면 정찰이 쉽겠네.’
-전 매우 유용하다고요!
‘그 말이 그 말이다.’
반경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유령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메아리의 새로운 활용법을 떠올렸다.
몸을 숙여 1층 창가에 다가간 정우가 안의 상황을 물었다.
‘어때?’
-못 들어가요.
‘…음?’
-커튼이 쳐져 있어서 볼 수도 없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결계를 쳐놓은 것 같네요.
‘결계라….’
정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결계사와 부딪친 이후, 정우는 결계에 대한 정보도 빼놓지 않고 모았다.
철원의 언데드를 없애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크나트의 목걸이 패턴 역시 그런 결계를 습득하는 와중에 알게 된 정보였다.
‘그거 알아?’
-???
‘네 몸을 결박하던 쇠사슬도 따지고 보면 결계였던 거.’
정우는 천천히 손을 벽에 가져다 대었다.
울컥, 하고 느껴지는 거부감을 차분히 달래, 자신의 손안에서 굴린다.
그러는 도중 자연스럽게 쌓여 가는 결계의 마력 패턴이.
파징!
짧은 소리와 함께 해제되었다.
‘됐다.’
어렵지 않게 결계를 해제한 정우 대신 메아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어?
그리고 들려오는 당혹스러운 음성.
‘왜 그래?’
메아리의 음성이 뚝 끊겼다.
‘메아리?’
정우가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며.
안쪽으로 마력을 퍼트렸다.
* * *
“……징벌의 처녀? 그녀가 어떻게 여길 알고?”
흰 가운을 입은 사내의 붉은 눈동자가 획 하니 돌아갔다.
“…저 새끼군.”
사내의 시선을 받은 정지하가 화들짝 놀랐다.
“저, 저는… 아닙니다.”
“확신해?”
“화, 확실합니다!”
정지하가 머리를 박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으음.”
사내가 눈가를 좁히며 잠시 생각했다.
“외부 경계는?”
“이상이 없습니다.”
“…혼자 왔다고?”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 우선적으로 혼자서 저흴 막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것 같습니다.”
“여기 인원이 몇 명이었지?”
“백 명이 조금 안 됩니다.”
“처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시간만 있다면 가능합니다만.”
“지원군이 문제란 소리군.”
사내가 허탈하게 웃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발각이라. 이 한국은 터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빠져나가야지.”
“자료는….”
“파기해.”
“…….”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일본’ 측에서 온 정보는 대강 실험했어. 차라리 본토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사내의 붉은 눈동자가 다시 정지하에게 향했다.
“저것을 다음으로 잡아.”
“알겠습니다.”
“……!”
정지하의 고개가 퍼뜩 올라갔다.
다음.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씨, X발!”
평생 눈치로 먹고 살아온 정지하였기에 판단은 빨랐다.
빌런 협회의 연락책을 하고 있는 정지하였기에, 특히나 이동과 관련된 여러 스킬은 그의 반응을 기민하게 만들었지만.
턱.
“다음이라신다.”
부하의 손이 정지하의 어깨를 짓눌렀다.
정지하의 고개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저, 협회의 연락책입니다! 제가 사라지면 연락에 혼선이…….”
“고작해야 너 하나가 사라진다고 혼선이 생길 협회가 아니야.”
“바, 박사님!”
“협회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도 모르는 연락책이라니. 연구 재료로 쓰면 딱 맞겠어.”
콰직!
“으, 으아아!”
양팔이 부러진 정지하가 비명을 질렀다.
“혀가 잘리기 싫으면 입을 다물어.”
부하의 서늘한 경고에 정지하가 악착같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혹시 알아? ‘성공’할지.”
정지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성공.
그 단어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미 보고 온 상황이니까.
“으, 으으…!”
“시끄러우니, 기절시켜.”
퍽!
박사의 말에 부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지하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정지하를 둘러멘 부하가 박사에게 말했다.
“자료의 파기를 명령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이동하시죠.”
“쯧……. 이제야 조금 재미있어졌는데….”
혀를 찬 박사가 몸을 돌리다가.
“……음? 저건 뭐지?”
“무엇 말씀입니까?”
“희끗한 형체.”
커튼을 친 창을 본 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동격서!”
벼락같이 으르렁거린 박사의 손에서 스르륵, 책이 펼쳐졌다.
“데몬 핸드.”
나지막한 시동어와 함께 붉고 흉측한 손이 책에서 뻗어 나왔다.
다급히 몸을 피하는 형체를 낚아채는 손길에.
콰르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괜찮으십니까?”
무너지는 천장의 잔해를 짊어진 부하의 말에 박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