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대전 대신 실전 (2)
빙글, 회전하는 마법의 기세는 강력했다.
하지만 상대는 가볍게 마법을 막아내며 오히려 반격까지 가해 왔다.
정우는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하며 단검을 던졌다.
쐐액!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단검을 피한 상대의 손이 정우를 향했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굉음과 함께 마력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블링크.”
공간을 점하며 이동한 정우의 손이 기묘하게 움직인다.
“…호오.”
상대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으며 등 뒤로 날아오는 단검을 막아 냈다.
깡!
실드에 부딪쳐 허무하게 튕겨 나가는 단검이 허공에서 이리저리 회전하더니 정우의 손으로 돌아갔다.
“염동력도 꽤 능숙해졌구려.”
이지스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정우는 혀를 차며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패턴을 조금 더 늘릴 필요가 있겠소.”
“그래서….”
파앗!
입을 연 정우의 신형이 돌연 앞으로 튕겼다.
“이어 간다.”
돌진.
매직 미사일 뒤에서 쇄도하며 창을 뒤로 쭉 뺀 정우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힘껏 찌르기!’
간단한 스킬명이 정우의 마력을 울컥 잡아먹고 덩치를 키웠다.
하나의 번쩍이는 점이 이지스의 가슴을 노리고 커진다.
“…오러에 공명까지! 마법을 검술과 접목시켰구려!”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은 이지스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창의 경로 앞에 생겨난 투명한 벽이.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어지기 시작했지만.
“……중첩 마법?”
“일곱 겹이오.”
중첩된 실드를 전부 깨부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정우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웅웅!
이지스는 돌연 뒤쪽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예기에 몸을 틀며 손을 펼쳤다.
통로를 지나 등장한 매직 미사일 다발이 이지스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그사이.
파앗!
뒤로 물러섰던 정우는 바닥을 움푹 밀어내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한껏 뒤로 젖힌 창을 던져 버린 정우의 손에 지팡이가 들렸다.
“그래비티!”
순식간에 펼쳐진 마법에 창의 속력이 빨라진다.
이지스는 눈을 빛내며 쿵, 발을 굴렀다.
푹!
돌연 기세를 잃고 근처에 떨어지는 창을 본 정우의 표정에 아쉬움이 생겨났다.
“…디스펠.”
“마법의 기본 아니겠소?”
매직 미사일까지 전부 없애 버린 이지스의 태연한 태도에 정우는 이를 갈았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이지스는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정우의 눈빛을 보고 멈칫했다.
그러고는 움찔, 시선을 발아래로 돌렸다.
“……허어!”
다급하게 발을 떼며 움직인 그의 발밑에서.
푸욱!
가느다란 은빛 줄이 튀어나왔다.
마력을 머금어 뻣뻣한 그것이 뱀처럼 이지스를 따라 움직였고.
쿵!
그와 동시에 발을 구른 정우의 행동에, 이지스는 자신의 경로를 교묘하게 비틀어 버리는 그래비티의 활용에 다시 한번 디스펠을 사용했다.
힘을 잃고 떨어지는 줄과 사라지는 그래비티의 영향에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을 가득 채우는 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창날이었다.
“실드.”
투명한 막이 창을 막았다.
“……?”
이지스는 너무도 가볍게 뒤로 튕기는 창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차!
그의 고개가 다급히 등 뒤로 향했을 때.
어느새 블링크로 이동한 정우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매직 미사일을 터트리고 있었다.
벌 떼와 같은 소음이 귓가를 가득 채우는 사이.
정우의 손에서 풀려난 은빛 줄이 지면을 쓸 듯 움직여….
툭.
아주 가볍게 이지스의 발목에 닿았다.
“……!”
“……!”
둘의 마력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허어.”
묵직해진 눈동자로 정우를 보는 이지스가 허무한 투로 말했다.
“…닿았구려.”
“……그러게. 닿았네?”
정우의 입가가 조금씩 씰룩이기 시작했다.
“닿았다.”
현재의 이지스는 자신의 능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맹세가 아니었다면 이런 관계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격차.
심지어 이지스만 못하다고는 하나 어지간한 A급 마법사가 즐비한 곳이 바로 마녀의 숲이었다.
단일 세력만 놓고 보면 지구의 그 어떠한 길드보다도 뛰어난 세력이 아닌가.
“허허허. 아무리 왕의 수준보다 약간 더 높은 마력을 사용했다고 해도, 이렇게 며칠 만에 닿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이지스는 마력의 수준을 정우보다 약간 상회해서 억제했다.
플레이어로 따지면 A-급 정도.
‘아무리 마력 외에도 수준 자체를 억눌렀다지만 대단하군. …그릇을 수복하기 시작한 왕의 자질은 날 압도 하는군. 마치 그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하는 정우를 보는 이지스가 입술을 비틀었다.
“이제… 나도 공격을 해도 되겠구려.”
“……!”
흥분을 싸늘하게 식게 만드는 이지스의 발언에 정우의 눈이 짜게 식었다.
* * *
-흥!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니에요? \(´◓Д◔`)/
메아리가 볼을 부풀렸다.
이지스와의 훈련 내용을 들은 후 대뜸 저런 표정으로 불만을 표했다.
정우는 그런 메아리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내게 도움이 되는 거니까, 나쁠 건 없지.”
-주인님은 너무 물러요.
메아리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정우는 협회의 트레이닝 센터로 입장했다.
“한정우 플레이어. 확인되었습니다. 저기, 이분 안내 좀 해드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정우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기실을 발견했다.
“여기입니다.”
대기실을 본 직원의 눈이 빛났다.
개인 대기실을 부여받았다는 건 협회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데리러 간다니까, 들어왔네요?”
또각, 소리와 함께 유 대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정우를 안내한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움찔한 직원이 입맛을 다신 뒤 물러났다.
“…아무튼 간에 먹음직스러운 먹이만 보면 가만히 두질 못하는 게 직원들 특성이라니까요.”
직원이 사라지자마자 투덜대는 유 대리를 정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보았다.
유 대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정우를 돌아보았다.
“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정우 씨 덕분에 얻은 게 많아서 이젠 포기하고 싶지가 않거든요.”
“음…. 뭐 저도 유 대리님이 훨씬 편해요.”
정우의 말에 유 대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요.”
“…좋아야 하는데.”
“왜요? 상대들이 다 강한가요?”
“대전표 못 보셨죠?”
“네.”
정우를 보는 유 대리의 눈빛이 묘했다.
“저번에 편수 보셨다고 했죠?”
“편수 플레이어도 지원했나 보네요.”
“심지어 지명이에요.”
“…지명요?”
유 대리는 어제까지 정우와 함께 있다가 대전을 준비한다고 하루 일찍 협회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랐다.
정우의 상대들 중에서 생각보다 유명한 인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B급 플레이어와 E급 플레이어의 대결.
말도 안 되는 대결이 하나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배정되어 있었다.
“제대로 검증해 보겠다는 소리군요.”
“어? 웃음이 나와요?”
“나오죠. 제대로 검증하면 그만이니까요.”
“…이상하네. 자신감이 넘치는 게 뭔가 어색해요.”
“하하.”
“그럼 잠깐만 쉬고 있어요. 곧 시작이니까 준비가 끝나는 대로 부를게요.”
“알았어요.”
유 대리가 나가자 정우는 소파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편수라…….”
유서린이 작정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 정도도 못 넘어서야, 개인팀을 요청한 이유가 없지.”
정우 역시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 * *
결론만 놓고 보면.
“……허탈하네.”
대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유서린은 분명히 대전을 위해 여러 준비를 끝마쳤다.
꽤 괜찮은 인력도 지원받았고, 빌런 대책반을 위한 여러 시스템도 구축했다.
언제부터 준비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고.
유 대리를 통해서 듣는 정보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모든 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허탈, 이럴 줄 알고 다리 아프게 이동했나? (,,Ծ‸Ծ,, )
“넌 걷지도 않았잖아.”
-느낌상 다리가 아프다고요!
메아리의 허언을 무시한 정우가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녀가 대전이란 걸 통해서 자신을 검증한다고 했을 때.
정우는 반색했다.
자신만 팀원으로 받아들일 게 아닌 이상, 여러 팀원이 합류하게 될 거고.
그렇게 될 경우 독자적인 행동을 할 정우는 어차피 팀원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으니까.
유서린 역시 미리 그런 준비를 한 셈이라고 생각해서, 정우는 오히려 대전에서 어느 정도 활약을 펼칠 생각이었었다.
“…그래도 이것도 나쁘지 않아.”
따지고 보면 지금의 상황은 더 좋았다.
빌런으로 의심되는 활동이 발견되었다.
유서린은 대전을 미루고, 아직까진 유일한 팀원인 정우에게 합류를 요청했다.
전라남도 고흥까지 다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얼마나 급한 일인지.
“걱정 말아요, 한정우 플레이어. 어지간한 거리는 어차피 드는 비용이 비슷해요.”
공간이동마법을 준비하는 박 주임의 말에 정우는 인사를 나눴다.
“철원에서 고생 좀 하셨다면서요?”
“…말도 말아요. 던전 브레이크 반경이 넓어진 건지 갑자기 일어난 좀비들에게 쫓기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아, 한정우 씨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박 주임이 정우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여기 앉아 있으면 여러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한정우 씨도 나름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 성장 말하는 건가요?”
“그것도 그렇고. 뭔가 조급해 보였는데 약간은 그런 게 줄었다고 해야 할까요? 뭐, 성장하고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다.
“사담은 그만하죠.”
“……!”
‘언제 다가왔지?’
정우가 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장을 갖춘 유서린이 서 있었다.
은빛과 금빛이 절묘하게 얽혀 있는 갑옷을 본 정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저거, 용맹의 갑옷 아니야?’
제국의 왕실기사단장에게 주어지는 갑옷.
어지간한 마법 공격과 물리 공격엔 면역에 가까운 방어력을 자랑하는, 아티팩트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물건이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겠지. 도움이 안 되네.’
정우의 생각에 충격을 받은 메아리가 구석으로 찌그러지고.
박 주임은 괜히 마법진 발동을 준비하는 척 슬쩍 발을 뺐다.
유서린의 표정은 싸늘했다.
“한정우 플레이어.”
“…네?”
“지금부터 이동해서 만나는 플레이어는 모조리 죽여도 좋아요.”
“……!”
정우가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유서린을 보았지만 그녀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저 긴 장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빠득.
신경 쓰일 정도로 날카롭게 이를 갈며 마법진의 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좌표 확실하죠?”
“확실합니다.”
“바로 이동하죠.”
유서린의 지시와 함께 마법진이 발동됐다.
정우는 다시 한번 마법진의 흐름을 눈에 담으며.
쏴아-아!
공간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 ‘공간이동’을 각인하였습니다. ]
떠오르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일변한 상황에 긴장을 하고 있을 때.
유서린의 기세가 급변했다.
쿵!
심장이 내려앉고, 뒷목이 절로 움츠러들 정도로.
파스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살기는 날카로웠다.
반사적으로 마력을 퍼트린 정우의 기감에 잡히는.
[ ‘악의(惡意)’를 각인합니다. ]
[ ‘악의(惡意)’를 각인합니다. ]
[ ‘악의(惡意)’를 각인합니다. ]
[ ‘악의(惡意)’를……. ]
끝도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에.
정우의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