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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9화 (19/293)

19화

-단서

“오우! 본론부터 들어가지!”

어지간한 금발의 할리우드 배우보다도 잘생긴 외모.

쉰이 넘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모습의 호리호리한 사내는 간단한 악수로 인사를 끝냈다.

“곧장 이동하자고.”

연구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제임스 밀러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어리숙한 표정을 짓던 둘도 제임스 밀러의 고갯짓에 뒤를 따랐다.

“꽤 흥미로운 자료라, 어우! 몇 번이나 읽었어.”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탄사는 버릇처럼 보였다.

제임스 밀러는 꽤 밝은 사람이었다.

‘하기야, 대외적인 이미지도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였으니까….’

또한 그는 천재로도 통했다.

게임에서도 이해도에 따라 같은 스킬과 능력을 지니고도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하물며 이능이 게임의 프로그래밍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인간의 이해도가 매우 중요했고, 개인의 재능은 게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단순히 스킬의 사용을 떠나, 그것의 원론을 이해해야 하는 탐구가 동반되었다.

특히나 여러 물질에 대한 본질을 다루는 연금술사는, 천재가 아니면 이해조차 불가능한 직업이었다.

따지고 보면 과학자들처럼 말이다.

그런 천재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불리는 자.

그가 바로 제임스 밀러였다.

꽤나 말을 좋아하는지, 제임스 밀러는 수다스럽게 재잘거렸다.

때문에 이동하는 내내 견학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천재는 괴짜라더니. 영상보다 실제는 더하군.’

그렇게 걷는 도중.

정우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닫힌 문.

별다른 표시조차 없는 문의 안쪽을 조용히 응시했다.

“응?”

앞서가던 제임스 밀러가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왜?”

제임스 밀러의 물음에 정우가 반응하지 않자, 유 대리가 그의 팔을 콕 찔렀다.

“…아, 혹시 여기도 실험실인가요?”

“응? 오우! 어떻게 알았대?”

제임스 밀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무슨, 실험을 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어렵지 않지. 슈퍼 대단한 거니까. 성과는 없어도?”

제임스 밀러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인위적인 게이트 생성 장치. 이상하게 요즘에 거기에 꽂혔거든! 슈퍼 대단한 거야! 잘만 개발하면,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으니까! 그럼…! 우워! 클리어 전에 던전과 게이트를 연결하고, 연결한 통로를 토대로 클로징을 인위적으로 미룰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와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야! 오싹하지 않아? 미스 유도 그렇게 생각하지?”

쿵!

제임스 밀러의 말을 듣던 정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인위적인 게이트 생성 장치.

그것을 뒤따른 설명은….

‘아버지!’

무려 5년 동안이나 찾지 못했던 G급 던전을 인위적으로 개방할 수 있을지도 모를 그런 방법이었으니까.

그런 기대감으로 휩싸인 정우는, 자신의 발길을 잡아끌었던 것을 조용히 응시했다.

[ ‘알 수 없는 열쇠’가 반응합니다. ]

게이트 생성.

열쇠.

두 가지 연관성에 정우는 속으로 경악했다.

‘설마… 이게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열쇠인 건가?’

* * *

“좋아! 테스트는 끝!”

간단한 테스트를 마친 제임스 밀러가 결과를 보며 고심했다.

닥터 브라운에게 전해 받은 자료와 비교한 결과, 눈이 살짝 커졌다.

‘브라운이 왜 마법 부여와 비교했는지 알겠네.’

“한정우.”

“…네?”

“혹시 연금술의 마법 부여에 대해 알고 있어?”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오우. 좋아! 테스트 겸 물건을 구하러 갈까?”

“물건은 구하러 간다고요?”

“주문해놨는데 배송이 조금 늦어서 직접 구하려고….”

제임스 밀러는 태블릿을 흔들었다.

“방금 던전을 구매했어.”

“…네?”

정우와 유 대리의 눈이 커졌다.

* * *

투다다다다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재료가 없다고 던전을 임대하다니.

“…역시 클래스가 다르네요.”

유 대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시대에 이르러 연금술은 세계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던전 안의 부산물.

그것을 가공하여 과학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만든 자들이 바로 연금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금술사는 소수의 직업군으로도 세계 전역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권력, 재력, 무력까지.

그런 연금술사 중에서도 탑인 제임스 밀러에게 던전 구매는 그저 가벼운 쇼핑에 가까웠다.

정우는 그 부분에서 현실감을 잃었다.

“자, 레이디 퍼스트!”

어느새 도착한 헬기에서 내려 우아한 자세로 손을 내미는 제임스 밀러에 이끌려 유 대리와 정우가 땅을 밟았다.

“여기가 어딘가요?”

“우아치타 국유림(Ouachita National Forest). 여기 풍경이 매우 예쁘다고!”

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국가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나무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연 속에서도 독보적인 이질감을 자랑하는 게이트가 보였다.

“자, 준비하자고?”

그렇게 말한 제임스 밀러가 손뼉을 쳤다.

게이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 중 셋이 제임스 밀러의 곁에 섰다.

“경호대야. 이들과 같이 입장할 거지. 셋 다 D급.”

단단해 보이는 플레이어를 보며 정우가 말했다.

“저까지 넷만 입장하나요?”

“응? 내가 말 안 했나?”

제임스 밀러와 눈을 마주친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오우! 이런, 젠장. 설명도 없었군. 나까지 다섯이야!”

“……미스터 밀러? 제가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당신은 A급이 아니던가요?”

“A급 맞는데?”

“그런데 어떻게… 입장하신다는 거죠?”

유 대리의 의문에 제임스 밀러가 은은하게 빛나는 약병 하나를 들어 흔들었다.

“이거면 해결이 되지.”

“…그게 뭔데요?”

“흐흐. 마력억제제. 아직 시판하지는 않았는데, 마력의 일부를 뚝 떼어서 아예 없는 것처럼 속이는 약물이야. 말 그대로 억제제라 부작용이 심하긴 한데….”

제임스 밀러가 정우와 눈을 마주치며 윙크했다.

“이런 흥미로운 기회를 고작해야 부작용 따위로 날릴 순 없잖아? 오, 그리고 한정우? 미안하지만 이걸 아무리 부어 마셔도 G에는 못 들어가. 아예 법칙이 다르니까 그런 기대되는 표정을 지으면, 미안하지.”

제임스 밀러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열쇠와 인공게이트생성장치에 이어 약물까지.

의외로 G급 던전과 관련이 있을 법한 것들을 연달아 접한 터라 표정 관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플레이어에겐 포커페이스가 필요하지. 포커페이스엔 포커만 한 게 없으니까 좀 쳐봐.”

제임스 밀러는 진심이라고 덧붙였다.

잡담은 그만하자고 말한 제임스 밀러가 약병을 들어 눈살을 찌푸리며 마셨다.

우웩, 물약을 다 마신 후 혀를 내밀고 고약한 음식을 먹었다는 듯 캑캑댔다.

그와 동시에.

“……!”

정우는 제임스 밀러를 보며 놀랐다.

자연스럽게 감춰져 있던 마력이 한껏 드러나 존재감을 부풀렸다가,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든다.

그 기묘한 형태에 정우는 홀린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후욱!

몇 번이나 흐름이 뒤틀리고서야, 마력은 제임스 밀러의 몸에 차분히 안착했다.

“후우. 이거… 오래 못 가겠는데?”

E급 던전에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C급까지는 마력 수치를 낮춰야 했다.

억눌러야 하는 단계가 2단계다 보니 마력억제제의 지속 시간이 현저히 떨어졌다.

“고고. 빨리 입장하자고!”

제임스 밀러의 재촉에 정우는 다급히 게이트를 넘었고.

화앗!

탁!

쿵!

철벙.

노련하게 경호를 서는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보며 정우는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D급이라 그런가 둔하네? 흐음. 훈련을 더 시켜야 하나. 아니면 던전을 더 구매해야 하나?”

하지만 제임스 밀러는 불만인 듯했다.

그 와중에도 클래스를 입증하는 고민엔 기도 차지 않을 지경이었다.

“몬스터는 언제 오지?”

마치 친구를 기다리는 듯, 눈을 빛내며 묻는 제임스 밀러의 태도에 정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시간이 조금 걸려요. 경험상 단순히 이동 시간 정도로 여겨지고요.”

“그럼 미스터 한의 입장을 몬스터들이 바로 안다? 그것도 일제히? 그런 의미?”

“…음. 네.”

정우의 긍정에 제임스 밀러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입장과 동시에 사라진 게이트 너머로 넓은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질퍽한 흙냄새가 확, 모두의 코를 자극했다.

“오, 벌써 입질인가?”

아무리 마력억제제를 사용하여 D급의 마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임스 밀러의 경험은 A급의 그것이었다.

격변의 시대를 겪은 천재.

몬스터의 등장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는 그였다.

그리고 다음으론.

‘셋. 아니, 넷인가?’

정우였다.

제임스 밀러의 눈이 빛났다.

‘호오! 마력감지력이 뛰어나다더니 아까의 반응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건 재능인데? 마법 계열이라고 해도 이 정도 감지력을 보이는 이는 드문데……. 아니, 없나? 마력 수치가 4 정도였나? 오우! 불가능한 일이었군!’

제임스 밀러는 정우의 마력 수치를 떠올리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붉은 습지 도마뱀의 ‘담낭’을 채취해야 하니, 이왕이면 온전한 형태로 잡아줘.”

제임스 밀러가 정우를 보며 말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경호원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미리 지시가 내려진 사람처럼, 아니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처럼 굳건히 제임스 밀러의 주변만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콰르르르.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찰방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거대한 이구아나처럼 생긴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웅웅!

정우의 공격도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마치 물고기처럼 유영하며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붉은 습지 도마뱀을 강타한다.

콰……!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긴 목을 꺾으며 풀썩 쓰러지는 붉은 습지 도마뱀을 본 제임스 밀러가 호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캐스팅 시간이 미칠 듯이 짧아. 게다가 저런 정확도에, 컨트롤이라면… 질 씨에게도 뒤지지 않잖아?’

놀라움이 가라앉기도 전에.

자신을 힐끗 본 정우가 품속에서 삼단창을 꺼내 쥐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오.”

경호원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정우의 움직임은 뛰어났다.

습지에서 드러난 굵은 나무의 뿌리를 밟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결코 마법 계열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민했다.

부웅, 콰득!

나무뿌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서 도마뱀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착지하는 모습은, 꽤나 노련한 근접 계열처럼 보였다.

“영입, 하려고 그러십니까? 한국의 루키라도 되는 겁니까?”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경호원이 은근히 물었다.

내심 정우의 움직임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영입? 아니. 하면 좋겠지만, 해선 안 되겠지? 오우. 근데 아쉽긴 아쉽네.”

세 번의 공략.

성장하지 않은 상태가 이 정도라는 건 후일이 기대된다는 의미였다.

루키?

마력만 성장하면 금방 상승세를 펼칠 게 분명한 인재였다.

마력만 성장한다면….

‘연구! 연구만 하면 되는 거야. 아하하.’

특이 케이스를 연구하겠다는 열의로 히죽 웃던 제임스 밀러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간다.

아니, 이리저리 몸까지 움직일 정도다.

“전투, 준비!”

제임스 밀러의 말에 경호원들이 각자 무기를 틀어쥐었다.

제임스 밀러도 품에서 여러 약병을 꺼내 쥐었다.

다른 무리의 접근을 발견한 후 움직이려던 정우의 고개 역시 한껏 치솟았다.

“온다…!”

레이더에 잡히는 적군처럼, 정우의 감지 범위에 잡히는 몬스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를 보며 정우가 고개를 돌려 제임스 밀러와 눈을 마주쳤다.

제임스 밀러의 흥미 가득한 눈이 정우의 활약을 재촉했다.

꾸욱!

창을 거머쥔 채로 빠르게 물러난 정우가 진형에 합세하며 마력을 전개한다.

전면에 떠오른 매직 미사일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그 기세를 더해 간다.

바람마저 일 정도의 회전.

투척을 준비하던 제임스 밀러의 눈도 그것에 꽂혔다.

그러고는 숨길 수 없는 진한 미소를 짓는다.

‘대체 날 어디까지 놀라게 할 셈이지? 한정우? 슈퍼! 재미있군.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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