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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5화 (15/293)

15화

-조급함

말총머리의 여자는 지친 표정으로 던전에서 나오는 사내를 반겼다.

피로한 모습의 사내는 여자가 건네는 포션을 마셨다.

“후우…….”

“또예요?”

“네.”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생에 몬스터와 원수라도 진 걸까요?”

“몬스터와 원수를 졌으면… 전 영웅이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호호. 맞네요.”

유 대리와 정우는 차를 탔다.

“협회로 가야 해요.”

“왜요?”

“정우 씨의 상태를 확인해 봐야죠. 협회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지속적인 검사가 조건이라면… 만세죠.”

“오늘은 여유도 안 주는군요.”

“던전에서의 일도… 정확하게 처리하려면 당장 파악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누가요?”

“현장 요원이요.”

“현장 요원?”

“저죠, 누구겠어요?”

피식 웃은 유 대리가 속도를 높였다.

* * *

“세 번째 클리어지?”

“네.”

“신기하네. 몬스터를 꾀는 페로몬을 내뿜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그 페로몬이 러브인 것도 아닌걸요?”

“몬스터와 러브러브한 페로몬이라면… 내가 다 무섭다. 연구에는 무지막지한 도움이 되겠지만.”

유 대리는 연구원의 말에 웃었다.

“특별히 잡히는 게 있어요?”

“없어. 아무것도.”

“근데 왜일까요? 유독… 한정우 씨에게만.”

“전생에 원한이라도 졌나 보지.”

“제가 아까 그 말을 했다가, 그럼 자기가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어? 맞는 말이네. 히어로! 슈퍼 히어로!”

“이대로 가면 진짜 슈퍼 히어로가 될걸요?”

“그럼 좋은 거지. 인류에게나 개인에게나.”

“그 전에 죽을지도 몰라요. 아니, 죽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연구하고 있어. 왜 그가 들어가는 던전마다 몬스터들이 살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건지.”

두 번의 추가 공략.

나이트 길드의 사막 고블린 던전처럼 특별한 비밀 공간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정우의 던전 공략은 일반적인 공략에 비해 몇 배나 힘들었다.

사막 고블린 때처럼.

“하지만 세 번의 사례를 통해 하나의 가설을 만들 수는 있었어.”

“뭔데요?”

“지금까지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을 지녔다는 거.”

“…그건 너무 심한 비약 아니에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그가 오히려 그런 능력을 지닌 거였으면 좋겠어.”

연구원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는 와중, 유 대리는 훈련하는 정우를 보았다.

몬스터와 싸우는 훈련.

“누가… 저 사람을 마법사라고 볼지….”

마법진을 통해 형상화된 몬스터를 가격하는 정우의 움직임은 근접 계열처럼 날래기만 했다.

“그러게. 여러모로 신기할 뿐이야.”

“마력 수치는 여전히 낮나요?”

“어. 아주.”

“1레벨?”

“그러게. 왜… 여전히 1레벨인지 모르겠어.”

연구원이 모니터에 창을 하나 띄웠다.

“여러 측정 결과야.”

“…이게 진짜예요?”

“어. 두 번의 데이터와 테스트를 통한 종합 수치. 아마, 그가 보는 상태창에 꽤 근접할 거야.”

“20이 넘는다고요?”

“신체 능력은. E급 플레이어 수준이라고 판단됐어.”

“그에 반해 마력은 F급 1레벨?”

“어.”

“효율성은요?”

“미정(未定).”

“왜요?”

“우리 판단에는 그의 마력 수치를 높아봤자 3, 4 정도로 보고 있어. 근데… 그 수치로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지. 앞전에 보고서 봤지? 매직 미사일만 15발. 그러고도 탈진이 안 됐지. 이건 말이 안 돼. 왜 위에서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가 갈 정도야.”

“하지만 막상 던전을 공략해도 마력 수치는 그대로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지. 마력만 상승하면… 어쩌면….”

“어쩌면?”

“모르지. 또 다른 S급 플레이어가 탄생할지.”

“…….”

“그래서 말이야.”

연구원이 유 대리와 눈을 마주쳤다.

흥미로움으로 반작이는 연구원의 눈빛에 유 대리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또 제가 곤란한 일이군요?”

“자기가 제대로 관찰해줘. 정말로 던전의 법칙을 뒤흔들 수 있는지. 만약 그 방법만 안다면, 우리도 우리 입맛대로 법칙을 바꿀 수 있을 거야!”

내가 왜 흥분하는지 알겠지? 연구원이 유 대리의 어깨를 툭 쳤다.

“정우 씨는 우리 실험체가 아니에요.”

“알아. 협력 관계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약 관계죠. 그냥, 일반적인 플레이어와 똑같은….”

“당장의 우위는 협회에 있어.”

“우위라고 보면 안 돼요. 그냥 동등하게 봐요.”

“자기는 꽤 냉정하면서도 의외로 물러.”

연구원이 짓궂게 웃으면서 다시 유 대리의 어깨를 쳤다.

“박사님은 여전히 능글맞고요.”

“자기만 하려고.”

연구원은 몇 번 더 키보드를 조작하더니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어차피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검사는 필요 없어. 수치가 같을 테니까.”

“그럼 그만 와요?”

“어. 대신에 꼭 변화가 생기면 와야 해.”

“알았어요.”

“그를 이용할 의도는 없어. 그저 몬스터의 체계를 더 파악하고 싶을 뿐이야. 가능하면… 이 빌어먹을 짓을 끝내고 싶기도 하고.”

내 밥줄을 내가 끊을 생각을 하다니 미쳤지, 연구원의 말에 유 대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실업자가 되겠네요.”

“바라는 바야.”

씨익 웃은 유 대리가 몸을 돌렸다.

“아! 한정우 플레이어는 언제까지 협회의 품에 있을 예정이래?”

“당장은 못 벗어날 거예요.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음흉해 보이나?”

“결국 받았구나? 대출.”

“그렇죠. 그래도 이번엔 좀 멋졌어요. 자격을 얻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대출이라는 게.”

“빚쟁인데?”

“부모의 안전을 챙긴 거잖아요. 그런 빚이면… 훌륭하죠.”

“그러다가 꼬시겠다?”

“진짜 꼬실까요? 풉. 됐어요. 그럴 생각 없는 거 알면서 그러시네.”

유 대리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인사했다.

“잘 계세요. 술은 좀 줄이시고….”

연구원은 유 대리의 사라지는 말총머리를 보고는 픽 웃었다.

“잘됐네. 더 관찰할 시간이 있으니까….”

길드로 몸을 옮기면 이런 기회도 없을 터였다.

연구원은 부디 조만간 정우의 능력 수치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랐다.

그렇게 흥미로운 눈으로.

“수고하셨습니다.”

검사를 끝마친 정우를 보았다.

* * *

유 대리와도 작별 인사를 한 정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피곤했다.

“…오늘은 여기서 쉴까?”

협회의 숙소를 떠올린 정우가 잠깐 고민했지만 집으로 향했다.

걷고 있는 정우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마력이 성장하지 않는다.

입장하는 던전마다 몬스터들이 자신을 생사대적처럼 여기고 달려든다.

어떻게든 죽이려고.

어떻게든 없애려고.

그 농밀한 악의에 정우는 지친 듯 택시에 몸을 실었다.

쉴 틈 없는 진행.

몇 번이나 공략이 진행된 던전에서조차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변수가 발생하고, 등장하지 않아야 할 몬스터가 등장했다.

던전 내 몬스터의 수가 달라졌고, 놈들의 집념이 달라졌다.

“……후우.”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검사까지 마치니 절로 잠이 쏟아질 정도였다.

택시에서 내린 정우는 카드를 내밀었다.

띡.

문이 열리고, 경비원들에게 인사를 한 정우가 긴 입구를 걸었다.

새로운 터전.

협회에서 50억이란 금액을 대출받은 정우는 어머니와 동생을 이사시켰다.

과거 종로였던 B 섹터는 무리였지만, 다행히 협회 근처인 A 섹터에는 입주할 수 있었다.

대출 금액이 워낙 세다 보니 처음에는 우려됐지만, 빌런 오한우 건을 겪은 정우에게는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골목은 더 이상 사양이었다.

마력만 쌓으면….

정우는 그런 희망이 있었다.

신체 능력은 어지간한 E급 플레이어를 상회하고, 마법의 위력은 F급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효율성은 협회가 난리 날 정도로 뛰어났고, 몇몇 길드는 직원을 통해 접선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두 번의 추가 공략 이후.

정우는 모든 게 답답해졌다.

성장하지 않는 자신도.

막대한 대출금도.

“사막 고블린 족장을…….”

-!!!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듯, 느낌표가 연달아 떠올랐다.

“…알아. 사막 고블린 족장을 잡을 수 없다는 거. 답답해서 그래.”

그럼에도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마력 수치 증가라는 보상을 눈앞에 두고, 어찌 조급함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을까.

마력 수치는 플레이어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이대로라면 계속 F급에서 머물지도 몰라.’

그건 사양이었다.

협회에서 왜 자신에게 A급 대우를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원인은 G급 던전에 있을 것이라고 정우는 판단했다.

협회장과의 대화가 주로 G급 던전을 주제로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매번 이 상태라면, A급 대우를 박탈당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50억.

F급에서 머문다면 갚을 길이 없었다.

물론, 플레이어가 되었으니 벌이는 나아지겠지만, 그래 봤자 위험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F급 플레이어 따위에겐 대출금도 박할 게 뻔하니까.

메아리는 몇 번이고 정우를 다독이듯 이모티콘을 띄웠다.

정우는 그 이모티콘에 위로받은 듯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문 앞에서 한숨과 함께 답답함을 날려 버린 정우가 애써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저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사와 함께 맡아지는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에, 정우는 다시 다짐할 뿐이었다.

성장할 방법.

그것을 찾아내기로.

* * *

정우가 그렇게 성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음…….”

후드를 쓴 한 무리도 한 가지 고민을 가지고 모여 있었다.

“지원은?”

“연락은 없습니다.”

“없다고 봐야겠군.”

거대한 사내의 말에 다른 넷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말이 안 되잖아. 이 정도 작전에 은신 능력을 지닌 정찰병 하나 안 보내 준다고?”

“보냈는데 죽어서 그런 거겠지. 빌어먹을 ‘사신’ 길드 때문에.”

“멍청한 새끼! 협회에 잡혔을 때부터 그놈은 하자였어.”

“마땅한 정찰병이 없어서 구한 차선책이었지.”

쾅!

“그러니까! 이 작전에 그따위 허접한 놈을 구해 준 게 말이나 되냐고!”

“네 말은 알겠는데, 그래 봤자 위에서 결정한 거야. 열을 내 봤자라고.”

“끄응….”

“정찰병이 없으면 이 일은 시작도 안 돼.”

“그래서.”

거한의 말에 모두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정찰병을 데리고 와야겠다.”

“…리더?”

“저… 죄송한 말이지만, 이 상황에 자리를 비우신다고요?”

“이 상황이니 비우는 거다. 정찰병은 꼭 필요하니까.”

“어디서 데려오실 예정입니까?”

“C팀에 요청을 할 생각이다.”

“…C팀이라면…… 가능성이 있겠군요.”

“거절하더라도 한 놈은 데리고 올 것이다.”

거한의 붉은 눈이 왜소한 체형의 여성에게 향했다.

“그럼 제가 ‘세뇌’해야겠네요.”

“그래.”

“…후우.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마정석이라도 좀 구해놔야겠어요.”

“블랙마켓을 이용할 셈이야?”

“그래. 아무래도… 여긴 땅이 좁으니까.”

“빌어먹을 한국. 이 좁은 땅에 뭐 이리 실력자가 많은지 모르겠군.”

거한이 손을 들었다.

“내가 정찰이 가능한 놈을 데려올 동안 너희도 할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거한의 눈이 불타올랐다.

등 뒤의 거대한 도끼가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웅웅, 공명하며 떨렸다.

“잡아놔.”

“…찾아오겠습니다.”

주어가 사라진 명령에도 모두는 고개를 조아렸다.

이들 중 거한은 가장 강한 인물이었고, 자신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강자였다.

힘이 곧 진리인 이들의 법칙에서, 모두는 거한의 말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지?”

거한의 말에 가장 가까이 앉은 사내가 고민했다.

“평소라면 이틀이 채 안 걸렸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리더도 아시다시피 홍염 길드 때문에 정보원에게서 소식이 끊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블랙마켓에서 마정석을 구하는 김에 정보를 구하면 되겠지만, 아쉽게도 블랙마켓 정보부터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켓에서 정보를 구하면 바로 진행할 수는 있지만, 또 거기까진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몸을 사려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일주일은 넘지 않을 겁니다.”

“나쁘지 않군.”

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다.

“작전을 앞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군.”

거한의 말마따나 이번 일은 꽤나 위신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잡아서 데리고 와. 우리의 훼손된 명예를 위해서라도 목을 베어야겠으니.”

“제가 가죠. 간만에 나들이 좀 할 겸.”

후드를 벗은 깡마른 사내의 얼굴에 질척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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