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지하유적
무언가가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사락거리는 모래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하던 공간에 생긴 소음이 공명하듯 울렸다.
“……큭!”
신음과 함께 쿨럭, 기침을 내뱉은 우현승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휙, 휘익!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경계하는 모습.
하지만 적이 보이지 않자 신음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동료의 상태를 확인했다.
“……쉿.”
정체불명의 공간.
벌써 수년간 사막 고블린의 던전을 이용해왔던 나이트 길드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발견되었다.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우현승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정우를 보았다.
기묘한 눈빛으로 정우를 보던 그가 정우의 손을 붙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군요.”
낙하충격이 의외로 적었다.
“마법이에요.”
“…음?”
“여기, 마법이 깔려 있다고요.”
정우의 말에 우현승이 뒤늦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리석이 깔린, 인공적인 구조물.
“…넓군요.”
“네. 일단 상태부터 점검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게 낫겠네요.”
정우의 생각에 동의한 우현승이 동료를 불러 지시했다.
일행의 상태를 책임져야 하는 힐러를 제외한 모두는 주변을 탐색했다.
서로가 보일 정도의 거리.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거리까지였지만.
“…아무도 없군요.”
“그러게요. 근데 왜 갑자기 또 말을 높이는 거죠?”
“음? 그랬나요? 아, 그랬군요…. 전투는 아니니까, 넘어가요.”
우현승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장의 위험이 없을 거라 판단한 일행은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진행했다.
“이 맛없는 게 맛있게 느껴질 줄이야….”
“진수에게 들었는데, 나중엔 이것도 없어서 못 먹는다고 그러더라고요.”
“흐으. 하기야, D급만 되도 공략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진수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일행의 질문에 정우는 떠오르는 흑역사를 애써 억누르며 열심히 포장하여 설명했다.
에이, 절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검사에게 변명 아닌 거짓말을 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었지만, 정우는 친구의 위치를 고려해 꿋꿋이 거짓말로 그의 얼굴에 고급 포장지를 둘렀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흑역사를 풀면 아주 분위기가 좋았겠지만…. 아쉽네.’
“그나저나 여긴 어딜까요?”
“후우. 길드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공간이라니. 한정우 씨는 이걸 어떻게 발견한 거죠?”
“마력 감지로요.”
“긴박한 와중에도… 대단하네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던전을 벗어나면 감사 인사를 받죠.”
정우의 대답에 마력사가 자기 스타일이라며 눈을 빛냈다.
“불침번을 서야겠다.”
식사와 잡담이 끝난 뒤, 우현승은 휴식을 결정했다.
“그래요! 아, 죽는 줄 알았다고요!”
마력사가 벌러덩 드러누우며 말했다.
“누우면 안 돼. 너부터 불침번이니까.”
“끄응…….”
정우는 피식 웃으며 간이 침낭을 꺼내 덮었다.
침낭 안에 들어가는 호사는 불가능했다.
이곳은 안전지대가 아니었으니까.
‘메아리.’
-???
‘넌 여기를 어떻게 알았지?’
-(ʃ⌣́,⌣́ƪ)
‘모르겠어?’
-(∩`-´ )⊃━☆゚.*・。゚
‘……마법? 아니면… 능력인 건가?’
-!!!
‘하……. 덕분에 살았다. 일단은 고마워. 그나저나 너는 여기가 어딘지 아는 거야?’
-!!!
‘좋아. 일단은 우연이든 능력이든 그렇다 치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정우는 긴 숨을 내뱉었다.
메아리와의 이 답답한 소통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마력 수치를 꼭 올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짧은 취침 이후.
‘방향을 잡아줘.’
메아리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은 정우를 따라 일행은 탐색을 진행했다.
“…꼭 중세시대 신전 같은 느낌인데요?”
“그러게.”
일행의 대화를 들으며 정우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상하게 눈에 익어.’
정우는 주변을 살피며 걷고 또 걸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몬스터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워, 이거 왜 이렇게 넓어요? 지상이랑 연결되는 통로는 있는 걸까요?”
“그러게.”
“아… 반응에 영혼이 없네요.”
“그러게.”
피식 웃는 우현승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마력사.
“…우리 둘만 떠드는 거 같네요.”
“정확히는 너만.”
우현승의 말에 마력사가 그의 등을 치려는 순간.
“…쉿.”
정우가 옆으로 손을 펴며 일행에게 주의를 건넸다.
“……이, 앞에. 뭔가 있어요.”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F급 던전.
편안하게 공략 가능한 곳.
입장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했던 던전은 없었다.
모두는 은연중에 죽음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이번 던전의 공략은 모두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고블린일까?
이번엔 얼마나…….
그렇게 긴장을 하며 소리 없이 진형을 갖추어 전진했다.
우현승의 수신호에 맞춰 꺾어지는 복도를 지나고, 다시금 넓어지는 공동을 앞에 두었을 때.
쿠우웅!
“……!”
천장의 모래가 후드득 떨어질 정도의 진동과 함께.
“…뭐, 뭐야?”
“마력이……!”
전면에서 마력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꿀꺽.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일행.
그리고 뭉쳐지는 마력의 덩어리.
긴장감으로 역력하던 그들이 새로운 적의 등장을 우려했을 때.
“…하아!”
“X발…….”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각자 안도의 반응을 보였다.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예요! 와…… 게이트! 게이트가 여기에 생긴다고? 와…!”
“이 타이밍에? 지렸다! 진짜로!”
어지간히 놀랐는지 유약해 보이던 힐러도 욕을 내뱉으며 방방 뛰었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와중에.
“…….”
정우만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새로이 등장하는 퀘스트와 더불어.
“…….”
안쪽에서 느껴지는 섬뜩할 정도의 시선에….
“뭐 해요?”
자신의 팔을 툭 건드리는 마력사를 보자, 오소소 돋았던 소름 끼치는 시선이 흐려졌다.
‘시선이… 사라졌다.’
정우는 그렇게 게이트의 뻥 뚫린 구멍.
그곳의 텅 빈 뒤편을 노려보다가.
스륵.
일행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상하겠습니다.”
일전과는 다른 정중한 인사팀장의 태도에 정우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나이트 길드의 대처는 훌륭했다.
즉각적으로 D급의 플레이어 팀을 파견.
사막 고블린 토벌에 착수했다.
나이트 길드의 요청하에 그들의 건물에서 쉬고 있던 정우에게 전달된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평소와 같대요. 이게 말이 돼요? 우리가 단체로 환각에라도 빠졌던 걸까요?
그들은 고블린 부락을 확실하게 무너트렸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던 고블린 무리는 발견하지 못했다.
더불어 지하까지.
“그건 아닐 거야. 던전은 여전히 인간에게 미지의 장소니까… 숨겨진 조건을 우리도 모르게 충족시켰을지도 모르겠어.”
우현승은 그렇게 말하며 힐끗, 정우를 보았다.
왠지 모르게 한정우란 사람이 당시의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별개로.
“정우 씨도… 한잔, 하실래요?”
우현승은 정우에게 호감을 느꼈다.
“괜찮습니다.”
“아쉽네요. 다음에 이 팀장님과 한잔해요.”
“그러죠.”
휴게실에 모였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정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던전에서 나온 지 이틀이 지났다.
‘던전에서 나오기 전에 본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정우는 줄곧 그 의문을 품고 있었다.
“…모르겠군.”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추가로 받은 퀘스트.
정우의 시선이 허공을 쫓았다.
[ 사막 고블린의 징표 ]
사막 고블린 족장의 징표를 찾으십시오.
등급 : D
보상 : 사막 고블린 족장의 징표
마력 +1
‘보상’에 적혀 있는 ‘마력 +1’에 유독 눈길이 갔다.
“사막 고블린 족장의 징표라…. 당장은 할 수 없겠네.”
족장이 등장하는 던전은 D급이었다.
무리를 이끄는 리더.
특히나 지능이 높은 족장이 이끄는 무리는, 고블린 답지 않게 군대로 평가될 정도였다.
“그나마 마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군. …퀘스트를 완료했는데도 능력치가 변화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정우는 상태창을 보았다.
조금의 변화도 없는 상태창에 입맛을 다셨다.
등급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 때문에 스탯이 성장하지 못한 것이었다.
‘마력도 오르지 않은 건… 충격이지만. 어쩔 수 없지.’
정우는 마력의 성장을 당연시했었다.
모든 능력치 중 유일하게 마력만이 한 자릿수의 능력치였기 때문이다.
위기를 무릅쓰고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던전을 클로징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간단했다.
성장.
그리고 돈.
그중에서 정우는 성장이라는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패를 얻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다.
똑똑.
“누구시죠?”
문을 열자 보인 이는 초면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질끈 묶은 말총머리가 찰랑거렸다.
정체 모를 사람의 등장에 어색하게 인사를 한 정우를 향해, 여자가 말했다.
“유아영이라고 해요. 한정우 씨. 당신의… 비서죠.”
싱긋 웃는 유아영이 사원증을 내밀었다.
대한민국 플레이어 협회.
정우는 적당한 사람을 붙여주겠다던 유지석의 말을 기억해냈다.
도우미?
“…비서요?”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아영은 태연하게 정우를 스쳐 방안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을 올려 열었다.
한 물건을 꺼낸 유아영이 그것을 정우에게 내밀었다.
“비타예요. 무려 홀로그램이 내장된 물건이죠. C급 마정석이 들어간, 아주 뛰어난 물건이에요.”
“잡상인 같은 멘트네요.”
“농담? 뭐, 나름 신선하네요.”
유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요. 뭐… 진급인지 좌천인지는 까봐야 아는 거고…. 그 많은 일거리가 줄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덕분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신선한 반응에 멍한 표정의 정우도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위치가 걱정이시면 그냥 돌아가셔도 돼요.”
“그럼 전 진짜 좌천일걸요?”
“왜요? 이게 협회장님 지시라서요?”
“……협회장님 지시였어요?”
“몰랐나요?”
“…오. 몰랐어요. 몰랐죠! 알았으면 좌천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을걸요?”
협회장이라는 단어에 유아영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큰 행운을 마주한 사람처럼.
“큼. 좋아요. 한정우 씨. 저는 유아영이라고 하고요.”
헛기침을 한 유아영이 손을 내밀었다.
“당신의 비서예요.”
같은 말.
하지만 보다 확신에 찬 그녀의 모습에 정우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뭐 해요? 악수.”
그렇게 말하며 왼손으로 정우의 오른손을 잡아당긴 그녀가 손을 맞잡았다.
이게 악수인지, 강압인지 의문이 드는 사이.
“잘해 봐요. 최대한 보필할게요.”
유아영과 눈을 마주치며, 정우는 보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가볍게 느껴지는 것인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오른손에 힘을 주어 악수를 마친 정우가 말했다.
“좋아요. 유 비서님.”
“이왕이면 유 대리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직함이 좋으시다면야…. 유 대리님?”
“네.”
“제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어디까지죠?”
협회장은 도우미를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정우는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더불어 그 도우미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도.
‘협회장이 사람을 붙인 걸 보면…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겠지. 특별한 튜토리얼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움을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우의 질문에 유 대리가 싱긋 웃었다.
“A급요.”
“A급? A급 플레이어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왜죠?”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시나요? 저도 놀랐지만, 이미 놀란 후라 더 놀라지는 않는걸요. 협회장님과 친척 관계인가요?”
“그럴 리가 없죠.”
“알아요. 농담 한 번 해봤어요. 그만큼 저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소리니까요.”
“…….”
“아무튼 위. 아니, 협회장님께서는 한정우 씨에게 A급 플레이어에 준하는 권한을 주셨어요. 그만큼 재능을 눈여겨봤다고 판단해도 되겠죠. 유례는 없는 일이지만….”
“…그 A급 자격이 할 수 있는 범위는요?”
“A급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요. 무이자 대출도 가능하죠. 아이템을 대여하는 것도 가능하고, B급 이하의 던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협회의 트레이닝 센터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꽤 많지만… 차차 알아가도록 하고요.”
“…던전에 대한 정보요?”
“네.”
유 대리의 대답에 정우의 눈이 빛났다.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