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뭔가가 또 늘었다
* * *
소환주인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에일린을 보면서, 내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리치.
살점 하나 없는 해골의 몸을 지니고 있는 언데드 마법사.
강력한 마력을 다루는 이들의 시체에서 우연히 발생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갈망하여 스스로를 변이 시킨 결과물로 알려져 있는 이들은,
일단 분류상으로는 마족에 속해 있다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들의 존재는 마족 내에서도 극소수였다.
나름 마왕국의 중책으로서 제법 긴 시간 동안 여러 종류의 마족들을 보아온 나였지만, 리치를 본 경험은 다섯 번이 채 안 되었다.
아울러 이런 희귀성 만큼이나 리치들이 지니고 있는 힘은 상당히 강력했으며,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에일린의 경우는 본래부터 대신관으로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만큼 아마 단신으로 군단장이나 친위대급 2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괴물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힘과 별개로 리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어지간히 힘에 미친놈이 아니고선 리치가 되기를 선택하는 자들은 매우 적었다.
그 단점이란… 강력한 힘을 대가로 소위 ‘행복’이라는 것을 일절 누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은 더 이상 온기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고통 이외엔 어떠한 느낌에도 무감각하게 변해버리며,
포근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따스함이라는… 피부가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일체의 감각에서 완벽하게 격리되고 만다.
내장이 완전히 사라져 텅 비어 버린 해골의 몸은 더 이상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당연히 맛을 느끼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생식기가 없어졌기에 성행위 또한 당연히 불가능.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리치가 된 당사자에게 있어 끔찍하기 그지 없는 사실이 한 가지 더.
그것은, 이처럼 모든 감각에서 격리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그들이 경험했었던 그러한 행복에 대한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식사를 할 수 없는 몸은 끝 없는 허기와 식욕을 갈구하며,
온기를 느낄 수 없는 몸은 계속해서 따스함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생식기는 말 그대로 미쳐버릴 듯한 성욕이 끝없이 타오르게 된다.
이러한 끔찍하기 그지 없는 닿을 수 없게 된 욕망들은 리치들의 감정을 끝없이 자극하게 되며,
이로 인해 리치가 된 이들은 수행을 쌓아 욕망에 초탈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전투와 살육, 그리고 고통이라는 감정에 처절할 정도로 매달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전쟁터에선 누구보다 앞서서 더 많은 적들을 죽이고,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받기를 갈망하며 끝내 죽기를 원하는 자들.
이것이 리치가 된 이들의 비참하기 그지 없는 말로였으며.
마왕이 준 타락의 정수를 통해 소환주와 소환물 이라는 라는 결코 끊을 수 없는 노예 계약으로 맺어져 있는 에일린이 받게 된 ‘벌’이었다.
*
‘…뭔가가 또 늘었네.’
일전에 붙은 미모의 여성과 더불어, 오늘 새롭게 추가된 존재.
로브 차림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뼈밖에 없는 녀석을 보면서 카산드라는 자동적으로 저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리치… 인가? 뭐 대충 누구인지는 알 것도 같긴 하지만, 굳이 여기서 그 사실을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산드라는 일단 자신의 앞에서 임무 착수를 위해 잠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마왕과 수하들을 보며 입가에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마왕 폐하.”
“그대야 말로, 이쪽의 일을 잘 부탁 하겠네.”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말을 타고 이동을 시작한 마왕과 그의 무리들.
마지막 순간 어쩐지 홀가분하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듯한 마왕의 뒷 모습을 보면서, 카산드라는 약간의 의문을 느꼈으나,
이내 그녀는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접은 채 곧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럼, 일단 내 쪽에서 해야 할 일은 엘프 교국 측에서 오는 일을 처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완료된 직후에는 곧바로 마케도니아에 병력을 보내는 것이겠지.’
본래라면 장수로서 전장에 나가야 하는 카산드라 였으나, 지금의 그녀는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았다.
당장 마왕이 이야기한 대로 엘프 교국의 일이 정말로 해결이 된다면 그것을 처리하는 것 또한 그녀의 몫이 될 터.
그렇게, 약간 좀이 쑤시는 것과 별개로 이것에 권력자의 의무라는 것을 느끼면서.
카산드라는 자신의 옆에서 마치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이마냥 꼭 붙어 있는 어린 황제를 가볍게 끌어 안은 채 그대로 황성으로 향했다.
‘그렇다 하지만… 과연 잘 될까? 사실상 이번 전쟁을 일으킨 것은 엘프들인데. 그 녀석들이 이 시점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
팔콘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는 엘프 교국과 수인국의 연합군.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처럼 지난 전쟁에서의 원한을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갚아 가고 있는 상황에 진한 기쁨을 느끼고 있던 교황은, 자신의 앞에 온 마왕국의 사자를 보며 짙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왕 폐하께서 교황 성하게 전쟁의 중단을 요청하셨습니다.”
“…”
자신과 독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마왕국의 사신. 일라이어스.
마왕국에서 군단장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그녀의 단호한 말에, 교황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쟁을 그만 두라니… 이 시점에서 그게 가능하다 보는가? 아무리 우리 엘프 교국이 마왕국의 속국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동맹들과 엮여 있는 이 상황에서 함부로 발을 뺄 수는 없네, 그런 생각도 없고.”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승전보와 이를 통해서 시시각각 넓어지고 있는 영토.
그것이 안겨다 주는 진한 희열을 그만두라는 것에 대해선, 아무리 마왕국의 명령이라 해도 교황은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눈 앞에 있는 사신에게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표하는 교황.
그러나,
그런 교황을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교황 성하의 입장은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지 하셔야 합니다. 저희 마왕국을 위해서가 아닌, 엘프 교국을 위해서.”
“…뭐라?”
아무리 속국에 사신으로 온 입장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군주인 자신을 보며 지극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나가는 그녀.
이에 대해서, 교황은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향해서 일라이어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재 전선의 상황이 어떤지는 저희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팔콘 제국은 양측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동맹국을 막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고, 그 틈을 타서 엘프 교국은 옛 영토를 되찾은 것을 물론이고 제국의 주요 도시들 또한 이미 몇 개 점령한 상황이지요.”
거기까지 말을 한 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찻잔을 가볍게 들이키는 일라이어스.
이어서 그녀는, 교황 율리우스를 보면서 다시금 냉정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의 전쟁은 확실히 훌륭하다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이상 무리한 진군을 이어가는 것은 오히려 엘프 교국에 독이 되고 말 것입니다. 비단 저희 마왕국의 일 때문이 아니라 해도 말이지요.”
“…무슨 뜻인가 그게?”
단순히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일라이어스의 태도에, 교황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며.
그런 그를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입가에 서늘하면서도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이미 교황 성하께선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엘프 교국의 내정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말입니다.”
“!...으음…”
승리에 취해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일라아어스의 말.
이에 교황은 일순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를 향해서 일라이어스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군사적, 경제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교황에게 일체의 여과도 없는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종족 전쟁. 거기다 이어진 팔콘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엘프 교국의 내부 상황은 심각한 정도로 피폐해져 있습니다. 그나마 이번 전쟁에선 마도국과 수인국의 도움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이 이상은 슬슬 한계. 그나마 수복한 영토의 경우는 상관 없지만 본래 팔콘 제국의 영토였던 곳의 경우는 이대로 뒷처리를 하는 것 조차 쉽지 않겠지요.”
“….”
“거기다 지금까지는 기세를 몰아 승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슬슬 그것이 끝나고 팔콘제국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교국의 입장에선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되찾은 영토까지 다시 밀려나올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비 없는 팩트를 후려 갈기면서 교황에게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는 일라이어스.
이어서 그녀는 한 층 더 또렷한 목소리로 눈 앞에 있는 교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마왕국은 이 시점에서 엘프 교국이 발을 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동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저희 마왕국의 핑계를 대면서 엘프 교국이 최대한 이득을 보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 지을 수 있는 이 순간에 말입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