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우리는 할 일이 없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 * *
세상에는 소위 팝콘 각 이라는 것이 있다.
남들이 피 터지게 싸울 때, 강 건너 구경하면서 꿀이나 빨고 있는 상황.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왕국 입장은 말 그대로 그 팝콘 각이라는 말에 아주 부합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또 제국이 졌다는군요, 델포이 지역이 통째로 마도국에게 넘어갔고, 그곳의 총 사령관으로 있던 아이아스라는 자는 처참하게 겁탈 당한 뒤 광장에서 모독을 당했다 합니다.”
“역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역시 마도국에는 여러모로 야만스러운 관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여성은 정조라는 것이 있어야 하거늘 어찌 그렇게…”
“뭐,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 라는 게 있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동감입니다.”
현대로 치면 마치 아마존 같은 느낌이 드는 풍습을 지니고 있는 마도국.
물론 그렇다 해서 마도국에 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마도국은 여자들의 지위가 더 높았으며, 아울러 이런 풍습 탓에 인구 구성 비율 또한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마녀들의 국가라는 특성상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소위 일반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입장에선 상당히 미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
어찌 되었든, 이렇게 북쪽에서부터 슬금슬금 제국의 영토를 침식해 나가고 있는 마도국과 남쪽과 동쪽에서 제국을 치고 있는 수인국과 엘프 교국의 연합 공세는 그 강대했던 팔콘 제국을 크게 흔들리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는, 본래부터 종족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저 네 국가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었단 마도국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앓던 이가 시원하게 빠지는 것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전 이대로 저 것들이 자신들 끼리 열심히 싸우다 다 같이 공멸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어차피 저것들은 저희들의 잔재적인 적이니까 말이지요.”
“짐 또한 그리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역시 그건 무리일 것 같구나. 그러기에는 팔콘제국의 영토가 너무 크고, 반면 이를 침략하고 있는 세 나라의 국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아쉬움을 담아서 이야기를 하는 마왕.
여기에 대해서, 나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하였다.
‘소위 공세종말점 이라고 하지? 확실히 그런 점에서 보면 팔콘 제국의 영토가 많이 넓긴 해.’
당장 거의 다른 세 나라는 합친 것만큼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팔콘 제국인 만큼, 기본적으로 그 넓은 땅을 다 집어 삼키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따랐다.
아울러, 비록 지금은 워낙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 탓에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이 거대한 제국에 잠재되어 있는 국력은 어마어마했으며 세 나라는 이를 온전히 감당해날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즉, 조금만 침착하게 대응을 하기 시작할 경우 어느 정도 피해를 입는 선에서 충분히 이 사태를 타계할 여력이 남아 있다는 뜻.
이러한 상황은, 그 팔콘제국을 사실상 주적으로 삼고 있는 우리들 입장에서 여러모로 성가신 부분이라 할 수 있었으며, 훗날 상황이 호전 될 경우 저것들은 언제고 또다시 우리 마왕국을 침공하려 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가능한 이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팔콘 제국의 기세를 확 꺾어 놓고 싶지만, 또렷한 방법이 없구나.”
“으음… 저도 당장은 또렷한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비록 여기까지는 판을 잘 끌어 와서 나름 괜찮은 그림을 만들긴 했지만 이 이상은 조금 애매하군요.”
만약 우리의 국력이 조금 더 단단했다면 팔콘 제국을 두들기고 있는 저 세 나라와 협력해 제국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마왕국의 상황은 바다를 건너 타국에 원정군을 보낼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비록 전쟁이 끝난 뒤 지난 1년간 마도국은 엘프들의 지원을 비롯한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내실을 다잡아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국내 사정은 무리한 원정을 벌일만한 여건이 못되었다.
아울러 그런 위험하면서도 급진적인 변화는 마왕은 물론이고 나 또한 원하지 않는 부분.
이에 대해서, 일단 우리들은 당장은 무언가 손을 쓰지 않은 채 얌전히 팝콘이나 뜯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과연 저 세 나라가, 제국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아작 내어 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응?”
“왜 그러십니까 폐하?”
“으음… 이것 좀 보거라 엘런. 아무래도 이건 너에게 보낸 서신 같구나.”
“네? 저에게… 말입니까? 누가요?”
나의 질문에 대해 일단 내용부터 확인하라는 듯 서찰을 건네는 마왕.
그 직후, 난 그 안에 담겨 있는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자동적으로 진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카산드라… 제국 3기사 중 한 명이군요.”
“그렇다, 이자가 짐에게 보낸 서신인데. 아무래도 내용으로 봐선 엘런은 짐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일전에 롭에서 그녀와 붙었던 사람은 엘런 자네이지 않았던가?”
“네, 그렇다면 아마도 맞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왕의 말에 답변을 하면서 난 천천히 서찰의 상세한 내용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길면서도 무언가 장황한 느낌이 드는 서찰의 내용.
그것을 확인하면서, 난 자동적으로 천천히 입 꼬리가 올라가는 듯 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쩌면 저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
“네, 폐하. 어쩌면 저희가 바라는 대로 저 팔콘 제국을 확실하게 토막낼 기회가 말입니다.”
“! 그런게… 가능 하단 말인가? 자세히 말해보거라.”
나의 말에 한 순간 두 눈을 빛내며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마왕.
이에 대해서,
난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 본래 게임 속에서 경험했던 카산드라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하여 지금의 이 상황과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
카산드라 잉클리먼트.
팔콘제국 3기사 중 한 명이자 명명 높은 잉클리먼트 가문의 당주인 그녀는 한가지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팔콘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황제를 끌어 내리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
그것은 단순히 그녀 한 사람만의 뜻이 아닌, 선조부터 내려온 필생의 유업이자 가문의 목표였으며, 이를 위해 카산드라는 겉으로는 황제에 충성하는 기사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슬금슬금 제국 곳곳에 자신들의 사람을 뿌려 나가며 언젠가 다가올 기회가 왔을 때 역모를 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원작을 통해서 제법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었으며,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선 카산드라가 전쟁이 끝나고 황제게 올랐을까 아니면 실패해서 성노예가 되었을까 하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난 이 쪽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처음 카산드라와 대면했을 때 그녀를 살려두는 선택을 하였다.
훗날 극한의 상황에 발생할 지 모르는, 적진의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반역의 불씨를 살려두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눈 앞에는 그러한 과거에 뿌려 놓은 씨앗이 발아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이와 관련해서 난 이 부분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이를 이용해 나갈 방법에 대해 마왕과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카산드라 그녀는 예전부터 반역을 꿈꿔 왔던 인물입니다. 지금 마침 팔콘 제국은 적들의 공세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지난 전쟁의 상처조차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만큼 여러모로 어수선한 분위기. 아마도 그녀는 이 기회를 노려 반란을 일으키려는 속셈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카산드라라는 계집을 도와 제국을 분열시킨다. 그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폐하. 아울러 저희 입장에선 설령 실패하더라도 제국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겠지요. 당장 이만한 제국의 중진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했다면 제국의 정계 내에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 테니까요.”
“좋은 생각이구나, 허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 지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네 폐하.”
비록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선 당장 대규모 병력을 보내거나 할 여력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일전에 마도국과 제국을 이간시켰을 때와 같이 소수 정예부대를 보내는 것뿐.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난 마왕과 함께 나름대로 최선이라 부를 수 있는 전력을…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서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을 인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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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 제국 북쪽에 위치한 허름한 포구.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한 무리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내리기 시작한 이들을 보며 진한 긴장을 느끼게 되었다.
‘저들이 바로… 마왕국에서 보낸 지원군인가?’
‘역시 당주님의 능력은 대단하군. 설마 저 마왕국까지 이번 일에 끌어들이실 줄이야.’
‘당장 느껴지는 힘만도 보통이 아니다. 특히 저자는…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마왕인가?’
검은 갑주로 온몸을 감싼 채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전사.
거대한 대검을 차고 있으며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존재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마찬가지로 범상치 않은 힘을 지니고 있는 네 명의 전사들.
비록 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압박에 병사들은 살짝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릉….”
한 순간, 그런 병사들 중 한 명을 보며 마치 짐승과 같이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는 갑주를 입은 전사.
그때 대검을 착용한 그자는 그것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싸움은 조금 있다 실컷 하게 해줄 태니 지금은 얌전히 있어.”
“핵…핵..핵..”
그의 말에 마치 개 같은 숨을 내쉬는 전사.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섬뜩함이 느껴지게 만드는 장면을 끝으로, 마왕국의 전사들은 그대로 마차에 탄 채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팔콘 제국의 수도.
울림푸스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