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너희들 사귀는 사람 있어?
* * *
마왕국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마왕의 집무실.
그곳에서는 오늘도 언제나 처럼 집무에 열중하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만큼 그녀의 일과는 빼곡하기 그지 없었으며,
특히 근래 들어선 엘프들과의 화친이 있었기에 일시적이지만 업무량의 폭주까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순간.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마왕의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은 정작 이런 국정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고민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마왕폐하가 용사랑… 정말일까?’
친위대로서 마왕의 호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엘리사.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호위 대상인 마왕의 안위보다는, 정말로 그녀와 용사가 사귀고 있냐 아니냐에 대한 부분이 가장 큰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었다.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심의 근원은 일전에 옥타비아의 일과 관련해서 갑작스럽게 용사와 난입을 한 마왕의 모습뿐이긴 했으며, 그 이후로 또렷한 무언가를 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용사의 임무는 현재 친위대 사천왕인 그녀와 같은 마왕의 호위.
딱히 마왕과 용사가 붙어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엘리사가 파악하고 있는 전체적인 정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날 마왕폐하는 분명 휴일이셨어… 거기다 마왕과 용사 두 사람 모두 사복차림. 그렇다는 것은 마왕 폐하께서 굳이 용사를 데리고 단 둘이 어디로 갔다고 할 수 있는 건데…’
물론 휴식 중에도 마왕은 일단 이 나라의 최고의 중요 인물인 만큼 경호를 붙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본다면 본래 그 자리에는 일정에 따라 냐단이 붙는 것이 정상이었다.
일반적으로 호위 일정은 마왕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 한 변동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수상쩍은 일.
그렇게 엘리사는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매우 중요하면서 위험하기 그지 없는 이 일과 관련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 수밖에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정말로 마왕 폐하께서 용사와 그런 관계라 하면…’
거기까지 생각을 한 순간,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표정이 참담하게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선 그 누구와도 싸울 준비와도 되어 있는 몸이었다.
오랜 친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말이다.
실제로 일전에 나르실 선별전에선 어머니와 전심 전력으로 붙었던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선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상대가 마왕이라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그녀가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존재이자 그녀조차도 따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힘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
그렇게 같은 선상에 올려 놓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는 사람의 연적이 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마왕폐하께서 그런… 인간 용사하고 그렇고 그런 관계로 엮이실 리가 없잖아? 애초에 둘이 그리 잘 어울리지도 않….지는 않나?’
문득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생각.
용사와 마왕이 사귀는 사이이고 실제로 그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떠오르게 될 그림에 대한 것을 생각한 결과, 엘리사는 의외로 둘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쪽은 마족들 중 최강의 힘을 지니고 있는 마왕.
그리고 다른 한쪽은 종족 연합 최강자인 용사였다.
사실상 세계최강 자 1, 2위인 두 사람이 연인이 되고 아이들을 낳는다면,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은 분명 역대 최강의 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국력적인 부분에선 분명 큰 이득이 되겠지만…. 아…아니 이런 생각은 왜 하고 있는 건데? 당장 사귀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는 두 사람이 벌써 그런 관계라니… 거… 거기다 용사가 고백을 했던 그 사람이 마왕 폐하가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
이전에 용사가 고백을 했던 그 당시 마왕은 연회장에 있었다.
그런 만큼, 그 점에 대해서 엘리사는 일단 혼란스러운 기분과 자동적으로 피어나는 의심을 접을 수는 있었다.
‘나 참…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설마 마왕 폐하께서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 그토록 숱한 혼담들 조차도 흥미가 없다는 이유 만으로 거절하신 분인데…’
그렇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바보 같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애써 불안한 기분을 몰아내는 엘리사.
한편,
그렇게 싱숭생숭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엘리사의 바로 옆에서 집무에 전념하고 있던 그녀…
마왕은,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과 별개로 머릿속에 온통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담겨 있는 중이었다.
‘빨리 일 끝나고 용사랑 키스하고 싶구나…’
*
“수고했다 그럼 들어가도록.”
“네 마왕 폐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길에 오른 엘리사.
오늘은 친우와 약속이 있는 만큼 약간 서두를 필요가 있었으며, 그렇게 그녀는 그대로 빠르게 마왕 성 밖으로 나가 약속 장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도착한 장소.
마왕성 내에서도 제법 호화로운 술집의 귀빈실에 도착한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후, 그녀의 눈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 조금 늦었지?”
“괜찮다, 우리도 방금 전에 도착한 것이다.”
“어서 와. 엘리사.”
방 안에서 그녀는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
같은 친위대 소속인 냐단과, 그녀의 동기엔 샤뮤엘을 보면서 엘리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 직후 딱 타이밍에 맞춰서 자리에 차려지는 술과 음식들.
하나같이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직업을 지니고 있는 세 사람인 만큼,
그녀들은 값비싼 술과 음식들을 즐기며 출출했던 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후… 정말이지, 요즘은 이래저래 일이 너무 많았어. 기껏 전쟁이 끝났다 싶더니 나르실에 이어서 엘프들 일까지. 하나같이 쉽게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었잖아.”
“동감이다. 나도 현장에서 뛰느라 하나도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 한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를 하는 샤뮤엘.
비록 종종 음식을 넣을 때면 ●W● 한 얼굴로 변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 일관적이면서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얼굴 형상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샤뮤엘이야 군단장이니까. 하지만 엘리사는 나랑 같은 친위대인대 거의 군단장으로 바쁜 기분이 든단 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요즘 들어 이래저래 재수가 없어서 말이지.”
애초에 호위만 하면 되는 친위대와 군을 통솔해야 하는 군단장은 임무의 난이도면에서 차이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 저래 의도지 않게 자잘한 일들에 엮이면서 딱히 원치 않은 식으로 특기를 살리고 있는 엘리사.
이에 그녀는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요즘의 근무 환경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치워두기 위해 그대로 술잔을 들며 말했다.
“뭐… 지금은 일단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고 마시자고, 간만에 친구들끼리 만나서 우중충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동감, 여자 셋이서 칙칙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쨍
그렇게 분위기 전환의 의미에서 술잔을 부딪힌 뒤 그대로 이를 쭉 들이키는 세 사람.
그렇게 한차례 잔을 비운 직후,
엘리사는 약간의 취기가 도는 기분을 받으면서 그대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기왕 칙칙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자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희 두 사람은 그런 거 없어?”
“응?”
“그런 게 무엇인가?”
“그거 말이야. 소위 말하는 연애 이야기 같은 거.”
“풉! 콜록 콜록!”
엘리사의 말에 반사적으로 살짝 입에 물고 있던 술을 뿜은 냐단.
다행히 마지막 순간 조준을 잘 한 탓에 어딘가로 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대로 힘겹게 기침을 하면서 확연한 당혹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아니 그냥 좀… 사레가 들려서 나도 모르게.”
“너무 급하게 먹지 말라고, 누구 뺏어 먹는 사람 없으니까.”
“고… 고마워…”
그렇게 엘리사의 상냥한 충고를 들으면서 그대로 얼굴을 붉히는 냐단.
그러나, 방금 전의 그 질문으로 인해서 이 순간 냐단은 애써 무시하고 있던 중대한 사실이 다시금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을 느끼며, 일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그건 그렇고 갑자기 연애 이야기는 왜?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아… 아니…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아…아니 사귀거나 그런 것 까지는 아니지만…”
“그 말은…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는 뜻? 누군데? 이… 일단 남자야 여자야?”
“아니 무슨 질문이… 아니야 그런 거 없어. 애초에 일하느라 바쁜데 그런 사람 만들 여유 같은 건 없었다고.”
“그…그래? 후… 다행이다. 솔직히 난 요즘 네 주변에 여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뭐… 확실히 그런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아멜다에 옥타비아에 이번에 노예 2호로 삼은 클레오파트라까지 쓸데 없이 여자들과 엮이는 기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업무 상 만나게 된 인연인 만큼 엘리사 본인은 그 자차에 대해 그리 큰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샤뮤엘은 어때? 관심 있는 남자 같은 거 있어?”
일단 살짝 화제를 돌리는 차원에서 샤뮤엘 쪽으로 질문을 돌리는 엘리사.
이에 대해서, 샤뮤엘은 한 순간 ●_● 한 얼굴을 내보이며 그대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한다기 보단… 이미 사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호오…”
“하긴 샤뮤엘은 얼굴이 예쁘니까… 그래서 누구랑 사귀고 있는데?”
그 말과 함께 엘리사는 그대로 다시금 잔 안에 채워진 술을들이켰다.
“용사.”
“푸우우웁!!!!!!”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