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잘했어 토라레님...
* * *
그녀의 눈 앞에 또렷하게 보이고 있는 장면
사랑하는 그 남자를 포박해두고 있는 슈드의 모습을 보면서, 에일린은 자동적으로 짙은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슈드… 네년이 감히 나의 토라레님을 납치하려 들어? 그것도 마족으로 변장까지 하면서?”
“납치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난 그저 토라레님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걸 누리려는 것뿐인데 말이지.”
“권…리?”
너무나도 당당하기 그지 없는 태도를 내보이는 슈드.
이에 에일린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를 향해 슈드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권리. 설마 벌써 잊어 버린 건 아니겠지? 용사를 배신하고 그의 뒤통수를 치기로 결정한 그날. 우리 네 사람하고 토라레님이 서로에게 맹세한 것. 이 세상에서 토라레님의 사랑을 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우리 네 명 뿐이라는 것 말이야.”
“큭…”
정론을 이야기하는 슈드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한 태도를 보이는 에일린.
이어서 슈드는 그런 그녀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채 그대로 명확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 개월 동안 넌 혼자서 토라레님을 독점해 왔었지. 반면 난 직업상의 이유 때문에 토라레님과의 관계는커녕 얼굴 조자 보지 못했어. 이쯤 되면 나에겐 적어도 비슷한 기간 동안 만이라도 토라레님과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그건…. 으음…”
에일린의 입장에선 도저히 반작을 할 수 없는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슈드.
그러나 그 직후, 에일린은 재빠르게 나름대로 다른 근거를 떠올리며 그대로 눈 앞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드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 문제는 일단 그렇다고 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네년이 테베에서 한 짓은 명백히 우리 제국에 적의를 보인 것이잖아! 너와 네년의 부하들 이 습격을 가해서…”
“어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알기로는 습격을 가한 녀석들은 마족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서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것이지?”
“뭐… 뭐라고?”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슈드.
이에 에일린은 기가 차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그대로 눈앞에 있는 저 뻔뻔한 여자를 향해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변명 따위는 집어 치워! 네 년과 부하들이 마족으로 변장해서 습격을 가한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어. 토라레님을 끌고 온 것도 그 습격이 이루어지는 도중에 있었던 일이잖아!”
“이런 이런.. 유감이지만 그건 오해라고 에일린. 전 용사파티 출신에 같은 인간인 내가 다른 종족도 아닌 인간들을 습격 할 리가 없잖아.”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발뺌을 하는 슈드의 모습.
이에 에일린은 더 이상 이년의 이야기 따윈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눈 앞에 있는 그녀를 향해 공격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태도는 무고하게 희생된 주민들에 대한 부분 때문은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토라레를 보내는 것 만은 막고 싶었던 에일린.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슈드의 도덕적 결점은 두 사람 사이에 맺었던 계약을 흔들어 놓은 일종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 계산을 깔아 둔 채 그대로 거칠게 슈드를 몰아붙이려 하는 에일린
그때…
“아… 아니…야.. 그런거.”
“…네?”
다음 순간,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토라레의 목소리.
이에 에일린은 순간적으로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은 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 틈엔가 밧줄로 묶여 있던 몸이 풀려난 채 자리에 서 있는 토라레.
그는 잔뜩 경직된 표정을 지은 채, 에일린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거… 아니야. 슈드는 그저 나를 만나러 왔다가, 마족들에게 습격 당하던 나를 구해준 것 뿐. 마을을 습격한 마족들 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 그런…”
“봐봐 토라레님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마족이라니… 이곳에 있는 마녀들은 그저 토라레님을 만나러 온 내 호위로서 동행을 한 것뿐이야. 너도 알고 있듯이 요즘 전시 상황이라서 시국이 썩 좋지 않아서 말이지.”
“그.. 그 말은… 넌 그저 토라레님을 만나러 여기에 왔던 것이고, 마족들의 습격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
“뭐, 정리하자면 그렇지. 거기다 첨언 하자면 네 년이 신경쓰지 못하고 있어 죽을 뻔 했던 토라레님을 내 손으로 구해주었다는 것 정도 이려나?”
“큭….”
토라레의 협조와 이어진 슈드의 추가타에 더 이상 상황을 타파할 구실을 찾지 못하게 된 에일린.
실제로 그녀는 어디까지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자를 추적해 이곳에 왔을 뿐. 꼭 그자가 마족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당장 여기에 도착한 직후에도 이곳에 있는 자들이 마족이 아닌 마녀였다는 사실에, 에일린은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어쩌면, 이미 마족들은 그녀가 테베로 되돌아오기 전에 완전히 떠나갔을 지도 모르는 상황
결정적으로 토라레가 상황을 보증까지 하고 있는 만큼, 그녀는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럼. 약속 시간을 꼭 지켜서 돌려주도록 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토라레님은 내가 잔뜩 사랑을 나눈 뒤 상처하나 없는 상태로 돌려줄 테니까.”
“…”
그렇게, 마지막까지 승질 긁는 소리를 하는 슈드를 뒤로 한 채 그곳을 떠나는 에일린.
이어서 그녀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마녀들을 지나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대신관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짚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들로 이번 일과는 무관한 듯싶습니다.”
“그렇… 습니까?”
“네, 아마도 마족들은 벌써 다른 곳으로 도주한 듯싶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신속히 돌아가 대책을 강구해야겠지요.”
토라레에 대한 것은 일단 한동안 손을 댈 수 없게 된 에일린.
그러나,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그녀는 이곳 팔콘 제국의 대신관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현재 마족 병사들이 제국 어딘가에 잠입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놈들이 어디서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 만큼 일단은 대비를 해둬야겠어.’
상황에 따라선 테베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어딘가에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노릇.
그렇게 판단을 내린 직후, 에일린은 곧바로 부하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황도로 방향을 잡았다.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능한 빨리 대비책을 강구하기 위해서.
*
“으으…”
눈 앞에서 발 끝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고 있는 슈드.
그녀의 이런 행동에 토라레는 그저 바닥에 엎드린 채 떨리는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잘했어 토라레님. 덕분에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일이 잘 마무리 되었어.”
“고… 고맙..습니다 슈드.”
“정말로 다행이지, 만약 거기서 토라레님이 이상하게 혀를 놀렸다면 토라레님이 그 동안 신나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에일린에게 모조리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렇게 되면 토라레님도 상당히 곤란해 질 수밖에 없었겠지?”
“큭….”
“후훗… 어쨌든 이걸로 골치 아픈 방해꾼도 털어 냈으니… 토라레님. 어디 우리 간만에 즐겨 보도록 할까?”
그 말과 함께 슬쩍 앉아 있던 침대 위에 몸을 누이는 슈드.
이에 대해서 토라레는 그대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뒤 자신을 보며 무방비한 상태로 누워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차 농밀한 음란함이 느껴지고 있는 그녀의 몸.
이에 토라레는 그대로 남성의 본능에 사로잡힌 채 지금까지 그래왔던 그 행위를 시작했고…
그런 그를 보면서 슈드의 입가에는 그대로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길게 늘어선 해안가의 구석진 모래톱.
그곳에서 한 무리의 마족들은 조심스럽게 배에서 내렸다.
로브를 깊게 눌러써 신분을 감추고 있는 마족들.
그들의 선두에는 대장으로 보이는 마족이 자신의 옆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인간 남성을… 현직 용사 헥토르를 보며 말했다.
“여기는 확실하게 안전한것인가?”
“안전하다. 예전부터 이 일대는 방비가 허술했다. 지형상 접근하기 까다로운 것도 있고, 마을 하고도 제법 거리가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넌 이런 곳을 참 잘도 알고 있다. 무언가 수상한 것이다.”
헥토르를 보면서 여과 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 얼굴에 담아 보이는 마족.
이에 헥토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조금 경직된 목소리로 그자에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놀러 왔던 비밀 장소라 그렇다. 애초에 인질까지 잡혀 있는 지금 내가 수작을 부릴 리가 없지 않은가!”
“으음… 알겠다. 일단은 믿어보는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즉시 뒤쪽에 앉아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손짓을 하는 마족.
그렇게 지시가 내려짐과 동시에 약 30여명에 달하는 마족들은 그대로 배에서 내렸다.
그들의 목적지인…
팔콘 제국의 황도 울림푸스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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