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응원하겠습니다 엘리사
* * *
“커허어어억…”
건틀릿에 얼굴을 가격당한 직후 처참한 신음 소리를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인간 전사.
그를 내려다보면서, 샤뮤엘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왜 공격이 끊어진 것인가?’
찰나의 순간 빈틈을 찌르고 들어온 인간 전사의 일격.
샤뮤엘의 입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반격의 결과 순식간에 그녀의 투구가 날아갔으며, 동시에 인간 전사의 검은 그대로 거침 없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공격을 찔러 넣으려던 그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멈칫한 모습을 보이며 행동을 정지하였다.
최악의 경우 한쪽 귀를 포기하면서 피해를 최소화 하려 했던 샤뮤엘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하지만, 이와 관해서 무언가 본격적으로 의문을 떠올리는 대신,
샤뮤엘은 그대로 주먹을 뻗어 그자의 얼굴에 전력을 다한 공격을 때려 박았다.
그 결과, 그대로 정신을 잃어 버린 채 비참하게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된 인간 전사.
그 직후 경기장 내부에는 샤뮤엘의 승리를 환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나, 샤뮤엘은 승리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 있는 그자의 몸을 가볍게 집어 든 채 이를 대기하고 있던 보조 요원들에게 던졌다.
“치료에 앞서 우선 구속부터 하도록. 이 녀석은 인간인 것이다.”
특유의 무미건조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샤뮤엘.
이에 경기장 내부 상황을 관리한 보조 요원들은 짙은 당혹감을 느꼈으나, 일단은 군단장의 명령인 만큼 즉시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장 안쪽에서 로브를 벗겨내고 착용하고 있는 마법 아이템을 해체시킨 결과 밝혀진 사실.
마왕이 인정한 존재인 인간 용사 엘런 이외에, 또 다른 인간이 허가도 없이 은밀하게 나르실 선별전에 참여했다는 사건으로 인해, 대회 관리자와 요원들은 짙은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다.
“대체 그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위장을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 전사가 어떻게 이곳에?”
“저희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일단 놈이 깨어난 이후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알았네. 그럼 군단장님의 말대로 문제의 그자를 단단히 포박시킨 채 임시 처소에 감금해 두기로 하고, 정신을 차리거든 곧바로 심문을 진행하도록 하게. 어째서 이곳에 온 것인지, 다른 동료는 없는 것인지 철저하게 파악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
잠시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경기 중단을 선언한 주최측.
이와 관련해서, 마족 들은 한참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끊겼다는 사실에 지루함과 불만을 토로하며 일단 무료한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각.
약간 늘어진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족들과 별개로, 이순간 경기장 한쪽에 숨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신규 용사파티의 일원이자 헥토르의 동료인 세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인해 단체로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헤… 헥토르가 지다니. 아무리 상대가 군단장 이었다지만 이러면 정말로 안 되는 거 아니야?”
다급한 목소리로 당혹감을 표하는 검은 로브 차림의 남성.
엘프 교국 출신의 궁수인 폼페이의 말에, 다른 동료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동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안되지… 이렇게 되면 헥토르가 경기 도중 최대한 이목을 끄는 시점을 노려 마왕을 처치하려던 우리 계획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회색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수인 여성 블레스.
이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확연한 절망의 감정에 안 그래도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내려앉게 되고 말았다.
그때…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일행들이 비해 어린 나이로 보이는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인물.
푸른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마녀 디곤은,
짙은 혼돈에 빠져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확실히 헥토르 용사님이 그렇게 된 건 큰 위기이지만, 아직 절망하기엔 일러요. 이런 상황에선 당장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도록 하지요.”
“하…할 수 있는일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들 중 가장 강한 헥토르가 잡혀 갔다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디곤의 이야기에 약간의 기대감을 내보이는 픔페이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블레스.
이에 대해서, 다곤은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함을 유지한 채 동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일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헥토르 용사님부터 구해내도록 하지요.”
“그게 가능하겠어? 방금 전에 막 마족들한테 끌려간 사람을 우리가 무슨 수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에요.”
“뭐?”
의욕이 떨어진 목소리로 대꾸를 하는 블레스를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다곤.
이에 대해서, 블레스는 눈 앞에 있는 이 어리지만 똑똑한 동료가 단순히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 근거가 있기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다곤은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하였다.
“생각해 보세요, 제아무리 죄수라 하지만 지금 이곳은 시합이 열리고 있는 경기장. 당장 저 마왕의 건에서도 말 했듯이, 이곳에선 마왕성 내부 보다는 어찌 되었든 저희들에게 있어서 움직이기가 훨씬 편한 곳이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거기다, 지금 저 녀석들은 분명 예상 밖의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서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을 게 분명해요,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분명 저희에게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그렇군.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겠어.”
다곤의 말에 일단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짝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해는 블레스.
그 직후, 세 사람은 일단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헥토르를 구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후…”
눈 앞에 쓰러져 있는 상대를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는 엘리사.
앞서 신입을 상대로 상당히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였던 샤뮤엘과는 달리, 그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눈 앞에 있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꺾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비교적 싱거웠던 승부와는 별개로 샤뮤엘이 상당히 고생하는 것을 본 입장에서 그녀는 시합에 앞서 일단 눈 앞에 있는 신입에게 경계심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단순한 기우였던 것뿐이지만 말이지.’
그 생각을 끝으로 가볍게 검을 회수하며 돌아가는 엘리사.
이어서 그녀의 시선은, 이 다음에 그녀가 상대하게 될 인물.
그녀의 어머니인 일라이어스 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이겨주고 말겠어 마마… 반드시, 내가 마마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말 거야.’
*
약간 예선전 느낌이 들었던 본선 1차 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들.
확실히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가, 군단장과 친위대라는 최상급 전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남아 있는 이들 중 어중이 떠중이 같은 느낌을 보이는 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 난 이다음에 내가 상대하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분명 신입끼리 붙은 자리에서 올라온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일단 신입인 만큼 정보가 제법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말이라도 붙여 보자는 심산에서 난 열심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의 눈에는 아까 결투장에서 보았던 붉은 갑주를 두르고 있는 문제의 그 사람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은 신입을 상대로 말 그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줬었지. 아무리 봐도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 같은데…’
단순한 신입 치고는 범상치 않은 기척을 발산하고 있는 존재.
이에 대해서, 난 앞서 샤뮤엘의 사례도 있었듯이 신입이라고 가볍게 봐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그 은둔 고수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붉은 갑옷에게로 다가가려 하였다.
그때…
“용사.”
“아… 엘리사 무슨 일이지요?”
다음 순간, 갑자기 나를 부르는 엘리사.
이에 난 그 붉은 갑옷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일단 중단한 뒤 우선 엘리사와 말을 나누게 되었다.
“무슨 일이시지요? 무언가 중요한 일이라도?”
“…응. 중요해.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일이야.”
나를 보면서 또렷한 진지함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평소와는 무언가 느낌이 다른,
각오 같은 것이 느껴지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난 자동적으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이 다음에 나하고 마마가 시합 하는 건 알고 있지?”
“아… 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합, 꼭 두 눈 크게 뜨고 자세히 봐줘. 부탁할게.”
“네?”
단순히 시합을 진지하게 봐달라는 것을 요청하는 엘리사.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심각함에 난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합을 봐달라는 이야기를 왜 굳이?... 으음. 이건 설마 그런 간가? 그 동안 전투 기술을 갈고 닦았으니 그 성과를 눈 여겨 봐 달라는 것 같은.’
아무래도 함께 싸워온 동료이자 친구 관계인 만큼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봐달라는 의미 인 듯싶었다.
특히 그녀보다 우월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나라면 좀 더 객관적으로 이를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그렇게, 난 친구의 부탁에 대해서 순수한 호의를 담아 대답을 해주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집중에서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응원하겠습니다엘리사.”
“아!”
나의 그 말에, 입가에 환하기 그지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엘리사.
내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지나치게 좋아하는 듯한 그녀를 보면서.
난 약간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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