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기분 조아… 거기다 능숙해.
* * *
엘리사가 나에게 준 ‘선물’
방금 전에 막 만들어진 싱싱한 다크엘프를 보면서 내가 잠시 앞으로 이년을 어떻게 굴리면 될지 생각하고 있던 그때였다.
“저기.. 용사? 그래서 어떤가?... 나의 선물은 마음에 드는 가?”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엘리사의 모습.
이 순간 그녀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으며,
얼굴에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식할 수 있었다.
붉은 눈동자를 똘망똘망 빛내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는..
마치 칭찬해 주길 기대하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듯 한 엘리사의 모습.
여기에 대해서, 난 진심을 담아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선물’에 대해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네,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안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한번 이런 식으로 참교육을 하고 싶다 생각했던 녀석인데 이런 식으로 녀석을 붙잡은 데다가 뒤처리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그런가?.. 다행이군 혹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말이지…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용사와 악연이 있는 녀석이었던 만큼 내 손을 거치는 것 보단 직접 처리하도록 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조금 했었다.”
“아니요, 잘하셨습니다. 물론 제 속으로 직접 고통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무슨 수를 쓰던 엘리사님이 주셨던 만큼의 괴로움을 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뭐… 그.. 그렇게 말 해준다면 고맙구나.”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감사를 표하는 나의 말에 제법 부끄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는 엘리사.
어린 소녀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난 자동적으로 무언가 훈훈해 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꼭 수학시험 100점 맞고 엄마한테 칭찬 받은걸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하는 어린 사촌동생을 보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문득 일전에 마왕이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마왕에게 있어선 부하이자 동생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엘리사.
그녀는 비록 평소에는 도도한척 보이지만 의외로 늘 칭찬받기를 갈구하고 있으며 이래저래 잘 대해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마왕의 말에 따르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정말로 많이 좋아한다는 엘리사.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마왕의 연인이자, 어떻게 보면 그녀의 오빠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각에 따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
그대로 난 엘리사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감사와 칭찬을 표하는 나의 행동.
생각하기에 따라선 조금 민망하게 여겨질 수 있는 행위였으나,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겉모습만 따지고 보면 아는 오빠가 초딩 내지 중딩 동생을 쓰다듬어 주는 그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만큼 그 점에 대해서 위화감은 일절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서 엘리사는 일체 저항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또렷한 행복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입가에는 헤실헤실 녹아내린 듯한 미소가 담겨 있었으며.
몸은 기분이 좋은 듯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마치, 주인에게 쓰다듬을 받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듯 한 모습.
이에 대해서, 난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이 약간 충동적인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본래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온 터라 의외로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했었지… 그런 점에서 보면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칭찬받는걸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 이려나?’
실제로 그녀의 어머니인 일라이어스와는 늘 거리낌 없이 껴안으며 애교를 부리는 엘리사인 만큼, 친한 동료 사이에 이 정도 행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한 동안 기분 좋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마치 계속 쓰다듬어 달라는 듯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슬쩍 나에게 몸을 기대기 시작했다.
*
용사에게 쓰담쓰담을 받고 있는 엘리사.
이 순간, 그녀는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짙은 황홀감을 느끼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아... 용사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어...’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애정의 표현을 받고 있는 상황.
실제로 두드러지게 어린 외모 탓에 주변의 친한 동료들에게 종종 이런 취급을 받곤 하는 엘리사에게 있어서, 이 정도 행위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인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불과 일주일 전 마왕에게도 일 처리를 잘 했다는 말과 함께 쓰담쓰담을 받았던 엘리사.
그러나…
이 순간 엘리사에게 있어서 용사가 해주고 있는 이 쓰담쓰담 이라는 행위는 여러모로 그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크게 다른 느낌으로 와 닿고 있었다.
평소의 마왕이나 어머니의 쓰다듬이 단순히 설탕 한 스푼을 탄 물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지금 용사가 해주고 있는 이것은 마치 농밀하면서도 달콤하기 그지 없는 꿀과 같이 달게 느껴지고 있었다.
‘용사의 손길… 기분 조아… 거기다 능숙해…’
마치 이것만으로도 온 세상의 기쁨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용사의 쓰다듬.
실제로 그의 쓰다듬 솜씨는 의외로 그녀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그녀가 경험했던 그 누구보다 훌륭하기 그지 없었다.
너무 힘을 주지 않은 채,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하게 머리털의 결을 따라 경혈을 자극하여 지극한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용사의 쓰다듬.
거기다 평소 그녀가 지니고 있는 용사의 호감이 더해지면서. 이는 엘리사로 하여금 너무나도 강렬한 행복으로 다가와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나 행복한 쓰다듬은 처음이야… 중독될 것 같아… 아아… 역시 용사는 최고야… 누구한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상상 이상의 행복을 안겨다 주는 용사의 ‘감사’에 기쁨을 느끼면서 동시에 용사에 대한 집착을 더더욱 키워나가기 시작하는 엘리사.
그리고 잠시 후.
제법 길었지만 엘리사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짧게만 느껴졌던 쓰다듬의 시간이 끝난 뒤.
엘리사는 한 순간 얼굴 가득 피어올랐던 아쉬움과 흥분의 감정을 힘겹게 억누른 채, 그대로 용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흠…흠… 뭐, 그럼 인사는 이쯤… 하기로 하고. 그럼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할 지가 문제인데.”
그 말과 함께 여전히 조용히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다크엘프 아멜다는 바라보는 엘리사.
이어서 그녀는 살짝 용사의 눈치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왕 다크엘프로 만들긴 했다만… 용사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지금은 일단 막 세뇌를 한 만큼 나의 부하로 되어 있지만 원한다면 바로 그대에게 넘겨 줄 수 있다.”
비록 본판이 워낙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던 고위 엘프였던 탓에 제법 많은 마력이 소모되긴 했지만,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엘리사는 이까짓 년이 어떻게 되든 그리 상관은 없었다.
전력으로 따지면 제법 쓸만하겠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용사의 호감을 얻는 것.
용사가 원한다면 바로 그에게 소유권을 양도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필요하다면 바로 팔다리를 뽑아버린 뒤 눈알을 파낸 다음 모가지를 날려버릴 수 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용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애초에 다크엘프가 된 시점에서 이년은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을 한 것인 만큼 이 이상 굳이 신경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흐응? 그런가? 하긴… 확실히 그도 그렇긴 하지.”
대부분의 엘프들은 명예를 목숨 이상으로 중요시 하며, 명예를 잃어버린 것을 가장 크고 끔찍한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다크엘프로의 타락은 이러한 명예를 완벽하게 말살시키는 행위이자 최악의 모독이었다.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도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지는 다크엘프.
그것을 며칠에 걸쳐 경험했으며 끝내 용사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의지가 꺾이고 추락하는 경험을 한 만큼, 그 과정에서 이년이 겪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가히 최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감안하면서, 용사는 이 이상 자신의 손을 더럽히면서 추가적으로 이년에게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뭐, 이래 보여도 제법 유능한 녀석인 만큼 엘리사님이 알아서 잘 굴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 노력해 주셨는데 그 정도 보상은 받아 가셔야지요.”
“…보상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받았는데…”
“네?”
“아니, 아무것도… 어쨌든 용사의 뜻이 그렇다면 고맙게 받겠다. 확실히 전투력도 강하고 또 고위 엘프인 만큼 이래저래 가지고 있는 정보도 쓸만한 게 많을 테니까.”
그렇게 짧은 대화를 통해서 아멜다의 운명을 결정 짓는 두 사람.
한편,
그들의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다크엘프 아멜다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은 살았군요… 뭐 엘리사님의 명이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엘리사님께 계속 충성을 바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또 용사님께 사죄를 할 기회도 얻었으니까 말이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