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사람을 낚는 어부들
* * *
마족들의 ‘자비’로 인해 무사히 퇴각을 하게 된 팔콘 제국의 병사들.
그러나, 퇴각을 하는 내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저들이 자신들을 기습하거나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감정이 짙게 담겨 있었다.
자신들은 고작 수백에 불과한 반면, 저들의 숫자는 무려 수천에서 수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혹여 저들이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다면 성을 빠져나온 그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몰살을 당하게 될 터.
이러한 사실은 자동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전략을 다해 퇴각을…
아니, 도주를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 마족들의 추적이나 기습은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갈보리에 있던 병사들은 무사히,
마침 퇴각이 진행되고 있는 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간 그들의 입에선 자연스럽게 그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에 달하는 마족들의 군세와.
그들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신들의 위험천만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말이다.
*
“적들의 모두 퇴각했습니다. 군단장님.”
“좋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삼손.
그 직후, 그는 그대로 막사를 열고 밖으로 나갔고.
곧바로 그곳에 집결해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은 천 여명 채 안 되는 숫자의 병사들.
이것이 삼손이 이곳 갈보리를 점령하기 위해 끌고 온 병력의 전부였다.
그 숫자는 솔직히 공성전을 진행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여겨지는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그 중 몇몇은 지난 전투에서의 부상조차 채 회복되지 않은 만큼,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 전력과는 별개로.
현재 삼손의 병력은 멀리서 볼 경우 그 규모부터가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 순간,
삼손의 부하들의 등에는 하나같이 나무로 만든 받침대 같은 것들이 매어져 있었다.
각각 3~4개 정도의 타오르는 횃불들이 묶여 있는 나무 받침대.
거기다 몇몇 마족들은 손에까지 횃불들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먼 곳에서 본다면 이 자리에 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적게는 4배, 많게는 10배 에 달하는 대군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러한 기만술을 통해,삼손은 적들에게 아군의 병력 규모가 적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오판을 하도록 만들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아군의 희생은 전혀 치르지 않은 채 간단하게 갈보리 성을 접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타격 없이 손쉽게 목표를 달성한 삼손과 그의 병사들.
이내 그들은 갈보리 성의 내성에 들어가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마지막까지 횃불을 밝히고 오긴 했습니다만, 역시 별일은 없었군요.”
“애초에 대장의 목까지 가져다 바친 놈들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겠지.”
“일전에도 경험한 것이지만 역시 용사의 계략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설마 이렇게 간단한 속임수로 적들을 도망치게 만들 줄이야.”
“그래,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다. 전사로서의 실력도 뛰어날 뿐더러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법 또한 알고 있지, 적 일때는 이처럼 위험한 녀석이 없겠지만 아군이 되니 참으로 든든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있다.”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를 하는 삼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하는 마족들.
그렇게, 승리를 쟁취한 삼손과 그의 부하들은 다시 한번 이번 계획을 주도한 용사에 대한 신뢰를 굳혀나갔다.
*
삼손 일행이 갈보리를 점령한 그 시각,
마왕국 곳곳에선 이곳 갈보리에서 발생한 것과 비슷한 방식의 ‘승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터무니 없이 많은 마왕군의 병력과 이로 인해 공포에 빠져 저항을 포기하는 종족연합의 병사들.
비록 그 중 몇몇은 이러한 공포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결사 항전의 의지를 이어 나갔으나 그러한 지역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말의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명예를 주장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특히 그것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장수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병사들의 경우는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무언가를 할 만한 의지를 내기가 쉽지 않는 법이었다.
특히 그것이 절망과 죽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그렇게 마족들은 공세종말점에 직면해 직접 전투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남아 있는 영토의 대부분을 수복해 버리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며.
아울러 도망을 친 병사들을 통해 적들의 남아 있는 전투 의지를 깨부수는 결과 또한 덤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몇몇 성들을 마지막까지 저항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간 이들은 조금 곤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잠시 대기를 한 채 상황을 보고하고 차분하게 지원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직접 전투가 아닌 기만술을 중점으로 하여 병력을 움직인 것인 만큼 이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뒤숭숭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
눈 앞에 보이는 갈릴리 성.
엘프들이 점령하고 있는 그곳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진한 짜증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여튼… 저 더러운 엘프놈들은 정말로 쓸데없이 자존심이 높단 말이지.”
용사가 이야기해준 대로 실행한 기만술과 항복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갈릴리의 엘프 병사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일단은 사전에 이야기해둔 대로 지원을 기다리는 한편, 진지하게 자신이 직접 침투해 들어가 적장의 모가지를 따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나,이내 그 점에 대해선 고개를 젓게 되었다.
‘물론 내 실력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적들의 사기만 올려줄 지도 모르는 일이야, 사람은 때로 죽음 앞에서 더 용감해 질 수 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공연한 짓을 해서 상황을 악화 시키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채, 잠시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성의 주변 동태를 관찰하는 엘리사.
그리고…
그렇게 가지게 된 여유 시간 속에서,
엘리사는 잠시 근래 들어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생각을,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어머니가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용사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들을 풀어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으니 무언가가 나오긴 하겠지만… 만약 정말로 마마가 용사와 그런 관계라면 어떻게 하지? 물론 나보다는 마마가 더 성숙하고 예쁜 게 사실이긴 하지만…’
비록 올해로 400세가 다 되어 가는 그녀의 어머니 일라이어스 였지만 그녀의 외모는 여전히 젊고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성인이 된 딸아이를 두고 있는 과부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는 일라이어스
꼭 그녀의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일라이어스 정도 되는 여인이라면 충분히 남자들이 한 눈에 반할 만한 수준이었다.
반면 엘리사의 경우는 나이에 비해서 외모가 그리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콤플렉스로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 눈에 봤을 때 애인이라기 보단 동생 내지 딸 같은 느낌을 더 강하게 줄 수밖에 없는 모습.
그런 생각을 하고 하면서, 엘리사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나 참. 하다 하다 마마의 외모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그렇게 이 상황에 대해서 묘하게 현타가 오는 것을 느끼며 엘리사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엘리사님, 보고입니다!”
“보고?”
다급하게 달려와 이야기를 하는 부장을 보면서
살짝 의문을 느끼기 시작한 엘리사.
이어서 부장은 곧바로 그가 방금 전에 보았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쪽에 있는 샛길에서 한 무리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정황상 갈릴리 성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습니다.”
“뭐? 이 먼 곳까지 놈들의 구원군이 왔단 말이야?”
사실상 마족들의 점령지 한복판에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장소인 갈릴리였다.
이런 곳까지 지원을 보낼 만큼 저들의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엘리사는 알고 있었던 만큼,새로운 적의 출몰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부장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확신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원병이라 치기엔 저들의 수가 워낙 적습니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많게 잡아야 100명이 채 안 되는 규모입니다.”
“겨우 100명?”
확실히 그 정도 병력은 성안에 박혀 있는 이들보다 훨씬 적은 수준으로 큰 의미는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거대로 수상쩍은 부분이 있는 만큼 엘리사는 일단 자세한 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선 안내하도록, 내 직접 그 녀석들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엘리사님.”
그렇게 부장과 함께 놈들이 들어오고 있는 숲길 쪽에 도착한 엘리사.
그런데 그 직후, 조심스럽게 이동을 하고 있는 ‘구원병’들 사이에서 엘리사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년은 분명…’
무리를 이끄는 대장으로 보이는 한 여성 성기사.
그녀가 누구인지, 엘리사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마왕성까지 쳐들어 왔던 용사파티의 일원이었던 인물이자 짧은 순간 그녀와 맞붙었던 인물.
그리고...
용사가 종족연합을 등지고 마족들의 일원이 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는 ‘배신자’ 중 한 명.
그런 사실들을 떠올림과 동시에,
엘리사의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차가운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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