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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58화 (58/150)

〈 58화 〉 순순히 항복한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 *

“저…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려를 표하는 장군의 말.

그러나 이에 대해서 성기사 아멜다는 단호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 드렸듯이 저의 사명은 교황 성하의 포고문을 이 마족의 영토에 있는 모든 엘프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갈릴리에 동족들이 남아 있다면 응당 가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원칙이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곳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사실상 적들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누군가가 아닌 제가 온 것입니다. 이래 보여도 과거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마왕성까지 갔던 몸. 다른 누군가를 보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으음…”

교황의 칙령과 그와 관련된 자신의 의무를 언급하는 아멜다.

강인한 의지를 담아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엘프 장군은 고민을 한 끝에 결국 허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말씀 드렸지만, 이번 일과 관련해선 어떠한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점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만, 혹 제가 실패하고 목숨을 잃는다면 그 소식은 본국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 아멜다는 용사님께 지은 죄의 대가를 받아 응당한 처벌을 맞이했다고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리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언 치고는 썩 좋은 느낌을 들지는 않는 이야기였으나,

그럼에도 장군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을 인지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마치 속죄의 길을 걷는 순례자를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면서.

*

팔콘 제국의 노장 미노스

제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자, 이곳 갈보리성을 지키는 책임자인 그는 진한 긴장에 사로잡힌 채 검을 들고 성벽 위에 서 있는 중이었다.

“자… 장군…”

“침착해라. 모두들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라.”

“하… 하지만…”

“우리들은 자랑스러운 제국의 군인이다. 조국을 위해 마지막까지 장렬하게 싸우다 죽을 것이다.”

“큭…”

무인으로서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미노스.

그러나, 그의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병사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을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

눈 앞에 보이고 있는 장면.

그것은…

짙은 어둠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무수한 불꽃들의 행렬이었다.

평범한 불빛이 아닌, 마족들의 마력이 담겨 있는 초록빛과 보라빛의 불꽃들.

못해도 수천에서 수만은 족히 되는 병력이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그것들을 보면서 병사들은 당장이라도 적들이 자 이곳으로 밀려올 것이라는 사실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왕국 내에서 종족연합의 얼마 남지 않은 남방 영토인 갈보리성.

다른 여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외부와 고립되어 있으며, 규모마저 적은 이곳에서 외부의 구원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앞을 지나가는 막강한 마족들의 군세는 그 자체 만으로 공포스럽기 그지 없는 존재였다.

‘이 성안에 남아 있는 병력은 기껏해야 300명.. 한줌도 안 되는 병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이런 상황에서 저놈들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면 우리들은 그 날로 끝장이겠지.’

‘제길… 정말로 이대로 죽어야 하는 건가? 제 아무리 죽음을 각오하고 왔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은…’

그렇게 마족들의 흉흉한 불꽃들을 보면서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병사들.

비록 그들의 이러한 두려움은, 그들의 곁에서 연이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미노스 장군에 의해 간신히 억눌리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눈 앞에서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덮쳐올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족의 군세.

불꽃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죽음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병사들은 시시각각 피가 말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최선을 다해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미노스 장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이곳으로 쳐들어 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곳에 위치해 있는 연합군을 공격하려 하는 것? 어느 쪽이 되었든 저만한 군세라면 더 이상 우리들에게 승산 따위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터…’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넘겨온 미노스 장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노스는 눈 앞에 보이는 적들의 대군만큼은 어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상 적들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대군이 이곳에 모여 있는 지금, 변두리의 작은 성 하나를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어디 와 보거라. 하지만 네놈들에게 이 미노스의 목을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가올 적들을 상대하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는 미노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각오와 병사들의 두려움과는 별개로.

눈 앞에 보이는 마족들의 불꽃들은 끝내 이곳으로 몰려오지 않은 채, 그대로 날이 밝아 오면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결국 그렇게 짙은 긴장과 공포에 사로잡힌 채 꼬박 날밤을 샌 미노스와 그의 수하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예상했던 종말의 시간은 오지 않았지만, 이 순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안도감이 아닌 진하디 진한 공포심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살아 남았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정말로 끝이 날 게 분명해.’

‘어제의 목표는 우리들이 아니었나 보지만 다음은 분명 이곳 차례겠지…’

그렇게 실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동요에 사로잡혀 있는 병사들.

차라리 어제 밤에 전투가 진행되었다면 모를까.

이처럼 한 바탕 진한 공포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상황에서 주어진 약간의 여유는, 그들로 하여금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간 절망과 죽음의 기척, 그리고 그 반동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삶에 대한 갈망.

이러한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극도로 악화된 상황들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이는 그들로 하여금 적이 언제 다시 쳐들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강하게 자아내면서 점점 더 그들을 초조함과 긴장의 감정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약 일주일간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벌어진 마족들의 야간 행군.

그 때마다 병사들은 성벽에 집결한 채 방어를 위해서 그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봐야만 했으며, 이에 병사들의 공포와 불안감은 더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장면.

그것이 반복 될 때마다 병사들은 정식적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으며, 결국 성 안에는 날이 갈수록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탈주자 들과,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한 채 절망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 수일 만에 갈보리성의 인간 전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남아 있는 병사들 역시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탈주를 시도했던 병사 한 명과 함께, 한 통의 서신이 전달되었다.

“읽어 봐라.”

“ㄴ…네 장군님.”

미노스의 말에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집어 드는 탈주병.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 내용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순순히 성을 버리고 물러난다면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을 한다면 너희들의 또한 디모데의 병사들처럼 몰살을 면치 못 할 것이다.”

절망뿐이었던 현실 속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이야기.

동시에, 만약 이 자비를 거절한다면 확실하게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선언.

이에 성안의 남은 병사들은 그대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 우리를 살려 주겠단 말인가?”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이지?”

그때…

“조용히 해라! 적들의 간악한 술수에 넘어가지 마라! 저 더러운 녀석들이 우리를 살려줄 턱이 없지 않은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미노스 장군.

그러나 이에 대해서, 그의 곁에 있던 부관들과 휘하 병졸들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장군,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적들은 벌써 저희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마족들 중에는 포로로서 온건한 대우를 해주는 자들도 어느 정도 있다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커헉!!!”

“!”

다음 순간, 그대로 자신을 설득 하려던 부장 한 명의 목을 베어버린 미노스 장군.

그 직후, 그는 살기가 담긴 시선을 내보이며 눈 앞에 있는 이들을 향해 마치 짐승과 같은 기척을 발산하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항복 따위는 없다. 우리들은 자랑스러운 팔콘 제국의 전사들. 이곳에서 우리들은 확실하게 뼈를 묻을 것이야. 마지막까지 당당한 용사로서 명예를 지키다 죽는 것이야. 알겠는가!”

“….”

“대답해라! 알겠느냐고 묻지 않는가!”

“아.. 알…겠습니다 장군.”

그렇게 살기에 가까운 경고를 내보이며 그대로 막사로 들어가는 미노스 장군.

그리고…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을 해야 할지 말이다.

*

“으음..”

“갈보리 성을 지키던 미노스 장군의 목입니다.”

“약속대로 부디 저희들을 살려 보내주십시오.”

자신들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자비를 구하고 있는 인간들.

그들을 내려다 보면서 삼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우리는 관대하다, 항복을 한 자에겐 자비를 베푼다. 순순히 성을 비우고 떠난다면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평안히 가도록.”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삼손의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대로 돌아가는 병사들.

그렇게 별다른 전투 없이 성을 비우고 도망치는 그들을 보면서, 삼손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다.

‘과연 용사의 계략이다, 성능 확실하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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