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집 밖이랑 집 안이 다른 스타일
* * *
드넓은 마왕성의 복도.
그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난 의외로 제법 진한 긴장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마왕군의 회의라… 설마 내가 그런 자리의 용사의 몸으로 참석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들리는 말에 따르면 현재 마족들의 수뇌부에선 마왕의 명령 하에 대대적인 반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일전에 나와 엘리사가 롭에서 거둔 성과,
종족 연합의 병참을 싸그리 불태워버린 여파는 이미 연합군 진영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던 놈들의 공세가 갑자기 뚝 끊겼으며, 아울러 점령지 곳곳의 분위기 또한 눈에 띄게 얌전해 진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은 싸움을 벌일 수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한 모습.
아울러 여기에 최근에 도달한 또 하나의 소식에 따르면, 현재 종족 연합 내부에선 갑작스럽게 내부 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그 동안 줄곧 방어에만 급급했던 마족들에게 있어서 다시는 오지 않을 반격의 찬스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동시에 우리 마왕 누님을 위해 공을 세우길 원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롭 에서처럼 이 기회에도 아주 확실하게 무언가를 보여 줘야지, 특히 이번에는 다른 간부들이랑 군단장들도 대부분 참여할 테니…’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 이겠지만, 여전히 고위 마족들 중에는 나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자들이 적잖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최대한 불식 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작전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 그대로 회의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응?”
“용사 인가? 오랜만이군.”
복도를 따라 모퉁이를 돈 순간 나의 눈에 보이는 익숙한 존재의 모습.
내려다 봐야만 하는 작은 키에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을 지닌, 작은 소녀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마족.
일전에 롭에서 함께 작전을 진행했던 엘리사의 모습을 보면서, 난 어색함과 약간의 반가움을 동시에 느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엘리사. 그 동안 잘 지냈나?”
이전의 전신을 완전히 가리는 보라 빛 갑주 차림 과는 달리,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그녀.
외모만 따지면 어린 소녀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난 약간 귀엽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엘리사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뭐… 그럭저럭, 괜찮게 지낸 편이다. 그러는 용사 그대야 말로 그 동안 매우 잘 지낸 것 같구나. 이전에 봤을 때보다 때깔이 더욱 좋아진 것으로 봐선.”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확실히 그 동안 마왕 폐하의 은혜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히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용사파티에 있을 때하고는 전혀 다르게.”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우리 마왕국 에선 능력 있는 자들이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것을 아주 당연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나 역시 그대와 같은 자라면 응당 그럴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 있다 여기고 있는 중이다.”
비꼬거나 하는 것이 아닌, 의외로 제법 진심이 담긴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그녀의 이런 모습를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상당히 유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하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같이 등을 맞대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고, 거기다 아슬아슬하게 목숨까지 구해주었으니까 말이지.’
솔직히 처음 임무를 함께 진행했을 당시에는 동료라기 보다는 감시역 같은 느낌이 더 강했던 엘리사였다.
아울러 실제로도 은밀히 그런 성격의 임무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때에 비하면 그녀가 조금은 친근한 감정을 내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런 쪽에 둔감한 편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의 대한 엘리사의 호감도가 조금 상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난 그대로 엘리사와 함께 복도를 따라 회의장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회의에는 친위대의 4천왕 뿐 아니라 군단장들도 참여한다 했었지?”
“그래 맞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들과 동급 혹은 그보다 약간 떨어진 전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와는 달리 군대에 대한 지휘권 또한 지니고 있는 자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전부 다 올 수는 없겠지만. 아마 폐하의 호출인 만큼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군…”
엘리사의 말을 들으면서, 난 문득 자동적으로 지난날의 기억들을...
정확히 말하면 원작의 게임 상에서 알 수 있었던 부분에 관련하여 이것 저것에 대한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마왕군의 중간 보스 같은 느낌으로 존재했던 군단장.
설정에 따르면 군단장들의 숫자는 총 다섯 명 정도가 있다고 하지만, 스토리 진행상 내가 상대했던 녀석은 그 중 딱 한 명뿐이었다.
게임 적 허용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초창기라 아직 레벨이 낮았던 용사파티를 상당히 애먹였던 인물로, 강력한 힘과 지략 그리고 잔혹함을 유감없이 발하며 나를 포함한 유저들에게 YOUDIE양과의 미팅을 주선해 주었던 존재.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 조차도 용사의 검에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주하면서 어마어마한 증오를 발산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마족 군단장이란 이 정도로 강하다 라는 것을 보여준 인물.
마족 제2 군단장
일라이어스
떡밥도 있었던 만큼 개인적으로 이후에 다시 나왔으면 했지만, 마지막까지 얼굴 공개 조차 안하고 등장을 끝냈던 그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난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 있을 이 회의… 어쩌면 여기서 일라이어스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더미데이터라도 있으면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캐릭터였는데.’
난이도는 중간보스 치고는 상당히 빡셌지만 그 덕분에 여러모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존재.
그렇게 내가 대체 그자의 본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그것이 이제 곧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어머… 엘리사.”
갑작스럽게 우리들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이에 나와 엘리사는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직후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인물.
그자는 검은 상복을 연상시키는 제복을 입고 있는 여성 마족이었다.
제법 훤칠한 키에, 붉은 머리칼과 갈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으며 이마에는 엘리사처럼 외뿔이 나 있는 마족.
전체적인 체형은 비교적 슬림 한 느낌이었으며, 얼굴에서는 성숙함과 더불어 진한 자애로움이라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포용해 줄 것 같은 넉넉하면서도 평온한 인상을 안겨주는 인물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마마!”
“엥?”
다음 순간 그대로 밝은 목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그 여성의 품에 안겨 드는 엘리사.
방금 전까지 나에게 보여주었던 ‘나름대로의 근엄함’ 같은 감정 따위는 가볍게 내다 버린 엘리사의 모습에 난 살짝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그래.. 그 동안 잘 지냈니 아가야?”
엘리사의 몸을 다정하게 끌어 안은 채 이야기를 하는 마족 여성.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초롱초롱한 눈빛을 내보이며 대답했다.
“응! 잘 지냈어, 하지만… 보고 싶었어 마마. 엘리사 그 동안 마마랑 떨어져 있으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고.”
“미안해. 이 엄마가 너무 바빴지? 편지라도 조금 자주 보내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쓰도록 할게.”
“야.. 약속… 하는 거야?”
“응, 약속.”
솔직히 다른 외적인 부분을 다 빼고 이미지만 보면 크게 위화감은 들지 않는 장면.
그러나, 저런 코맹맹이 소리가 들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인물이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무게를 잡고 있던 마왕의 친위대원 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뭐… 꼭 밖에 있을 때랑 안에 있을 때 이미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갭이 좀 심한것 같다… 그건 그렇고. 마마? 단순한 호칭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진짜로 저 여자는 엘리사의 모친인 건가?’
머리카락 색상은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제법 엘리사와 닮은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
이를 보면서 난 단순한 호칭뿐만이 아닌, 실제로 저 여자가 엘리사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
“…..어머.. 이게 누구야?”
“!”
다음 순간, 그대로 천천히 엘리사를 품 속에서 놓으며 내 쪽을 바라보는 그녀.
나의 모습을 발견한 직후, 그녀는 엘리사를 품에 안고 있을 때의 훈훈함을 순식간에 지워 버림과 동시에, 또렷하기 그지 없는 살기와 같은 감각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또렷한 적의.
이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에 난 반사적으로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나를 보면서 그 여자는 날을 세운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거… 용사님이 아니신가? 저 더러운 종족 연합의 추악한 칼날. 네놈이 대체 이곳에는 뭐 하러 나타난 것이지?”
좀 전의 훈훈한 미소와는 너무나도 온도차이가 극심하게 나는 섬뜩한 미소를 내보이는 그녀.
비록 순수 전투력은 나보다 아래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적의에 난 살짝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지 마 마마, 이래 보여도 마왕님이 인정 해주신 아군이잖아? 거기다 이런 곳에서 전투는 금지라고.”
“…하아..”
“그럼 용사여, 뭐.. 일단 구면이긴 하겠지만 소개를 해주겠다.”
엘리사의 한마디에 그대로 흉흉한 기척을 잠재우기 시작하는 ‘마마’.
이어서 엘리사는 정식으로 그녀를 소개해 주려 하였고,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사실에 난 살짝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쪽은 나의 모친이자 제 2 군단장을 맡고 있는 일라이어스 님이시다.”
“아… 그렇군. 이 사람이 바로… 뭐?”
이어진 엘리사의 말에 난 방금 전의 흉흉했던 기척 이상으로 망치를 얻어 맞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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