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똥손의 저주
* * *
“끄웨에에에에에에엙!!!!!!!”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명.
마치 맨바닥을 긁어 모아 강제로 쥐어 짜내는 듯 한 소리를 내면서 테라는 다시금 이성과 육체가 분리 되었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흐리멍텅한 눈빛을 내보인 채 바닥에 쓰러지는 테라.
눈에선 하도 눈물을 쏟아낸 탓에 더 이상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으며, 얼굴은 한계를 넘는 고통을 연이어 받은 탓에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지고 일그러져 있는 상태였다.
비록 이 외에 육체적인 외상은 특별히 없었으나,
정신은 연이은 강제적인 분리로 인해 말 그대로 넝마조각이 되어 너덜너덜해져 있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를 할 여력 따위는 일절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용사에 대한 증오도,
그녀가 처하게 된 이 나락과 같은 현실에 대한 분노도
연이은 고통의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선 그저 사치스러운 감정 만으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삶의 의욕을 모조리 찢어 버리며 다른 무엇도 떠올릴 수 없게 만드는 그 망망대해와 같은 절망의 바다.
그 안에 완벽하게 사로잡혀있는 이 순간,
그녀가 떠올리고 있는 것은..
떠올릴 수 있는 말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죽…여줘…’
할 수만 있다면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말.
극도의 고통은 그녀로 하여금 다른 모든 감정을 억지로 씻어내도록 만들었으며,
이는 그녀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비겁하다던가.. 추하다던가 같은 것은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이미 그녀에게는 그러한 자잘한 것을 따질만한 여유도,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이 고통을 끝내는 것 만이 그녀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라면 저 남자의 발을 핥던,
전장의 노예로 부림을 받던,
몸을 내주던,
아무리 끔찍한 짓을 당해도 기꺼이 진심 어린 웃음을 담으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여줘.. 제..발… 제발 이제.. 그만..!!! 내가.. 내가.. 잘못 했어.. 무슨 짓이든.. 어떤 짓이든.. 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이제.. 이제.. 제발 그마아안..!!!’
마음 속으로 수 없이 후회와 참회의 감정을 쏟아내며 애원에 애원을 거듭하는 테라.
그러나.. 눈 앞에 있는 이 고통의 화신과 같은 존재는 테라에게 이런 말을 꺼낼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쉼 없이 그녀를 몰아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격통 속에서 정신이 떨어져 나가면 그 고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를 다시 이어 붙인 뒤 다시금 이를 잡아 뜯어내는 그 남자.
그 과정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영혼의 밑바닥에서 끌어 나오는 절규를 내뱉으며 무의미한 발광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후회와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괴로움 속에 몸을 뒤트는 테라.
그 때..
“!!!커허어어억! …허어어억… 허어어억…”
갑작스럽게 멈춘 그 남자의 고통의 세례.
이에 테라는.. 드디어 강제로 막혀 있던 말문이 트이는 것을 인식하며,
그대로 눈 앞에 있는 그 남자를 향해 다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 제..발…그마아안… 내.. 내가..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제발… 이제.. 이제 그만.. 죽여..줘..”
절박함과 간곡함을 담아 온 힘을 다해 사과의 말을 표현하는 테라.
그리고..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남자는..
과거에는 용사라 불리웠으나.. 이제 테라에게 있어선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그 남자는.
차가운 냉기가 담겨 있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죽여달라고? 유감이지만, 나한테는 더 이상 너에게 그런 자비를 베풀어줄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제..발…. 부..탁.. 그.. 그래도 우린… 동료..였…커허어어어억!!!”
콰직!
다음 순간 그녀의 손등 위에 떨어지는 용사의 발.
검은 강철로 이루어진 군화를 착용하고 있는 그것은 한 순간에 테라의 손 뼈를 부러뜨리고 근육과 살을 짖눌러 터뜨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테라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의 울음소리.
정신적인 고통과는 또 다르게 느껴지는 육체의 생생하기 그지 없는 고통을 맛보면서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테라를 향해서
용사는 한 점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료 같은 소리를 운운하는 걸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설마 아직도 네년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꼬리를 쳤는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그… 그..건…”
용사의 말 한마디에 그대로 말문이 막혀 버리는 테라.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용사는 차분하면서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선언을 했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아 놓고 저 세상으로 도망치겠다? 유감이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앞으로 넌 그 몸뚱아리로 해줘야 할 일이 아주 많이 있으니까.”
“무… 무..슨..”
불길함과 두려움밖에 느껴지지 않는 용사의 말.
그 말을 들으면서 테라는 그대로 몸을 떨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를 향해 용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앞으로 그녀가 처하게 될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 아… 안….된다!!.. 그.. 그건..! 그것..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테라의 입에서 반대의사를 표현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
그러나.
그렇게 반발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용사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어. 그러니까 하겠다는 거야. 네 년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주기 위해서 말이야!”
끔찍한 희열이 느껴지는 용사의 목소리
이어서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가락을 치켜들었고..
“아.. 안..돼… 안…돼…”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테라는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쓰며 절망에 물든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돼에에에!! 제발 그것 만으….끄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난 게임 운이 상당히 없는 편에 속한다.
과거 30% 확률로 강화에 성공하는 아이템을 20회 연속으로 실패한 적이 있었으며.
게임 상에서 가차 상자를 수 없이 돌려 보았으나 소위 말하는 레어템 이라는 물건은 단 한 번도 띄워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확률놀음에 취약하기 그지 없는 똥 손이라는 말의 표상과 같은 존재.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난 다시 한 번 내가 정말로 운이 더럽게 없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아주 여실히 인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꺼허어어어어어얽!!!!!”
수 없이 비명을 질러낸 결과, 이제는 소리를 내는 것 만으로도 자동적으로 입에서 피를 토하게 된 테라.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내가 운이 정말 더럽게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짝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역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운이 좋다고 봐도 되는 건가? 솔직히 너무 간단하게 붙어 버렸다면 그건 그거대로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애써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조차도 불가능한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률 3%
언 듯 보면 상당히 짜디 짠 확률이었지만, 사실 이 정도 수치면 강화 확률로선 그렇게 까지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한번 한번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확률이 높지 않지만, 대략 30 번 정도 시행을 했을 경우 60% 남짓 되는 확률로 한 번은 붙는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이 짓을 시행한 횟수는 벌써 40회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대략 70%로 일반적인 경우라면 한번 쯤은 성공을 했어야 하는 수준이었으나. 여전히 성공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이거 어쩌면 내가 아니라 이년이 운이 없는 거 아니야? 솔직히 이 정도면 슬슬 넘어가 줄 때도 되었다고 보는데.’
그렇게 약간의 짜증을 느끼면서, 내가 다시 반지에 마력을 불어 넣은 그때..
“!!!!끄…끄어어아아아아아아아앍!!!!”
“어?”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무언가 이질적인 감각.
동시에 바닥에서 경련을 하며 고통을 표하고 있던 테라는 그대로 미친 듯이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극도의 괴로움 속에서 강제적으로 몸을 뒤틀기 시작하는 테라.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지게 되었다
‘드디어 성공 했네. 46회.. 역시 나라는 녀석은 이런 쪽에서 운이 더럽게없다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난 눈 앞에서 처참한 비명을 지르는 테라의 모습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더 이상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진 강을 건너가게 되어버린 한 마리의 짐승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그럼.. 앞으로 그 속에 갇혀서 쭉 지켜보고 있으라고. 네 년이 저지른 배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