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19화 (19/150)

〈 19화 〉 적이 아니니까

* * *

“큭.. 죽여라!”

눈 앞에서 살짝 얼굴을 붉힌 채 어딘가 많이 들어본 대사를 날리는 카산드라.

이를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 딴 에는 감추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보는 입장에선 인식을 안 할 수가 없는 미묘한 색기라고나 할까.. 음습함 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언가 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난 속으로 살짝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나 참… 이게 무슨 에로 동인지도 아니고. 역시 NTR 게임 속 세계라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대부분 이런 식인 건가?’

물론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그녀의 이런 반응이 단순히 음란마귀에 찌들어서.. 라고 볼 수만 은 없긴 했다.

실제로 이 세계에는 마족들이 인간을 범한다는 이야기를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인간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 사이에는 마족들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히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난 수 주 간 마족들과 함께 살아 왔으며, 아울러 원작 곳곳에 담겨 있던 암시를 통해 난 실제로 ‘그런 건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명예와 긍지를 중시하는 마왕과 그녀의 부하들이었으며 마왕군 내의 규율도 상당히 엄격한 편인 만큼, 그런 전쟁범죄 같은 것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하급 마족들의 미적취향 또한 자신들을 닮은 우락부락한 외모의 동족 여성이었으며, 카산드라 같은 인간 기준에서의 미녀는 그들에게 추녀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근본도 없는 소문이 퍼진 이유.

이에 대해서, 난 개인적으로 아마 마족들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전쟁의 구실로 삼으려는 소위 높으신 분들의 수작일 가능성이 높다 판단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부 불만을 돌리기 위해 수 년째 이 지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가능한 마족 에게 악독한 이미지를 씌우는 게 저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긴 하겠지..’

그렇게, 눈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 ‘큭 죽여라’ 같은 소리를 운운하고 있는 카산드라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족들의 이미지가 개판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이내 나의 생각은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용사파티나 글렌과 같은 악감정은 없는.. 솔직히 말하면 원작에서 잠시 용사파티를 도와준 경력 때문에 약간은 호감도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는 카산드라.

하지만 전략적인 측면 에서 봤을 때는, 인간 제국의 최대 전력 중 하나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죽이거나 혹은 이년도 포로로 끌고 가는 게 정답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 잠시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지 않나?’

문득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한가지 생각.

이와 관련해서, 난 자동적으로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

자신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줄 것을 마왕에게 요청한 카산드라.

비록 이것이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상황에 따라선 오히려 마왕의 더러운 욕망만을 돋구는 꼴이 될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순간 카산드라는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부디 마왕이라는 존재가, 들리는 이야기처럼 전사로서의 고귀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길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간절함을 담아 마왕에게 죽음이라는 이름의 자비를 구걸하는 카산드라.

그런데..

“….”

“…?”

어째서인지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마왕.

그 사실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짙은 의문의 감정을 지니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녀는 진한 의문과 한층 더 묵직해지기 시작한 공포. 그리고 그 이상으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느끼며,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짧은 한마디.

이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앞에 쓰러져 있던 수인 전사 만을 어깨에 들쳐 맨 상태로, 천천히 뒤를 돌아 떠나가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었다.

마치 카산드라라는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마왕의 모습.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순간적으로 짙은 의문을 느끼며, 떠나가고 있는 마왕을 향해 소리쳤다.

“어… 어째서냐? 어째서.. 그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난 이대로 살려주는 것이지?”

“…”

그녀의 말에 그대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마왕.

그 직후..

마왕은 카산드라를 향해.

오직 그녀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짧게 한마디를 하였다.

“적이 아니니까.”

“뭐… 뭐라고?”

한 순간, 카산드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낸 마왕.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카산드라가 무언가를 채 물어보기도 전.

마왕은 그대로 어깨에 매고 있는 수인 전사와 함께 순식간에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자.. 잠시만 그게 무슨… 큭..”

사라진 마왕을 향해 다급하게 물어 보았으나 결국 침묵만을 답변으로 받게 된 카산드라.

그렇게 롭을 습격한 마왕은 카산드라에게 짙은 혼란을 남겨둔 채 홀연히 떠나갔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과 진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단 수 초 만에 경악과 절망과 채념.. 그리고 마지막에는 짙은 의문이라는 감정을 남겨둔 채 사라진 마왕.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과 안도조차 잊게 만드는 그 사실에 짙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적이.. 아니라고?.. 적으로서 인지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마왕이 나와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 저 용사파티의 노예를 데려갔을 리가 없잖아..’

어느 틈엔가 자신의 손에 있던 반지를 빼간 마왕.

이에 카산드라는 마왕이 전력 강화를 위해..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해 저 수인 노예를 잡아 간 것이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카산드라는 스스로의 전투력에 대한 고민이나, 혹은 마왕의 취향이 수인이고 자신 같은 인간 전사 따위 별로라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짙은 혼돈과 같은 생각에 파묻힌 채 무엇 하나 이거다 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니… 잠시만.. 이건 설마..’

문득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사실.

이에 카산드라는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생각을 모두 제친 채, 이것이 정답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마 이제 맞을 거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대는 마왕.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이자, 나름대로 뛰어난 정보망을 지니고 있을 인물.. 그런 사람이라면 어쩌면 우리 가문에 대한 것도..’

그렇게 생각을 함과 동시에 살짝 소름이 돋기 시작하는 카산드라.

그 직후,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남아 있었던 불안과 의문의 감정 대신..

검은 욕망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같은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처참하기 그지 없는 장면.

그것을 보면서. 마을 롭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과 장수들은 그대로 망연하게 바닥에 주저 앉게 되었다.

그들의 눈 안에 들어오고 있는 장면은, 말 그대로 깔끔하게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는 군수품의 모습이었다.

마왕과 그의 간부의 습격으로 인해 온통 그곳에 정신이 팔려있던 병사들.

이로 인해 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보급품들을 지키는 게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는 이곳 롭에 잇는 군수품의 80% 이상이 사라져 버린 변해버리는 어마어마한 손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비록 남아 있는 잔불이라도 끄기 위해 병사들은 물을 퍼나르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지만, 이미 보급픔에 대한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상태였다.

마왕국을 공격하고 있던 수 많은 병사들이 먹어야 할 식량과 들고 휘둘러야 하는 무기들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 상황.

이에 이곳에 있는 장수들과 병사들은 짙은 절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말았고…

이 순간,

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는 카산드라 역시 얼굴에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피해가 그렇게 심각하단 말이냐?”

“네.. 식량은 당장 저희들이 먹을 분량 밖에 남아 있지 않고, 군수품은 쪽은 무언가를 건질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하지요? 본국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하아... 이 점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마. 너희들은 당장 피해 복구에 전념하도록.”

묵직한 한숨을 내쉬면서 책임감을 담아 대답을 하는 카산드라.

이에 그녀의 부하들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대로 카산드라의 방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이 순간 카산드라의 입가에는 천천히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 마왕 덕분에 글렌 그 녀석이 뒤져버렸으니 이제 이걸 이용하기만 하면..’

*

“으으…”

깨질 것 같은 묵직한 두통.

그 속에서, 수인전사 테라는 혼미하기 그지 없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얕게 깔려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테라.

그런데..

“드디어 일어났네.”

“!”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이에 테라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경악에 물들기 시작했고..

그 직후, 그녀의 눈에는 그 자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용…사?”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