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203. 거짓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남의 행성에 전쟁 하러 와서.
한가롭게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얼굴이 많이 보였다.
복수를 위해 칼도 갈고 총도 쏘는 김태영 하사.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정유석 대위.
죽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던 감덕진 상사.
안나의 팬이라던 숀 테일리.
“하나, 둘 쯤 빠지면 얼마나 좋아.”
“무슨 헛소리야 오자마자 밥이나 지어 먹자고 하고.”
인준이다.
딱 봐도 욕구불만이다.
끼리끼리 닮는다더니.
치용과 붙어 다니며 어울리다 보니, 덩달아 싸움을 즐기게 된 건지.
“아니, 다들 열심히도 싸우러 왔구나 싶어서.”
“그럼 놀러 왔겠어 ”
“놀러 온 거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럴 순 없겠지 ”
“무슨 생각이냐 ”
세주가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가리켰다.
“저 죽고 싶어 환장한 것들을 돌려보내고 싶다면 넌 어떻게 하겠냐 ”
“가란다고 갈까 ”
안 가겠지.
이전에 느꼈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
다들 사명을 갖고 이곳에 있다.
반세주가 구국의 영웅이라 하더라도 돌아가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본다면 ”
“정직하게 사실을 말한다.”
“되게 안 좋게 들리는데.”
“사람을 움직일 때 가장 안 좋은 방법이 바로 정직과 솔직함이지.”
“그럼 사람을 움직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물어 뭐해 ”
거짓.
세주는 호필에게 향했다.
산이 떠난 빈자리에 그의 부대원 오십이 자리 잡고 있다.
‘스캐닝 했지 ’
-도착하자마자.
각각의 수준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주황 행성의 병력이 사단 병력이라고 했던가
저게 같은 편제라고
‘양아치 같은 새끼들.’
주황 행성에서 만난 이들은 잘해야 7급이 대부분, 3급이 최대 정도다.
그런데 저것들은
-평균 4급 에너지 컨트롤러, 그 중 셋은 1급.
다른 사단장 급을 씹어 먹는 병력이다.
셋이 치용, 인준, 안나와 버금간다.
그런데 저기에 있는 병력은 고작 1사단의 일부 병력이다.
김산이 이들을 윽박지르고 싶어, 그렇게 인원을 모아왔을까
아닐 거다.
저게 평균적인 능력치다.
“야, 호필아!”
세주는 호필을 찾아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병사, 장교 할 것 없이 주변의 시선이 모인다.
막 군사회의를 시작한 참이었다.
부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세주를 많이 겪어 본 이다.
“얘기 좀 하자아.”
“미친 새끼.”
호필이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작게 말한다고 했지만, 주변 누구라도 들을 만 한 목소리다.
“무슨 얘기 ”
“단 둘이. 급해.”
세주가 호필의 어깨를 쥐고 움직였다.
“아, 본 너도 따라와.”
걸어가며 치용과 인준, 그리고 합류한 유진에게 말한다.
“아무도 가까이 오게 하지 마.”
“네!”
셋이 거리를 벌려 세주가 지나간 길을 막는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들을 만한 이도 없다.
*
잠시 뒤, 호필이 돌아왔다.
그는 군사회의를 소집한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우리는 이 시간 부로 지구로 돌아간다.”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거다.
“지구에 침공 소식이 있다. 대규모 침공.”
“그럼 당장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급히 누군가 일어나 말한다.
다른 함선의 함장이다.
“그래. 지금 당장 가자.”
말하는 호필은 급한 척을 했지만,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근데 통신에 어떤 내용도 없었습니다.”
다른 함장이다.
“다른 루트로 들어 온 정보다. 의심할 것도 없어.”
“그럼 여기는 어떻게 합니까 저들이 우리를 그냥 보내준답니까 ”
“몰라. 우리는 이 시간부로 몰래 함선에 탑승한 채 튄다.”
“…몰래 ”
내린 인원만 수 천이다.
도로 함선에 타는 시간만 해도 한 나절이다.
몰래라고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몰래!”
호필이 강하게 말을 한 번 더 내 뱉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당장 조용히 명령을 전달해서 함선에 탑승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본 조르노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한 거라고는 칠형포나 한 번 쏘고, 내려서 긴장감을 버티며 서 있다가 밥을 먹은 게 전부였다.
*
함선은 몰래 떠났다.
하늘 위로 빛을 점점이 뿌리며 말이다.
“잘도 돌아가네.”
“사람을 움직이기 좋은 방법을 썼으니까.”
“거짓은 단기간에 사람을 움직이긴 좋으나, 신뢰를 깎아.”
“깎든가 말든가, 사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니들도 좀 가라니까.”
“거, 아쉬운 소리 하지 마십시오. 형님 곁이 바로 저 김치용, 사나이 치용의 자리이니!”
치용이 곁에서 껴든다.
“이하동문, 저 빠지면 곤란하지 않아요 ”
유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몸 안 풀었어.”
인준은 더 명료한 답을 건넸다.
이 셋은 예상 범위 안이다.
하지만 나머지 셋은 아니다.
[전 이 싸움의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답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버다.
그는 안드로이드도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고찰한다.
염병할 소리다.
남고 싶으니까 핑계다.
답은 개뿔.
인간이라고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고찰한다고 답이 나오는 줄 아나.
철학자들이 괜히 땅 파고 헛소리 지껄이며 사는 게 아니다.
“안 가.”
안나는 이유도 대지 않는다.
그래. 넌 포기다.
소귀에 경을 읽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대장 곁이 바로 팽이 있어야 할 곳!]
얘도 마찬가지다.
죽여야 할 사람은 셋.
김보슬, 김산, 존.
사실 하나만 죽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보슬을 죽이려면, 그 둘을 꼭 죽여야 한다.
그러니 셋이다.
고로, 큰 병력은 필요 없다.
만약 주황 행성에서 작전이 실패했다면 진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숫자는 숫자로 막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작 두 개 사단.
죽일 숫자는 셋.
세주는 혼자 하고 싶었다.
주변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였기에.
그리고 신이 아닌 이상, 싸우는 와중에 모두의 목숨을 지켜줄 수 없기에.
“몰라. 시바. 니들 다 죽어도 난 몰라.”
투정을 부린다.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다.
“살아나면 나랑 결혼해.”
“야, 내가 남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약속해.”
안나가 눈을 부라린다.
이 여자는 왜 자신한테 빠졌는지.
“그래. 하자! 해!”
“약속!”
“약속한다고!”
“축하드립니다.”
“살아나면 100억만 줘.”
인준이 말한다.
“뭐래, 이 미친놈이.”
주변을 둘러보다 뒤로 시선을 던졌다.
“넌 또 왜 ”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껴주십시오.”
함선은 이미 떠났다.
자의로 남은 거다.
크롬팀 대장, 장왕이다.
말릴 수도, 보낼 수도 없다.
“요단강 익스프레스 타러 갈 인원은 다 모였네.”
죽을지 살지, 그 승부를 결정할 순간이다.
*
“용감한 자식들.”
남색 정장을 쫙 빼입은 보슬이 산과 존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 뒤로 1사단과 2사단 병력도 함께다.
대략 이천에 가까운 인원이다.
“이제 죽입니까 ”
“죽이고 싶었나 봐 ”
산의 물음에 보슬이 답한다.
물론이다.
자신의 군주에게 함부로 대한 순간부터 죽이고 싶었다.
군주가 말리지만 않았다면, 진즉에 죽였다.
“네.”
“죽여.”
보슬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1사단.”
“네!”
우렁찬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현 시간부로, 푸른 행성에 들어온 쓰레기를 청소한다.”
“네!”
“전군, 앞으로.”
척! 척! 척!
마치 한 명인 것처럼 한 무리가 빠져나간다.
떠난 산을 보며 보슬이 중얼거렸다.
“…많이 싫었나 보네.”
*
적을 보고, 아군을 본 세주는 결정해야 했다.
아군의 희생을 용인하느냐.
그게 아니라면.
‘이대로 싸우느냐겠지.’
-응. 미친 형아. 인간이 몇 명 죽든 무슨 상관이냐고.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그런 건 나 원래 없어.
알지. 원래 그런 새끼인거.
김산이 놓고 간, 병력 앞이다.
터벅터벅.
앞까지 간, 세주가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냐 ”
물어도 말이 없다.
“벙어리야 ”
“꺼져라.”
1급 에너지 컨트롤러 중 하나다.
“밥도 먹었길 빌고, 되도록 처자식이나 늙은 노모도 없길 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주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온다.
‘모드 온, 에임 마스터.’
검게 타오르는 불길이 전신을 감싼다.
일행을 뒤에 두고, 세주 혼자다.
“축포는 본래 대장이 터트리는 법이고, 건물 시공식의 가위질도 대장이 하는 법이니, 구경들 하시고.”
“미친놈.”
세주가 기세를 보인 순간, 이미 전투태세를 갖춘 오십이다.
그리고 세주는 양손에 짧은 기관단총을 들었다.
-장전 완료.
세주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전신을 가득 채운 오닉스 에너지가 숨에 섞인다.
입가를 타고 검은 연기가 새어나온다.
천사보다는 악마와 같은 모습이다.
“쳐!”
당하기 전에 치는 건 모든 전술의 기본이다.
오십의 병력이 달려 든다.
그리고 세주가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두두두두두두둥!
검은빛 탄환이 사방을 아우른다.
사출무기는 배리어로.
은하 전투의 기본이다.
오십은 그걸 지켰다.
배리어를 발동하고 그대로 달려 들었다.
앞 줄 스물은 블레이드를 뽑고, 뒤 줄 서른은 산탄총과 라이플을 꺼낸다.
고작 한 명이지만, 리미트리스 급.
정확한 규범에 따라 행동한 오십은.
퍼버버버버버벅!
“끄악!”
“꾸엑!”
“컥!”
공중에서 벌집처럼 구멍이 나, 죽어나간다.
그것도 단숨에 다.
오닉스 에너지 모드에 관통 성질 탄환이다.
그리고 평소에 만들어 둔 미니 애비탄 까지.
감당할 수 없는 화력이었다.
“…쿨럭!”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1급 에너지 컨트롤러는 특별히 심장과 뇌를 노려 쐈다.
에임 마스터, 그의 조준경은 적들의 말을 빌리자면.
은하 제일이다.
“넌 역시 빌어먹을 놈이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오닉스 에너지를 거두고 앞을 보자, 김산이 보인다.
그 뒤로 천의 병력이 더 붙는 것도.
그리고 세주와 산 사이로 다른 인영이 끼어든다.
“얘는 제 겁니다.”
“꺼져라. 넌 다음이다.”
김산은 쉬지도 않고 말했다.
“응. 다음 개소리.”
치용이 몸을 푼다.
우두둑.
목을 꺾은 그가 앞을 보며 신난 얼굴로 말했다.
“죽고 죽이느냐, 신나는 짓을 해보자. 이 개새끼야.”
“…하룻강아지.”
김산의 모습이 사라진다.
꽝!
폭음이 터지고, 치용의 모습도 사라졌다.
“싸움은 드럽게 좋아해요.”
“저쪽은 내 거.”
그 뒤로 인준이 뛰어 올랐다.
“어어, 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무리는 무슨.”
인준은 공중에 몸을 띄웠다.
아머의 등에 불꽃이 분사된다.
다른 이의 아머보다 세 배는 두꺼운 장갑과 거대한 몸체다.
다른 이들처럼 재거나, 고민하는 타입이 아닌 인준이다.
치용의 윙 업, 안나의 골든 아머.
인준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길을 택했다.
붐 업.
가진 에너지를 몇 배로 부풀리고 터트리는 기예다.
타오르던 에너지 불길이 변한다.
동시에 등 뒤에서 거대한 구체로 변하고, 다시 흩어진다.
인준이 쓰는 붐 업은 강력한 한 방이다.
그 대신, 쓰면 반드시 지쳐 쓰러진다.
괜히 걱정 어린 말을 건네는 게 아니다.
“실버야. 쟤 떨어지면 좀 주어와.”
[그러겠습니다]
그 단점을 제외하면, 붐 업은 대규모 살상능력만으로 치자면 세주 이상이다.
위이이이잉!
허공에 수 백의 구체가 나타난다.
동시에 인준은 수 십의 유탄을 쐈다.
꽈과과광!
중앙에 던진 폭발이 아니다.
적의 주변이다.
더 안쪽으로 모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모인 이들 위로 인준이 만든 빛의 구체가 떨어졌다.
숨을 꾹 참은 인준은 조용히 읊조렸다.
“접착.”
빛은 터지지 않았다.
그저 흩어져 사방에 붙을 뿐.
“아머를 벗어!”
곁눈질로 그걸 본 산이 외쳤다.
“늦었지.”
세주가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폭.”
인준은 호흡을 뱉으며 말했고.
동시에.
꽈과과과과광!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에 육편이 튀고, 고기 탄 냄새가 퍼진다.
피와 뇌수, 뼈와 살점.
사방으로 흩어진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 쉰 인준의 곁으로 실버가 선다.
“인간이, 이런 짓도 할 수 있는 겁니까 ”
장왕이 놀란 눈으로 말한다.
천의 병력 중, 남은 게 십분의 일도 안 된다.
인준은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니미, 남았네.”
전부 일격에 쓸어버릴 참이었는데 실패였다.
인준이 폭발을 일으켜 생긴 연기 뒤로, 보랏빛 장막이 보인다.
진짜 라스트 보스의 등장이었다.
보슬과 존, 나머지 병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