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202. 밥 먹자
요주의 인물 첫 번째 반세주.
잠재력 측정 불가, 어드바이저 능력 측정 불가.
사단장 급이라도 단일 전투는 지양.
그 휘하 셋 또한 요주의 인물로 분류.
김치용, 단순하고 무식하며 힘을 중시한다.
근접전이 특기.
이인준, 폭발물을 다루며, 상대하기가 가장 까다롭다. 대인살상 능력 보다는 대량살상 능력에 특화.
정유진, 치료와 서포트에 특화. 반반한 얼굴로 잠입 임무를 주로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
부대 내 최약체.
제리 브라코는 뒤에서 움직이며 적을 암살하는 스폐셜 리스트다.
그는 정보를 중요시 했으며, 그 정보 뒤에 숨겨진 내용을 추리하는 데 능숙했다.
그는 정유진을 무시했다.
치료와 서포트, 전투보다는 뒤에 서 있는 게 어울리는 자다.
현 상황에서는 저런 오만무도한 짓에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서 있는 건 아홉.
나머지 하나는 언제나 몸을 숨긴다.
7사단의 보이지 않는 비수.
그가 움직였다.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제리는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비수는 그와 쌍둥이였으며, 둘은 생각을 공유했다.
둘만이 가진 특수한 사이킥 능력이었다.
제리는 손가락을 들었다.
유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이지만, 상대에게는 불안한 행동.
그의 손짓에 뒤에 선 부하 둘이 위치를 바꾼다.
간단한 포메이션 변경이지만, 상대에게는 위협적이다.
유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제리를 쫓을 뿐이다.
‘성공.’
제리는 확신했다.
적의 의식은 자신에게 집중되었으며, 보이지 않는 비수는 이미 유진의 우측에 자리를 잡았다.
대각선으로 짓쳐 들어가 단숨에 심장을 꿰뚫는 스피어 그립은 그의 장기였다.
푸른빛이 번뜩인 순간이다.
유진이 그은 선 위로 길게 뻗은 창날 형태의 블레이드가 넘어선 순간이기도 했다.
퉁.
가벼운 소음이 울렸다.
유진은 손등으로 창날을 올려쳤다.
전신에 검은 아머를 입은 상대다.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잡았다.
우득!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꺾는다.
비명 소리 하나 없이, 7사단 서열 2위가 죽었다.
툭.
바닥에 시신을 내려 둔 유진이 앞을 본다.
“넘어오면 죽는다.”
“…최약체가 아니었나 ”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다들 내가 제일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처음부터 유진은 치용이나 인준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가진 자였다.
에너지 컨트롤 능력은 세주를 제외하고는 최고였다.
그 말은 에너지를 쌓고, 활용하는 능력이 제일 좋다는 말이다.
치용처럼 육체 단련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리미트리스 급 에너지 보유량을 가지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에 자신을 숨기는 능력에 특화된 사이클롭스 아머는 유진의 에너지 보유량을 철저히 감춰준다.
“리미트리스 급이었나 ”
일격에 죽은 쌍둥이, 마치 자신이 죽은 것 같다.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제리가 입을 연다.
“알아서 생각하고.”
그럴 거다.
자신과 쌍둥이는 1급 에너지 컨트롤러였으니, 그를 아이 가지고 놀 듯 죽인 유진은 리미트리스 급.
단순한 계산이다.
“그냥 돌아가라.”
유진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랑곳 않고 제리 브라코가 양 주먹을 쥐고 앞으로 향했다.
돌격이다.
상대는 하나, 그리고 제리는 평소에 7사단 전력이라면 보슬과도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9은하의 리미트리스 급 에너지 컨트롤러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더구나 쌍둥이의 죽음,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타다다닥!
아홉의 인원이 순간 어둠으로 스며든다.
달빛도 제대로 비추지 않는 밤이다.
유진은 손을 털었다.
두 개의 그립이 손에 잡혔다.
블레이드 형태는 베는 맛이 있을 진 몰라도 에너지 소모량이 크다.
유진은 낭비가 싫었다.
필요한 만큼만, 적재적소.
그렇게 쓰고 싶었다.
그가 송곳 형태의 그립을 선호하게 된 이유다.
모습을 감췄다지만, 주변에 깔아놓은 에너지 파장으로 인해 놈들의 움직임이 면밀히 느껴진다.
치용의 눈 먼 칼을 보고 감명 받아 만든 커버링 기술이다.
에너지 트랩이라고 이름 붙인 이 기술은 반경 내 적의 움직임을 느끼게 해준다.
슈슈슈슝!
푸른빛의 송곳이 허공을 찌를 때 마다.
“끄악!”
“꺽!”
비명이 샜다.
어두운 밤 길, 쉘터 앞은 인적조차 드물다.
2차선 도로 위, 새벽 내내 차가 한 두 대 다닐까 말까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침이 바짝 마를 만큼 두려운 소음이었다.
어둠 속의 사투, 아니 사투랄 것도 없이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유진은 세주가 훈련시킨 부대원 중 대인 전투 최강의 부대원이었다.
7사단이라는 놈들을 대부분 죽이고 제리 브라코만 남았을 때, 유진은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널 죽이면, 그 김보슬이란 새끼도 화가 날까 ”
“모른다.”
왼 다리를 잃고, 오른손가락 네 개마저 잘려나갔다.
제리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은하가 좁다고 활개 쳤는데, 고작 9은하의 인간에게.
“빌어먹을.”
“화가 나는데 가라앉히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이 미친놈아.”
“그냥,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널 죽이면 그 김보슬이란 새끼가 미치도록 열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아닐 거다.”
제리 브라코는 자신의 군주를 떠올렸다.
자신은 총알 같은 거다.
쏘면 끝인 존재.
회수가 필요 없는 일회용품.
나무젓가락을 쓰고 버리면서 울거나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다.
종이컵이 아까워, 재활용하는 사람은 없다.
“아쉽네.”
푹.
송곳이 그의 머리를 꿰뚫는다.
그걸로 밤중의 습격은 끝이었다.
“작전 종료 시간, 23시 55분. 대령 정유진 본대로 복귀 요청합니다.”
보고를 끝내고 유진은 함선을 기다렸다.
푸른 행성, 전쟁터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
푸른 행성 안쪽.
칠형포를 쏜 후, 그대로 진입한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내렸다.
전부 사이클롭스 아머를 입은 이들이다.
그 앞에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섰다.
“기다려라.”
그는 대뜸 그렇게 말하곤 여유 있게 팔짱을 낀 채 섰다.
“쏴 버릴까 ”
정찰 부대를 겸한, 치용의 돌격대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명령 나오기 전, 발포 금지야.”
분대장이 뒤에서 그의 어깨를 당겼다.
거리는 고작 100m 안쪽, 쏜다면 맞출 자신이 있다.
아니, 그대로 내달려서 베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뒤쪽 본부에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뒤쪽을 보자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이 떨어졌는데, 싸움은 아니다.
분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쇼 ”
“김산.”
그는 말하고 눈을 감았다.
분대장, 김우정은 속으로 욕을 뱉었다.
누군 이름 없나.
“거, 이름 말고, 딴 거 없어 ”
상당히 무서운 상황이긴 하다.
탁 트인 들판에 함선을 끼고 마주한 둘이다.
“나호필도 아니고, 본 조르노도 아니고, 넌 누구냐 ”
남자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우정은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만.”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본 조르노, 부사령관이다.
호필을 제외하면 가장 윗대가리다.
“김산, 1사단장 맞습니까 ”
끄덕.
건방진 새끼.
우정은 뒤로 물러났다.
“기다리라고 하는 이유는 ”
“반세주가 오기 전까지 싸우지 말라는 명.”
딱딱한 그 말투에 본 조르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우정을 향해 손짓했다.
뒤로 돌아가는 둘이다.
부사령관, 평소라면 말 붙이는 것 자체를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궁금하다.
“우리 안 싸웁니까 ”
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싸우러 왔다.
매도 빨리 맞는 편이 낫다.
기다리는 시간보다 전투가 시작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말이다.
“기다린다.”
진짜 기다리는 건가 싶다.
하지만 왜
본 조르노는 바로 옆의 분대장을 무시한 채 돌아왔다.
김산의 뒤엔 고작 50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서 있었다.
적의 병력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가 두려웠던 건, 결과였다.
첫 번째 공격에 대한 결과.
칠형포는 죽음의 오로라로 불린다.
대인살상의 최고봉에 있는 포격이다.
하지만.
‘아무도 안 죽었다고 봐야겠지.’
땅이 파인 곳, 건물이 부서진 곳.
타격은 있지만, 시신은 없다.
핏자국도 없다.
칠형포는 통하지 않았다.
선제공격은 실패, 더구나 본은 알 수 있었다.
‘싸우면 다 죽겠구나.’
지금은 싸울 수 없다.
과거 그가 죽음을 예감했을 때, 승부를 바꿨던 건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기다리자.’
반세주의 힘이었지.
*
보슬은 침대에 누워 푹 잤다.
일어나, 밥도 챙겨 먹었다.
“룰루랄라.”
영화 한 편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느지막이 씻고, 칫솔질까지 마친 그는 속옷을 골랐다.
“오늘 같은 날은 역시.”
빨간색이다.
정열의 빨강!
그 위로 흰 셔츠, 네이비 정장까지 갖춰 입는다.
넥타이는 답답하니까 싫다.
박스티에 반바지 차림인 평소에 비하자면, 확연히 다른 옷차림이다.
“좋으십니까 ”
존이 뒤에서 묻는다.
“좋지.”
보슬은 전신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물었다.
“넌 신이 있다고 생각해 ”
“저의 신은 군주님이십니다.”
“네가 김산이냐 무게 잡지 말고.”
존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있으려면 있고, 없으려면 없겠죠. 뭐.”
아무 상관도 없다는 투다.
“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까 ”
“응!”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다.
“옷은 왜 차려입으신 겁니까 ”
방을 나서는 보슬을 수행하며 존이 물었다.
“내일, 그 신을 만날 테니까.”
존이 뒤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신나라 까먹는 소리인가 싶다.
“그냥 그렇다고.”
평소에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군주다.
존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가 할 일에 변함은 없다.
군주를 섬기고, 그를 대신해 싸운다.
그가 명하면 지옥불이라도 뛰어든다.
그게 2사단장, 존의 역할이자 존재의의였다.
성격의 차이일 뿐, 김산도 존도 보슬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일 뿐이었다.
*
함선이 착륙하고, 긴장감에 공기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기온은 초여름 정도로 더운 편이지만, 그 누구도 더위로 불평하지 않았다.
곧게 서 있는 한 남자 때문이다.
벌써 만 하루, 꼿꼿이 선 채 아군을 바라보는 남자다.
잡담조차 조용히 나누는 편이다.
농담조차 할 수 없는 가혹한 공기다.
그 사이로, 작은 쉽이 날아왔다.
“적기 ”
누군가 중얼거렸다.
반응할 틈도 없이, 쉽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니들 뭐하냐 ”
반세주다.
“…충성!”
누군가 경례를 한다.
사령관과 동급이며, 심적으로는 그보다 높다.
구국의 영웅이자,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늦어!”
나호필이 그를 반겼다.
사납게 노려보며 달려온다.
“니들 뭐해 ”
미친 듯이 싸우리라 예상했지만, 전혀 반대다.
이 적막한 공기는 뭐란 말인가.
“기다리래.”
“뭘 ”
“너.”
세주의 눈이 반대편으로 향한다.
“저 새끼.”
치용이 웃으며 놈을 확인한다.
통일은하정부 1사단장 김산.
은하제일의 힘을 갖춘 군인.
김보슬을 제외한 최강의 인류.
“잠깐.”
세주가 치용을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를 지켜보는 이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호필 조차 태연한 표정이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제 그가 왔으니, 냅다 싸울지도 모른다.
기다린 시간 때문에 괴롭다.
아슬아슬한 외줄에 서 있는 채로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아무리 강력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똥줄이 타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왔냐 ”
김산이 입을 열었다.
팔짱을 풀고, 눈을 뜬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 보고 할 차례다.
“응. 왔는데. 너 우리 애들 겁박했냐 ”
“겁박 ”
“너 같이 생긴 새끼가 여기 서서 보면 밥이 넘어 가길 하겠냐 잠이 오겠냐 ”
세주가 결론을 냈다.
“그 변태 놈한테 가서 전해. 좀 기다리라고.”
“말 가려 써라. 그 혀를 뽑기 전에.”
“너나 말조심해.”
어느새 다가 온 치용이다.
“하여간 기다리라고 해. 먼 길 다녀왔더니, 배고프다. 밥이나 먹고 붙자고.”
김산이 말없이 돌아선다.
세주는 뒤로 돌아 외쳤다.
“밥 먹자!”
긴장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말이다.
“배고파. 밥 먹자고.”
긴장의 끈이 풀린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호필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으로서는 풀어 줄 방법이 없었다.
그걸 세주는 오자마자 5분도 되지 않아 해낸 거다.
생각하고 한 것이든, 아니든.
“빨리 좀 다니자.”
겨우 한숨을 쉰 호필이 그를 보고 말한다.
“좀 자고, 먹고 해라. 안색 안 좋다.”
전쟁 중에, 적의 행성에 와서 잘도 안색이 좋겠다.
하여간 대단한 놈이지만, 여러모로 봐도 미친놈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