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2화 (182/206)

# 182

182. 쓰레기는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프로비던스는 자신의 의무를 잘 알았다.

그의 가장 큰 책임이자, 의무는 자신의 주인이자 이 모든 걸 시작한 이 남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초일류 인공지능이자,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그는 그에 합당한 시스템을 가동했다.

-정신 상태가 나약해질 수 있기에, 긴급 처방전 발행.

-신경 안정제와 일부 마약 사용을 허용하길 요청

마약이다.

몸에 피해를 주는 건, 기본적으로 주인이자, 형님이라 부르는 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동의하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거다.

프로비던스는 그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언을 동의한 것으로 판단해, 몰핀과 안정제를 배합한 약물 투여를 시작한다

“스톱 이 새끼야. 뭘 넣어?”

자신이 주인공이자, 제3자가 되어 보던 영상은 끝났다.

세주는 눈을 뜨고, 소년의 형상이 된 프로비던스를 보고 입을 열었다.

“마약? 미쳤냐?”

-어디까지나 형의 정신 건강을 위해선 데?

세주가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이거 스파이 아냐?

어드바이저니까, 어디서 해킹이라도 당했을 수도 있다.

그의 의뭉스러운 눈에, 녹색 홀로그램 소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싫으면 말고.

그러면서도 탐색하는 눈을 세주에게 거두지 않는다.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도 세주는 의연했다.

아니, 의연한 게 아니라.

그는 침묵과 무표정으로 속을 쉽게 읽히지 않았다.

프로비던스는 신중하게 그의 속마음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인간의 정신은 넓고 다채롭다.

특히나 혼란스러운 정신과 마음을 읽는 건, 프로비던스에게도 도전이다.

잘못하면 자신의 인공지능도 오염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면에서 세주는 참 좋은 주인이다.

그는 고민보다는 행동을, 생각보다는 실행을 앞에 두는 인간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시원시원해서 좋았고.

나쁜 말로 하면 단순하고 무식한 인간이었다.

가끔 생각이란 걸 하지만 모두 전투와 적을 엿 먹이기 위해서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적을 엿 먹이기 위한 것.

고로, 나쁜 성격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게 전생의 그와 현생의 그를 보고 프로비던스가 내린 판단이다.

동시에 그는 걱정이 들었다.

이 모든 사실, 자신 안에 숨겨지고 잠겨 있던 일을 알렸을 때, 그의 인공지능은 두 가지 가능성을 그렸다.

첫 번째는 미친 주인을 보고, 이 모든 걸 새로 준비하는 것이다.

어드바이저 프로비던스의 기저에 깔린 최선의 운영방침은 주인의 보호가 아니었다.

그건 그의 의무이자, 책임이었고.

그의 기초 중추 시스템은 하나를 추구했다.

적의 멸살.

주인의 정신이 닳고 달아, 조각 난 초크가 되더라도 프로비던스는 싸움을 종용한다.

그게 그의 삶의 가치였다.

되도록 미치지 않으면 좋겠다.

프로비던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배운 그는 이 인간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가능성에 모든 걸 걸고 싶었다.

미치지않고, 이 모든 걸 감내하며 일어서는 것.

우울해지고, 힘이 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

실패와 패배를 깨고 일어서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조금 미친 짓을 하더라도, 프로비던스는 그 정도면 세주를 믿고 도울 수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소년의 눈이 더 세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라본다.

세주는 그런 홀로그램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꾹 눌렀다.

형상과 함께, 오감까지 발동한 프로비던스는 자신의 머리를 누르는 세주를 올려다봤다.

“뭐?”

대뜸 세주가 입을 연다.

-괜찮아?

진심 반, 탐색 반이다.

“어쩌라고?”

그런 세주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의문이 더 깊어질 때쯤.

꽁!

그의 머리를 주먹으로 박은 세주가 피식 웃는다.

“재밌었다.”

-뭐가?

“영화.”

-이거 다 진짜라니까.

“응.”

-그러니까 형은 본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세주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왜 웃는 걸까?

그런 세주가 입을 연다.

“재밌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떤다.

“겁나게 재밌어.”

세주는 프로비던스가 보여준 모든 걸 믿고 있다.

동시에 즐거워했다.

“그러니까 김보슬 그 새끼가 몇백 년이나 날 괴롭힌 거잖아.”

“맞아.”

“그런 새끼한테 엿 먹일 생각을 하니, 신이 나 죽겠다.”

아니, 애초에 이 양반 하나도 안 심각하다.

프로비던스가 물었다.

-그 몇백 년이나 실패한 건 안 보셨나?

“그건 그거고, 난 실패 안 해. 크흐흐. 이 새끼, 엿이나 한번 먹어봐라.”

프로비던스는 그와 함께한 날들을 떠올리고 결론을 내렸다.

처음부터 정상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을 만든 창조주를 향해 속으로 읊조렸다.

듣지도 못하고, 이미 회귀 후 잊힌 존재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이 자는 지금 미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충격적인 사실에 미친 게 아니라는 거다.

‘원래 미친놈입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대나무 숲에 외친 이처럼 그제야 프로비던스는 속이 편했다.

원래 미친놈한테 미치길 걱정하다니.

헛된 고생이었다.

*

어떤 글로 포장하고, 많은 이들이 독려하고.

영웅이 살린 다 하더라도 인류는 또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꼈다.

일부 도시에서 무분별한 범죄가 일어났다.

경찰과 군 병력이 출동해서 거리를 쓸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괴상한 일들이 터졌다.

이상한 종교를 신봉하는 집단이 나타났고, 외계인을 맞아들이고 외교와 교류를 해야 한다는 미친놈들도 있었다.

호필은 보고를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교류할 놈들이 레이퍼를 보내 사람 먼저 죽이나?

애초에 그들과 대화는 불가다.

지금은 또 모르겠다.

‘상대는 인간이었다.’

호필이 본 이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한국말을 사용하는 인간.

고민과 고뇌가 깊어진다.

“사령관님.”

그 사이, 부관이 들어와 그를 불렀다.

“가지.”

호필은 정복을 입고 몸을 일으켰다.

절망이 인류를 덮치고, 많은 일이 터졌지만.

그 반대 효과도 있었다.

반세주의 한 마디에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군에 몸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 단상으로 향했다.

딱딱하게 굳은 군 상부층 몇몇과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단상에 오르자, 밑을 빼곡하게 채운 병사들이 보인다.

“난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다! 그런 나를 고작 훈련병으로 받아들인다고!”

“흥. 난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는 용병이다. 전쟁이라면 일가견이 있지.”

시장 바닥처럼 시끄럽다.

자신을 피력하는 놈들.

그게 아니라면,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무게를 잡는 이들.

그 와중에 아예 군부대 경험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껴 있다.

호필은 대강 무리를 나눴다.

영웅의 곁에 서서 싸우길 원해서 치기 어린 마음으로 온 이들이 첫 번째.

용병이나 타 부대 특수부대 출신으로 자신을 중용하라는 머저리들이 두 번째.

세주와 그들과 함께 싸웠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세 번째다.

마지막, 유야무야 끌려 온 놈들도 있었다.

세주는 어느 날 갑자기 방송사를 찾아가서 부대원을 모집한다고 말했다.

그걸 방송으로 본 호필은 전쟁이 끝나도 자신이 제 명에 죽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고혈압 내지는 화병으로 분명 쓰러지고 말거다.

다행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는 그저 말했다.

“병사 모집한다. 시원하게 한 번 싸워보자. 말했듯이, 한 명도 안 죽일 거다.”

담담하게 사실만 말하는 그는 웅변의 재능이 없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모여라. 2주 뒤, 한국 서울 잠실 운동장으로 모여.”

그 덕분이다.

호필이 지금 잠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이들을 맞이하는 이유다.

정작 이들을 모집한 반세주 개자식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금테 안경을 쓴, 정보작전부 사령관이라는 작자다.

아니, 이뿐 아니라 자신들이 우주에 다녀오면서 모르는 얼굴이 꽤 군 상부에 자리 잡았다.

‘이 와중에 정치질이냐?’

호필은 여기서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앞을 바라보며 코를 찡그렸다.

“조용히 시켜.”

바로 옆, 크롬 팀 대장 장왕이다.

“어느 쪽을 말하는 겁니까?”

…위험한 새끼.

여기도 반세주에 물든 놈이다.

“…당연히, 저 밑쪽이지.”

새로이 군 상층부를 맡은 놈들이 눈을 부라렸다.

어디서 저런 쓰레기들을 모아왔을까?

“흥. 20년 전 만 해도 저런 것들이 과연 이곳에 있을지.”

매부리코의 얼굴이 검붉은 노인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이제야 날 부르다니, 늦었어!”

‘아!’

호필은 그를 떠올렸다.

방산비리의 주범이다.

분리수거도 안 되는 초특급 쓰레기다.

‘저자를 왜?’

대통령의 의중이 궁금할 따름이다.

“지휘권만 주시면 내 직접 외계인을 일망타진하지!”

“옳습니다!”

“그렇지요!”

바로 옆에서 좋다고 외치는 저놈들도 비슷한 놈들이다.

“야, 대통령 직통 한 번 넣어.”

호필이 뒤쪽을 향해 말하자, 부관이 바짝 다가섰다.

“안 그래도 전언이 있습니다.”

그 타이밍이다.

“으랏차!”

세주와 치용, 인준과 유진이다.

아니, 그 뒤를 따라 실버와 팽도 함께였다.

어느새 왔는지, 머리 위 비틀 쉽이 떠 있다.

그 위에서 우렁찬 기합을 지르며 밑으로 내려온다.

군 간부가 있는 곳이 아니다.

공중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바닥으로 떨어진 곳.

그들이 모은 이들이다.

만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다.

“시작해!”

세주의 외침이 들렸다.

뭘?

호필이 불안하게 그들을 바라봤다.

“저깁니다.”

장왕이 쌍안경을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세주가 보였다.

아니,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신나게 외친다.

“탈락!”

“아까, 프랑스 외인부대 어쩌고저쩌고한 새끼인 것 같은데, 캬. 만루 홈런이네요.”

날아간 놈이, 펜스를 넘어가는 게 보였다.

쾅!

“무슨 짓이야!”

“이런 미친놈이!”

“개자식이!”

호필의 속마음과 다를 바 없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운동장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

“어흥!”

꽝!

치용의 주먹질이다.

인준과 유진도 마찬가지다.

팽은 비틀 쉽 위에서 자리 잡고 있고, 실버는 거침없이 달렸다.

꽝! 꽝!

격한 소음과 함께 하나둘 인간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저게 무슨 짓일까?”

호필이 넋을 놓고 물었다.

그의 호위를 맡은 장왕이 물었다.

“나중에 기주한테 물어보겠습니다.”

“나기주?”

“저기 지원한다고 들어갔습니다.”

어쩐지 안 보이더라!

미친 반세주 빠돌이 자식.

호필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넋이 나간 건, 그뿐이 아니었다.

아니, 호필은 양호한 편이다.

어쨌든 그는 미친 자식들과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니다.

방산비리의 주범인 매부리코가 묻는다.

호필은 그의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됐다.

다른 사람의 불안은 자신에게 안정을 주는 법이다.

“직접 물어보시든가.”

그러다 콱 뒤져버리든가.

*

세주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그는 모두를 불러서 말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죽지 않고 싸울 놈들이다.”

“…어떻게 구별하는데요?”

유진이 묻는다.

“이걸로.”

그가 손에 건네 물건을 건네준다.

작은 렌즈 두 개다.

건네받은 유진이 능숙하게 식염수를 뿌리고 눈에 끼운다.

“예전에 서클 렌즈 좀 끼웠거든요.”

태연하게 말한 그가 눈을 깜빡인다.

“어?”

“신기하지?”

세주가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를 둘러보며, 세주가 말한다.

“녹색은 합격, 빨간색은 불합격, 노랑은 놔둬. 실버나 내가 판단한다.”

렌즈를 끼운 유진의 눈에 지나가는 이들의 색이 보인다.

“지원하는 이들 중 합격자만 가져와.”

프로비던스가 만든 스캐너를 렌즈로 만든 거다.

사실 저 렌즈는 아무 기능도 없다.

모든 건, 프로비던스가 계산하고 재능을 판독하는 거다.

그걸 색으로 표현하는 것뿐이고.

실버에게는 직접 프로그래밍 된 칩을 선물하고.

그대로 잠실 운동장 한복판으로 떨어진 이들이다.

세주는 거침없이 불합격자를 걷어찼다.

“바빠, 합격자만 추린다. 1시간.”

그리고 내달린 거다.

그 와중에 자신의 일격을 막는 이도 있다.

황금빛을 뿌리는 금발의 미녀다.

“넌 왜 와?”

“같이 싸울 거니까.”

안나 휴이츠다.

“어차피 전 세계 참전 아니냐?”

그 말에 안나가 고개를 젓는다.

무슨 일인가 싶다.

그래도 지금 당장 물을 일은 아니었다.

선별 작업은 거침없이 이뤄졌다.

나기주는 유진의 일격을 막으며, 뒤로 훌쩍 물러났고.

“늘었다?”

그에게 칭찬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만에 가까운 인원 중 남은 인원이 3분의 1로 줄었을 때다.

세주가 단상으로 다가온다.

“미친놈.”

호필이 인사를 건넨다.

세주가 무시하고, 장왕을 봤다.

“넌?”

보는 눈이 제법 살벌하다.

“당연히 참전합니다. 오늘은 호위로 빠진 거고, 인준 교관님이 합격이라고 했습니다.”

“아아.”

세주가 무시하고 지나간다.

단상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그의 앞을 막는다.

매부리코에 검붉은 얼굴의 꼬장꼬장한 노인이다.

“나는 제….”

퍽!

휘릭.

텅!

단상 옆, 기둥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그를 본 세주는 주먹을 쓰다듬었다.

“야, 누가 여기에 일반인들이래?”

“왜 대뜸 쳐?”

호필이 궁금해 물었다.

“방산비리 해 먹는 범죄자 새끼니까.”

프로비던스의 스캐닝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저런 쓰레기의 정보쯤이야 금세 따온다.

그걸 들은 호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수 있습니까?”

쓰레기를 따르는 다른 쓰레기가 조용히 읊조린다.

용기가 가상했다.

“뒤질래?”

세주가 물었다.

“…아니요.”

그 옆 다른 이가 고개를 젓고 금세 이들을 이끌고 나간다.

사람 한 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다.

세주는 자기가 알고, 아끼는 사람이 죽는 게 싫은 거다.

쓰레기는 애초에 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

“쓰레기 분리수거 부탁한다는 전언이었습니다.”

딱, 맞춰서 호필의 뒤에서 부관이 말을 전했다.

“대통령께서?”

“네.”

아, 그랬냐?

호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거다.

어쨌든 결과가 좋다.

“전할 말이 있다.”

호필이 급히 세주를 붙들었다.

“뭔데?”

“8은하의 군주라는 놈한테 연락이 왔다.”

“…뭐?”

예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세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통신 내용은 더 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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