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81화 (181/206)

# 181

181. 반세주

자신에게 이걸 맡기고 간 새끼는 뭘 바랐을까?

영웅이 돼서 인류를 구하는걸?

하지만 구하면 뭐하지?

구하면? 이 끝없는 삶은?

반복해서 구하라는 걸까?

“개자식.”

그쯤 입에 욕이 붙었다.

자신을 부른 놈을 개자식이라고 부르곤 했다.

현재의 세주는 말없이 이 모든 걸 지켜봤다.

우연이 겹치는 걸 필연이라고 하던가.

그의 삶의 첫 번째 변화는 팽이었다.

그녀는 그 이후 매번 나타났다.

[대장!]

그리고 팽은 언제나 같았다.

가진 건, 첫 번째 기억뿐이다.

팽을 보는 건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줬다.

“또 왔냐?”

[대장!]

그와 동시다.

희한한 일이 또 있었다.

동생이 그의 삶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합쳐 너무 많은 죽음을 봐온 그는 어느새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삶에도 동생이 있었다.

반복된 삶은 매번 같지 않았다.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다.

의식을 동화한 현재의 세주는 그의 삶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걸까.

“형!”

매번 동생은 그를 찾았다.

그렇게 몇 번의 삶을 이어왔을 때다.

전생의 세주가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보고 천재라 한다.

그의 동생이 그랬다.

천재였다.

남들이 고민하는 답을 단숨에 내는, 진짜 천재.

그 아이는 정말로 신이 내린 것 같은 여러 일을 해냈다.

장난삼아 세주는 외계의 기술 일부를 그에게 줬다.

그리고 그는 그걸로 놀라운 진보를 이뤄냈다.

이제까지 삶에서 없던 걸 만든 거다.

“미쳤네.”

의욕을 잃은 전생의 세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대장은 뭐든 할 수 있어]

앵무새처럼 조잘대는 그녀와 천재라 이름 붙이기 합당한 동생.

그리고 미래를 아는 자신.

그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다 타버린 숯에서 작은 불씨가 싹을 틔운다.

희망이란 두 글자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세주는 그때부터 전심전력으로 모든 일을 해냈다.

미래를 알지만, 그가 아는 건 모든 미래는 가변적이라는 거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부른다고.

미래는 언제나 변했다.

어느 때는 레이퍼의 침략 시기가 변하기도 했고.

우주의 미아가 돼서 고작 오천 명이 함선에 갇혀 떠돌기도 했다.

회귀 후 마음대로 삶을 주물럭거리는 건 불가능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주의 삶은 전생과 후생이 아니라 회귀였다.

모든 시간 축은 일정 기간을 중심으로 돌아왔으니까.

다만, 매 상황이 변했을 뿐이다.

언제나 다른 미래.

달라진 환경 속.

세주의 동생이란 작자는 결국 사고를 쳤다.

“어드바이저?”

전생의 세주가 입을 연다.

“그게 뭔데?”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동생이다.

벌써 며칠을 씻지 못했는지.

어드바이저, 뭔지도 모르고 만든 거다.

“있어. 그런 게.”

이제까지 인류가 갖지 못했던 것 중 하나다.

어떤 기술 진보를 이뤄도 갖지 못했던 물건 중 하나.

8은하의 군주만이 가졌던 유니크한 무기 중 하나다.

“아직 구동 전이야.”

동생은 금세 관심을 끊었다.

그는 자신의 형이 얼마나 헛소리를 잘 하는지 알았다.

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드드드.

곧 어드바이저가 정신을 차리고 구동을 시작했다.

세주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거라면 정말 비벼볼 만하다.

자신을 이곳에 보낸 개자식이야 이미 죽어 없다지만.

그 와중에 일조한 놈은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그것도 자신의 삶을 관망하며, 유희를 즐기며!

그 개자식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물건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드바이저가 완성되고.

세주는 그걸 들고 다시 싸웠다.

그리고 또 졌다.

“염병할.”

다시 수 없는 삶이 반복되고, 또 만들고, 또 싸우고.

그리고 행운이랄 수 있는 우연이 한 번 더 일어났다.

뫼비우스의 띠라 이름 붙인 구멍, 블랙홀.

그 앞에서 김보슬의 사단 병력 앞에 무릎 꿇었을 때다.

“나 이제 지겹다.”

보슬이 입을 연다.

“뭐가?”

반쯤 타버린 장작처럼 반신이 그을린 채로 세주가 물었다.

“너.”

“그래서?”

“이제 끝내자. 9은하 지워 버려줄게.”

반가운 말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말이기도 했고.

그의 앞에서 죽여 달라 애원한 적은 없지만.

바라던 결말이다.

“그러든가.”

태연하게 답했다.

띠딕.

그 순간, 동생이 만들어 준 어드바이저가 작동했다.

-형, 내가 포기하지 말랬지.

뭐라는 거냐?

깜짝 놀란 세주가 어드바이저에 집중했다.

어느새, 자신과 마음을 나눈 동생이다.

세주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말했고.

동생은 모든 걸 포기하기 전, 상대에게 엿이나 먹이라고 했다.

그 선물이 바로 이 어드바이저였고.

-분석 결과 통보. 승리 확률 1%.

승리? 무슨 승리?

그 어드바이저의 빛은 자신의 반대편, 김보슬을 향해 있었다.

“더 하고 싶으냐?”

더 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다.

적어도 이대로는 안 된다.

“다음에 보자.”

세주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목을 쥐어뜯었다.

죽으면 끝이다.

시간은 다시 돌아가고, 새 삶을 얻는다.

우드득.

핏줄기가 솟는 걸 마지막으로 다시 시야가 어두워진다.

죽음 속에서 세주는 동생과 팽, 셋이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일단 생각을 해.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동생은 그를 나무랐다.

[대장은 뭐든 할 수 있어!]

팽은 여전히 변함없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이 여자를 골랐는지가 떠오른다.

그녀는 한결같이 사람을 믿어준다.

그 순진함이 좋았다.

그녀의 응원이 처음에는 절망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맹목적인 그녀의 칭찬과 믿음은 의외의 힘이었다.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연이 겹친 필연의 연속.

세주는 깨달았다.

‘있다. 이길 방법이.’

어드바이저가 말한 1%의 희망이 보인다.

그걸 늘리는 건 이제부터 자신이 할 일이었다.

그는 다음 삶부터 다시 치열하게 싸웠다.

김보슬을 피하며, 쌓은 공든 탑이다.

준비 또 준비.

그는 삶을 반복하며 할 수 있는 걸 전부 다 했다.

그 와중에 얻은 것이 바로, 어드바이저의 중추가 되는 제어 장치.

인간으로 치자면 뇌다.

기억과 능력 모든 것을 뿜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각.

어떤 물건도 회귀하며 가져올 수 없다.

천재가 된 동생의 도움이 회귀 후 가져올 수 있게 했다.

기억과 능력.

두 가지 전부다.

동생은 세주에게 지식을 전했다.

하지만 수 없는 삶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 자신이 천재가 되지는 않았다.

세주는 단 하나만 만들면 충분했다.

자신의 기억과 능력을 기계에 전이시키는 기계.

이름도 없는 기계 덕분이다.

어드바이저 도안은 그냥 외웠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한 가지 사실 앞에 절망했다.

‘이 기억을 갖고 돌아간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수 없는 절망과 셀 수 없는 회귀를 겪으며 깎여나간 자신의 정신력이 의심스러웠다.

‘무리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기억은 필요 없다.

아니, 자신의 인격체 자체를 다시 만드는 거다.

고생 끝에 회귀 후, 기억을 잃는 법도 알아냈다.

가진 모든 걸 버리고서야 희망을 얻었다.

그날, 세주는 값진 눈물을 흘렸다.

“개자식 덕분에 고생 오지게 하는구나.”

그가 씁쓸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어느 날 동생이 물었었다.

그 개자식이 누구냐고.

“누구긴, 그 영웅이란 새끼지.”

“이름이 뭔데?”

잊을 수가 없는 이름 석 자다.

“반세주.”

자신을 찍고 사라진 새끼.

그 자식은 죽으니 편하겠지.

산 놈은 이렇게 개고생이지만.

“후, 누가 그 새끼한테 욕이나 한 사발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전 세계가 개자식이라고 욕해줬으면 좋겠다!”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동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해.”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새끼를 어떻게 욕해?”

“욕하게 만들면 되지.”

새로 태어난 자신에게 반세주란 이름을 주는 거다.

그리고 그의 환호성을 개자식이라고 부르게 하자.

“그게 돼?”

“어드바이저가 있잖아.”

가능하단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세주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가졌다.

그는 그 인격을 형성하며 바라는 몇 가지를 주입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이길 수 없어.”

어떤 순간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굳건함을.

“혼자선 안 돼.”

동료를 이끌고, 힘을 나눠주는 배포를.

“성격도 만만하면 끝이지.”

누구에게나 쉽게 손해 보면 그것도 최악이다.

준비를 끝내, 전생의 세주.

아니, 이걸 준비한 이름 모를 영웅은 마지막 도박을 벌였다.

뫼비우스의 띠에 뛰어들었을 때, 그냥 죽은 건 아니었다.

혹시나 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지 않나 하고 의심했고.

그때 작은 단서를 찾았다.

아주 작은 비틀림.

그 안에서 자신은 과거를 조정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을 거다.

준비를 끝낸, 세주는 수없이 뫼비우스의 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차례 시도 후.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아주 잠시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이름을 지으러 작명소를 찾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반세주란 이름이 좋군요!”

그의 아버지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몇 차례 시도 후 다시 그는 마음에 드는 시간대에 들어설 수 있었다.

“후아.”

겨우 모습을 구현한 그는 일단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머리가 좋다는 과학자들을 찾아다녔다.

동시에 세계 이곳저곳에 많은 걸 뿌렸다.

혹시 모른다.

이 와중에 다시 새로운 인연이 생겨 영웅이 탄생할지도.

지금은 어드바이저를 만들어야 했다.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생 놈은 어떻게 혼자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 최고라고 하는 놈들을 불러모았다.

마음 같아서는 전 세계 과학자를 몽땅 끄집어내고 싶지만.

다시 태어난 자신이 이곳에 있으니까.

“당신은 누굽니까?”

“외계인.”

그는 단답형으로 말하고, 어드바이저 개발에 착수했다.

어드바이저를 만들고, 땅에 묻고.

앞으로 일어날 일 중, 새로 태어날 자신이 만날 수 있는 곳에 안배를 준비하고.

그 이후, 자신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사탕이라고 표현하는 어드바이저 중추 장치를 먹이고 돌아왔다.

스스스스.

몸의 색이 옅어진다.

이 뫼비우스의 띠란 놈은 자아라도 있는지, 함부로 시간 축을 날뛰는 자신을 가만두질 않는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시 끌려 들어가 똑같은 삶을 반복할 뿐이다.

‘얼추 다 끝났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슬아슬하게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여기에 왔다.

만약 더 미리에, 몇 번 더 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텐데.

모르겠다.

시도를 더 해봐야 알 듯하다.

하지만 당장은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준비는 끝났고, 뫼비우스의 띠가 그를 좀 먹기 시작했다.

몸이 바스라진다.

다시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외계인은 이름도 없습니까?”

다크써클이 진하게 생긴 한국 과학자가 물었다.

이름이라.

“반.”

그는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이름을 전했다.

“반.”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어드바이저를 가리켜 말했다.

“이름은 프로비던스 어떻습니까? 우리 앞글자를 하나씩 따서. 거기에 반 님을 중앙에 둔 포지션, 딱 좋죠?”

“알아서 해.”

어차피 이들은 전부 죽을 거다.

어드바이저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게 할 순 없다.

세주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살기 위해.

그리고 모두를 살리기 위해 준비한 여러 일을 하며.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뜨끔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모든 건 미래를 위해서다. 하지만 다시는 아무도 죽이지 않겠어.’

각오를 마지막으로 세주의 전신이 흩어졌다.

뫼비우스의 띠란 블랙홀 사이에 낀, 이의 마지막이었다.

바사삭 전신이 종잇장처럼 흩어지고, 그해 현재의 세주는 동생을 잃었다.

*

김보슬은 다른 시간 축에서 세주가 벌인 일의 일부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블랙홀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몇 가지는 알았다.

‘역시 탐구할 가치가 있어.’

저 블랙홀은 아무거나 먹는 괴물이 아니다.

인간의 의식을 먹는다.

저 원리를 밝혀내고 싶다.

현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 하나는 완벽하게 확인했다.

인간의 의식을 먹은 블랙홀은 그의 뜻을 다음 생에 펼친다.

절망에 가득 찬 비탄의 인생에서 혼자만 기억을 이어가는 인류는 이 상황을 탈피하길 원했고.

뫼비우스의 띠는 그 힘을 줬다.

방식은 제멋대로지만.

보슬은 그 점이 흥미로웠다.

“야, 준비해라.”

그가 입을 열자.

그의 뒤로, 사단장들이 정렬했다.

“제8사단, 모든 인원 집결 완료했습니다.”

“…어? 왜?”

“다 모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아아, 지금 아냐. 한 20년 남은 것 같네.”

“뭐가 말씀입니까?”

“재밌는 일.”

보슬이 웃으며 모두를 해산했다.

새로 태어난 세주가 자라서 자신에게 오기까지, 20년.

기다릴 만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가 더 궁금하다.

뫼비우스의 띠에 먹힌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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