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72화 (172/206)

# 172

172. 전력

우적우적.

전장의 위다.

하늘 위에서 둥둥 뜬 침대에 누워 팝콘을 입에 쏙 넣는 남자다.

“재밌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세주가 쏜 첫 탄부터 지금까지의 싸움을 봤다.

“오호!”

치용이 메카니모스 주력 전사 셋을 일격에 죽이는 건,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흥미로웠다.

더구나 적의 시선이 몰린 틈을 타, 뒤에서 칼날을 꽂는 저 치는 어떤가?

쭈우욱!

빨대를 쭉 빨아들이고.

“꺼억!”

트림을 한 번 내뱉은 그는 팝콘을 씹으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써드와 실버의 싸움도 지켜봤다.

안드로이드끼리의 싸움이다.

실버의 재치가 돋보였지만.

‘출력이 형편없잖아.’

그의 눈에 차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우적우적.

침대 위로, 팝콘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다른 것에 시선을 팔고 먹는 것에 열중하니 생기는 일이다.

“후, 침대에서 뭐 드시지 말라니까.”

웅.

허공에 푸른 문이 생겨난다.

그 안에서 누군가 발걸음을 디뎠다.

금발의 푸른 눈, 누가 봐도 돌아볼 듯한 훈훈한 외모다.

진녹색의 각진 외투와 바지를 입은 그는 손으로 바지를 탈탈 털며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 가슴 앞 기묘한 문양과 반듯하게 다려진 상의와 바지.

그리고 소매에 세 줄의 검은 선이 그어져 있다.

어느 모로 봐도 어떤 단체의 정복 같다.

“잔소리쟁이 왔어?”

“저도 왔습니다.”

문 뒤에서 커다란 덩치의 남자도 들어선다.

비슷한 복장이다.

“아, 너, 마침 잘 왔다. 저거 좀 봐봐.”

침대에 사각팬티 차림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다.

팟.

그 순간, 전장이 사라지고 순백의 공간이 나타났다.

[장내에 계신 모든 인원은 행사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방 위, 방송이 흘러나온다.

“아이참, 제일 재밌는 부분인데.”

사각팬티가 중얼거렸다.

“오늘 바쁩니다.”

잔소리쟁이라고 불렸던 금발의 남자다.

실제 전장의 위는 아니었다.

현실에 일어난 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방송 시스템이다.

그걸 위해 직접 한 명이 전장에 파견 나가 있기도 했다.

남자는 일어나며 잔소리쟁이에게 말했다.

“골드보고 전력으로 가라고 해.”

“전력입니까?”

“응. 그래도 쟤네가 이기겠네.”

“그렇습니까?”

“그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덩치 남자가 자신의 눈에 남은 전장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니, 굳이 보자면 한 명을 눈여겨봤다.

자신과 꽤 비슷한 타입이다.

만나면, 재미는 있겠다.

물론 상대도 재미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

세주와 부대원이 부대껴 온 시간은 적지 않다.

서로의 스타일을 보고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세주가 선물한 사이클롭스 아머 한정판은 부대원 등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콰직!

날아온 적을 확인할 겨를도 없다.

전면에 나선 치용의 손에 든 도끼가 허공을 가르자.

세로로 쪼개진 적의 체액이 배리어 위를 덮는다.

그대로 돌진이다.

다가오는 적은 분쇄하고 부순다.

그게 이들의 일이다.

꽝! 쩡!

레이저 포가 넷이 만든 배리어를 뚫지 못하고.

근접거리에 말려들면, 믹서에 들어간 과일처럼 아작 나서 흩어진다.

전장의 분쇄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그대로 전장을 헤집자, 전황이 빠르게 기운다.

실버가 써드를 잡은 것도 한몫했다.

푸른빛이 번쩍이며 세주와 일행의 앞을 막았다.

[결국, 다시 만나는구나]

뜨거운 체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순간에도, 할 말은 하는 놈은 하나뿐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입을 터는 수다쟁이 로봇들.

안드로이드다.

세주가 상대를 알아봤다.

포다.

그리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위잉!

포의 양팔이 변한다.

빛이 번쩍이고 큰 칼날 두 개를 품는다.

무릎에는 총구와 흡사한 사출구가 생기고, 이마에는 고글처럼 생긴 것도 튀어나온다.

-저거 아주 대가리가 똥이네.

프로비던스가 상대를 욕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있는 넷은, 인류 최강이다.

그러니까 막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머저리 짓이다.

넷은 말없이 포를 향해 쇄도했다.

전장에서 일대일 전투를 고집하는 이는 없다.

더구나 지금 이들은 치용 모드다.

“어흥!”

넷이 동시에 하나가 되어 외친다.

짐승 같은 기합에 가슴 속에 뜨거운 게 들끓는 이유는 무엇인지.

세주는 자기도 모르게 즐거워졌다.

인준은 불쾌했지만, 지금 이 순간 고민 없이 싸우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유진도 마찬가지다.

치용은 평소와 같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콰가각!

고글에서 빛이 터지더니, 강력한 배리어가 생긴다.

치용의 기술, 큰 칼이 막힌다.

배리어 위에 실금조차 가지 않는다.

양옆, 꽝꽝!

산탄이 빛을 뿜는다.

드드득!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배리어의 위력은 여전했다.

그 사이 포의 무릎 사출구에서 두 줄기 빛이 쏟아졌다.

변형 이형포다.

빛 세례가 넷을 덮쳤다.

“비껴쳐!”

세주가 외친다.

동시에 넷 모두 두 자루 칼로 무장을 변환.

총 여덟 개의 칼날을 들고 허공을 긋는다.

칼날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허공에 칼날의 막을 만든다.

티디디디디디딩!

날아오는 광선포가 전부 흩어진다.

콴과의 전투가 이들에게 남긴 건 적지 않다.

더구나 남는 시간 동안 가혹하게 훈련을 하는 건 버릇처럼 굳어진 이들이다.

그중에 나온 것 중 하나다.

블레이드는 일형포를 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 것.

고로, 상쇄가 가능하다.

물론 반쯤은 묘기에 가까운 짓이다.

부스스스.

흩어진 광선 사이로, 넷이 다시 달려든다.

[크앗!]

포가 기합을 외치며 양손에 든 칼을 휘두른다.

유진과 인준이 앞으로 나서서, 포의 칼날을 막는다.

적의 배리어는 이제껏 보지 못한 강력한 방패였다.

하지만 뚫리지 않는 방패란 없는 법이다.

포의 밑, 검붉은 칼날이 솟는다.

타다닥.

어디선가 모닥불 타는 소리가 들리고, 이질적인 색의 칼날이 배리어를 뚫는다.

쿠직. 푹!

새로울 것도 없었다.

콴의 삼대신기 중 하나인 타는 칼이다.

포의 복부부터 비스듬하게 뚫어 목 뒤까지 구멍이 생겼다.

넷은 타는 시체를 무시하고 내달렸다.

화르륵!

그들이 지나간 자리로 불길이 치솟아 포의 몸을 태운다.

찔리고 베인 적을 태우기 전까지 꺼지지 않는 불이다.

강력한 안드로이드를 해치웠지만, 멈출 시간은 없다.

아직도 죽여야 할 적은 많고도 많았다.

펑! 펑!

아군이 위험한 곳, 적들의 병력이 밀집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기차다.

치용이 타는 칼은 일격일살.

한 방이면 적을 죽이는 필살의 칼날이었다.

세주를 비롯한 셋은 가끔 커다란 블레이드를 만들어내 적을 휩쓸었다.

콰가가각!

넷이 지나간 자리로 적의 시체만 즐비했다.

*

꽈광!

전장은 넓었다.

더구나 엄폐물 하나 없는 초원이다.

막는 것도 실력이며, 사는 것도 실력이다.

“지저스.”

미국 장교, 한국으로 치자면 대위에 준하는 계급인 제임스는 자신의 견갑을 부순 적을 발로 걷어찼다.

칼날이 팔 근육까지 그었다.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발에 걷어차인 적은 밀려나지 않고 달려들었다.

쩍!

어디에 저런 걸 숨겨놨는지.

흉흉한 이빨이 달린 포악한 입이 보인다.

악어가 옆에 서면 귀여울 정도다.

렌즈 두 개를 단 메카니모스다.

개조가 취미인 종족이라더니, 언제 어떤 형태의 공격이 오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제임스는 목 근육에 힘을 잔뜩 줬다.

사이클롭스 아머가 반응하고, 힘을 실어준다.

뒤로 젖힌 머리를 힘껏 앞으로 박았다.

뻑!

악어의 친구 같은 입이 자신을 물기 전, 간신히 적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머리가 빙글 돌았다.

그는 주저 없이 오른손에 든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적의 위치를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승!

‘젠장!’

손에 걸리는 느낌이 없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적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는 두 발을 땅에 딛고 굳건하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차.’

방어를 위해 팔을 당기는데 왼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팔 근육이 찢어졌는지, 아머의 신경 전달 장치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핫!”

끔찍한 느낌에 위를 보니, 방금보다 배는 크게 벌린 입이 보인다.

그 안에 걸쭉한 액체까지 보였다.

블레이드를 위로 세웠다.

잘만하면 목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 사항이었다.

입을 벌리고 달려들면서도 양팔에 든 블레이드로 자신의 칼날을 지렛대처럼 잡는다.

단숨에 양쪽으로 짓누른 적의 칼날 덕에.

파앙!

자신의 블레이드가 순간 형체를 잃는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주고 싶은 상황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훌륭한 인재였다.

혼자는 갈 생각이 없다.

그립을 버리고, 허리춤에서 광편수류탄을 꺼낸다.

‘같이 죽자.’

팅.

안전핀을 뽑고 팔을 당겨, 머리를 감싼다.

자신을 씹는 순간, 놈도 입안에 멋진 선물을 받을 것이다.

죽음이 임박하는 순간이다.

굳은 의지를 발하는 제임스의 위에서 굉음이 터진다.

콰가가가가각!

태풍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

쿠르르.

아니, 땅이 떨린다.

‘뭐야?’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입 크기를 자랑하던 괴물 놈이 녹색 체액을 뿌린다.

아니,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수십 조각으로 나뉘었다.

“수고!”

그리고 한 마디가 들린다.

‘지저스.’

제임스는 다리가 풀리려는 걸 간신히 버텼다.

‘반세주.’

그리고 지나간 이가 누군지도 알았다.

“수류탄은 다른 데다 던져주십시오.”

뒤에서 누군가 붙어서 말한다.

깜짝 놀란 제임스의 눈에 사이클롭스 아머 조차 입지 않은 동양인이 보였다.

‘한국군?’

특유의 복장이다.

“의무 장교, 김철숩니다. 자, 바쁩니다. 빨리빨리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손에 든 수류탄을 보고, 일단 힘껏 던졌다.

파-앙!

저 멀리서 빛을 뿌리는 광편수류탄이다.

“정신적 데미지는 없는 거로 판정.”

그걸 본 김철수란 장교가 말한다.

“왼팔, 나노킷 광선 시술.”

“사이클롭스 아머는 크게 이상 없습니다. 자가 복구 예상시간 40분 내외.”

김철수 혼자가 아니다.

마치 한 팀인 듯, 셋이 그의 곁에 붙는다.

“가시적으로 전장에 설 수 있는 상태로 사료.”

“우선 치료합니다.”

붉은 광선이 당한 팔에 뿌려졌다.

따끔하기도 했고, 시원하기도 했다.

“음.”

신음을 흘리자, 김철수가 그를 본다.

“다시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으면 후방 배치도 가능합니다.”

제임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궁금한 점을 참을 수 없어 물었다.

“누굽니까?”

반세주도 알겠고, 한국군인 것도 알겠다.

하지만 누구냐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 보니, 자신뿐 아니라 부상 당한 이들 곁에 모두 비슷한 형태다.

“한국군 소속, 의무중대입니다.”

의무중대?

제임스가 눈으로 다시 묻는다.

“어렵게 말하면 모릅니다.”

옆에서 병사 하나가 끼어든다.

“저, 반세주 개자식 님이 뛰어들면, 저희가 와서 치료하는 겁니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중댑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누군가 죽거나 위험해지면 뛰어드는 양반이거든요. 저 영웅이란 양반이.”

그러니까 저 반세주란 인간을 따라다니면, 절로 중상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을 치료하면 사망자의 숫자가 현저하게 준다.

제임스의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콰가가각!

여전하다.

태풍이 몰아치듯 적을 분쇄하고 돌아다니는 기차가 보인다.

“어흥!”

가끔 터져 나오는 저 기합은 아군 전체에 울렸다.

아니 적군에게도 들리리라.

두근.

가슴이 뛴다.

“다시 싸울 수 있다고 했습니까?”

“40분만 지나면 가능합니다.”

김철수가 말했다.

“그럼 싸우겠습니다.”

냉정함이 돌아온 건 아니다.

하지만 제임스의 눈에는 보였다.

첫 전투 시작에는 아군의 붉은 피가 뿌려지던 초원에 어느새 녹색의 체액만 사방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피해가 없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죽는 이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 미친 영웅이 있었다.

두근.

가슴이 뛴다.

인정해야 했다.

저 남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나를 따르라.

그걸 들은 제임스는 솔직히 얼굴이 붉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를 따르라.

자신도 외치고 싶었다.

제임스가 끼어든 병사를 바라봤다.

아까 이 자가 반세주 개자식이라고 했었다.

영웅에게 개자식?

“한국에서는 저 영웅을 싫어합니까?”

병사는 일일이 설명하자니, 너무 긴 이야기일 것을 직감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빴다.

의무중대는 사망자 제로를 만들고자 했다.

그게 세주의 뜻이다.

병사는 단순명쾌하게 그에게 뜻을 전달해야 했다.

“그를 응원하는 말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무슨?”

“반세주 개자식.”

머리를 갸웃한 제임스를 외면한 병사가 외쳤다.

“반세주 개자식!”

“반세주 개자식!”

“반세주 개자식!”

사방에서 똑같은 말이 퍼진다.

제임스는 착각했다.

‘아, 개자식이 한국에서는 욕이 아니구나.’

그는 발음에 유의하며 외쳤다.

“반세주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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