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71화 (171/206)

# 171

171. 이긴다

오닉스 에너지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직후였다.

-형, 메시지가 와 있는데?

‘…뭐?’

-나한테 직접 메시지가 와 있어.

처음 겪는 일이다.

아니, 이런 일이 가능한가?

‘누가?’

일단 그 가능성 유무는 제쳐두고라도, 누가 보냈는지 궁금증이 먼저 든다.

-몰라.

모른다.

프로비던스에게 나오기 쉬운 말은 아니다.

계산이 어렵거나, 추측하기 어렵다는 건 있지만.

‘추측은?’

-38% 확률로 적 바이탄의 수장.

이 정도 기술력이라면 그놈뿐이다.

그렇다면 그놈은 프로비던스의 존재를 안다는 걸까?

모르겠다.

왜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무시한 세주가 물었다.

‘내용은?’

-무대를 만들어 줄 테니, 한 판 멋지게 붙어보자.

무슨 개소리인지.

‘무시.’

세주는 깔끔하게 털어냈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다.

적은 워프라는 기술을 쓰는, 메카니모스와 바이탄의 연합체다.

콴 하나, 본진도 아닌 행성 하나를 급습했는데도, 아군이 전멸할 뻔했다.

그 콴과 맞서 싸우던 두 개의 종이 연합한 적이다.

고민보다 앞서, 싸울 때다.

세주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고 그도 밖에 펼쳐진 초원을 봤다.

“염병.”

저게 무대다.

보는 순간 알았다.

동시에 세주의 눈에 흐릿한 인영이 잡힌다.

까만 코트를 입고 머리를 바짝 깎은 남자다.

눈으로 그 모습을 쫓던 세주는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워프.

콴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바이탄의 포가 도망간 것과 같은 수법이다.

‘봤지?’

-스캐닝은 못 했어. 강력한 재밍 발생.

필요 없다.

두 눈으로 봤으니까.

인간이었다.

이것도 지금 따질 때가 아니다.

무대를 만들어 줬으면 날뛸 때다.

*

세주의 뒤로 사이클롭스 부대가 내려온다.

“어쩔 작정이야?”

들려오는 목소리는 호필의 것이다.

어쩌긴 뭘 어째.

“싸우려고.”

“내 결정은 후퇴다.”

-무리야.

프로비던스가 주변을 스캐닝을 끝내고 말한다.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이다.

초원을 만든 기술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 중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곳에서 도주는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데스매치다.

더구나 함선이 묶였다.

거미줄 같은 흰 빛이 칭칭 함선을 감았다.

일일이 뜯어낼 수야 있겠지만, 그사이 적이 덤빈다면 답도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건 적의 함선도 같았다.

“이미 갇혔어.”

세주는 통신을 껐다.

초원의 가운데, 양 진영을 두고 가상의 선이 그어진다.

함선 밑으로 내려오는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빛을 뿌리는 렌즈를 단 놈들이다.

메카니모스의 괴물들.

우르르 쏟아져 나온 놈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기괴했다.

말의 다리에 뱀의 머리 같은 모습도 있었고.

푸드득 거리며 하늘을 나는 놈도 있었다.

생긴 건 비둘기를 닮았으면서 머리는 독수리를 닮았다.

큰 렌즈 하나를 단 놈이었다.

몇 마리인지 물어보려다 놔뒀다.

그냥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내 이름은 써드다]

그리고 함선 위, 작은 원반을 딛고 서 있는 놈이 입을 연다.

숨기지도 않고 스스로 바이탄임을 밝힌다.

세 개의 렌즈가 전면과 얼굴 좌우로 붙은 놈이었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몸은 두꺼운 철갑 같은 거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놈은 아니네.’

초원 위에서 사라진, 그 인간을 떠올렸다.

내심 안드로이드는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신이 명하신 대로, 이 땅 위에서 너희를 모두 멸살하겠다]

써드의 뒤쪽, 하나의 메카니모스가 나온다.

무려 백여 개의 렌즈를 단 괴물이다.

전신이 주변 행성에서 뿜어지는 빛에 반짝였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전신을 치장한 꼴이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렌즈를 덕지덕지 붙은 놈이 앞으로 나선다.

[감히 인간 따위, 제 실험실에 영원히 박제해두겠습니다]

[저놈.]

언제 붙은 건지, 치용을 비롯한 모두가 뒤에 선다.

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아?”

[메카니모스의 1급 전투원, 토라에요. 이제까지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놈으로도 유명한 놈이고요]

그러니까, 외계 인류를 학살하는데 재미 붙은 변태 또라이란 거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걸까?

‘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남자지.’

-…누가?

무시다.

철컥.

벼락의 노리쇠를 뒤로 당긴다.

왼손을 들자, 그 위로 검은 탄환 한 발이 잡힌다.

‘변형.’

눈으로 대충 가늠했다.

토란지, 도란지 하는 놈이 앞으로 몇 걸음 나왔다.

거리는 대강 400m 내외다.

그리고 이 정도 비거리는 현재 세주에게 코앞에 있는 것과 같다.

퉁.

탄환을 한 손으로 튕기고 노리쇠에 넣고 당긴다.

철컥, 탁!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틈에 입에 에너지바를 문다.

우적.

[…인간 놈, 이 상황에서 먹을 게 넘어가나 보지? 잡히면 네 코에 관을 연결해서 살지도 죽지도 못 하게 만들어주마]

가끔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악역은, 참 개성이 없다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다니.

참신하지 못하다.

오른손으로 벼락을 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폭발.’

우우우웅.

토라 놈이 전신에 빛을 뿜는다.

에너지가 뭉친다.

-사형포 충전량 감지.

알게 뭐냐.

기본적으로 사출 무기는 발사가 돼야 의미가 있다.

‘가속.’

팅.

벼락의 총구가 늘어난다.

꽝!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함선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 옴짝달싹 못 하기에, 이제야 바닥에 내려서는 중이었다.

세주의 총구에서 두 번째 검은빛이 터졌다.

꽝! 퍼벙!

고작 한 발의 탄환이었다.

하지만 위력은 누구도 얕볼 수 없었다.

토라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로 불티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타들어 간 땅을 일견한 세주다.

“싸우자는데 말 드럽게 많네.”

‘계산기 돌려.’

-오케이.

흉몽 모드도 필요 없었다.

전신에 검은빛을 두른다.

오닉스 버전, 풀 업이다.

‘서브 머신.’

양손에 들린 총이 변한다.

저격이 아닌, 짧은 총구를 가진 형태의 기관단총이다.

철컥.

긴 탄창이 인상적인 모습이다.

세주는 앞으로 내달렸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원한다면 받아줄 뿐이다.

“크헝!”

자신의 뒤로 치용의 외침이 들렸다.

아니, 그뿐 아니었다.

“전 병력! 돌겨어어어억!”

유진의 목소리다.

인준은 하늘을 날고, 팽은 자신의 비틀 쉽을 조종했다.

그녀의 대인전투력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애초에 그녀의 클래스는 파일럿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거다.

드르르륵!

양손에 들린 머신 건의 탄창에 가득 담긴 광탄이 사방을 헤집는다.

그 누구보다 안쪽으로 먼저 돌진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지금 해야 할 일, 지금 필요한 것.

그것들을 염두에 둔다.

그게 자신이 할 일이었다.

아군을 최대한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아주 잠시만 미쳐 보자.

‘지금 나는 김치용이다.’

-그 정도로 미치게?

“커흐흐응!”

동시에 서브 머신 건을 산탄 형태로 변환.

양손의 산탄총이 불을 뿜는다.

꽝! 꽝!

다가온 적이 순식간에 분쇄된다.

메카니모스의 1급 전투원 다섯이 동시에 세주에게 쇄도한다.

드물게도 모두 인간 형태다.

근접 박투에 특화된 메카니모스다.

위에서 뚝 떨어지는 다섯이 프로비던스의 레이더에 잡힌다.

하지만 세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큰 칼 먹어라!”

그 위, 치용이 떨어져 내린다.

전신에 붉은색의 철갑을 두른 채다.

그게 그의 사이클롭스 아머, 붉은 곰이다.

콰가가각!

전보다 배는 빠르고, 배는 강하다.

셋이 상 하체가 분리된 채 허공에서 떨어진다.

둘을 향해 치용의 칼이 향하는 순간, 두 놈의 머리를 짧은 칼이 헤집는다.

백색의 사이클롭스 아머를 두른 이다.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붙인 아머다.

그 주인은 유진이었다.

“둘은 제 겁니다!”

그리고 세주 앞.

꽝!

폭음이 터진다.

회색빛의 연기가 타오른다.

“트레에에!”

“트레이!”

적의 비명이 귀를 찢는다.

그 앞, 인준이 자신의 아머를 입고 서 있다.

폭탄마.

그의 사이클롭스에 쏟아부은 폭약의 양은 적의 여단 병력을 쓸어버릴 정도다.

퉁.

셋이 세주의 곁에 선다.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칼날 끝에 선 것과 같은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세주는 처음부터 이 셋과 함께 하는 것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이유는 모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외쳤다.

“김치용 대형!”

넷 모두, 총기를 교체한다.

한 손에는 산탄총, 한 손에는 칼을 든다.

“돌겨어어억!”

세주가 신이 나 외친다.

넷이 곧 적군 사이로 파고들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화력의 향연이었다.

*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이들은 처음에는 넋이 빠졌다.

적의 전열이 단숨에 무너지고, 부서진다.

전력의 열세?

그딴 건 상관없었다.

저들이 있다면 이길 수 있다.

패배를 모르는 불패의 군대가 여기 있다.

“전부.”

“돌겨거어어억!”

“반세주 개자식!”

“으아아아아!”

사이클롭스 부대가 돌격한다.

꽈과과광!

폭음과 칼날이 오간다.

부서지고 흩어진다.

한쪽에서 녹색 체액이 퍼지면, 다른 쪽에서 붉은 피가 바닥을 물들인다.

이게 영화라면, 수십억이 들어갈 장면이었다.

부서지고 흩어지는 파편과 잔해 속에서 실버는 몸을 띄웠다.

그는 싸우기보다 기동성을 살리고 뛰었다.

퉁!

바닥을 박차고 처음 만난 적의 칼날을 피하고.

날아오는 탄환은 배리어로 비껴낸다.

그는 목적이 명확했다.

애초에 자신이 다시 살아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복수를 원한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주인과 그 모든 이를 죽인 바이탄을 향한 뜨거운 비수.

그게 실버다.

은빛이 전장을 가로지른다.

써드의 렌즈가 빛을 뿜었다.

둥!

한 줄기 레이저 포가 실버를 강타했다.

써드도 자신을 향한 적의를 감지했다.

세주와 그 일행으로 향하던 써드는 몸을 돌려야만 했다.

무시할 수 없는 돌격이다.

실버의 몸이 빛나는 게 보였다.

일형포는 소용이 없었다.

말없이 달리는 실버와 그걸 맞는 써드다.

꿋꿋이 달린 실버가 써드의 코앞까지 쇄도했다.

쩡!

둘 사이에 생긴 배리어가 부딪치며 빛이 흩뿌려진다.

그 틈으로 실버가 손날을 집어넣었다.

써드는 몸을 비틀어 피했다.

지휘가 그의 특성이지만.

전투력이 전혀 없진 않다.

아니, 포보다는 못 해도, 그는 능히 한 자릿 수의 넘버를 받은 바이탄이었다.

손을 위로 뻗자 블레이드 그립이 잡힌다.

써드는 그대로 흰 빛의 블레이드를 그었다.

카가각!

실버는 회피보단 방어에 집중했다.

배리어를 펼쳐 비껴낸다.

써드는 긴 전투를 예감했다.

출력은 자신이 위지만, 전투 자체는 상대가 더 능숙하다.

몇 번의 칼날과 손날이 오간다.

근거리에서 광선포가 뿜어진다.

그리고 써드의 생각과는 반대로 실버는 단기 결전이 될 것을 예감했다.

아니, 길어지면 자신이 진다.

둘은 모두 짧은 시간 승패를 계산하는 안드로이드다.

길면 써드가 유리하고 짧으면 실버가 유리하다.

실버는 자신의 전투 스타일에 적이 적응하면 끝임을 알았다.

그는 이기기 위한 최선의 수를 떠올렸다.

드드득!

짧은 틈에 적의 칼날이 볼을 훑었다.

얼굴 표면이 뜯긴다.

일부러 만든 틈이었다.

실버는 그 사이, 적과 바짝 붙었다.

[멍청한 놈!]

써드가 입을 연다.

동시에 가슴이 열린다.

커다란 렌즈에 빛이 가득 모인 채다.

실버는 왼손을 그 렌즈 앞에 박아넣었다.

콰드드득!

배리어를 뚫지 못한 손끝이 부서지며 떨린다.

간신히 배리어는 뚫었지만, 팔뚝이 중간부터 걸렸다.

그 상태로 멈춘 둘이다.

써드는 주저할 것도 없이 레이저 포를 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다.

실버가 오른손 수도로 자신의 왼팔을 내리친다.

콰직!

잘린 팔이다.

놀랄 틈도 없었다.

[꺼져라]

전에 없이 차가운 한 마디와 함께다.

꽈-앙!

폭음이 터진다.

콰우우우우!

화염과 폭풍이 실버를 덮쳤다.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물러난 실버의 시각 장치에 적의 모습이 잡힌다.

상체가 날아간 써드의 모습이다.

왼팔에 담아 둔 건, 고농축 폭약이었다.

그대로 뒤로 날아온, 실버는 바닥을 굴렀다.

텅! 텅! 투르르르.

‘에너지 소실 85%.’

단시간에 너무 과도한 에너지를 썼다.

[배신자!]

바이탄 한 마리가 날아온다.

실버는 막을 힘이 없었다.

칼날이 머리 위를 내려치는 순간, 놈이 우뚝 선다.

그 뒤.

외눈의 사이클롭스 아머가 선다.

“정신 차려라. 안드로이드.”

차가운 인간의 목소리다.

실버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상대를 파악했다.

이무영이다.

염력에 붙들린 바이탄이 비틀리더니 퍼엉 하고 터진다.

‘이긴다.’

실버는 승리를 예감했다.

이곳에는 반세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군의 총력이다.

초인의 반열에 선 이들이 단숨에 적을 향해 달려간다.

‘에너지 소실율이 너무 높다.’

위이잉.

심장에 자리 잡은 에너지 플랜트가 휴식이 필요한지, 서서히 휴식 모드로 변한다.

‘이런 걸 졸린다고 표현하는 건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퓨슉.

전원이 꺼진 컴퓨터처럼 멈춘 실버다.

단숨에 적의 수장이 죽었다.

하지만 전장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치열했고, 살벌했으며 피가 튄다.

아직도 서로의 목숨을 걸고 겨루는 건, 끝날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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