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165.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은 있다.
축적된 에너지는?
현재 가용 가능한 힘은?
-다 부수려면 몇 시간은 걸리겠어.
콴의 생산 플랜트다.
보이는 콴은 무시하고 달린 길이다.
현재의 최우선은 플랜트를 부수는 것이다.
철컥.
벼락을 띄우고, 세주는 머리를 굴렸다.
단숨에 적을 몰살할 화력, 이곳에서 보일 줄은 몰랐지만.
필요하다면 당연히 쓸 기술이다.
커버링 기예 첫 번째 스파이럴.
두 번째 커브.
세 번째 유도.
네 번째다.
노블 패스를 달리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려는 순간이다.
[비켜]
뒤에서 쩌렁쩌렁하게 목소리가 울린다.
쿠우우우.
함선 다섯 척.
외계인의 조력이다.
깜빡했네.
“유진, 왕, 전선의 앞쪽을 비워라.”
말과 함께 자리를 비킨다.
동시에 뒤에서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이잉.
아니, 마치 상처 입은 맹수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익숙한 소리는 아니지만, 어떤 준비를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함선 다섯 척이 일렬종대로 선다.
플랜트를 노리는 한 자루 창이 됨과 동시에 전면 첫 번째 함선에서 포신이 나온다.
-신박한 기술이네.
프로비던스가 한 마디 감상평을 뱉는다.
다섯 척의 출력을 모은다.
단단한 포신에 맺힌 힘은 육형포다.
단연코 함선에서 쏠 수 있는 단일 화력으로는 최강이라 불려도 무방하다.
칠형포는 행성의 생명체를 말살하는 힘이니.
단순 파괴만으로는 육형포가 적합했다.
드드드드.
대기가 떨림과 동시에 빛이 번쩍였다.
콰우우우!
쭉 뻗은 빛이 대기를 가른다.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눈앞에 희미한 막을 만들었다.
-뭘 똑바로 보고 있어?
‘그냥.’
보고 싶다.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몬 자식들의 마지막이다.
눈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쯔어어어엉!
기묘한 폭음이 울린다.
동시에 보랏빛 안개를 얼기설기 만든 배리어가 찢긴다.
꽈-앙!
그 뒤를 이어 폭음이 터진다.
플랜트의 폭발이다.
세주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감상은 짧고 굵게.
몇 초면 충분하다.
남은 콴을 처리할 시간이다.
하나라도 더 죽이면 아군의 피해는 줄 거다.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
살기 위해 다른 생명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
그게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세주에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
팔이 바스라진다.
숨을 쉬기가 어렵다.
노블 패스가 산산이 찢겼다.
‘죽는다.’
별다를 것도 없었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목숨이 아깝진 않았다.
그는 꽤 오래 살았고, 그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
다만 아쉬운 건 하나다.
죽게 된다면 숨이 끊어지기 전에 몸이 바닥에 닿길 바랐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남아 있다.
‘폭발.’
마지막 인간이 만든 폭발은 인상적이었다.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과 함께 몸이 한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텅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고 싶지만, 안구가 탔는지 아니면 정말 간신히 의식만 남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소리를 듣고 싶으나 들리지 않는다.
‘숨은 쉬고 있나?’
아니, 이미 죽고 사라진 것인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가르간.’
죽은 게 아니다.
이름을 떠올린 순간, 가르간은 전신에 통증을 느꼈다.
“꿰에엑.”
구역질을 뱉고, 숨을 침 뱉듯이 뱉었다.
“훼에에.”
구멍 난 풍선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있나?’
그 폭발에서?
꾸드득.
등에 무언가 부딪혔다.
가르간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잠시만 방심해도 간신히 차린 의식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니, 방심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뚝 하고 간신히 의식을 이은 끈이 끊어진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니, 살아나 있는 건지.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수십 번.
가르간은 오른쪽 눈을 간신히 떴다.
빛나는 칼이 보였다.
은백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블레이드.
빛의 송곳니.
콴의 삼대 신기중 하나다.
두근.
심장이 약동한다.
아니, 동조한다.
빛의 송곳니가 가르간의 심장과 같이 박동한다.
두근, 두근.
가볍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속도를 높인다.
쿵! 쿵! 쿵!
혈류가 돈다.
노블 패스가 수복되고, 그 안으로 에너지가 몰려든다.
빛의 송곳니, 광아光牙의 안에 축적된 에너지다.
초고속재생 능력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콴의 몸은 애초에 에너지를 다루는 데 최적화된 육체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에너지 적응도가 낮으면 어린 시절에 살아남을 수도 없다.
모든 콴은 여왕이 낳는다.
자신의 유전자를 분해해서 뿌린다.
그러면 플랜트에서 그걸 분석해서 우수한 콴을 생산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죽은 콴이 많을까?’
아니, 갑자기 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일까?
가르간은 순식간에 내장이 복구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반파된 써클 쉽 안쪽이다.
운이 좋았다.
폭발에 몸이 밀려나고, 자기도 모르게 배리어를 펼쳤다.
물론 배리어 따위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 타이밍에 써클 쉽 하나가 말려들었고, 그 안으로 몸이 쏙 들어갔다.
전신이 이미 찢기듯 상처를 입은 뒤였다.
그는 간신히 광아만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태로 써클 쉽에 갇힌 채 밀려났다.
그게 자신을 살게 했다.
광아의 에너지가 자신을 수복했고.
써클 쉽에 갇혀, 숨을 쉴 수 있었다.
가르간은 눈을 깜빡였다.
고통은 상관없다.
참는 건 일도 아니다.
그저 가르간은 궁금했다.
‘여왕은?’
투쟁 본능의 끝은 죽음이 맞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죽지 않고 살았다.
가르간에게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경애.
모든 콴은 여왕을 사랑한다.
가르간은 자신의 사랑이자, 공경의 대상인 존재의 안전을 확인해야 했다.
그에게 남은 건 그것뿐이었다.
몸이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 4시간 내외.
그리고 자신이 정신을 잃고 깨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가르간은 써클 쉽에 정신을 동조했다.
뜨르르르.
이 써클 쉽도 멀쩡하지는 않다.
진동하며, 떨린다.
부서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공격할 수 있는 수단도 없고, 배리어 기능도 사라졌지만.
‘날아는 가는군.’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지금 가르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퀸즈 네스트에서 자신을 반겨 줄 여왕뿐이니.
‘가자, 퀸즈 네스트로.’
써클 쉽이 검은 물감 위를 지난다.
대규모 전쟁이 펼쳐진 우주 공간은 작은 소행성도 남지 않아 빛조차 없었다.
검은 배경을 보는 것에 의미는 없다.
두근.
가르간은 심장이 박동하는 걸 느끼며 광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당분간 전투는 무리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가르간은 생각도 멈췄다.
재생의 자세다.
생각을 멈추고,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다.
이래야만 몸의 기능이 최대한 빠르게 회복한다.
슈우우우웅.
써클 쉽은 그대로 퀸즈 네스트의 감지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가르간은 그제야 정신을 또렷하게 차렸다.
행성에 들어가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공포가 간신히 버틴 써클 쉽을 부술 것이다.
하지만 행성이 가시 범위 안으로 들어오고, 대기권을 통과함에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써클 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 가르간의 눈에 지상이 보인다.
‘싸웠나?’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땅이 헤집어 져 부서진 대공포 대가 보인다.
죽어 나자빠진 콴의 시신도, 인간의 시신도 함께다.
사방에 흩어져 바스라진 함선의 흔적도 보였다.
가르간은 침을 삼켰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궁으로.’
그녀의 안전을 확인해야 했다.
태어난 직후, 충성을 맹세했으며, 사랑을 전부 준 이에게로.
쿠우우우.
전장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플랜트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씽크홀이 보였다.
‘육형포.’
그 흔적을 본 순간,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퉁.
써클 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통통 두 번 튀긴 써클 쉽의 문이 쩡 하고 뜯겼다.
그 안에서 은청색 빛을 뿜는 가르간이 튀어나왔다.
그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지하 입구로 향했다.
반파된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리고 알현실에 발을 디뎠다.
찌지지직.
우주에만 서식하는 에너지를 갈아먹는 날벌레가 꼬여 있었다.
끼이이잉!
철사를 엮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벌레는 상처 입은 콴을 먹는다.
크기는 고작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가르간은 오른손에 든 광아를 무의식적으로 휘둘렀다.
치지지직.
다가오던 열댓 마리의 벌레가 공중에서 타 없어진다.
그 모습에 다른 벌레들이 가르간과 거리를 둔다.
죽어가는 콴은 먹이지만, 산 콴은 그들을 잡는 천적이다.
다른 건 하나 없이 본능만 남은 벌레들이 금세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벌어진다.
어둠 속에서도 콴은 사물을 비교적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가르간은 밝은 빛이 필요했다.
광아를 위로 올리자, 작은 구슬을 뱉는다.
에너지를 연료로 태우는 라이트가 머리 위에 뜬다.
그리고 콴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태어나 실제 얼굴을 본 건 다섯 번.
그 얼굴은 보기 어려웠다.
남은 건, 몸뚱이뿐이다.
왕좌에 밑에 굴러떨어진 거로 보인다.
원치 않아도 가르간은 이곳에 일어났던 일이 마치 눈에 보이듯 느껴졌다.
인간일 거다.
이곳을 쳐들어왔고, 여왕의 머리를 터트렸다.
남은 몸은 왕좌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말라붙은 녹색 체액과 벌레들이 달라붙어 에너지를 빨아먹어 썩기 시작한 시신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가르간은 무릎을 꿇었다.
굳기 시작한 여왕의 몸을 안았다.
그리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왕좌에 여왕을 앉힌다.
그때였다.
[가르간?]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왕좌의 뒤, 휘장에서 한 콴이 얼굴을 들이민다.
아니, 하나가 아니었다.
일명 귀족 계급.
여왕과 함께, 콴의 대소사를 결정하던 이들이다.
‘열둘.’
그들의 면면이 보였다.
[살아있었나?]
가르간은 입을 다물고, 다시 여왕의 몸을 바로 했다.
굳은 몸이 꾸득하며 팔이 비틀린다.
마음먹은 대로 하기 쉽지 않았다.
[뭐하는 건가?]
귀족 계급 중 하나가 묻는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콴이다.
[가르간!]
이번엔 다른 놈이다.
늙은 콴이다.
뒤에서 나선 그는 자신의 풍성한 로브를 두 손으로 잡고 나섰다.
녹색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로브다.
가르간의 녹색 피가 범벅인 로브가 보였다.
[여왕은 죽었다. 시신을 끌어안고 뭐 하는 건가?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간악한 인간 놈들!]
그는 분노를 표출했다.
가르간은 단 한 마디도 내뱉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왕은?]
[지금 눈앞에 있잖은가]
늙은 콴이다.
간신히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호위 계급을 제외하고는 여왕과 특별히 가까웠던 이.
대변인으로 불렸던 콴, 세타르다.
[세타르]
[뭘 타고 왔지? 함선은 남았나? 바깥 상황은 어떻지? 설마 플랜트에 피해가 간 건 아니겠지?]
여왕이 죽고 이런 쓰레기 같은 열둘의 콴이 남았다.
여왕은 죽었다.
가르간은 여섯 자로 표현되는 그 사실이 그제야 마음에 닿았다.
여왕이 죽었다.
자신이 공경하고 사랑을 받치며,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존재가 죽었다.
그녀가 죽기 전, 가르간은 자신의 충정을 의심했다.
나는 과연 그녀가 소중한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투쟁 본능이 더 중요했다.
아니다.
잃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콴의 어머니인 여왕은 가르간의 전부였다.
슥.
가르간의 광아가 허공에 선을 그었다.
서걱!
둥실.
콴의 머리가 떠올랐다.
동시에 세 명이다.
녹색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미친!]
세타르가 뒤로 몸을 돌린다.
여왕이 죽고 유린당하는 순간까지, 제 목숨 챙기기 바쁜 쓰레기들.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로브를 입은 놈을 향해 가르간은 칼을 휘둘렀다.
퍽!
정수리가 쪼개진다.
뇌수가 흘러나온다.
[…살려주시오]
남은 콴이 중얼거린다.
눈물을 흘린다.
[오늘부터 9은하에 콴은 없다]
가르간이 중얼거렸다.
남은 건, 복수에 미친 살인귀뿐일 거다.
가르간은 그대로 남은 콴을 몰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