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60화 (160/206)

#  160

160. 자식 교육 잘못시킨 여자

인준은 자신의 뒤에 선 이들을 돌아봤다.

‘멋진 연설이라도 읊어?’

그건 무리다.

강의를 할 때도 무미건조하고 차갑게 제 할 말만 하던 이가 이런 상황이라고 멋진 말을 할 리 없다.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인준은 자신을 잘 알았다.

그는 요령있게 말 한 마디로 사기를 올리지 못 한다.

철컥.

기관총을 양손에 든다.

아머를 입은 인준의 몸은 자신이 이끄는 부대원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퓨슈슈슈융!

증기가 뿜어지며 함선 해치가 열린다.

보랏빛이 너울지는 하늘이 보인다.

“하강.”

말과 함께 인준이 먼저 떨어졌다.

콰우우우우.

불꽃을 뿜으며 수십의 사이클롭스가 발진한다.

‘9연발 광편미사일.’

그의 양쪽 어깨에 놓인 무기의 이름이다.

잠시 먹통이 된 적의 지대공 설비를 향해 인준은 서슴없이 미사일을 뿜었다.

그게 신호였다.

인준이 이끄는 척탄 사이클롭스 부대의 총공격 신호.

시간이 지나면 복구된다.

그럼 함선이 공격당하니, 이건 전부 박살 내야 한다.

그게 세주에게 받은 명령이다.

척탄병을 이끌고, 전부 부숴버리라는.

꽈과과광!

인준의 공격을 시작으로 그의 뒤로 화려한 불꽃이 꽃을 피운다.

적을 불사르고 터트리는 폭죽놀이다.

퍼버버버벙!

대공포에 농축된 에너지가 충돌에 2차 폭발을 일으킨다.

다 때려 부순다.

“다음.”

인준은 척탄병의 포지션인, 그 역할에 완벽하게 충실했다.

터지고 부서진다.

불길이 뱀의 혀처럼 보랏빛 하늘을 물들였다.

*

[폭격입니다!]

[관제탑 전부 소실!]

[대공포 대와 주둔 병력에 폭격!]

관제탑에 이은 폭격에 정신없는 통신이 연이어 들어온다.

이더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뒤로 후퇴했다.

그는 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머리에 열을 올릴 때가 아니다.

적이 침입했다.

가축처럼 기르던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외계 인간을 학살하고 잡아 올 때의 반항도 이 정도는 아니다.

자신들의 모성을 쳐들어왔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관제탑과 대공포 대가 박살 나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더구나 그 주체가 인간이라니.

‘대공포 대를 지키는 병력은 포기.’

그게 없더라도 병력은 있다.

이더는 발걸음을 옮겼다.

출진 중인 병력을 향해서다.

쉽을 타고 단숨에 사열한 콴의 정병들을 보자, 이더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거기에.

[이더 님]

밴텀에 이어 차세대 제너럴이 된, 사이스다.

[출진해서 적의 함선을 요격한다]

지대공 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그래도 콴의 부대는 전부 남아있다.

우주 제일의 백병전을 자랑하는 부대가 그대로다.

[기다렸습니다]

사이스는 콴 중에서도 싸움을 좋아했다.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놈이다.

가르간과 밴텀에게도 수없이 졌지만, 그는 시비를 붙여서라도 싸웠다.

싸우고 또 싸운다.

그게 사이스의 특기이자, 취미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가 부대원을 향해 손짓했다.

일류 전사 오십, 일명 사이스 특공대다.

악명이 자자한 메카니모스 1급 전투원도 죽일 힘이다.

차세대 에이스 벤텀이라도 이 부대에는 덤비지 못한다.

[다 죽여 버려!]

이더는 외쳤고, 사이스는 출진을 위해 발을 박찬다.

그 순간이다.

휘이이잉.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진다.

“안녕, 잡것들?”

인간치고는 커다란 덩치다.

그는 내려오며 사이스를 향해 푸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훙 하고 늘어난 블레이드가 산을 쪼갤 기세로 떨어졌다.

후앙!

사이스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 그 일격을 막았다.

긴 장대에 유려한 곡선의 블레이드, 낫의 모양새를 한 무기다.

쯔카카카칵!

칼날이 맞물리며 빛으로 된 불똥이 튄다.

뒤에서 일류 전사 다섯이 발 빠르게 인간을 향해 블레이드를 찔러 넣었다.

쇠꼬챙이처럼 날렵하고 긴, 칼날이었다.

인간은 제자리에서 나머지 한 손을 휘둘렀다.

후아아앙!

두 번째다.

커다란 블레이드가 튀어나오고 덤비는 다섯의 콴을 반으로 갈랐다.

콰아아악!

녹색 체액이 후두둑 튀었다.

그중 한 방울이 이더의 볼에도 튀었다.

그 핏방울을 닦을 틈도 없었다.

다섯을 죽인 인간이 사이스의 품으로 돌격했다.

쩡!

사이스는 이번에도 막았다.

품에서 단검 형태의 블레이드를 꺼낸 사이스다.

‘인간 놈이!’

순간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유려하고 부드러운 연속기다.

하마터면 뱃가죽이 쩍하고 입을 벌릴 뻔했다.

사이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딱 두 번, 손을 나눠봤지만 적은 강했다.

그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뛰었다.

자신의 무기는 낫, 적의 무기는 길고 두꺼운 칼날.

거리가 있는 쪽이, 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싸울 수 있을 거다.

사이스는 본능적으로 판단했고, 그건 실책이었다.

거리를 벌린 틈에 인간은 손에 쥐던 블레이드 그립을 놨다.

‘무기를 버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다른 그립이 쥐어진다.

짐승의 이빨과도 같은 그립.

사이스가 그걸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가장 친근한 이이자, 평생의 라이벌의 무기다.

무엇보다 저건 콴의 3대 신기중 하나다.

‘타는 칼?’

펑!

인간이 바닥을 박차는데 폭음이 터진다.

놀라운 다리 힘으로 다시 거리를 좁힌 인간의 손에는 어느새 타닥타닥 불똥이 튀는 검붉은 칼날이 솟아있었다.

“트레에에에!”

사이스는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섯겹의 배리어를 펼쳤다.

그 뒤로 낫을 비스듬히 세워 방어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검붉은 칼날은 젤리를 찌르듯 배리어를 뚫고, 결국의 그의 가슴팍을 푹 하고 찔렀다.

[끄에에엑!]

찔린 부위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친다.

생애 처음 겪는 격통이다.

하지만 고통도 잠시였다.

후와와왁!

상처에서부터 불꽃이 휘몰아친다.

급격한 발화에 주변 공기가 빨려 들어가며 작은 토네이도를 만든다.

후와와왕!

불기둥이 솟고, 고기 타는 냄새가 퍼졌다.

그 참상을 벌인 인간이 손을 탁탁 털고 자신이 떨군 블레이드 그립을 쥔다.

그리고 물었다.

“쟤 마지막에 뭐랬어? 통역기가 고장 났나?”

그냥 기합이다.

통역할 게 없었다.

이더는 눈앞에 일어난 일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또 덤빌 사람?”

도착하자마자 다섯과 하나를 벤 인간이다.

쿠우우우.

그리고 그 위.

“우리 몫도 남겨놔!”

세찬 외침이 들렸다.

알파 팀 김후경이다.

“알아서 찾아 드셔.”

치용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마저 드잡이질 좀 하자고?”

인준의 척후 부대에 이어, 치용의 돌격부대다.

그들이 받은 명령도 하나다.

돌격.

단 두 글자를 실행하라는 것.

지나며 보이는 적은 전부 몰살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만 세주가 정해줬다.

그 시작점에 처음 도착한 게 치용이었고.

그 뒤를 이은 돌격부대가 적을 급습했다.

[…반격해!]

이더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그리고 그 앞에 칙칙한 갈색의 사이클롭스가 떨어졌다.

“넌 내꺼!”

여성의 목소리다.

그녀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이더의 목을 노렸다.

스카카칵!

커다란 도끼형 블레이드를 거침없이 휘두른다.

이더는 목을 젖혀 피했다.

자신도 제너럴 급이다.

하지만 뒤에서 치용의 푸른 칼날이 날아오자, 피하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그의 일격을 피하자, 앞에서 다시 도끼가 날아온다.

콰직!

노블 에너지를 폭사해 배리어를 만들어 적의 공격궤도를 바꿨다.

바닥을 찍은 도끼를 본 그의 머리 위, 사이스를 죽인 남자가 보인다.

칼날 대신 그의 손에 샷건이 쥐어져 있었다.

“미꾸라지 같은 놈일세.”

땅!

그게 이더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퍽!

머리가 터진 이더다.

그걸 본 김후경이 이를 갈았다.

“욕심쟁이!”

“거, 상관한테 말 함부로 할래?”

김치용한테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김후경은 뒷목이 당겼다.

콰가가각!

하지만 더 입을 열진 않았다.

바로 옆에 날아온 콴 놈의 머리를 쪼개야 했다.

빠각!

골이 쪼개져 녹색 체액이 튄다.

치용도 신이 나 날뛰었다.

양 떼 속에 들어가 날뛰는 늑대다.

아니, 개개인의 실력은 콴 쪽이 위였다.

분명했다.

하지만 치용과 몇몇 존재가 그 판도를 바꾼다.

꽝!

그들의 반대편, 황금빛이 폭발한다.

안나 휴이츠, 돌격부대에 편입한 그녀의 사이클롭스에서 터진 빛이었다.

*

“이게 되네?”

나호필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본 조르노가 옆에서 묻는다.

“진짜 되니까 신기해서.”

본 조르노는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저건 뭡니까?”

홀로그램이 비추는 건, 인류의 영웅이자, 미친놈이다.

“반세주.”

나호필이 답했다.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나도 몰라.”

나호필은 말을 잘랐다.

자신도 아는 게 없다.

어느 날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고, 그 이후 전장을 누볐다.

덕분에 인류는 구원받았다.

정체 따위는 악마 새끼라고 해도 좋았다.

“어쨌든 결과는?”

일군을 맡기는 거로는 불안하지만, 바로 옆에서 부관을 하는 거라면 본 조르노를 대신할 이는 없다.

“패배.”

그는 짧게 끊어 말했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을 거다.

이 싸움은 진다.

지금은 유리하지만, 잠시일 거다.

적의 병력을 다시 인지한 조르노는 패배를 직감했다.

하루 전, 죽음을 예감한 본 조르노는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다.

자신의 인지에 없는 일이 발생하면 승부 감각은 변한다.

그는 함선 안에서 마지막 순간, 그 변화를 지켜봤다.

처음이었다.

능력을 얻고 나서 변하는 결과는.

더구나 그게 자신의 죽음이, 구명으로 변한 사실이다.

그는 흥미를 넘어 세주를 따라다니고 싶었다.

유럽연합이 맡긴 전 함선을 냅다 나호필 밑으로 귀속시킨 그는 곧바로 그의 부관을 자처했다.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그냥 죽고 싶진 않다.

반세주 곁은, 사신과 악수하는 곳이다.

그는 차선을 택했다.

자신의 즐거움도 찾고 세주의 모습을 쫓을 수 있는 곳.

나호필의 곁으로.

“즐겁나?”

나호필이 묻는다.

조르노는 어느새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즐겁네요.”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보다 못한 꼴이든지.

그런데 즐겁단다.

반세주만큼이나 미친놈.

그게 나호필이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능력은 쓸 만하다.

저 반세주도 휘하에 두고 병력으로 쓰는 나호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주가 날뛰고 그걸 나호필이 서포트하는 역할이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 그는 세주의 상관이다.

‘반세주에 비하면 애지.’

본 조르노는 딱 그 정도였다.

*

“형님.”

세주는 비틀 쉽에서 궁니르를 연이어 쐈다.

터지고 부순다.

인준의 일을 돕기도 하고, 침묵을 꺼내 위기에 처한 돌격병을 위한 저격을 하기도 했다.

훙.

작은 소음을 뱉은 침묵이 막 적의 머리통을 꿰뚫을 때였다.

유진에게 준 통신기에서 연락이 왔다.

“찾았어?”

인준과 치용이 부대를 이끌고 폭격과 눈길을 끌 때다.

유진에게는 전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콴에게는 여왕이 있다.

인간에게는 없는 문화다.

그리고 보통 왕이라는 건, 잡으면 그 승패를 뒤집을 패다.

현재는 콴의 행성을 압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호필도 그렇고 세주도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제까지 우리를 침공한 놈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게 끝이 아닐 거다.’

나호필은 말했고,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칠형포를 기다릴 수도 없다.

충전되는 데 한 달이 필요하다.

이 전쟁은 시간을 끌수록 인간에게 불리하다.

세주는 유진을 통해 작전을 설명했고, 그는 그대로 실행했다.

그들이 진짜 노리는 건, 이쪽이 아니었다.

콴의 여왕, 모성의 이름인 퀸즈 네스트, 그들의 둥지 가장 안쪽이었다.

“찾았어요.”

통신기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프로비던스의 파인딩 모드로도 보이지 않기에, 유진을 특공대로 썼다.

다행이다.

같이 딸려간 이들이 영, 불안한 작자들이었는데.

‘브로?’

-맵에 띄웠어. 지하네.

유진의 통신기에 달린 발신 신호를 추적한 프로비던스다.

‘그럼 자식 교육 잘못시킨 여자를 만나러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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