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159. 고백
“회군합시다.”
본선, 그러니까 사령관인 나호필의 함선에 모인 각국 수뇌부들이다.
지구 방위 연합의 큰 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에에, 싫은데.”
그 말에 이탈리의 본 조르노가 인상을 쓴다.
“입 다물고 계십시오.”
간신히 살아남았다.
부관은 조르노를 말렸다.
“네이네이.”
가진 능력은 출중하나 성격이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다.
나호필의 평가가 딱 들어맞는다.
겨우 살아났지만,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발악하는 분위기에서 이질적인 모습이다.
뭐, 저 치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피해가 너무 큽니다.”
함선 22척 중, 기동 가능한 함선 16척.
사이클롭스 800기 중 교전이 가능한 건 580기.
220기가 박살 나고 죽었다.
대승이다.
하지만 과연 이걸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적이 더한 병력을 밀고 오면 우리로서는 답이 없소.”
중국의 첸이라는 사령관이었다.
나호필은 답하지 않았다.
본 조르노가 눈치 없이 또 끼어들었다.
“돌아가지 맙시다.”
첸의 말투를 흉내 낸 그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옆자리에 앉은 부관은 한껏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동생 놈의 멱을 따버리고 싶은 표정이다.
“이유는?”
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내가 싫으니까?”
혀를 삐죽 내밀면서 말하는 조르노를 향해 첸은 살의가 끓어올랐다.
‘죽여?’
자신의 능력이라면 몰래 죽일 수도 있다.
중국에서 연구를 거듭한 사이킥 능력자.
첸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적어도 얄미운 인간의 목 따위는 눈 깜짝할 새면 꺾는다.
의지가 일자, 힘이 드러난다.
무형의 힘이 스멀스멀 바닥에 깔린 안개처럼 조르노에게 다가갔다.
나호필은 난감했지만, 이들을 설득할 명분이 필요했다.
턱을 괴며 호필은 생각에 잠겼다.
‘전력은 반감.’
사기는 높으나, 그렇다고 적의 무력을 얕볼 순 없다.
더구나 이들이 보일 수 있는 건 전부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였다.
‘정보가 부족해.’
적의 전력은 어떤지, 뭘 가졌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는지.
쾅.
그 틈에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에이씨,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네.”
미끌.
턱을 괸 손이 미끄러졌다.
호필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를 봤다.
“왜? 내가 못 올 데 왔어?”
그건 아니다.
반세주, 이번에도 누구도 엄두도 못 낼 전과를 세운 남자.
인류의 영웅, 그리고 미친놈.
“호필아.”
“…왜?”
“함선 전부 데리고 콴 행성에 안 놀러 갈래?”
놀러 간다라.
“미친 소리.”
첸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세주는 그를 보지도 않았다.
“가자아아아.”
나호필을 보고 졸랐다.
“푸하하하하하.”
본 조르노가 그걸 보고 바닥을 구르며 웃는다.
부관이 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세주의 말에 나호필은 깨달았다.
이들은 배수진을 쳤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진격합시다.”
“이견은 없습니다.”
조르노의 부관이 그의 편을 들었다.
“이견 내보든가, 내가 아주 친히 괴롭혀줄게.”
주먹을 흔들며 말하는 그 모습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동네 삼류 양아치 같았다.
*
콴은 언제나 차세대 전사를 준비한다.
그들의 일류 전사는 필요하면 제너럴 급의 역량을 보일 수 있다.
여왕은 결정을 내렸다.
다섯을 전장에 다시 보내기로, 아니 그 다섯 뒤로 일류와 이류, 전사 계급만 오십을 더 보낼 거다.
적의 전력을 파악했으니, 그걸 압도적으로 부술 힘만 보이면 되는 거다.
콴의 행성은 하루에 두 번, 보랏빛 노을이 졌다.
아침과 저녁.
여명과 노을이 같은 색으로 물드는 그 광경은 인간이 본다면 감탄을 터트릴 만큼 아름다웠다.
그 노을이 그림자를 보이며 깔릴 때였다.
아침은 아니었다.
시간은 저녁 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함선에 전사 계급이 타는 시점이기도 했다.
전투를 위한 준비를 끝내고 출진 직전.
쿠우우.
지지직.
레이더 감시를 담당한 이에게 노이즈가 들렸다.
티디디디딩.
파지직.
갑자기 기판에 스파크가 튀었다.
[이상 감지]
바이탄과 메카니모스보다 못 하더라도 이들도 인간보다 우월한 선진 문명이다.
프로세스에 따라 관제탑에 있는 콴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기판을 조작하고, 누군가는 이상 원인을 찾는다.
[적기 발견]
이상을 감지하자마자 보조 레이더가 작동했고, 이류 전사 메샤는 대기권 위로 작은 점을 발견했다.
[비틀 쉽 한 대]
고성능 카메라가 적기를 발견하고 쫓는다.
[확대해]
콴의 또 다른 제너를 급이자, 관제탑을 담당하는 전사 이더다.
마치 눈앞에 잡힐 것 같은 선명한 홀로그램이 뜬다.
작은 비틀 쉽 한 대, 그리고 그 위에 오롯이 선 인간 하나다.
‘불시착?’
적기라고 표현했지만, 표류선이라는 표현이 맞을 거다.
콴의 모성, 퀸즈 네스트에 겨우 비틀 쉽 한 대를 적이라고 표현할 순 없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벌레다.
[일형포, 준비]
표류선이든, 정찰기든.
통신 없이 진입한 쉽은 모두 배척 대상이다.
쿠구구구.
관제탑 위, 일형포 한 문이 작은 비틀 쉽을 조준한다.
곰 잡는 칼로 파리를 잡는 격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둥!
준비된 포가 레이저를 뿜는다.
패애앵.
들리진 않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더의 눈에 묘기와 같은 비행을 하는 쉽이 보였다.
‘피해?’
비틀 쉽은 빠르고 간편한 이동수단이지, 전투기가 아니다.
[전투기 출격 준비]
마침 전선으로 출진을 준비 중인 대군이 있다.
그중 세 척의 전투기가 준비를 마치고 뜬다.
작은 원반인 타원형의 비틀 쉽과는 다른 모양이다.
전투기 써클 쉽이다.
이형포 여덟 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비치된 전후좌우 어디에서든 적을 요격하는 최신형 전투기다.
세 척의 전투기가 뜬 순간.
카메라가 포착한 비틀 쉽, 인간이 총을 쥐었다.
‘라이플?’
소총이다.
겨우 소총 한 자루로 뭘 할 작정인가 싶었다.
갑자기 반나절 전,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온 정찰기의 보고에 의하면 콴의 제너럴 셋이 죽었다는 소리다.
‘설마?’
그 적은 인간이었고, 그리고 지금 홀로그램에 선 것도 인간이다.
하지만 겨우 비틀 쉽 한 대로 이곳을 쳐들어온다고?
이건 만용이 아니다.
자살행위일 뿐이다.
그 순간, 꽝! 꽝! 꽝!
폭음 세 번이 연달아 울렸다.
다른 카메라가 출격한 전투기를 포착했다.
[요격당했습니다.]
이더는 결정해야 했다.
일형포를 피하는 움직임을 보니, 어떤 콴도 흉내 낼 수 없는 파일럿이 저 비틀 쉽을 조종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곰 잡는 칼로 파리를 잡는 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곰 한 마리가 수백 마리를 몰살할 총탄을 개미 한 마리에게 쏟아붓는 미친 짓은 불가능하다.
[시스템에 다른 인공지능이 해킹한 흔적이 있습니다]
[시스템 제어권 방어를 위해, 안전모드를 발동합니다!]
인공지능?
‘바이탄?’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더가 제너럴이 된 건 뛰어난 전투능력보다는 판단력 때문이다.
그는 진정 장군이라 불릴 만했다.
대군을 이끌 때, 이더는 가르간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세 척의 전투기를 터트린 인간이 총구 방향을 바꾼다.
[놈이 총구가 향하는 곳이 어디냐?]
[계산 중입니다]
겨우 숨 몇 번 들이마실 시간에 답이 나왔다.
[여깁니다!]
‘뭐?’
슈웅.
파공음이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이더는 몸을 날렸다.
이더는 매사 안전을 중시했다.
목숨은 하나이기에, 아끼는 건 당연한 거라는 가치관이다.
그게 그를 살렸다.
관제탑 바닥에 박아둔 오중 배리어와 쉘터다.
퉁.
바닥이 열리며 이더의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딱 콴 하나가 들어갈 자리다.
동시에 관제탑에 폭탄이 떨어졌다.
꽈과과광!
퍼버버버벙!
폭음이 연이어 터진다.
매캐한 연기와 화염이 사방을 채운다.
이더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사이킥 에너지를 최대한 발동했다.
콴의 관제탑은 총 다섯이다.
자신이 있는 곳이 폭격을 당해도 넷이 남았다.
텔레파시를 최대한 발동한 그는 자신과 파장이 맞는 넷에게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
[시스템 복구를 최우선으로 해!]
[비틀 쉽 위치를 놓치지 마!]
이건 명백한 습격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후, 진짜가 올 거다.
이더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대공포 대 레벨 1 발동, 적기는 습격한 비틀 쉽 한 대]
*
“대공포대는 어쩔 생각이냐?”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행성에 들어오는 함선을 얌전히 구경할 리 없을 거다.
“요리조리 피할 생각이다.”
세주의 말에 나호필의 살의를 느끼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새끼는 이런 놈이다.
“이대로 진입하면 불나방 꼴이다.”
“그렇겠지.”
세주는 함선 내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붙는 티와 반바지를 입은 그의 몸은 누가 봐도 감탄을 터트릴 정도였다.
세밀하게 박힌 근육은 고무처럼 탄탄해 보였다.
체구가 그리 커 보이지 않은 그지만, 막상 옷을 벗겨서 보니 크고 단단해 보였다.
“남자 좋아해?”
“무슨 헛소리냐?”
“그럼 왜 남의 몸을 그렇게 열심히 봐?”
“아냐.”
나호필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생각이냐, 알아야겠다.”
반세주는 미친놈이지만, 아군의 희생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전부 다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선택을 할 리는 없다.
“내가 먼저 간다.”
나호필은 대답 대신 그를 차분히 바라봤다.
“자, 어쩔 생각이냐? 알아야겠다.”
“방금 말했잖아.”
“개소리 말고, 인간적으로 대화해보자.”
“…너 어릴 때 얄미워서 많이 맞지 않았어?”
맞았다. 꽤 자주.
“진심이냐?”
“그래. 나 먼저 간다.”
“그럼 해결이 된다고?”
“내가 먼저 가서 적의 레이더 시스템과 대공포 대를 마비시킬 거다.”
“그리고?”
“나머지는 유진에게 들어, 전부 설명해뒀으니까.”
콴의 함선까지는 3시간이면 도착한다.
이 정도로 천하태평인 인간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호필은 어쩔 수 없이 유진을 찾았고, 세주의 생각을 전해 들었다.
“그게 가능해?”
“그렇다네요.”
유진은 이 작전의 실제 가능 여부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언제나 그랬다.
반세주와 아이들은 다 이랬다.
‘그냥 그놈이 된다고 하면 지옥 불에라도 뛰어들 놈들.’
그렇게 말하며 돌아선 나호필은 머릿속으로 다음 작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 욕한 놈들과 자신이 다를 게 뭔가.
어떻게 가능한지, 어째서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유도 모르고, 가능성 유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호필도 믿고 있었다.
반세주가 한다면 하는 거다.
그는 자신이 말한 그대로의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
세주는 나호필이 떠나고, 바닥에 누웠다.
차디찬 금속의 느낌에 몸이 식는다.
스트레칭만으로 땀을 빼려면 근 1시간을 몸을 비틀어야 한다.
이렇게 몸을 푸는 과정이 좋았다.
근육과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에너지 남은 거 있지?’
-많지.
콴의 제너럴 셋을 죽였다.
거기에 그 전장에서 죽어간 바이탄, 메카니모스의 대군들.
-억 단위야.
감회가 새롭다.
훈련소 시절에 이 정도 에너지가 있었다면, 비무장지대 전투 따위 씹어 삼켰을 거다.
죽은 중사가 떠오른다.
자신에게 몽정의 수호신이라 별명을 붙여준 이다.
악마 소위도 떠올랐다.
그 외에도 죽은 이들은 많았다.
세주는 그런 죽음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해킹 모드 레벨 올려.’
‘파일럿 모드 오픈해.’
그리고 세주는 비틀 쉽 한 대만 타고 먼저 떠났다.
콰가가가가.
“조종간 잡으시고.”
프로비던스는 칼큐레이팅 모드를 탑재한 최고의 파일럿이다.
그대로 퀸즈 네스트 행성에 돌입.
세주는 쉽 위로 몸을 내밀었다.
‘해킹.’
-시작했어.
일형포가 날아오고, 전투기 세 척을 부순 것도 금방이다.
‘목표.’
-맵에 핀 찍었어.
세주의 눈이 맵을 스치고, 벼락을 치켜든다.
‘궁니르 폭격 모드.’
무기를 구현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콰우우우.
이걸 탄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단단하게 뭉친 에너지 탄이 적의 관제탑을 때린다.
꽈아아아아앙!
먼 곳에서부터 굉음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리고 적이 반응하기 전, 세주는 맵에 핀 네 개를 더 찾았다.
동시에 네 발의 탄환을 더 준비했고.
꽝! 꽝! 꽝! 꽝!
-시스템 장악 실패.
아무리 프로비던스라도 적의 시스템을 통째로 집어삼킬 순 없다.
고등의 정신을 지닌 인공지능 바이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해킹 모드의 목적은 딱 여기까지였다.
세주가 관제탑을 부술 때까지.
쿠르르르.
밑을 보자, 땅이 반쯤 열리다 만 게 보인다.
그 밑에 보이는 건 쇳덩이들이다.
적어도 수십 문.
대공포 대다.
-최소 1시간은 무용지물인 것들이지.
프로비던스가 짧은 감상을 뱉었다.
맞다.
그걸 위해 세주가 먼저 온 거고.
쿠우우우우.
그리고 세주의 뒤, 대기권을 뚫고 노란 동체가 머리를 들이민다.
보랏빛 노을을 배경으로 들어온 첫 번째 함선이다.
그 뒤를 따라 총 열다섯 척의 함선이 따라왔다.
콰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퀸즈 네스트 행성 하늘을 가득 채운 사이클롭스 부대.
세주는 그 모든 걸 배경으로 비틀 쉽 위에 섰다.
그 누구도 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가장 작은 쉽에 타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세주는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렸다.
지구를 침공한 이 개 같은 자식들을 만나면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그것도 지들 말로.
‘내 목소리 확성해.’
-오케이.
“후우웁.”
호흡을 잔뜩 들이마신다.
그리고 내뱉는다.
“트레에에에에에에에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린다.
아니, 프로비던스가 확성한 목소리는 적과 아군 모두의 귀에 꽂혔다.
하늘의 신이 노해, 분노의 일침을 놓는 것 같았다.
세주는 외치며 양 중지를 삐쭉 세웠다.
이걸 보여주려고, 자신을 찍는 적의 정찰 카메라를 놔둔 거다.
다 뒤져버려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그런 마음이 충만한 한 마디다.
“우어어어어어어!”
“반세주 개자식!”
“반세주 개자식!”
그 뒤로 그를 부르짖는 아군의 함성이 대기를 찢는다.
-이 순간에 이런 말 하기 정말 싫은데.
‘뭔데?’
-방금 형이 놈들한테 사랑한다고 했어.
‘…응?’
-우주 언어는 인간의 입으로 표현할 수 없어.
‘양 중지를 들었잖아.’
어머니가 평안하시냐고 묻는 욕이다.
그렇게 배웠다.
-음. 그러니까 너희들의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한 거야. 그 중지를 세우는 게 꼭 욕은 아니거든.
‘에이 시X.’
의도와 다르게 고백을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