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51화 (151/206)

#  151

151. 에잇

짜르르.

솜털이 쭈뼛 섰다.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다룰 때와 실전은 달랐다.

인준은 세주가 준 봄버맨 모드를 십분 활용하며 주변을 살폈다.

폭탄이 터지는 범위, 그 범위에 따른 위력.

모든 게 다 보인다.

다른 세상이었다.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세상.

9연발 로켓포를 어깨에 매단 인준은 중력 제어 장치를 껐다.

아머에 달린 분사 장치를 사용하면 적의 주의를 끌게 된다.

무중력 상태에서 인준의 몸이 위로 떴다.

쌔액.

카가각!

부서진 함대 파편 조각이 볼을 스쳤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아머에 긴 흉터가 남았다.

아머는 충분히 단단했다.

파편 조각에 몸을 지킬 정도로는 차고도 넘쳤다.

두둥!

광선포가 까만 배경에 멋진 그림을 그린다.

어떤 그림을 봐도 감동하지 않았던 인준이지만, 지금 이 장면만큼은 공유하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만약 자신의 연인이 살아 있었다면, 이 장면을 꼭 사진으로 남겨뒀을 거다.

죽은 이가 떠오르지만, 인준은 금세 잊었다.

그녀를 떠올리며 한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고, 지난 3년간 너무도 많은 것이 변했다.

자신은 교수에서 군인이 됐으며 현재 우주에서 무중력 상태로 부유 중이다.

이곳에 있는 아군은 자신을 제외하고 총 다섯.

세주와 팽은 비틀 쉽에 있고, 유진도 그 곁에 있다.

저 앞, 치용이 한 자루 창처럼 적의 함선을 헤집는다.

두 줄기 굵은 빛이 치용을 쫓는 게 보였다.

전선의 앞쪽, 은빛의 선이 요동친다.

실버다.

아군의 위치를 확인한 인준은 봄버맨 모드를 켠 상태로 밑을 내려다봤다.

어느새 한참이나 떠올라 있었다.

유진은 암살, 치용이 돌격이라면  자신이 할 일은?

폭발이다.

인준은 주어진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딸깍.

양쪽 어깨에 달린 로켓포를 밑으로 겨누고 중력 제어 장치를 다시 발동한다.

우드드득.

‘오버 피지컬.’

아머에 내장된 기능을 켠다.

중력이 돌아오자, 어깨에 얹힌 무게가 전신을 짓눌렀다.

인준은 그 무게감이 좋았다.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적이 보였다.

자신이 터트리고 죽여야 할 적이.

투두두두두둥!

세주는 위에서 쏟아지는 로켓포를 보고 웃었다.

자신이 화살이라면 치용은 창, 유진은 단검이다.

그리고 인준의 역할은 포탄이었다.

9연발 로켓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밑을 향해 날아왔다.

함대가 빼곡하게 모인 곳이다.

겹겹이 적의 배리어가 펼쳐진다.

세주는 그걸 보고 코웃음을 쳐주고 싶었다.

적을 향해 한껏 비웃고 싶었다.

인준을 위해 프로비던스가 만든 저 무기는 고작 배리어로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왼쪽 어깨에 얹힌 9연발 로켓은 전부 광편 폭탄이었다.

꽈과과과광!

배리어가 찢기다 못해 산산이 조각난다.

그 밑으로 빛으로 만들어진 파편이 사방으로 퍼진다.

퍼버버벙! 퍼버버버벙!

함선이 터진다.

그 어떤 폭죽놀이보다 멋진 장관이다.

트레이!

적의 함선 한 가운데였다.

-한 놈 더 있어.

프로비던스가 말함과 동시에 세주의 눈이 그 목소리를 쫓았다.

터진 함선 사이에서 몸을 위로 빼는 바이탄 한 마리가 보였다.

인간의 형태다.

맨들맨들 털 한 올 없는 쇳덩이 몸을 가진 놈이다.

[난 에잇이다. 이곳의 모든 인간을 소거한다]

딱딱한 말투가 귀에 들렸다.

-이 새끼 봐라.

프로비던스가 짜증을 냈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다.

-우리 쉽 통신을 해킹했어.

“팽!”

세주가 외쳤다.

[넘길게!]

비틀 쉽의 소유권을 말함이다.

세주는 쉽의 조종간을 받자마자, 프로비던스에게 말했다.

‘지면 병신.’

-말을 해도.

드드.

진동과 함께, 쉽이 비틀거린다.

‘어이?’

둥!

그사이 날아온 일형포 한 방을 세주가 왼팔을 들어 막았다.

터덩!

개인 배리어로 막으며 저격을 할 순 없다.

-기다려. 그 사이 놈이 이미 쉽 시스템을 많이 건드렸어.

[대장]

밑에서 팽이 올라왔다.

쉽을 조종하는 원리는 몸과 정신을 공유하는 거다.

팽의 전신 피부에 푸른 핏줄이 솟아있다.

‘설명해.’

-바이러스를 심었어. 에잇이라고 했나? 저 녀석 특기가 뭔지 보이는데.

컥.

그 사이 팽이 피를 토한다.

어허?

“형님?”

유진의 모습을 드러내고 세주의 곁으로 다가온다.

“막아.”

길게 말하지 않아도 유진은 알아들었다.

두둥!

세주를 향해 포격이 집중된다.

유진은 전신에서 에너지를 뿜었다.

화륵.

번 업 상태로 아머에 에너지를 듬뿍 쏟아 붓는다.

드드드드등!

배리어가 다섯 겹이 펼쳐지며 적의 광선포를 막아냈다.

유진이 방어에 성공한 순간.

인준의 두 번째 9연발 로켓이 허공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파삭!

폭음은 없다.

애초에 저 포탄은 오직 바이탄을 위한 무기다.

흰 연기가 옆으로 퍼진다.

백린을 닮은 저 탄은, 바이탄의 기계 덩이를 부식시키는 연기였다.

드드드드!

함대의 반을 무력화시키는 비장의 한 수였다.

문제는 하나다.

적의 숫자가 넘치게 많다는 거다.

어림잡아 120척.

거기에 에잇이란 놈의 공격에 팽과 비틀 쉽이 위기다.

‘야!’

-좀 기다려!

프로비던스를 보채자, 쉽에 대한 제어권은 뺏어왔는지 휘릭 하고 쉽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적의 광선을 피한다.

“토할 것 같네요.”

실제로 멀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유진은 중얼거렸다.

두두두두!

9연발 로켓을 쏜, 인준의 기관총이 위에서 밑으로 광탄 세례를 퍼붓는다.

세주는 적의 한 수가 꽤 강하다는 걸 인정했다.

아프네.

[아파]

팽이 입가에 묻은 빨간 피를 닦으며 말했다.

눈도 충혈되고 전신에 핏줄이 솟아오른다.

노블 에너지를 쓰는 이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어지간한 병균은 에너지로 태울 수 있었다.

“번 업.”

세주가 그녀를 향해 명령했다.

하지만 팽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못 움직이겠어]

그리고 고개를 푹하고 꺾더니 쓰러진다.

“유진.”

“잡았어요.”

잽싸게 내려온 유진이 팽을 안았다.

“안으로 들어가.”

비틀 쉽 안으로 들어간 유진을 확인한 세주가 적을 포착했다.

‘저 개새, 잡는다.’

휘릭.

비틀 쉽 위에 선 채, 세주가 서서 쏴 자세를 잡는다.

‘모드 온 불릿 마스터.’

눈깔이 돌아갔다.

세주는 사람이 죽는 게 싫었다.

거기에 아는 사람, 그것도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는 건, 끔찍하게 싫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저 미친 새끼는, 죽고 싶다고 전 세계에 신께 기도한 셈이다.

끼리릭.

볼트 액션 타입의 벼락은 한 발에 위력을 담는 형태다.

연발과 단발, 두 가지로 나눈 무기다.

단발 형태로 변경한 세주가 숨을 내쉬고 몰입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진다.

비틀 쉽이 적의 광선을 피하는 것도, 세주의 손가락도.

적의 모습은 명확히 보였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놈의 얼굴이 마치 팽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상관없다.

고작 겉모습에 현혹될 정도로 허술한 멘탈이 아니다.

―.

무음의 총탄이 허공을 난다.

아니, 무음이 아니다.

순간 소리가 귀에 늦게 들려온다.

투우웅!

드드드.

비틀 쉽이 뒤로 밀린다.

불릿 마스터 압축 애비탄이다.

쏘는 것만으로 반탄력에 몸이 밀린다.

팔이 뻐근할 정도의 한 방이 놈이 선 함선 위로 떨어진다.

착각이 아니었다.

놈은 부서지기 전, 팽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꽈아아아앙!

상관없었다.

후아아아앙!

후폭풍이 우주 한복판에 몰아친다.

부서진 함선 조각이 파편 수류탄처럼 퍼진다.

세주는 왼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며 뻗었다.

징.

짙은 푸른 막이 배리어를 만든다.

세주의 전신에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더욱 짙은 푸른빛을 만든다.

파사삭.

불똥처럼 변한 조각들이 배리어에 맞아 튕기고 바스라졌다.

“이런 개 같은 자식을 봤나.”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 한 방이면 어지간한 놈은 다 죽일 자신이 있었다.

피하지 않고 맞는다면 자신도 버틸 수 없다.

세 번을 겹겹이 압축한 애비탄이다.

그런데 적은 멀쩡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부서진 함선 건너다.

흐릿한 영상이 생기더니 거대한 홀로그램이 떴다.

팽의 얼굴이었다.

[인간은 소거한다]

목소리 또한 그녀와 같았다.

-놈은 형체가 없어.

‘빠르고,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말해.’

필요한 말만 하라는 거다.

-프로그램, 바이탄의 에잇이란 놈은 형체가 없고, 프로그램이 몸인 자식이야.

형체가 없다.

그러니까 유형적인 공격은 소용이 없다.

‘죽이려면?’

세주는 확실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나한테 맡겨. 내가 천천히 놈의 프로그램을 잠식하겠어.

“팽은?”

“오래 못 버텨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비던스가 덧붙였다.

-일종의 세균 감염이야. 놈의 프로그램을 찾아서 분석해서 파악하면 백신을 만들 수 있어.

‘팽은 얼마나 버틸 수 있지?’

-길어야 10분.

‘놈을 죽이고 분석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팽은 포기해.

“대답이나 해!”

세주가 외쳤다.

화가 난다.

바로 옆에 있던 이다.

자신의 사람이라 해서 데려왔다.

그녀를 사랑한다거나, 그녀가 가엾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세주는 그저 용납할 수 없을 뿐이었다.

죽이지 않는다.

“네?”

유진이 놀라서 세주를 향해 말했다.

그걸 무시한 세주에게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2시간.

‘지랄하지 마. 다른 방법 찾아. 10분 이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리야.

‘못하면 넌 무용지물의 쓰레기가 될 뿐이다. 프로비던스.’

진짜 화가 난 세주의 모습이다.

프로비던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인을 지켜야 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위협에 굴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 무모한 방법을 말해야 했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도 자신의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논리도, 분석도 다 필요 없었다.

그저 기세에 눌렸다.

아주 오랜만에 프로비던스는 정중하게 말했다.

지금 세주가 원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스터, 목숨을 걸고 적의 무대에서 싸운다면 가능해.

‘방법은?’

-저 에잇이란 놈이 했던 방식과 동일해. 놈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들어가는 것.

‘내가 간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프로비던스는 냉정하게 성공확률이 10% 이내로 판단했다.

그러니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확연하게 보이는 위험, 그리고 굳이 저 외계 인간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다.

‘몸을 지켜달라고 해.’

세주가 비틀 쉽 안으로 들어갔다.

“유진, 나 지켜라. 인준도 들어오라고 해.”

“치용이 형은 통신 두절인데요?”

“연결되면 돌아오….”

말을 하다 말고 세주가 뒤로 픽 쓰러진다.

지징.

그 밑으로 푹하고 세주의 몸을 받는 부드러운 소파가 생겼다.

“무슨 일이냐고요.”

유진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비틀쉽의 소유권을 넘겨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위잉.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글자가 나타난다.

지키는 일에만 전념할 것.

긁적.

유진은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애초에 세주가 가진 것 중에 이해가 가는 것들이 있었던가.

“네네. 그럽죠.”

투둥.

인준이 쉽 내부로 돌아오고 상황을 살피고 물었다.

“이 순간에 자는 거냐? 저 미친 형님?”

설마.

유진은 인준도 상상력이 참 뛰어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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